소설리스트

6화 (6/16)

6. 토끼몰이

“후우….”

산 정상에 오른 블란은 이마에 흐른 땀을 손으로 닦아냈다.

최근 블란은 아침 일찍 산책하는 습관을 들였다. 보통 이 시간이면 집에서 낮잠 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게 그 유명하다는 불면증인가. 블란은 평생 잠이 안 와서 고생해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불면은 자신을 갉아먹었다. 기분이 한껏 날 서고 쓸데없는 일에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은빛 늑대 종족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로서 이렇게 감정적이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든 잠을 자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블란은 몸이 고단해지도록 단련하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오니 아침 단련을 일삼게 됐다.

“이게 뭔 개고생인지….”

블란은 불면의 원인을 떠올리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원인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였다. 제가 라핀을 반려로 삼겠다고 먼저 손을 쓴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누아가 도 넘은 과보호를 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누아는 라핀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호감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워낙에 자존심과 고집이 센 놈이라 제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했지만, 뻔했다. 원래 놈은 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다.

“좆같군….”

블란은 눈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풍성한 은빛 털을 빛내는 고귀한 늑대의 자태와 어울리지 않는 상스러운 말이었다.

억지로라도 라핀을 만나고 싶은데, 마주치더라도 누아가 엄호하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 연약한 토끼를 업고 사냥터에 데리고 간다는 것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었지.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미친놈뿐이라고, 정면으로 응수하는 수밖에 없나?

대를 거듭하도록 이어진 늑대의 동맹은 그리 쉽게 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반려의 문제라면 달랐다. 늑대 종족 특성상 평생에 한 반려만 두기 때문에 누아가 제 반려를 건드렸다고 하면 매장될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토끼 반려를 둔다고 해도 부하들이 제 편을 들어줄지….

아무래도 다른 종족의 반려를 두는 일이 흔치 않다 보니, 난항이 예상됐다. 벌써 누아가 사냥터에 라핀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본 은빛 늑대들이 ‘토끼를 업고 다니다니. 늑대의 수치다.’라고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수심도 함께 깊어졌다. 어쩐지 불면이 더 깊어질 것 같다고, 블란은 깊게 팬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폈다.

***

한참 땀을 뺀 블란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동굴로 들어서는데, 입구서부터 늑대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울렸다. 잠잘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졸리지도 않는지 꽤 떠들썩했다. 슬쩍 보니, 검은 늑대 무리들이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체력 좋은 놈들. 블란이 심드렁하게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어렴풋이 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아? 블란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검은 늑대 무리를 자세히 살폈다. 누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 놈이 이 시간에 왜 나와 있지? 집에서 자는 놈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블란은 곧장 라핀을 찾았다. 사냥을 나갈 때조차도 라핀을 데리고 가기에 이번에도 데리고 나왔을 줄 알았는데, 토끼의 하얀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블란은 지금이 라핀을 만날 기회라는 사실에 화색을 띠었다. 어쩌면 라핀에게서 볼 재미를 다 봐서 라핀을 혼자 내버려 두는 걸지도 몰랐다. 변덕이 심한 놈이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블란은 제 좋을 대로 추측을 하고는 조심스레 집으로 향했다. 누아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향하는데, 졸린 눈을 비비던 은빛 늑대 부하 놈들 중 한 녀석이 블란을 발견했다.

“앗, 형….”

“쉿.”

“…….”

블란은 급히 손가락을 세워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다행히 금방 그 뜻을 알아들은 놈은 눈인사로 인사를 대체했다.

다행히 검은 늑대 놈들만 깨어 있고, 대부분의 은빛 늑대는 자고 있어 집으로 숨어들어가기 수월했다.

제 집에 도둑처럼 몰래 들어간 것에 성공한 블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안을 살폈다.

실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워낙 잠이 많은 토끼이니, 오늘도 자고 있을 것 같아 블란은 조심스레 누아의 방 문고리를 돌렸다.

“…….”

문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들어간 방 안은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블란이 푸른 눈동자를 움직이며 조용히 어둠 속을 살피자, 침대 위에 하얀 이불이 고른 속도로 부풀었다 꺼지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라핀이 폭신한 솜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블란이 싱그럽게 웃으며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가자, 매트리스가 노후한 것처럼 끼이익, 버거운 소리를 냈다.

블란은 천천히 라핀 위로 몸을 겹쳤다. 팔 굽혀 펴기 하듯 침대 시트를 손바닥으로 짚고 라핀을 내려다보았다.

“예쁘다.”

내 짝.

근래에 보긴 했지만, 스쳐 지나가듯 본 게 전부라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다. 자주 만나도 반가운데, 오랜만에 조우한 것처럼 느껴지니 더 어여쁘게 느껴졌다.

블란은 잠든 라핀의 얼굴 이곳저곳에 입술을 맞췄다. 매끈한 이마, 동그랗고 귀여운 코끝, 예쁘게 감긴 눈두덩이, 보드라운 뺨…. 어느 한 곳 놓칠 곳이 없어 온갖 곳에 다 입술을 맞췄다.

나름 조심스러운 몸짓이었으나, 끈덕지게 달라붙는 입술에 잠들어 있던 라핀이 미간을 좁히며 분홍빛 입술을 우물거렸다.

“우….”

“…….”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우물거렸지만 옹알이에 그쳤다. 블란은 그에 작은 야속함을 느꼈다. 얼굴만큼이나 귀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걸 아는데, 그것을 들려주지 않으니 애가 탔다.

블란은 목소리를 듣는 대신, 제 혀로 라핀의 입술을 벌리게 하고 그 안에 있는 달콤한 살덩이를 음미했다.

기분 탓인지 혀와 입에서 나오는 타액이 과실처럼 달콤했다.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처럼 맛있어서, 계속해서 혀를 빨아 당겼다.

블란이 정신없이 라핀의 타액을 음미하는 것에 정신이 팔렸을 때, 잠들어 있던 라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곧 깰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블란은 라핀이 깨든 말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블란이 더 적극적으로 입속의 연한 부위를 혀로 자극하니 이내 커튼처럼 덮여 있던 속눈썹이 올라가더니, 새카만 눈동자가 드러났다.

“으음….”

눈은 떴지만, 초점은 잡히지 않은 채였다. 라핀은 혼몽하게 눈을 반쯤 뜬 채로 옅은 신음을 흘렸다.

자다 깬 라핀은 입술을 물고 빨리는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머리가 후끈거렸고, 불을 켜지 않아서 제 입술을 빨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꿈인가? 그래, 몽정인가 보다….

욕구불만도 아니면서 이런 꿈을 꾸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꿈은 때를 가리면서 꾸는 게 아니었다.

흐리멍덩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얌전히 입술과 혀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흐린 눈으로 앞을 보고 있는데, 뒤늦게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에 형체가 잡혔다.

…블란?

라핀은 제 입술을 물고 빠는 것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됐다. 깜짝 놀란 라핀이 블란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팍 밀어냈다. 퍽! 소리가 나도록 매섭게 밀어내자, 블란이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허억…, 브, 블란 님?”

라핀은 토끼 눈을 뜨고 거친 숨을 색색거렸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데 놀라기까지 하니 라핀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블란은 뭘 저렇게 귀신 본 것처럼 놀라나 싶어 기분 나빠 하면서도, 자고 있을 때 몰래 올라탔으니 그럴 만하다고 금방 납득했다. 놀란 얼굴도 귀여우니 봐주기로 했다.

블란은 금방 기분을 풀고 아름답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잘 잤어?”

“네? 잘 자긴… 잤는데….”

막 자다가 깬 라핀은 말을 떠듬거리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가 방금까지 제 입술을 물고 빨고 있었다는 게 민망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미인이라 그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좀… 힘들었다. 그가 싫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분명 매일같이 보는 누아도 블란 못지않은 미남이었지만, 두 늑대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누아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거친 전사 같다면, 블란은 아름다운 마법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블란은 이상한 짓을 제일 많이 하는 파렴치한 늑대인데도 얼굴만 보면 그 모든 행동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을 홀리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라핀이 난처해하는 것과 달리, 블란의 기분은 점점 고조됐다. 눈앞의 라핀이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쑥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이미 볼 것 다 본 사이에 초야를 보내는 것처럼 쑥스러워하는 게 타락한 음심을 건드렸다.

“벌써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어쩌려고.”

“예…? 흣!”

라핀이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블란은 침대 시트를 지탱하고 있던 팔에 힘을 풀고 라핀의 몸 위에 제 몸을 겹쳤다. 블란이 온 체중을 싣고 두 다리를 얽으니, 아래에 깔린 라핀은 박제된 것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블란은 그런 라핀의 목덜미에 코를 묻어 체취를 맡고, 잠옷 셔츠 아래에 손을 밀어 넣었다. 판판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는 듯하던 그는 둥근 유륜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굴렸다.

“하아….”

블란이 만족스러운 숨을 크게 터트렸다. 오랜만에 만지는 보드라운 살결은 환상적이었다. 얼른 저번에 맛보았던 라핀의 속살을 음미하고 싶었다. 아는 맛이라 더 갈급해졌다.

그렇지만 하나 거슬리는 게 있었다. 라핀의 몸에 누아의 체취가 한껏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한 것처럼 체취가 안 묻어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꽤 거한 섹스를 했다는 증거였다.

블란은 그에 남몰래 헛웃음을 흘렸다. 내 예상이 맞았지. 누아 새끼, 그렇게 고고한 척을 하더니만…. 단순히 먹이 취급을 하는 거라기에는 너무 유난스럽다 했다.

반려가 다른 이와 불륜을 저지르고 돌아온 기분이었지만, 되바라진 누아 새끼가 억지로 했을 게 뻔했다. 제 순수하고 예쁘고 귀여운 토끼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뭐, 라핀의 앞구멍과 뒷구멍의 첫 경험은 저와 함께했으니, 이제 마지막만 함께하면 되지. 과정이야 어떻든 처음과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블란은 멋대로 생각하며 라핀의 상체를 매만지다가 뱀처럼 스르르 손을 아래로 옮겼다. 라핀의 온몸이 다 좋았지만, 가장 확인하고 싶은 부위가 있었다.

곧게 뻗은 남근에도 흥미가 있긴 하지만… 거긴 둘째 치고,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으니 조붓하게 다물린 살덩이가 만져졌다.

“흣….”

안쪽을 후벼 판 것도 아니고 고작 보짓살을 만졌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라핀은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손에 닿는 라핀의 보지는 기름칠을 한 것처럼 미끈거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흥건히 적셨다니…. 놀란 얼굴을 해놓고는 앙큼한 구석이 있었다.

블란은 일부러 빈정거리며 라핀을 놀려댔다.

“라핀, 여기 왜 이렇게 미끄러워? 뭔 상상을 했길래 보짓물을 질질 흘리는 거야?”

“네? 아,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라핀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얼마나 거세게 부정하는지 고개를 저을 때마다 짧은 흰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그에 블란이 짓궂게 웃었다. 한껏 기대하고 있었으면서 부정하기는. 블란이 라핀에게 제 손이 애액으로 흥건히 젖은 걸 보여주려고 하려던 찰나 라핀이 머뭇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이건 그냥… 약이 녹아서….”

“…뭐? 약?”

블란은 음부를 매만지던 손을 하의에서 단번에 빼고 코앞에 가져다 댔다.

후각을 예민하게 세우니 약초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음란한 토끼라며 기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미간을 좁힌 블란은 곧장 라핀의 바지를 벗기고 음부를 확인했다. 방금 보지를 만졌을 때 유달리 통통한 느낌이기에 누아 놈이 잘 먹여서 살이 오른 건가 했는데…. 이제 보니 벌겋고 퉁퉁 부어 있었다.

이곳은 생식기이니 워낙 여린 부위이긴 했지만, 이 꼴이 되려면 얼마나 좆질을 해댄 건지 감히 예상도 되지 않았다.

“하…. 뭔 짓을 했는데 보지가 이 꼴이 됐어?”

“흐읏….”

블란은 속에서 불이 치솟는 것을 억누르고, 좁은 구멍에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으며 물었다. 섹스하기 위함은 아니고, 안쪽도 엉망이 된 건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깊이 손가락을 넣었다 빼니 맑은 액체가 손에 묻어났다. 다행히 안에서 피는 묻어나지 않았다. 이제 보지를 못 쓰게 된 건지 내심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블란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라핀이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음에 대답했다.

“누, 누아 님이 노… 해서.”

“응?”

“노팅 해, 해서… 그, 그래서 약을 많이… 발랐어요.”

“…….”

‘노팅’이라니. 말을 들은 블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이미 굳어 있었지만, 온도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정도였다.

라핀이 두려움에 몸을 흠칫 떨자, 그가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냉담하게 욕지거리를 했다.

“그 미친 새끼….”

블란은 여태까지 제가 한 짓은 생각도 않고, 누아를 희대의 쓰레기 취급했다.

씨발, 노팅도 제가 먼저 경험시켜 줬어야 했는데. 블란은 노팅의 첫 경험을 누아에게 빼앗긴 것이 미친 듯이 짜증이 나면서도, 눈앞의 작고 여린 생명체를 보고 있자니 라핀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이 작은 것이 누아한테 얼마나 착취당하고, 고생이 심했을까. 어떻게 해서든 누아에게서 구해줘야겠다. 라핀을 불쌍히 여긴 블란은 명령하듯 라핀에게 말했다.

“무릎 꿇고 엎드려.”

“…네?”

“안쪽까지 봐줄 테니까, 나한테 보지를 내보이라고.”

블란의 말에 라핀의 얼굴이 불처럼 뜨거워졌다. 음담패설을 밥 먹듯이 하던 늑대인 건 알았지만, 불시에 들으니 귀가 타버릴 듯했다. 라핀은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소심하게 대꾸했다.

“야, 약도 발랐고, 봐주실 필요가… 어, 없는데요.”

“있어.”

넌 내 반려니까.

블란이 자애롭게 말했으나, 라핀은 보지를 내보이기는커녕 다리를 오므리며 음부를 가리려고 했다.

답답한 내 반려. 블란은 자애롭게 살짝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내리고, 손을 위로 올렸다가 빠르게 엉덩이를 내려쳤다.

“아야!”

철썩!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라핀의 엉덩이가 탄력적으로 흔들렸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부위에 홧홧하게 열이 올랐다. 라핀이 따끔한 고통에 맞은 부위를 문지르려고 하자, 블란이 다시금 엉덩이를 내려쳤다. 방금 때렸던 부위였다.

“아윽! 왜, 왜 때려요…!”

“무릎 꿇고 엎드리랬잖아.”

“흐으윽….”

“손 안 치워?”

블란의 냉정한 말에 라핀은 결국 울면서 손을 내렸다. 얻어맞은 엉덩이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빨리 듣지 않았다가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얻어맞을 기세였다. 라핀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말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위로 들렸다.

라핀이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명령에 응했지만, 블란은 그마저도 시원찮은지 냉랭하게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쳤다.

“엉덩이 더 들어.”

“흑….”

지금 자세만 해도 엉덩이를 내밀고 있어서 민망한데, 엉덩이를 더 치켜들라니…. 차라리 자세를 잡아주면 좋을 텐데, 그는 알아서 하라는 듯 지켜보고만 있다.

라핀이 울먹거리며 한껏 엉덩이를 위로 치켜 올리자, 단숨에 라핀의 수치스러운 부위가 드러났다.

“이, 이렇게요…?”

“…….”

라핀이 이 정도면 됐냐고 물었지만, 블란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된 건가…? 라핀이 뒤를 힐끗 봤다가, 블란이 보지를 코앞에 두고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보고 화들짝 기겁했다.

“보, 보지 마세요…!”

블란이 제 안쪽을 보려고 이런 자세를 시킨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얼굴을 가까이 대고 제 보지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니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라핀이 얼굴을 터트릴 듯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두 손을 음부에 가져다 댔다. 작은 손으로 보지와 뒷구멍을 손으로 가리자, 블란이 매서운 손으로 라핀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아야!”

“어딜 가려.”

“흑….”

블란이 또 같은 곳을 때렸다. 같은 부위를 세 번 얻어맞으니, 엉덩이가 퉁퉁 부은 느낌이 났다.

가리고 싶은데, 네 번 맞았다가는 멍이라도 들 기세였다. 라핀이 어쩔 수 없이 침대 시트를 꽉 쥐어 잡으며 수치심을 참자, 블란이 두 손가락으로 보지를 활짝 벌렸다.

“흐읏….”

“보지 꼴이 말이 아니네.”

블란이 움찔 조이는 보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보지 상태를 손으로만 확인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보짓살은 발갛게 부어 있었고, 핑크빛이 도는 내벽에는 하얗고 투명한 약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블란은 좁은 구멍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약을 꼼꼼히 바른 덕분에 내벽은 축축하고 미끈거렸다. 블란이 손가락을 안에서 굽혔다 펴자 정액이라도 가득 찬 것처럼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아래를 들쑤시니 라핀이 보지를 움칠 조이며 얼굴을 시트에 묻었다.

“흐으….”

“…….”

블란은 제 손가락을 맛있게 조이는 내벽에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라면 제 손가락이 그렇게 맛있냐며 흐뭇하게 음담패설을 했겠지만 지금 기분은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야한 꼴을 보고 있자니, 내벽의 축축한 것이 사실 약이 아니라 누아가 싸지른 정액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누아의 체취가 유달리 많이 풍기니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아의 정액을 완전히 긁어내버리고 싶었다. 단 한 방울도 라핀의 몸 안에 남기고 싶지 않아졌다.

블란이 멋대로 추측하며 내벽을 가볍게 긁어대자, 라핀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첨예한 자극에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다.

“아, 흐으응, 자, 잠깐만요…. 거기는….”

“이게 전부 다 약이라고? 뭘 이렇게 덕지덕지 발랐어.”

“흐으으응….”

“이거 누아 놈 정액 아니야?”

후각으로 약이라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연고를 보지에 대고 쥐어 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질척거리니 전부 다 약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질투에 눈이 멀어 진실이 보이지 않았다.

블란이 여린 내벽을 살살 긁어대자 회음부가 약과 애액이 섞인 맑은 액체로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액체가 사타구니 사이로까지 흐르자 라핀이 참다못해 고개를 마구잡이로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예요…! 하, 누, 누아 님이 그건 다 빼주셨… 흐윽, 는데….”

“…이렇게 손가락을 넣어서?”

“흐으, 네에…. 그러니까아….”

안에 있는 건 약이 맞다며 라핀이 그만하라고 애원했다. 침대 시트를 그러쥐던 손으로 블란의 손목을 붙잡으며 낑낑거리기도 했다.

블란은 라핀의 구멍 안쪽을 채우고 있던 것이 약이라는 걸 재차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분노가 식지 않았다. 누아가 긁어서 빼줬다는 건 결국 안에 사정했다는 것 아닌가. 결국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다.

블란이 보지를 쑤셔대던 손가락을 단번에 빼내자 보지 구멍이 아쉽다는 듯이 벌름거렸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후….”

블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질투의 화신처럼 뭔 짓만 하면 누아가 떠올랐는데, 벌름대는 보지를 보고 있자니 박아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금방 머릿속이 가득 찼다.

이렇게 벌름대는 걸 보아하니 라핀도 박아주는 걸 원하는 거리라. 보짓물도 이렇게 흥건하게 흘리고 있지 않나.

블란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성기를 꺼내 뭉툭한 귀두를 보짓살에 문질렀다. 그러자 라핀은 위험을 느끼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흐으, 아, 잠깐….”

“라핀, 내가 좀 질투가 심하거든.”

블란은 라핀의 허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완전히 상체를 엎드리도록 했다. 이윽고 미끄러지듯 자지 기둥을 밀어 넣었다.

“아으으읏!”

그는 라핀이 삽입에 익숙해질 시간조차 주지 않고, 단번에 성기를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삽입에는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길고 두꺼운 기둥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느낌이 라핀이 고개를 확 젖혔다.

라핀은 꺽꺽 소리를 내며 버거워했지만, 안쪽의 조임은 많이 풀려 있었다. 약이 윤활제 역할을 해주기도 했고, 노팅을 한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은 터라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 있었다.

“하….”

블란은 내벽의 조임을 느끼며 짜증 섞인 숨을 내뱉었다. 일전에 라핀의 보지 조임이 심하다고, 그러니 좆길을 내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길이 나니 제가 만든 길이 아니라는 것에 화가 났다.

나도 노팅을 해버릴까. 저도 공평하게 해야 할 텐데.

블란은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라핀의 상태는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저까지 노팅을 했다가는 다시는 보지를 쓸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암컷 늑대도 노팅 두 번을 연달아 버티긴 힘들 텐데, 토끼는 더 못 버티겠지.

하…, 다음에 노팅할 기회가 있겠지.

라핀을 잡아두고 있는 이상, 그리고 누아가 라핀을 잡아먹지 않는 이상 기회는 많았다.

블란이 귀두만 걸칠 정도로 성기를 빼냈다가 다시 고환이 엉덩이에 부딪칠 때까지 깊게 밀어 넣었다. 뿌리까지 넣을 듯 굴자 라핀이 내벽을 바르르 조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흐으으, 아, 아파, 아파요…!”

“후우, 라핀.”

“흐으으….”

“눈 떠봐.”

블란은 깨나 다정한 손길로 라핀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정돈해줬다. 그러며 엄지로 눈가에 맺힌 눈물도 닦아주었다. 누가 보면 정상적인 교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다정했다.

라핀이 슬며시 뜨고 눈앞의 블란을 바라보자, 그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지만 두 눈은 웃음기 하나 없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내 반려가… 다른 놈이랑, 구르고 들어온 걸, 그냥 넘길 정도로.”

“으응, 아, 흐으…!”

“내 인내심이, 그렇게 좋지 못하거든.”

“아흐윽!”

퍼억!

그 말과 동시에 블란은 때리는 듯 무자비한 힘으로 무섭게 밀어붙였다.

라핀의 안쪽을 미친 듯이 찔러오는 성기에 블란의 말뜻을 깊게 생각할 여력조차 없어졌다. 반려? 스쳐 지나가듯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졌다. 아랫도리의 감각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빠듯했다.

블란은 무자비하게 성기를 놀리면서도 라핀의 젖꼭지를 뭉근하게 굴리고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라핀의 가슴은 풍만하지도 않은, 그저 수컷의 밋밋한 가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밋밋한 가슴에 톡 튀어나온 이 작은 알갱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예쁜 분홍색이라는 것도, 흥분하면 바짝 선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욕심 같아서는 사탕처럼 물고 빨고 싶은데 뒤에서 박고 있는 터라 허락되지 않았다.

가슴을 제멋대로 하지 못해 불만에 찬 블란은 보다 더 거칠게, 보지에 화풀이하듯 삽입을 이었다.

“아흐, 아, 천천, 히, 으으읏!”

“…….”

“아흐으, 흥, 아, 제발, 부탁, 흐앙…!”

라핀이 제발 천천히 해달라고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했지만 블란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행위는 더 거세져서 라핀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내벽은 약과 보짓물, 그리고 블란의 성기에서 나온 쿠퍼액으로 완전히 축축해졌다. 삽입에 맞춰 찌걱거리는 외설적인 소리가 신음과 함께 방 안에 울렸다.

“흐으으, 으….”

라핀은 저도 모르는 새 픽픽 사정을 해버리고, 힘이 빠져 치켜세우고 있던 엉덩이를 무너트려버렸다. 그렇게 침대에 완전히 엎드린 자세가 됐지만 블란은 집요하게 따라오며 성기를 박아왔다.

블란의 양팔로 좌우가 가로막혀 라핀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라핀이 헐떡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블란이 대번 라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내벽 아주 깊은 곳을 거칠게 비비는 귀두에 눈이 까무룩 뒤집힐 뻔한 라핀이 그대로 사정했다.

“아흐으윽!”

“윽…!”

블란이 라핀의 몸을 바스러뜨릴 듯 끌어안는 것과 동시에, 라핀의 뱃속으로 따듯한 것이 퍼졌다. 그가 안에 사정한 것이었다.

씨물을 다 뿌린 블란이 보지를 틀어막고 있던 성기를 슬며시 빼내자, 벌어진 구멍 사이로 하얀 점액질이 주르륵 흘렀다.

몇 번을 봐도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블란은 아주 작고 귀여운 것을 본 것처럼 마음이 대번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블란은 조금 기세를 죽이며 라핀의 뺨이며 눈가에 입술을 맞췄다.

“하아…. 왜 그 새끼가 노팅을 했는지 알겠어.”

블란은 누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짜증 났지만, 라핀이랑 섹스를 하고 있자면 노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일전에도 느꼈던 욕구였다.

그렇지만 블란은 그런 욕구가 들 때마다 온 이성을 끌어 모아 참았다. 라핀이 아주 작은 토끼만 아니었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했을 것이다.

노팅하고 싶다. 블란이 그렇게 생각하며 라핀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무는데,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블란이 얼굴을 떼고 라핀을 들여다보자 라핀이 벌벌 떨고 있었다.

“노, 노팅하지 마세요….”

“…….”

블란은 필요 이상으로 떠는 라핀을 보고 당혹스러워졌다. 왜 노팅했는지 알겠다는 건, 그저 감탄사였다. 그만큼 보지 맛이 좋다는 거지, 진짜 노팅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라핀은 지금 당장 노팅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노팅의 기억이 좋지 않았는지, 발갛게 올라와 있던 얼굴이 대번 질렸다.

블란은 답답한 숨을 내뱉으며 그런 라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까도 생각했듯이 암컷 늑대도 힘들어하는 노팅을 두 번 연속으로 했다가는 라핀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러니 라핀에게 노팅하지 않을 거라고 다정히 달래줘도 됐지만, 저와의 잠자리에서 라핀이 다른 수컷을 떠올린다는 게 치가 떨릴 정도로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괜한 고집을 부리게 됐다.

블란은 라핀을 체중으로 짓누르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우며 말했다.

“그럼 직접 내 몸에 올라타서 움직여 봐.”

“네…?”

“잘 움직이면 노팅 안 하고 끝내줄게.”

블란은 그렇게 말하며 제 성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방금 사정했다고는 믿기지 않도록 빳빳하게 곧추서 있었다.

아니, 그렇게… 하고도 이렇게 바로 발기한다고?

라핀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들이 한 번으로 끝낸 적이 없었다는 걸 떠올리고 체념했다.

“…….”

라핀은 단 한 번도 성관계를 주도해본 적이 없었다. 블란이며 누아며, 그들 뜻대로 휘둘리며 다리를 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직접 움직이라는 것이 엄청난 임무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라핀은 머뭇머뭇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하, 한 번만… 하면 되는 거죠…?”

“그래, 한 번만 더 싸고 그만둘게.”

사실 블란은 고작 두 번 사정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더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불면 때문에 며칠째 제대로 못 잤었는데, 라핀과 몸을 겹치니 거짓말처럼 안도감이 밀려오며 졸음이 왔다. 지금 자면 깊게 잘 수 있을 듯했다.

귀한 졸음이 날아가기 전에 어서 한 번은 더 하고 싶다. 블란이 그렇게 생각하며 제안했지만, 라핀은 직접 올라타는 게 꺼려지는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데. 블란은 작게 혀를 차고는, 라핀에게 눈짓을 줬다.

“할 거야, 말 거야?”

“해, 해요….”

블란이 재촉하자, 라핀이 어정쩡한 자세로 블란의 하반신 위에 올라탔다. 행동 하나하나에 망설임이 뚝뚝 묻어났지만, 무릎을 꿇은 채 허벅지를 세우고 블란의 자지 끝을 보지에 맞췄다.

“…….”

용기를 내어 거기까지는 했었지만, 몸을 내리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방금의 정사로 라핀의 보지는 빠끔 벌어져 있었고 내벽은 점액질로 젖어 있었다. 이대로 몸만 내리면 삽입인데,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렇게 또 라핀이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자, 참다못한 블란이 물었다.

“도와줘?”

“아, 아니요…. 조금만 더, 흣…!”

“얼마나 기다리라고.”

“잠깐, 하, 아으으, 으읏…!”

라핀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블란은 참을성 없이 허리를 잡아 눌렀다.

라핀이 성기 위에 주저앉으면서 묵직한 살덩이가 안쪽을 단번에 가르고 들어왔다. 체중이 온전히 실린 탓에 성기는 평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닿았다.

커다란 고환이 궁둥이에 닿을 만큼 완전히 들어오자 라핀은 급격한 현기증을 느끼고 블란의 단단한 복근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너무 깊은 탓에 토기가 치솟았고, 어지럽고 혼절할 것처럼 힘이 축 빠졌다.

라핀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정신을 못 차리자 블란이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라핀, 움직여야지.”

“으흐, 히, 힘들어서….”

“내가 만족 못 하면 어쩌려고. 노팅해 주면 좋겠어?”

“흐으으, 아뇨, 아뇨….”

라핀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서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제가 안 움직이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블란은 그 짧은 찰나도 봐주지 않고 어서 움직이라며 종용했다.

라핀은 겨우 정신을 다잡고 엉덩이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 으읏, 으응….”

찌걱, 찌거억….

한 번, 두 번, 세 번…. 무릎으로 일어섰다가 앉을 때마다 느릿하게 라핀의 음부 사이로 굵은 성기가 사라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건 무자비하게 박힐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속도와 깊이를 제가 조절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깊게 넣을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고 체력적으로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몇 분이 지나니 라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라핀은 나름 최선의 노력을 하는 중이었지만, 블란은 점점 더 불만족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봉사 좀 받아보려고 했던 생각과 달리 어쩐지 신종 고문을 받는 기분이다. 라핀이 너무 서툴기도 했고, 몸을 사려가면서 움직이는 탓에 거북이처럼 느리고 삽입의 깊이도 그리 깊지 않은 탓이었다.

당장이라도 라핀의 허리를 꾹 누르고, 멋대로 박고 싶다. 아래가 다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난폭하게 박고 싶다.

그렇지만….

블란은 음습한 눈으로 라핀을 올려다 바라봤다. 제 몸 위에서 팔랑이는 하얀 나신은 당장이라도 보지에 좆물을 쏟아 부어주고 싶을 정도로 야했다.

그렇지만 흔치 않은 기회니까. 제가 만족할 때까지 라핀이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블란이 은근슬쩍 허리를 들썩이며 라핀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라핀이 휙 고개를 돌렸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아였다.

***

집으로 돌아온 누아는 제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누아는 제가 노팅을 한 것 때문에 라핀을 더 건드리지 않고자 자리를 피한 거였다. 그런데 돌아오니 블란과 라핀이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블란의 몸에 올라타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제가 아는 라핀은 잠자리에 있어서 늘 소극적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블란과 성교를 할 때는 저리 적극적이다니.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꿈인 것처럼 믿을 수 없었다.

나랑 하는 건 그렇게 싫어하더니, 블란이랑 할 때는 저렇게 야하게 군다고?

누아가 핏발 선 눈으로 블란과 라핀을 보자, 블란이 허리를 쿵 박아 올렸다.

“아흐윽!”

“라핀, 멈추면 안 되지.”

“아흐으, 하, 하지만 누아 님이….”

“어서.”

“하아, 아으윽!”

블란은 그렇게 말하며 보란 듯이 허리를 더 추어올렸다. 좆이 대번 깊은 곳을 내찌르자, 라핀이 힘없이 블란의 상체 위로 엎어졌다.

누아는 그 모습에 더 황당해졌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라핀이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는 걸 봤는데, 제가 와서 그런지 나무토막처럼 블란의 몸짓에 흔들리기만 했다.

누아로서는 라핀이 연기를 하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라핀은 저랑 섹스하기 싫어서 수동적이었던 걸까? 소심하고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가?

누아는 그렇게 묻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당장 저 둘을 떼어 놓아야 했다.

누아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며 위협했다.

“그만해.”

“후우, 그래…. 남의 방에서 이러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내 침대로 갈까, 라핀?”

블란은 남의 방에서 섹스하고 있었던 것만 문제라는 듯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라핀을 안아 들고 이동하려고 했다.

블란이 몸을 일으키면서 그의 성기가 라핀의 안에서 무자비하게 요동쳤다. 느끼는 곳을 겨냥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찔러대는 움직임에 라핀은 기함을 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아흐으, 아니, 싫어, 흑, 그마안….”

“라핀. 할까?”

“흐으으….”

할까? 라는 말 한마디에 라핀이 고개를 젓던 것을 멈췄다.

주어를 생략했지만, “노팅할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성기를 몸 안에 품고 움직이는 것도 싫었고, 누아에게 이런 장면을 보인 것도 싫었다. 그렇지만 노팅하는 것은 더 끔찍했다. 라핀은 붉으락푸르락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아니요, 하, 할 테니까 그건….”

“그럼 잘해야지.”

“흐으, 으으흑….”

머뭇거리던 라핀은 훌쩍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허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블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엉덩이를 움직이는 것이 한계였다.

누아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먹을 꾹 쥐었다. 주먹을 꽉 쥔 탓에 손톱이 아프도록 살갗을 파고들었다. 라핀이든 블란이든, 가릴 것 없이 둘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뜨거운 분노가 심장에 사무쳤다.

이마에 핏대가 서도록 화를 다스리고 있는데, 눈앞에서 하얀 엉덩이가 찰박찰박 흔들렸다.

“씨발….”

누아가 어금니를 뿌드득 갈며 낮게 욕지거리를 했다. 정말 화가 사무쳐서 조절이 안 될 정도인데, 라핀의 나신이 팔랑팔랑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아랫도리에 피가 몰렸다.

야한 광경이긴 했지만,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으면서 왜 흥분하는 건지. 머릿속에 섹스만 찬 미친놈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비참하고 더러웠다.

두 다리가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거웠지만, 누아는 성큼성큼 다가가 라핀의 팔뚝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윽…!”

억센 힘에 라핀의 몸이 들썩거렸지만, 블란이 라핀의 허리를 꽉 쥐고 있는 탓에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누아는 분노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핀, 빨리 안 일어나?”

“흐으으, 누, 누아 님….”

라핀이 젖어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누아를 올려다봤다. 라핀은 굉장히 서러워 보였고,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당혹스러워 보였다. 아까까지 직접 엉덩이를 흔들고 있던 토끼라고는 상상도 안 될 만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누아는 그 모습에 호구 새끼처럼 심장이 빠듯해졌다.

“그만, 하, 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그런 감상을 다 깨버릴 만큼 황당한 말이었다.

“…뭐?”

“저 좀, 가만히… 내, 내버려….”

“너…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네 꼴이 어떤 줄 알아? 늑대랑 섹스하고 싶어서 엉덩이 흔드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흐으으, 아니….”

누아가 일부러 상스러운 말로 힐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핀은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섹스가 좋아도 그렇지, 남의 방에서 하다가 들키면 부끄러워서라도 멈추지 않나? 블란은 원래 미친 새끼라지만, 라핀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요망했다. 있던 정도 다 떨어질 것 같았다.

누아가 숨을 내뱉으며 겨우 분노를 삭이는데,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블란이었다.

“라핀이 좋다는데, 그냥 두지 그래?”

“…….”

꼭 억지로 당한 것처럼 억울하고 눈물범벅인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다 좋아서 한 거란 말이지.

누아는 눈을 치뜨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고요한 방 안에 지이익,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누아가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였다.

“섹스가 그렇게 좋아? 그럼 나도 끼워주지 그래?”

“네?”

“뭐?”

누아의 말에 라핀뿐만 아니라, 줄곧 여유롭던 블란이 반응을 보였다. 둘 다 누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 못 한 반응이었다.

“왜? 라핀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좆 하나 더 박게 해달란 건데.”

누아는 뻔뻔하게 말하며 성기를 덜렁 꺼냈다.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짜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누아의 것은 완전히 발기해 있다 못해 쿠퍼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블란과 섹스하는 모습은 꼴 보기 싫었지만, 라핀이 스스로 엉덩이를 움직이는 모습이 지나치게 야했던 탓이었다.

“그게 무슨….”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말끝을 흐리며 눈을 깜빡이던 라핀은 누아가 뒤에 앉자 뒤늦게 ‘끼워주다’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라핀의 안색이 핏기 없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놔주세요…! 흐으, 아, 무섭…, 무서워요!”

라핀은 버둥거리면서 블란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외치는 목소리에서는 다급함과 절실함이 뚝뚝 묻어났다. 그렇지만 블란이 라핀을 붙잡으면서 무산이 됐다.

“좆 까.”

“아으흐윽…!”

그렇게 말하며 블란은 다시 제멋대로 허리를 놀렸다. 라핀이 가장 느끼는 깊숙한 부위를 날카롭게 긁어주자, 필사적으로 버둥대던 라핀의 몸이 맥없이 무너졌다.

“하, 아흐, 안 돼, 하지, 흐, 말라니까…! 아아!”

“…….”

누아의 눈앞에서 또다시 정사가 이어졌다. 부끄러워하던 라핀도 점점 쾌감에 잠식되어 바로 뒤에 누아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크게 신음을 내질렀다.

누아는 그 모습에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제 존재를 잊은 라핀도 황당했지만, 블란 놈은… 저렇게 박으면 제가 못 낄 줄 아는 걸까?

누아는 성기를 꺼낸 채 라핀의 보지를 내려다봤다가, 블란의 좆을 보고 작게 혀를 찼다. 놈의 성기를 보는 것도 짜증이 났고, 어제 제가 노팅을 한 탓에 보지 꼴이 척 봐도 말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기어코 삽입하다니…. 블란은 역시 미친 새끼다.

그렇지만 누아는 지금 그보다 훨씬 더 미친 짓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뒷구멍에 박을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뒷구멍에 삽입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보지가 만원 상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일전에 라핀이 블란과 뒷구멍으로 섹스한 정황을 들었으니, 언젠가 저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누아가 뒷구멍에 손가락을 조심스레 밀어 넣자, 라핀이 퍼뜩 놀라며 반사적으로 아래를 빠듯하게 조였다. 라핀은 고개를 돌려 힘겹게 누아를 보며 외쳤다,

“아으흣, 지금, 뭐 하는…, 읏, 거예요!”

“여기로 재미 좀 봤다면서.”

누아가 빈정대면서 손가락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원래 이런 곳인지 아니면 섹스 도중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빠듯했다. 보지에서 흐른 애액이 흘러내려 조금 축축했지만 그래도 뻑뻑했다.

과연 이곳으로 섹스할 수 있나 의구심이 들면서도, 누아는 이곳이 블란의 성기를 받을 만큼 열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블란의 것도 받았다는데 제 것을 못 받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제 것이 블란보다 더 클 테지만 말이다.

“흐으, 아…. 으읏…!”

누아는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뒷구멍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정성스레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제가 뒷구멍을 쑤셔서인지, 아니면 블란이 추삽질을 멈추지 않아서인지 야릇하게 신음을 흘리는 라핀 때문에 참을성이 금방 바닥나버리고 말았다.

조급해진 누아는 대충 뒷구멍을 풀어주고 근처에 있는 크림을 가져와 성기에 듬뿍 발랐다. 뒷구멍을 제대로 풀어주지는 못했지만, 크림이 윤활제 역할을 해주리라.

누아가 미끈해진 성기를 엉덩이 골짜기에 비비적거리다 선단을 뒷구멍에 가져다 대자, 헐떡거리던 라핀이 헉 소리를 내며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아, 제발, 그만, 아, 흐윽, 누아 니임…. 진짜 모, 못 해요…!”

“…그럼 일어나라고 할 때 일어나지 그랬어.”

“흐으, 그건… 브, 블란 님이… 아흐읏!”

라핀이 억울하다는 듯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블란이 얄궂게 허릿짓을 하면서 말이 삼켜들었다.

누아는 그에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누아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허리에 힘을 줬다.

과연 좁은 구멍 안으로 들어갈까 싶었지만, 억지로 넣으니 쩌저적 소리와 함께 좁은 구멍 사이로 성기가 차츰차츰 먹혀들었다.

“아, 흐, 으으윽…!”

“후우…!”

누아는 뒷구멍의 조임에 미간을 왈칵 구겼다.

얼마나 조이고 뜨겁던지, 좆이 녹을 것 같았다. 블란과 애널 섹스를 한 적이 있다고 했기에, 삽입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뒷구멍은 처음 좆을 받아보는 것처럼 뻑뻑하고 좁았다. 크림을 윤활제로 사용해서 망정이지 그것도 바르지 않았더라면 삽입도 못 했을 기세였다.

누아의 시야에는 라핀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버겁고 힘들어서 마른 등을 경련하는 것이 보였다. 많이 버거운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저 몰래 붙어먹고 있었다는 환멸에 라핀의 사정 따위 봐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흔들렸다. 더 진입해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맞은편에 있는 블란은 남의 일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은근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라핀의 보지를 쑤시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감히 남의 먹잇감을 탐내는 비열한 새끼. 그뿐만 아니라 블란과는 어렸을 적부터 철저히 라이벌 관계로 자랐다. 같은 나이에 같은 곳에서 태어나, 타고난 능력으로 우두머리 교육을 받았다.

은빛 늑대와 검은 늑대는 둘이 태어나기 전부터 동맹 관계였지만, 철저히 견제로 이뤄지고 있는 동맹이었다. 한집에 살게 됐다고 한들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하필 그런 사이에 취향까지 겹치다니. 그래서 둘이 토끼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빼앗기는 것이 지는 것이라며.

그래서 저런 블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성을 잃은 누아는 망설임을 접고, 라핀의 귓가에 대고 속살댔다.

“라핀…, 후, 힘 빼.”

“으흣, 못, 흐으윽…!”

귓가에 닿는 숨결 때문에 오히려 조임이 더 심해졌다. 누아는 라핀의 엉덩이 볼기를 최대한 양쪽으로 벌리고 체중을 실었다.

라핀이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누아는 차라리 단번에 넣는 것이 라핀을 덜 괴롭히는 것이라며 여기며 삽입을 멈추지 않았다.

“아으윽! 흐아아, 아파, 아으읏…! 주, 죽을 것, 같, 윽!”

그렇게 전부 성기를 삽입했을 때에는 라핀이 하얀 몸을 바르르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라핀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듯, 바짝 서 있던 라핀의 성기는 어느새 반쯤 시들었다. 블란은 그것을 내려다보고는 답 없는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우…, 누아, 너 때문에 분위기 잡쳤잖아. 좀 빠지지 그래?”

“네가, 빼면 해결될 문제야.”

“재미 보는 중에 끼어든 건 너야.”

“남의 것에 손댄 게 누구인데?”

누아와 블란은 라핀의 몸에 성기를 깊게 박아 넣은 채 으르렁 소리를 내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런 둘 사이에 낀 라핀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뒷구멍이며 보지며 박혀 있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좆 하나만 들어와도 배가 불룩 튀어나오는데, 두 개가 들어오니 더 튀어나왔다.

아프고 힘든데 이 늑대들은 끝도 없이 싸울 기세였다. 이래서야 정사가 언제 끝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째서 먼 옛날부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말이 내려오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늑대 싸움에 토끼 아랫구멍이 터지는 중이었다.

“흐윽, 저, 죽겠, 빼고, 싸우… 든가…!”

“후….”

라핀이 결국 참다못해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효과가 있었는지, 블란과 누아가 당장이라도 치고받고 싸울 것처럼 굴던 기세를 죽였다. 대신 블란은 라핀의 상체를 끌어안으며 마른 등을 손바닥으로 토닥였다.

“후우, 라핀. 네가 저 새끼 때문에 고생이 많다.”

“얘가 고생하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흐으윽, 빠, 빨리… 박기나 해요…!”

누아가 무어라 또 반박하며 성질을 세우기에, 라핀은 그의 말을 끊고 다시금 언성을 높였다. 이 상태로 싸우지 말고, 빨리 끝내 달라는 말이었다. 굳이 싸울 거라면 부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싸우기를 바라는 간곡한 심정이었다.

라핀의 간절한 부탁에 거짓말처럼 블란과 누아의 싸움이 멈췄다. 잠시간 묘한 정적이 흐르더니, 누아가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씨발.”

욕설과 동시에 뒷구멍에 품은 자지가 깊은 곳까지 단번에 찌르고 들어왔다.

“아으흑!”

삽입의 거친 힘에 라핀이 블란의 품으로 더 깊게 파고들자, 블란의 손이 라핀의 가는 허리를 쥔 채 몸을 들썩였다.

“아아!”

뒷구멍에서 성기가 빠져나가는 듯하면 보지에 품은 성기가 깊게 들어왔다. 앞뒤 재지 않고 함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라핀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돌아갔다.

늑대들과 섹스할 때마다 늘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이야말로 딱 죽을 것 같은 감각이었다. 성기가 교차하며 들어와서 숨 쉴 틈이 전혀 없었고, 어쩌다 성기 두 개가 동시에 들어오면 목구멍까지 좆이 들어온 것처럼 숨이 컥 막혔다.

해일처럼 몰려오는 감각에 라핀의 눈앞이 하얘졌다가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라핀은 이렇게 버티느니 확 기절해버리려고 했지만, 성기가 푹 치고 들어올 때마다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평소에는 잘만 기절했는데 이럴 때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라핀은 두 늑대 사이에 고정되어 반항 하나 하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데 앞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 후으, 라핀…. 너, 섰다.”

“흐윽, 네…?”

블런이 놀리듯 말한 말에, 라핀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봤다.

흉악한 성기 두 개가 저에게 꽂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경악스러운 것이 있었다.

제 남근이… 발기해 있었다,

누아가 뒷구멍에 무리하게 삽입했을 때에는 시들더니만, 몇 번 박아줬다고 바로 흥분했다니.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신체 변화를 늑대 둘이 봤다고 생각하니 어디에든 머리를 콱 박아버리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라핀이 블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입술을 꾹 다물자, 제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뒤에서 뻗어온 누아의 손이 라핀의 바짝 발기한 자지를 쥐었다.

“아흣…!”

라핀이 반사적으로 구멍을 바싹 조이며 블란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놔달라고 해야 하는데 누아의 엄지가 요도구를 후벼 파듯 갉작거리니 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머리가 어찌나 뜨거운지 뇌수가 펄펄 끓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을 가득 찬 열에 머리가 혼몽해졌다.

라핀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바르르 떨기만 하자, 누아가 라핀의 귓가에 대고 축축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핀. 하아, 나 때문에 선 거지? 쟤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후, 누가 봐도 내 좆 덕분에 선 거잖아.”

누아의 말에 재빠르게 블란이 반박했다. 성교에 집중해 싸움이 잦아드는가 하면, 말 한 마디에 싸움에 불이 붙었다.

지금 화를 내고 싶은 게 누구인데! 믿고 싶지 않지만, 라핀은 성교에 착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그런데 누아와 블란은 툭하면 싸워댔고, 지금은 말싸움하느라 섹스 도중이라는 것도 잊고 추삽질도 멈췄다.

넘칠 듯 말 듯 한 사정의 경계에서 멈춰버린 섹스에, 라핀은 있는 힘을 쥐어짜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다.

“모, 흐윽, 몰라요…! 그냥, 흐으으, 빨리 끝… 아흐윽! 아아!”

라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아와 블란이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꼭 화풀이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두 개의 성기가 타이밍 가리지 않고 퍽퍽, 빠르게 치고 빠졌다. 둘 사이에는 무슨 말도 없었다. 지나치게 야한 라핀의 모습에 싸우던 것도 잊고 성교에 집중할 뿐이었다.

빠르게 치대는 성기, 작고 하얀 몸을 탐닉하는 네 개의 손. 좁은 방 안에 세 남자의 높고 낮은 신음이 울렸다.

라핀은 헐떡거리며 고개를 들었다가 곧바로 블란에게 입술을 잡아먹혔다. 진득하게 빨리다가도 머리채가 잡혀 뒤로 떨어져 나가더니 누아와 입술이 맞춰졌다. 추삽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벅찬데, 둘이 질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입술을 맞춰오니 더 힘겨워졌다.

라핀은 두 늑대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합의된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니 정말 싫어야 맞는 건데, 까무룩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프고 힘든데…. 제 몸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제 몸이 점차 늑대 둘의 질 나쁜 취향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어느새 라핀은 절정의 순간을 눈앞에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에 사정하면 정말 까무룩 기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아의 손가락은 여전히 라핀의 요도 입구를 콱 틀어막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사정을 막는 행위에 라핀은 기겁하며 마구잡이로 도리질을 쳤다.

“아흐으, 아, 싸, 쌀 것, 아아, 쌀 것 같아요…!”

“후우, 나도 곧… 이니까.”

누아가 씨근덕거리며 대답했다. 평소에 비하면 조금 이르지만, 저를 꽉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 뒷구멍의 맛에 금방 사정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블란도 마찬가지였다. 누아가 뒷구멍에 무리하게 삽입했을 때부터 보지가 쫄깃하게 제 성기를 꽉꽉 조이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블란은 누아가 좆을 까고 다가올 때부터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셋이 플레이를 하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론 섹스 도중에 누아 놈이 라핀과 입맞춤을 할 때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싸대기를 갈기고 싶었지만 라핀이 껴 있으니 참을 수 있었다.

두 개의 성기가 깊게 들어왔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싸고 싶은데, 제 요도 입구를 콱 틀어막은 탓에 라핀은 실금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막히지 않은 보지가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철퍽, 철퍽! 줄줄 흐르는 투명한 애액에 아래에서 야살스러운 젖은 소리가 나고 있을 때 두 개의 성기가 여태까지 닿지 않았던, 그리고 닿아서도 안 될 깊은 곳에 성기를 때려 박았다.

“하으으읏…!”

불룩, 배가 좆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라핀의 요도 입구를 막고 있던 누아의 엄지가 치워졌다. 곧바로 좁은 구멍에서 하얀 정액이 픽픽 튀어 올랐다. 아까도 사정했던지라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라핀이 사정의 탈력감에 부르르 떨며 뒷구멍과 앞보지를 바싹 조이자, 앞뒤에서 뜨듯한 것이 퍼졌다. 늑대 둘이 동시에 사정한 것이었다.

“하으으, 아으….”

그럴 리가 없지만, 라핀은 뱃속이 전부 정액으로 차는 기분이었다. 일전에도 늑대는 사정량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두 늑대가 싸대니 두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속이 안 좋았다. 라핀은 급격히 느껴지는 탈력감, 구토감, 그리고 아득해지는 시야에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토록 바라던 기절이었다.

라핀이 블란의 몸에 기대고 눈을 평온히 감았으나, 두 늑대는 사정하고도 뭉그적거리며 라핀의 몸 안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워낙 성욕이 끓어 넘치는 둘인지라 이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둘은 기절한 라핀을 보고서는 더 해서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누아가 먼저 성기를 빼내자, 뒷구멍에서 흘러넘친 정액이 보지까지 흘러내렸다.

아직 블란이 교접하고 있는 부위에 정액이 맺히는 듯하더니, 놈의 성기를 타고 툭툭 흘러내렸다. 블란이 보지를 틀어막고 있는 성기를 빼내자 그 안에서도 왈칵 흰 정액이 떨어져 내렸다.

누구 것인지 더는 알아볼 수 없는 정액이 라핀의 음부에서 줄줄 흘러내렸고, 두 늑대의 시야는 그곳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치 탐스러운 음식을 바라보듯 위험한 시선이었지만, 의식을 잃은 라핀은 민망함도 위협도 느낄 수 없었다.

***

성교가 끝난 뒤. 블란은 미적거리며 떠나기 싫어했다. 제 방으로 돌아가고는 싶지만 라핀을 데리고 가고 싶었다. 누아의 정액으로 더럽혀진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며 봉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사를 치른 이곳은 누아의 방이었고, 라핀은 누아의 먹잇감이었다. 얌체처럼 남의 먹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저였다. 그렇기에 블란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달칵.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블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저 시커먼 새끼….”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순순히 물러났지만, 머리는 팽팽 돌아가는 중이었다.

셋이 섹스하는 것은 평소와 다른 배덕감을 줬다. 저와 누아가 라핀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또 이런 식으로 섹스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조임도 좋았다.

그렇지만 한껏 느끼다가도 누아의 얼굴을 마주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아의 느끼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구토감이 몰려오는데, 제 눈앞에서 누아와 라핀이 입술을 마주하는 걸 보기라도 하면 뭐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역시 누아에게 라핀을 넘길 순 없다. 나누어 가질 수도 없다.

“라핀을 반려로 삼아야겠다.”

블란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반려, 반려 말만 했지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하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려로 삼으면 은빛 늑대와 검은 늑대의 동맹이 깨지는 걸 감수해야 했다.

분명 누아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제 부하들과 더불어 검은 늑대 부하들까지 토끼를 반려로 삼으려는 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동맹이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제 동료까지 잃을 수 있었다.

그것이 두려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이제는 라핀을 얻기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라핀을 향한 마음이 견고해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모든 늑대를 불러 세우고 라핀을 제 반려라고 선포하고 싶었으나 동맹이 깨진 이후에 살 보금자리를 먼저 마련하는 것이 먼저였다. 동맹이 깨지면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을뿐더러, 제 부하들이 저를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면 제 몸을 지킬 집이 필요했다.

수인의 집을 짓는 건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손재주 좋은 수인을 불러와야 했고, 재료 수급과 건설 기간이 있기에 꽤 기간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이 더러운 치욕을 참아야 했다.

***

난잡한 성교가 이뤄지던 방은 적막함이 감돌았다.

누아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은 채, 말없이 침대 위에 기절해 있는 라핀을 내려다봤다.

“…….”

라핀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기절해서는 발간 얼굴로 밭은 숨을 색색 쉬고 있었고, 상체는 땀으로, 하체는 누구 것인지 모를 정액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평소라면 곧장 녀석을 씻겨주고 침대 시트도 깨끗이 갈았을 테지만, 누아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연인의 바람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라핀에게 실망했고 화가 났다.

어떻게 제가 없는 사이에 블란과 붙어먹을 수가 있지?

화가 나면서도, 어떻게든 라핀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라핀이 고작 블란 같은 새끼를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까. 라핀도 블란에게 별다른 호감을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이전에 라핀이 블란보다 제가 더 잘생겼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믿고 싶지만, 누아는 라핀이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떻게 봐도 즐기고 있었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으으으….”

곱씹을수록 화가 난 누아가 빠득빠득 이를 가는데, 라핀이 아픈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구겼다.

라핀은 자면서도 끙끙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노팅의 후유증으로 아침부터 펑펑 운 데다 그런 상태로 보지와 뒷구멍으로 성기를 받았으니 허리가 끊어지게 아플 것이다.

정말 이제는 라핀 손끝 하나 건드리고 싶지 않은데, 토끼한테 온정 하나 주고 싶지 않은데…. 그렇지만 제가 무리하게 뒷구멍에 삽입했다는 걸 알았다. 더는 라핀에 대한 사사로운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음에도 손은 저절로 라핀의 몸을 살피게 됐다.

누아가 미간을 좁히며 놀란 목소리를 냈다. 라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려고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화들짝 놀랐다.

“…불덩이잖아?”

이마가 뜨거웠다.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였다.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서 씻겨주고 편히 쉬게 해줘야 할 듯했다. 누아는 언제 마음이 복잡했었냐는 듯 망설이지 않고 라핀을 안아 들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누아는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고 라핀을 조심스레 안에 담았다. 그렇게 빠르게 라핀의 몸을 닦아주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제가 잠깐 나갔던 게 잘못이었을까? 제가 라핀의 곁에 계속 있었더라면 블란과 라핀이 저 몰래 몸을 겹치는 일 같은 건 없었을 텐데. 그랬다면 라핀의 뒷구멍에 무리하게 삽입할 일도 없었을 텐데.

“하….”

누아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오늘의 일들을 모두 제가 자초한 것 같아 후회되면서도 짜증이 났다.

블란은 왜 자꾸 라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단순히 토끼에게 흥미가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집요했다.

블란과는 일련의 나날들로 사이가 나쁜 편이었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에 가까웠다. 싸운다고 득이 될 관계는 아니기에 꼭 필요한 대화만 하고, 동맹이긴 하니 서로 도와주는 그런 관계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관계가 엇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싸워야 하는 걸까. 더는 으름장 수준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블란 새끼가 저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든, 블란이든 둘 중 하나가 토끼를 포기하면 될 일인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누아는 이런 제가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지만, 토끼에게 향하는 관심을 멈출 수 없었다.

***

“흐으으, 으으….”

라핀이 옅은 신음을 흘리며 메마른 입술을 뻐끔거렸다.

일어나자마자 온몸이 용암처럼 뜨거웠다. 열이 펄펄 끓어서 물을 마셔도 금방 입속이며 입술이며 가뭄 난 것처럼 바싹바싹 메말랐다.

근육통도 엄청났다. 특히 허리가 아래로 빠질 것처럼 아팠다. 난잡한 성교 후에 허리가 아픈 것은 일상다반사였지만 오늘은 너무 심했다.

꼼짝도 할 수 없이 누워만 있자, 수발을 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누아의 몫이 됐다. 그는 아침에 라핀이 가볍게 식사할 거리를 챙겨줬고, 지금은 라핀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주고 땀을 세심하게 닦아주고 있었다.

이런 걸 병 주고 약 준다고 하던가? 라핀은 시름시름 앓다가도, 어제의 일만 떠오르면 분통이 터졌다. 라핀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이제 그만, 볼일 보세요….”

“내가 볼일이 뭐가 있다고.”

“주무실 시간이잖아요.”

이제 한낮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누아는 늘 저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힘없이 뜬 눈으로 보이는 시야에는 조금 피곤한 얼굴의 누아가 있었다. 잘 시간이 다 되어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젯밤에 이어 지금까지 이리저리 바빠서 그런 듯했다.

어젯밤에 저는 기절해 있었지만, 누아가 저를 씻겨주고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아줬는지 보송했다. 게다가 라핀이 깨어났을 때는 오늘 아침에는 라핀이 먹기 쉽도록 채소를 푹 끓여줬고, 지금은 열이 식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체력이 아무리 좋은 늑대라고 한들 병수발을 드는 것은 힘들 것이다. 게다가 그다지 원치도 않는, 고작 먹잇감일 뿐인 토끼를 수발하는 것이니 그다지 내키지 않을 터고. 무엇보다 저를 아프게 만든 주범 중 하나는 누아였다. 마음에도 없는 수발은 받고 싶지도 않다.

라핀이 이제 됐다며 손을 흔들며 누아의 손을 거부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라핀의 이마에 올려져 있는 수건을 새것으로 갈았다.

“자고 말고는 내가 선택해.”

“…….”

라핀은 조금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누아를 올려다봤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라핀은 아주 어렸을 적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혹독한 겨울에 아파서 앓아누웠었고, 부모님이 간호를 해줬었다.

그때는 인간에게 붙잡혀 개조당하기 전이라 사이가 돈독했었고,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었다. 가족과 연이 끊긴 지금도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빠듯해질 정도로 좋았다.

누아의 보살핌은 분명 그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다정하고 극진한데, 어쩐지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때 누아는 블란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조금 착하고 정 있는 늑대라고 생각했다. 가끔이지만 말이 통할 때도 있고, 저를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으니까…. 제게 노팅했던 것도 하룻밤의 실수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제의 일을 떠올리면 늑대들은 다 똑같았다. 하나같이 성욕만 머리에 가득 차서는, 사이가 나쁜데도 셋이 함께 침대에서 뒹굴 수 있을 정도로 난잡했다. 도대체 어느 누가 늑대는 한 반려만 바라보는 가정적인 종족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저를 간호해주는 것도 걱정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라핀은 한껏 마음이 뾰족해졌다.

“왜요, 제가 아프면 살이라도 빠질까 봐 그래요?”

“뭐, 살?”

“그런 게 아니고서야, 누아 님이 이렇게 간호해 줄 리가 없잖아요.”

누아는 매번 저를 먹이 취급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간호를 해주는 거겠지.

늑대들이 저는 마음도 없는 생명체인 듯 막 다루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이번에 누아가 저를 간호해주는 것도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아프면 살이 빠지니까 빨리 낫게 하려는 생각일 터다.

짜증이 나더라도 평소라면 참는 편인데, 오늘은 아프고 배신감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안 할 말까지 하게 됐다.

라핀이 평소답지 않게 틱틱거리자 누아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물었다.

“나 때문에 아픈 것 같아서 간호해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이상해?”

“네.”

라핀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누아가 황당하다는 듯 숨을 터트렸다. 팔자로 늘어진 눈썹 때문에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너무 매도했나? 라핀은 그렇게 혹사당하고도 한마디 한 것으로 마음이 찔렸다.

라핀이 제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고 사과할까 고민하는데, 누아가 먼저 까칠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게, 어제 네가 블란이랑 뒹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아플 일 없었잖아.”

라핀이 방금 막 양심 찔려 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거지발싸개 같은 말이었다. 라핀은 헛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지금 제 탓 하시는 거예요?”

“그런 일만 안 했어도 난잡하게 섹스하는 일은 없었을 건 맞잖아.”

“하…. 그게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정말 너무하세요.”

라핀은 누아가 뻔뻔하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철면피라는 건 처음 알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제는 노팅을 하고 어제는 뒷구멍에 삽입한 누아가 할 말은 아니었다.

반박할 말은 많았지만 더 말을 섞었다가는 열이 더 오를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열은 오른 것 같다. 머리도 아프고 몸이 뜨거웠다.

라핀이 이제 더 말 섞을 것도 없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을 때, 조금의 적막 후에 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고 하기에는, 엄청 적극적이던데.”

“…제가요?”

라핀이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한껏 느꼈다는 점으로 꼬투리를 잡으면 모를까, 적극적이었다고 말하니 이상했다. 라핀은 그들과 섹스에서 한 번도 적극적이었던 적이 없다. 통나무처럼 끌려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라핀이 무슨 소리냐며 묻자, 누아가 똑똑히 기억한다며 대답했다.

“그래. 신나서 허리 흔들었잖아. 블란의 몸 위에 올라타서는.”

“……?”

내가 신나서 허리를 흔들었다고?

내가?

그런 적이 없는 라핀은 그게 무슨 뜻인지 고민해야 했다.

아…, 설마 그건가? 제가 블란의 협박에 마지못해 허리를 흔들고 있을 때? 그때 누아가 들어왔으니, 그걸 보고 오해한 것 같았다. 제가 좋아서 허리를 흔들었다고.

“그건…! 누아 님이 뭐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절대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라고? 내가 다 봤는데 부정하겠다는 거야?”

“오해할 만한 모습이었다는 건 알겠는데, 블란 님이 시키신 거예요!”

“…시켰다고?”

“안 움직이면 노팅하겠다는데 어떡해요!”

라핀의 말에 누아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누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자 라핀은 미간을 좁히며 짜증스럽게 언성을 높였다.

“제가 뭐가 좋다고 그러겠어요. 저도 싫다고요…!”

라핀은 말을 잇다가, 왈칵 차오르는 감정에 목소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수치스러웠다. 블란의 협박에 그의 몸에 올라타 스스로 몸을 흔들던 자신의 모습도, 그런 모습을 누아에게 들킨 것도…. 전부 다.

단번에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라핀이 고개를 숙인 채 팔등으로 눈물을 닦자 일순간 당황해서 말을 잃었던 누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말하지 그랬어.”

“물어보기나 했고요?”

라핀은 벅벅 눈가를 닦고 충혈된 눈으로 누아를 노려봤다. 누아는 제가 협박당한 라핀에게 탓을 돌렸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흘렀다. 격앙된 심정을 드러내는 라핀의 숨소리만 씨근덕대며 방 안에 울리고 있을 무렵, 누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나는… 네가 블란이랑 사귀기라도 하는 줄 알았어.”

“예?”

라핀이 표정을 왈칵 구겼다. 아니, 도대체 왜 그딴 오해를? 다른 것도 아니고,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나. 라핀은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제가 블란 님을 왜 좋아하겠어요. 제가 좋아서 질질 끌려다니는 줄 알았어요? 그러는 누아 님은 한 번이라도 제 의견 물어본 적 있으세요?”

“…없지. 그래서 더 오해한 거야. 넌 나랑 할 때는 매번 싫다고만 했잖아.”

“…….”

누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변명했고, 라핀은 대꾸할 가치를 못 느껴 말을 삼켰다.

그는 블란이 저와 사귀는 줄 오해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누아는 저에게 블란이 손을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니, 사귄다고 생각하니 더 열이 뻗쳤을 것이다. 저 몰래 간간이 만났을 것이라는 추잡한 생각도 했을 테니까.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홧김에 그런 짓을 했다는 건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게 노팅했던 때와 달리 실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에게 뒷구멍이나 보지를 내어준 걸 새삼 치욕스럽게 생각할 것도 없다만, 이건 그때와 달랐다. 저를 둘 사이의 싸움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늑대 싸움에 등 터지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늑대와의 섹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격해졌다. 처음엔 보지, 그다음은 뒷구멍, 그다음은 노팅. 이제는 셋이 한 침대에서 뒹굴기까지 했다.

그다음은 도대체 뭘까. 두 늑대가 동시에 저에게 노팅하는 거? 말도 안 됐지만,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니 일어나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제는 극에 치달았다. 조금의 틈만 생기면,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집에서 탈출할 것이다.

라핀은 이마를 닦아주는 다정한 손길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새카만 시야 속에서 이전에 생각해뒀던 탈출할 방법을 다시금 떠올렸다.

3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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