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동
라핀은 이제 누아도 블란 못지않게 틈만 나면 저를 건드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언제 제게 발정했냐는 듯 건드리지 않았다.
늦은 밤에 누아를 따라 사냥을 따라나서고, 약을 바르고, 늑대의 품에 안겨 자는 게 일상인 나날의 반복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뼈 마디마디가 아팠건만, 허튼짓하지 않고 약을 꾸준히 바르니 빠르게 나았다.
라핀은 약의 효능에 감탄했다. 역시 늑대들은 좋은 걸 가지고 사는구나.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토끼 무리가 워낙 힘이 없기도 했고, 그 무리 중에서도 가장 핍박을 받았다 보니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약을 바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순수하게 기뻤다.
이렇게 몸이 가뿐한 것도 간만이라 마음 같아서는 들판을 마구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현실은 누아의 감시에 드넓은 침대 위를 뒹굴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새, 다시금 밤이 찾아왔다. 오늘은 누아와 사냥을 나가는 날이었다. 늘 그랬듯 누아는 사냥 준비를 마치고 라핀에게 널따란 등을 내보이며 말했다.
“업혀.”
라핀은 습관처럼 그에게 업히려다가, 오늘부터는 몸이 가뿐하다는 걸 떠올리고 그만뒀다.
“저 이제 갈 수 있어요.”
“뭐?”
“저 이제 몸 괜찮아져서, 두 발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업어줄 필요 없다는 거였다. 솔직히 업혀서 가는 것도 편하고 좋긴 한데, 오늘같이 기운이 넘치는 날에는 좀 뛰어다니고 싶었다.
라핀이 업어줄 필요 없다고 거절하자 누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상했다. 그에게 업힐 때마다 누아가 귀찮다고 귀에 딱지가 나도록 얘기하기에 스스로 따라갈 수 있다고 하면 잘됐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몸이 괜찮아졌다고, 그러니 안 업어줘도 된다고 말하니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기분 탓인가?
“가능하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아가 탐탁지 않은 투로 물어왔다.
“네?”
“그 다리로 쫓아올 수 있겠냐고.”
단순한 물음이면 모를까, 왜인지 비아냥거리는 투였다.
누아의 시선이 라핀의 다리로 향했다. 라핀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따라 제 다리를 내려다 봤다.
근래 나름 잘 챙겨 먹었지만, 걸어 다니지를 않아서 그런지 다리 근육이 눈에 띄게 빠져 있었다. 제 엉덩이를 맞부딪치던 탄력적인 누아의 허벅다리를 떠올리면 비교도 할 수 없이 가늘었다.
제 다리를 보고 무시하는 걸 알아채니 자존심이 상했다. 종족 간의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거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비교당하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라핀은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전부 다 억누르지 못하고 소심하게 대꾸했다.
“저… 늑대만큼은 아니어도 튼튼해요….”
“힘들다고 해도 안 받아줄 줄 알아.”
“…….”
내가 애인 줄 아나…. 라핀이 힘들어도 꾹 참을 생각을 하는데 누아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오늘은 산 반대편까지 가볼 생각이었는데, 잘됐네.”
“…산이요?”
라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되묻는 말에 누아가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말대로 이 산에 토끼가 없잖아. 그래서 북쪽 산 근처까지 가보려고.”
“어….”
라핀이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토끼 앞에서 토끼 사냥을 가겠다고 말하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산 반대편까지 간다는 건 거의 산 하나를 통째로 넘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워낙 높고 넓은 산이다 보니 다리가 멀쩡해도 힘든 코스였다. 어떻게 오밤중에 거기까지…. 또 갔다가 여기까지 돌아와야 하는 거잖아? 근본적인 문제에 맞닥뜨렸다.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은데…. 라핀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는 바닥에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키고 나가려고 들었다.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나갈 기세에 라핀은 급히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기….”
“뭐.”
내려다보는 시선이 더없이 냉정했다.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말하라는 시선이었다.
“어, 업어주세요….”
“왜? 걸을 수 있다면서.”
“걸을 순 있는데…, 제가 산을 넘을 만한 체력은 없어서요….”
“하, 어지간히 귀찮게 한다.”
“…….”
누아는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라는 듯 조소했다.
대놓고 무안을 주기에 안 업어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누아는 라핀에게 드넓은 등을 내보였다. 업히라는 신호였다.
라핀은 후다닥 그의 등에 몸을 기대고 목을 바싹 끌어안았다. 늘 그랬듯 그는 라핀을 손으로 받치고 무거운 기색도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방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너 그렇게 업혀 다니다가 못 걸어 다니게 되면 어쩌려고. 내가 평생 업고 다녀주리?”
“…….”
그렇게 오래 살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
라핀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걸 말했다가는 그가 또 죽이니 어쩌니 하면서 혼자 성질을 부릴 것 같아 말을 삼켰다.
***
사냥길이 고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누아는 막상 나오니 토끼가 별로 먹고 싶지 않다며 산 반대편까지 가는 계획을 철회했다.
라핀은 일순간 그가 거짓으로 으름장을 놓은 게 아닌지 잠깐 의심했지만, 저를 업는 게 귀찮다고 질리도록 말하던 그였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의심을 지워냈다. 아무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두 발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걸 그랬나 후회됐다.
평소와 같이 사냥을 마치고 늑대 소굴로 돌아가는데, 몬드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웠다.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하던 그는, 이내 들뜬 목소리로 누아에게 말했다.
“대장! 저기서 물소리가 납니다!”
물소리? 몬드의 말에 수다를 떨며 따라오던 늑대들도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라핀도 잘 들어보니 작게 쪼르르르,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계곡이 근처에 있는 듯했다.
“가서 땀도 닦을 겸, 몸 한번 담그고 오죠!”
“좋아요!”
다들 대번 들떴다. 그 말을 듣는 라핀은 ‘이 날씨에 굳이? 스스로 고문이라도 하는 거야?’ 싶은데, 누아는 저런 요구가 익숙한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쉬었다 갈까.”
“네!”
누아의 허락에 다들 얼굴에 꽃이 피었다. 라핀은 어쩐지 그가 부하들에게는 꽤 너그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계곡이 나타났다. 일전에 본 호수는 아무리 뛰어도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얼어 있었는데, 계곡은 그렇지 않고 깨끗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늑대 놈들은 계곡이 보이자마자 거침없이 물속으로 달려들었다. 바깥이라 동물 모습을 하고 있다 보니 옷을 벗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와하하!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물장구치는 늑대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들 같았다. 그 안의 커다랗고 근육질인 몸은 애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토끼의 눈으로 보기에 늑대들은 다 무서워 보였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맥이 풀렸다. 라핀마저도 무서운 걸 잊고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광경이었는데, 의외로 누아는 덤덤해 보였다. 그는 라핀을 업은 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다른 늑대들은 물놀이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누아는 별 흥미가 없는 걸까? 라핀은 기웃거리며 물었다.
“누아 님은 안 들어가세요?”
“왜, 너도 들어가고 싶냐?”
“예에? 아니요?! 정말 싫어요!”
라핀이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끼는 종족 특성상 물에 취약했다. 특히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수인 모습이 아닐 때 저렇게 물살이 세고 깊은 계곡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라핀은 그가 오해하고 물에 빠트릴까 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봐.”
“아니…. 늑대들은 저런 거 좋아하나 싶어서요….”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저 놈들이 모질이라 그래.”
“아….”
자신은 모질이가 아니라 계곡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꼭 모질이라고 물놀이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남의 취향을 폄훼하는 것 같아 별로였지만,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저도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라핀이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계곡에서 한참 놀고 있던 늑대 중 하나가 누아에게 손짓을 하며 외쳤다.
“대장도 들어오시죠!”
“됐어.”
“왜요? 형님도 물놀이 좋아하잖아요!”
“…….”
거리가 조금 있는 탓에 쩌렁쩌렁 외치는 목소리가 라핀에게도 선명하게 들렸다.
뭐야? 방금까지 저 늑대들이 모질이라서 저런 하찮은 걸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더니만, 사실은 누아도 좋아하는 거야?
라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누아를 뒤에서 바라봤다. 왜 거짓말을 한 거지? 딱히 숨길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사냥하는 것도 좋아한다면서, 저를 업고 다니느라 직접 나서지 못한 것 같았다.
“저… 저 때문이면 그냥 놀다 오시지 그래요?”
굳이 하고 싶은 것도 억누르고 저를 업고 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감시 때문이겠지. 라핀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자, 누아는 미간을 콱 찌푸리더니 버럭 언성을 높였다.
“누가 너 때문이래?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아, 네에….”
아니….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인데, 뭘 저렇게 발끈해? 라핀이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자, 그게 더 마음에 안 들었는지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 저런 거 딱 질색이야. 저 놈들이 날 잘 모르는 거라고.”
“아아, 그렇군요….”
한사코 아니라고 하는 태도가 라핀의 가정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라고, 계곡 들어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모습이 솔직히 우스웠다. 이미 다 들킨 걸 왜 구태여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이때다 싶어 놀리고 싶었지만, 배짱이 없어서 그러진 못했다.
“아, 형님! 같이 놀아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지만 몬드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누아를 꼬셔댔다. 다른 검은 늑대 놈들도 달라붙어 질릴 정도로 누아에게 같이 놀자고 징징거리자, 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라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곧장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라핀을 돌아보며 신신당부했다.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여기에 늑대 눈이 몇 개인지 알지?”
“아, 알아요….”
라핀이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언제 탈출할 기회가 올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긴 하다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을 때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특히 누아의 부하들은 언제라도 저를 잡아먹으려 기회를 노렸다. 대놓고 입맛을 다시다가 누아에게 한 대 맞은 녀석도 있었다.
라핀은 늘 누아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바랐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눈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은연중에 알게 됐다.
누아가 계곡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라핀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바닥을 내려다봤다. 라핀 역시 바깥에 나오면서 토끼 모습을 하고 있던 터라, 복슬복슬한 하얀 털이 달린 다리 밑으로 뽀득뽀득한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차가운 눈은 발을 시리게 할 뿐이었다. 잘못 녹으면 꽁꽁 얼어붙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니 싫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라핀은 눈이 예쁘고 밟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다. 특히 오늘은 오랜만에 밟는 눈이라 더 좋았다.
폴짝폴짝 걸어 다닐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바깥을 걸어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눈이 쌓여 더 느낌이 좋았다.
근방에서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려고 하는데,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 모양이 딱 늑대였다.
“어…?”
벌써 누아가 돌아왔나? 라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헉 들이켰다.
누아의 부하 늑대라서 얼굴은 익은데, 이름 모를 검은 늑대 둘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다들 계곡에 들어가 아무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지?
블란과 누아와 함께 있을 때에도 섬뜩한 두려움이 때때로 라핀의 몸을 감싸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이랑은 조금 달랐다.
언젠가부터 블란과 누아에게는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할까 봐 긴장했던 거였고, 지금은…. 누아가 한눈판 사이에 이 늑대들이 저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긴장됐다. 손바닥이 금방 땀으로 축축해졌다.
“이놈의 토끼가 뭐라고.”
“그러게. 기껏해야 토끼인데.”
“대장이 이딴 토끼를 업고 다니는 것도 자존심 상해.”
그들은 라핀을 앞에 두고 대놓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늑대의 노란 눈은 저를 먹잇감 보듯 하고 있었지만, 입맛을 다시기만 하고 쉽사리 잡아먹지는 못했다. 대장인 누아의 먹잇감이라 건드릴 수 없는 듯했다.
라핀은 누아의 부하들이 저를 아니꼽게 보고 있을 거라는 건 대충 예상했다. 누아는 꽤 존경받는 우두머리였고, 그 우두머리가 무슨 의도인지 토끼를 업고 사냥터에 데리고 나오니 아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미움받는 건 알겠지만… 이왕 미워할 거면 뒷담화를 하지. 왜 앞에서…. 무섭게….
라핀이 슬금슬금 늑대들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늑대 둘이 토끼를 둘러싼 모습이 수상쩍게 보였는지 물장구를 치던 몬드가 이쪽을 기웃거리며 외쳤다.
“야! 베티, 소즈! 거기서 뭐해?”
몬드의 우렁찬 목소리에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는 것도 동시였다. 라핀을 가로막고 있던 늑대들의 이름이 베티와 소즈인 듯했다.
라핀은 베티와 소즈 때문에 가려진 시야 사이로 누아와 떡하니 시선이 마주쳤다. 미간을 찌푸리고 이곳을 보고 있는 그는 당장이라도 계곡을 뛰쳐나와 이쪽으로 올 것 같은 기세였다.
베티와 소즈는 누아가 있는 뒤쪽을 힐끗 보더니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흘렸다.
“씨발….”
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한 늑대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냈다.
“하, 안 되겠다. 너도 들어가라.”
“…네?”
“털이 꼬질꼬질하잖아. 들어가서 씻으라고,”
“그게 무슨…, 앗!”
뜬금없는 소리를 한 소즈가 라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목덜미가 뻐근하게 잡아당겨지기와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헉…, 시, 싫어요! 저 무, 물 무섭….”
“누가 네 의견 듣고 싶대?”
기겁할 정도로 무서운데 소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곡으로 향했다. 잡아먹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고 단순히 저를 괴롭히려는 목적 같았다. 그걸로 누아가 뭐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라핀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동안에도 계곡은 점점 가까워졌다. 라핀이 물에 빠지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몸을 허우적거렸으나, 공중에서 달랑거릴 뿐이었다.
경악스러운 표정의 늑대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고, 말리려고 오는 늑대도 더러 있었으나 제 목덜미를 물고 있는 소즈의 행동이 더 빨랐다.
“시원하게 씻어라!”
킬킬거리는 비아냥조의 말투와 함께, 몸이 더 높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라핀을 휙 던져버린 것이었다.
누군가 잡아주길 바라 몸을 퍼덕거렸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풍덩!
물에 빠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온몸을 덮쳤다.
물이 닿자마자 온몸에 힘이 바싹 들어가고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얼마나 차가운지 몸에 닿는 물이 통증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백 개의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허어억…! 푸우, 살, 으, 푸, 려! 어푸!”
피부가 따가울 만큼 물이 차갑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늑대들에게는 깊지 않은 계곡물이 작디작은 토끼인 라핀에게는 너무나도 깊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계곡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게는 깊을 것 같다고 예상한 것과 같이 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유속이 빠른 건 아니었으나 라핀의 몸을 싣고 가기에는 충분한 속도였다.
허우적거리다가 물 밖으로 얼굴을 겨우 빼낸 라핀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병균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든지 토끼가 물에 들어가선 안 되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감염이고 뭐고 당장 심장마비나 익사로 죽을 것 같았다.
“허억, 흐으, 살려, 으으…!”
늑대들에게는 수영장이고 놀이터에 가까웠던 계곡이 순식간에 검은 물이 흐르는 사고 현장이 됐다.
허겁지겁 물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아등바등해 보아도 수영을 할 줄 몰라 발을 허우적거리는 꼴밖에 되지 못했다. 물에 뜨려면 몸에 힘을 풀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은 알지만, 너무 춥고 무서워서 상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간신히 빼냈던 얼굴이 다시 수면 아래로 빠져들었다. 코와 입으로 차가운 물이 들이닥쳤다. 더는 한계였다. 물에 빠진지 몇 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일 초가 한 시간 같았다. 계곡 아래에 있던 검은 손이 두 다리를 아래로 이끄는 것 같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꼬로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물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왔다. 그 많던 늑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니지, 그들은 저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포식이라도 하겠지….
수가 많다고 한들 저를 살려줄 만한 늑대는….
생각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무언가가 라핀의 목덜미를 콱 물고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
“푸하아!”
무지막지한 라핀을 끌어올린 무언가는 라핀을 뭍에 내려놓았다.
라핀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벌벌 떨면서 폐부에 들어찼던 물을 뱉어냈다. 귀, 코, 눈, 입…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는 다 들어간 물이 얼굴에 줄줄 흘렀다.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눈도 뜨지 못한 채 물을 뱉고 있는데 근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에 빠진 생쥐 꼴 같네.”
면전에 대고 비아냥거리는 말투. 낯익은 동굴처럼 낮은 목소리에 라핀은 손으로 눈을 벅벅 비비고 눈을 떴다.
눈물인지 계곡물인지 모를 것이 눈앞을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흐린 시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누아였다.
누아는 토끼가 물에 빠진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평소의 정신이라면 다 죽을 뻔한 토끼 앞에서 저딴 소리를 하느냐며, 개념 없는 늑대 자식이라며 속으로 욕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혼비백산한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몸이 다 차가운 가운데 머리와 눈가만 뜨겁게 달아올랐다.
“흐으으… 으으, 으흑….”
금방, 눈앞을 흐릿하게 채우고 있던 물이 눈가를 타고 빠르게 흘러내렸다.
너무…, 너무나도 무서웠다.
일전에 인간에게 붙잡혔던 것도 그렇고, 누아에게 물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이후로 막연하기만 했던 죽음의 두려움을 현실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경험은 겪을수록 익숙해지지 않고 점점 더 무서워졌다.
라핀은 엉금엉금 기어가, 누아의 앞다리 사이에 숨어 눈물을 훔쳤다. 한이 서린 것처럼 흐느끼며 울자, 누아가 당황스러움에 몸을 굳혔다.
“…….”
말없이 라핀을 내려다보던 누아는 자리에 앉으면서 라핀의 몸을 제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젖은 라핀의 털을 따듯한 혀로 삭삭 핥아줬다.
누아도 방금까지 계곡에 있던 터라, 몸에 닿는 누아의 털도 찬물에 젖어 차가웠다. 그랬지만 둘이 뭉친 덕분에 금방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
길게 이어질 것 같았던 물놀이는 불미스러운 사고로 금방 끝이 났다.
멀쩡히 물놀이를 즐기던 늑대들은 아쉬운 기색을 보였으나, 누아가 베티와 소즈에게 토끼를 왜 건드렸냐며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찍소리도 못 하고 따라야 했다.
돌아가는 길, 숨 막히는 기류 사이에는 토끼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났다. 간간이 다른 늑대들의 한숨 소리가 났지만, 누아가 눈치를 줘 그마저도 못 하게 됐다. 그 탓에 숨소리도 마음대로 내지 못하는 어색한 귀갓길이 됐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라핀과 누아는 수인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라핀의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전히 죽을 뻔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고, 아무리 누아가 정성스레 닦아줬다고 해도 라핀의 몸은 여전히 계곡물로 젖어 있어 차가웠다.
라핀은 옷을 갈아입는 누아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화장실 가서… 씻어도 돼요?”
“…….”
추워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감기라도 오려는지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이가 다닥다닥 부딪혔다. 얼른 따듯한 물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물었지만,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누아는 금색 눈으로 저를 빤히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추, 추운데…. 빨리 대답해주면 안 되나. 바싹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있을 때, 누아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 씻을 건데.”
“…….”
고작 저 말을 하려고 시간을 끌었나….
추워 죽을 것 같지만, 집 주인을 내치고 먼저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라핀은 이 몸으로 침대에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덮을 담요라도 찾아보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답했다.
“그, 그럼 누아 님 다음에….”
“같이 씻지, 뭐.”
“네…?”
데굴데굴 굴러가던 눈동자에 갑작스레 제동이 걸렸다. 라핀이 당황스러움으로 굳자, 누아가 다시 말했다.
“나도 춥고, 너도 춥고. 얼른 씻으면 좋잖아.”
“…….”
라핀은 제가 아파서 헛것을 들은 게 아닌가 싶었으나,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강조하고 있었다.
라핀은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하아, 혼자 씻고 싶은데…. 정말 힘들다고, 이번에는 봐주면 안 되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원체 저를 혼자 두기를 싫어하는 늑대였다. 설득해 볼까 싶었지만 그가 봐준 적이 몇 번 없어 무기력해졌다.
누아는 상의만 탈의한 채, 라핀을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 라핀은 누아에게 욕실로 끌려가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맞잡은 손이 이상하게 낯간지러웠다.
그는 욕실에 도착하자마자 따듯한 물을 틀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고 물 온도를 맞추는 동안, 라핀은 옷도 벗지 않은 채 머뭇거렸다.
후다닥 씻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라오긴 했는데 막상 함께 욕실에 들어오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진 물이 누아의 상체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몸 위로 떨어진 물이 조각조각 갈라진 복근 틈새로 흘러내렸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래로 흐르는 것일 뿐인데, 제 눈이 어떻게 된 건지 그 어떤 야한 것보다 노골적이고 색정적으로 보였다. 차오른 가슴 근육도 물이 묻어서 그런지 보다 생동감 있게 보여 저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게 됐다.
몸이 좋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줄은….
묘한 긴장감에 입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라핀이 발바닥이 바닥에 착 달라붙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자, 누아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뭐 해? 옷 안 벗고.”
“그… 역시…, 다,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저,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이런 기분으로 같이 씻으면 민망한 꼴을 보일 것 같았다. 라핀이 머뭇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으나, 누아는 긴 다리로 단걸음에 저를 따라잡았다.
“귀찮게 하지 말랬지. 피곤하니까 얼른 이리 와.”
야행성인 주제에 뭐가 피곤하다고…. 순전히 피곤한 거로 따지면 주행성인 제가 더 피곤할 시간이었다. 얼른 끝내고 자고 싶을 건 라핀이 더 간절한데, 누아는 피곤해 죽겠다는 듯 굴며 고집스럽게 라핀을 제 앞으로 이끌었다.
“앗…!”
라핀이 샤워기 앞으로 끌려가자, 쏟아지던 따듯한 물이 그대로 그의 몸 위를 뒤덮었다. 라핀은 아직 옷을 벗지도 않은 터라 반쯤 젖어 있던 옷이 완전히 물로 젖어들었다.
누아는 라핀의 몸에 착 달라붙은 상의와 하의를 자연스럽게 벗겨냈다. 여전히 속옷을 주지 않은 채라 금방 나체가 됐다.
이제는 나체를 보이는 게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여전히 남의 눈에 제 몸을 보이는 것이 어색했다.
라핀이 어쩔 줄 모르고 손만 꼼지락거리자, 누아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손바닥에 샴푸를 짜 머리를 비볐다.
“제, 제가 할게요…!”
머리를 감겨줄 것 같은 손짓에, 라핀이 황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접촉에 누아가 잠깐 멈칫했으나, 금방 재개됐다.
“굼벵이처럼 느려 터진 걸 언제 기다려.”
라핀이 느릿하게 씻는 걸 기다리느니, 제가 빠르게 씻겨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러게 그냥 순서대로 씻지, 왜 같이 씻자고 해서….
억울했지만, 라핀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머리를 감겨주는 걸 받고 있자니 몸이 점점 들썩거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자꾸….
“흐잇, 간지러워요….”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냥 머리를 감겨주는 것뿐인데, 워낙 힘이 좋아서 그런지 꼭 두피 마사지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알아서 감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계속 감겨줬으면 좋겠고…. 시원하고 간지럽고….
별생각 없이 후다닥 씻고 도망치듯 나오려고 했는데, 손길을 받다 보니 몸도 마음도 녹진녹진해졌다. 마치 슬라임이 되어 온몸이 흐물흐물해진 기분이었다. 늑대 놈의 손길이 좋다고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극심하게 추웠다가 따듯해지니까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고, 평소 취침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이다 보니 졸리기까지 했다. 고작 한 시간 전에 생사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렸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화로웠다.
라핀은 언제 누아를 한껏 경계했냐는 듯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잠깐 긴장의 끈이 풀렸을 때,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누구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고. 시켜먹는 게 익숙하다?”
나름 티 나지 않게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누아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콕 짚어왔다. 라핀은 과장스러울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한사코 부정했다.
“아, 안 졸았어요…!”
“흘린 침이나 닦고 말해.”
“어….”
그 짧은 찰나에 침까지 흘렸단 말이야? 민망하게 입가를 닦자,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졸은 거 맞네.”
“…….”
속았구나….
속았다는 기분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변명하려는데, 누아가 샤워기를 가져오더니 라핀의 머리 위에 물을 쏟아냈다. 헹군다는 말도 없이 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라핀은 입을 벌렸다가 샴푸를 입으로 먹었다.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라핀이 어푸어푸거리는 새 머리를 다 헹궈준 누아는 자연스레 샤워볼에 손을 뻗었다. 샤워볼에 거품을 만든 그는 라핀의 가느다란 팔을 들고 손끝부터 닦아주기 시작했다.
“하….”
거칠기만 하던 그가 닦아주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보송보송했다. 물론, 보송보송한 건 샤워볼이 그런 거겠지만….
가만히 있는 라핀을 두고 꼼꼼한 손길이 이어졌다. 어깨, 날개뼈, 갈비뼈까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다 닦아주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근을 닦아주는 건 기분 탓인지 더 꼼꼼했다.
“앞에 닦게, 돌아.”
“…….”
뒤를 다 닦아준 누아는 전문적으로 목욕을 시켜주는 이처럼 말했다.
저 늑대는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라핀만 과하게 그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제가 과잉 반응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라핀은 어정쩡하게 그를 마주 보도록 돌아섰다. 그러자 누아의 시선이 잠시 라핀의 얼굴에 머물렀다.
과잉 의식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집요하다시피 한 시선이 얼굴에 머무르니 금방 얼굴에 열이 올랐다.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부담스러움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만한 바닥이나 보고 싶은데,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그의 좆이 보였고 정면을 보면 아까 제 시선을 빼앗아 갔던 복근이 보였다.
라핀이 어쩔 줄 모르고 어지러이 눈알만 굴리고 있을 때, 누아가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새끼들은….”
누아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라핀의 얼굴에 묻어 있던 물기를 엄지로 닦아줬다. 다정한 손길에 라핀이 시선을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 새끼들’이라면 누굴 이야기하는 거지? ‘그 새끼’라고만 말했으면 블란일 것 같은데, ‘들’을 붙였으니까…. 혹, 아까 저를 계곡에 내던진 늑대들을 말하는 걸까?
라핀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 눈을 깜빡거리며 뒷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됐다.”
“…네?”
그러더니 다시 비누칠을 시작했다. 아니, 말하다가 말면 궁금해 미치는 거 모르나?
답답했지만, 그가 순순히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나중에 다 씻고 물어봐야겠다.
몸의 뒷면을 닦아줄 때는 괜찮았는데,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어색했다. 몸을 닦아주는 손길은 아기를 닦아주는 것처럼 부드러운데 눈길은 노골적이었다. 자칫하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정된 시선에 별안간 슬라임처럼 흐느적거렸던 몸에 긴장이 빳빳하게 들어갔다. 입을 일자로 꾹 다문 채 긴장한 것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누아의 손길이 젖꼭지에 스쳤다.
“흣….”
민망하게도 손이 스치자마자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이 벌어지고 몸이 흠칫 떨렸다. 근래 잦은 마찰을 당하면서 원래도 예민했던 부위가 더 민감해진 탓이었다.
라핀은 황급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민감해졌다지만, 손가락 하나 닿았다고 이렇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누아가 못 본 척 넘어가 주기를 바랐건만 그의 손은 여전히 젖꼭지 위에 있었다. 시선도 여전히 제게 향한 채였다. 라핀이 슬금슬금 누아의 눈치를 보는데,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아줄까.”
욕실에 수증기가 가득해서 그런 걸까. 목소리에 습기가 가득했다. 목소리가 귀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듯했다.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금방 정신을 차린 라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에는 주어가 없었지만, 유두를 지분거리는 걸 보아 이곳을 빨아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니요…! 너, 너무 많이… 해서 아픈데….”
“…….”
“붓기도 했고….”
라핀은 나름대로 열심히 빨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며 슬금슬금 손으로 유두를 가렸다. 이렇게 가린다고 한들 손쉽게 치워버릴 것 같지만, 드러내고 있는 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누아는 그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치워내지 않았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누아가 갑자기 라핀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밀어 넣었다.
“앗!”
욕실을 가득 메운 따듯한 습기와 달리, 등에 닿는 욕실 타일은 차가웠다. 냉기에 흠칫 놀라기도 전에 누아가 갑자기 몸을 굽혔다.
그는 타일에 무릎을 꿇고 아래에 있는 것을 입에 물었다. 반쯤 서 있던 라핀의 자지였다.
“흐익! 자, 잠깐…!”
너무 충격적이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일전에 블란이 더러움도 모르고 제 음부를 변태처럼 빨아준 적이 있긴 했지만, 남성기에는 입을 대지 않았었다. 그런데 블란도 아닌 누아가 이런 짓을 하니 더 충격적이었다.
라핀이 주춤주춤 뒤로 하반신을 물리려고 했지만, 등 뒤는 벽이었고 두 허벅다리는 누아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사방이 가로막혀 물러날 구석이 없었다.
라핀은 하는 수 없이 누아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손을 뻗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손 틈새로 삐쭉삐쭉 튀어나올 정도로 쥐어 잡고 뒤로 잡아당겼지만, 그의 짙은 눈썹 끝이 조금 올라가기만 할 뿐 얼굴은 물러나지 않았다.
“왜, 왜 이러, 흣, 세요…! 하아, 그만…. 흐읏!”
이전의 수많은 경험으로 발버둥 쳐봐야 밀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걸 알았다. 그러니 최대한 말로 설득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입을 벌리면 말이 아닌 뜨거운 신음이 터져 나와 수포가 되었다.
“흐으읏, 아아, 으응…!”
몇 번인가 설득하려고 노력하던 라핀은 끝내 누아의 머리를 꽉 쥔 채, 아랫도리에서 몰려오는 진득한 쾌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라핀은 누아가 주는 자극대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불이 붙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늑대 놈들이 유난히 가슴에 집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슴 얘기를 하다가 성기를 빨 이유까지는 없을 텐데….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금방 하얗게 번쩍이며 소멸됐다. 누아가 볼을 홀쭉해지도록 성기를 진공처럼 빨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흐으으, 아아! 아파, 아, 흣, 으앗!”
얼마나 세게 흡착하는지 이러다 성기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래가 빠질 것처럼 아픈데, 축축한 점막이 성기를 감쌀 때면 성기가 발끈거리며 경도를 달리했다. 분명 아픈데, 제 몸은 그것마저도 쾌감으로 느낄 정도로 민감했다.
아랫도리에서 몰려오는 극심한 쾌감에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에 힘이 축 풀렸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지만, 누아가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제 허벅다리를 쥐고 있는 탓에 후들거리며 서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허벅다리를 세게 쥐고 있던 누아의 손이 슬금슬금 뒤로 향했다. 엉덩이 둔덕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손은 이내 억세게 살을 움켜쥐었다.
“아앗!”
커다란 손은 엉덩이를 마치 찹쌀떡 주무르듯 했다. 주무르는 방식도, 힘도 아주 제멋대로였다. 라핀의 시야에는 제 엉덩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원숭이 엉덩이처럼 붉게 익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주물러졌다.
그 손은 한참 후에야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던 건지, 손이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주물러지는 것처럼 아팠다.
엉덩이를 터트리려는 줄 알았네…. 그래도 늦게나마 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손가락이 다물려 있는 보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흐읏…! 아, 거, 거기는… 응!”
거기는 너무 민감한 곳이라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누아가 볼을 더 홀쭉하게 하며 귀두를 빠는 바람에 금방 말이 삼켜졌다.
급하게 아랫도리에 힘을 주고 참아서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그의 입 안에 사정할 뻔했다. 아무리 누아가 제 성기를 탐스럽게 먹고 있다고 한들 누군가의 입에다 대고 사정하는 건 라핀의 이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 간신히 사정을 참았건만, 얄궂은 손가락이 보지 구멍을 쑤석이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날카로운 감각에 라핀의 몸이 어쩔 줄 모르고 휘청거리다 누아의 몸 위로 무너져 내렸다.
“흐으으, 아아, 하, 하지, 으흐, 누아, 니이임, 으으… 아! 쌀 것, 으흣, 같아요….”
“…….”
누아는 자신의 머리 위로 상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음에도 성기를 문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보지를 더 빠르게 쑤석거리며 사정을 종용했다. 마치 입 안에 싸라는 것처럼.
철퍽거리는 소리와 옅은 신음 소리가 젖은 욕실에 울려 퍼졌다. 평소 라핀은 제 신음이 어떤지도 몰랐다. 이상한 목소리이겠거니 하며 열심히 참을 뿐이었다. 그런데 욕실은 소리가 울려서, 소리가 뻗어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와 제 목소리가 선명하게 잘 들렸다. 평소보다 더 수치스럽고 민망했다.
아등바등 신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태까지도 그랬었지만, 이번에는 아랫입술에 피가 고일 정도로 열심히 참았다. 그 탓에 춥춥거리며 욕심껏 성기를 빨아대는 소리와 찰박찰박 보지를 쑤시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래도 저래도 민망한 것들뿐이라며 라핀이 울음을 참고 있는데, 누아가 갑자기 입에서 성기를 뱉어냈다. 내벽을 쑤시던 추삽질도 함께 멈췄다.
“하, 하아….”
절로 안도의 숨이 나왔지만, 사정의 경계에서 멈췄더니 온몸이 달싹거렸다. 그렇게 멈춰주기를 바랐으면서도 아쉬워서 안달이 났다.
발을 절로 동동 구를 정도로 안달이 나는데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샤워가 끝나면 누아와 함께 그의 방으로 돌아갈 테니 혼자 성욕을 풀 공간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아가 일어나면서 라핀의 상체를 바로 세웠다.
행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바짝 붙은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바짝 앞을 가로막고 있는 누아가 고개를 숙여 콧대가 맞닿았다. 꼭 키스할 것 같은 자세에 라핀이 눈을 질끈 감자, 바로 앞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 내.”
“에…?”
소리? 라핀이 슬금슬금 눈을 뜨기가 무섭게, 누아의 혀가 라핀의 입술을 할짝였다. 입술을 핥는 물컹한 혀에 깜짝 놀라 입술이 꾹 다물리자, 누아는 입술을 잠시 내려다보다 그대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흣!”
혀가 이빨 자국으로 흉이 진 부분을 할짝거렸다. 이제는 흉터를 만진다고 아프지는 않았으나, 워낙 간지러운 부위였다.
반사적으로 작게 웃음이 흘러나오면서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데, 아래로 향한 누아의 손아귀가 별안간 라핀의 좆을 쥐었다.
“아흑, 누, 누아 님…!”
뜨끈한 손에 감싸지기가 무섭게, 빠르게 용두질하며 대신 자위를 해주었다.
라핀이 퍼뜩 반응하며 누아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근데…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말랑한 살이 아니라 뜨끈한 돌덩이였다.
원래 가슴이 이렇게 단단한가? 생각지도 못한 감촉에 당혹스러워하는데, 누아가 좆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라핀의 손을 맞잡았다.
“하….”
누아는 무엇에 자극을 받았는지 뜨거운 숨을 흘리며 맞잡은 라핀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술을 맞췄다.
답지도 않게 민들레 홀씨처럼 부드럽게 닿는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던 입술보다도 더 간지럽게 느껴졌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손이 움칠움칠 떨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이 귀부터 머리까지 전염되듯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좆을 쥔 손아귀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아으흣!”
강한 악력에 성기가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아파서 욕이 앞니까지 나왔건만, 빠르게 성기를 위아래로 훑는 손길에 금방 뜨거운 숨소리로 변질됐다.
여태까지는 아등바등 신음을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빠르게 절정으로 내달려가게 만드는 능숙한 손길에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발끝, 손끝에도 힘이 바싹 들어가며 곱아들었다. 라핀은 맞잡고 있는 것이 누아의 손인지도 모르고 그 손을 세게 맞잡았다. 그에 반응하듯 누아의 손에도 힘이 세게 들어갔다.
“아흐으으…! 우, 하읏! 아아…!”
빠르게 몰려오는 감각에 라핀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절정을 맞이했다.
꿀렁거리며 성기 끝에서 터져 나온 정액이 누아의 손을 찐득하게 더럽혔다. 아까부터 사정을 참고 참았던지라 나오는 양이 꽤 많았다.
“하….”
사정 후의 탈력감은 엄청났다. 눈을 제대로 뜰 힘도 없어서 긴 속눈썹이 불안하게 떨렸다.
라핀이 가쁜 숨을 고르는 사이, 누아가 제 손바닥에 묻은 정액을 빤히 쳐다봤다. 정액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서 빨리 씻어줬으면 좋겠는데, 왜 저렇게 관찰하듯 보고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저를 수치스럽게 하려는 거라면 정확하다고 생각할 때쯤 누아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야 손을 씻으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가 가만히 있다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먼저 들어가.”
“…네?”
라핀이 당황스러움에 눈을 깜빡였다. 그토록 원하던 말이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갑자기 거기는 왜 빨았냐고…. 따지고 싶은 말이 한가득 있었는데, 사정의 여운에 머리가 몽롱해서 말이 정리되지 않았다.
“같이… 씻는다고 하, 하셔놓고….”
“네가 나 씻겨주려고?”
“에?”
라핀이 자기도 모르게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블란이며 누아가 제 몸을 씻기는 건 별생각 안 들었는데, 제가 늑대 몸을 씻겨준다고 하니 지레 겁을 먹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누아의 몸은 너무나도 광활해 보였다. 키도 큰 데다가 어깨도 떡 벌어졌고, 팔도 근육으로 두툼하고, 다리도….
라핀은 무의식적으로 누아의 몸을 훑어 내려오다가 헉 소리를 삼켰다.
여태까지 알몸으로 마주하고 있었음에도, 의식적으로 그의 하반신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성기가 완전히 발기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사정의 여운에 반쯤 풀려 있던 정신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또렷해졌다. 라핀의 검은 눈동자가 대번 분명해지자, 누아가 조금 머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 아니면 빨리 나가.”
“네, 네…! 갈게요!”
라핀은 도망치듯 누아에게서 벗어났다.
욕실에서 이어지는 파우더룸으로 향하며 뒤를 힐끗 봤는데, 누아는 정액이 묻은 손으로 제 좆을 쥐고 있었다. 제 정액을 반찬 삼아 성욕을 풀려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외설적인 모습에 얼굴에 열이 홧홧하게 올랐다.
파우더 룸에서 옷을 대충 걸치다시피 입은 라핀은 아무런 생각도 할 틈 없이 누아의 방으로 도망쳤다.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방에 돌아와 문을 쿵 닫은 라핀은 한동안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누아가 오기 전에 얼른 잠이나 자자…. 라핀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피곤했는데, 아까 본 외설적인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괴롭혔다. 게다가 이놈의 심장소리는 왜 이렇게 큰지, 시끄럽기까지 했다.
한참 동안 이불 속에서 뒤척거린 라핀의 뺨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희귀한 토끼라고만 생각했었다. 딱 그뿐이었다.
누아는 평소 맛있는 건 아껴 먹는 편이었다. 근래 토끼가 다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드니까 블란의 말대로 암토끼 한 마리를 더 잡아와 농장을 차리거나, 살을 통통하게 찌운 다음에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블란이 자꾸 호시탐탐 노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이 미친 새끼가 라핀을 먹이로 보는 게 아니라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같은 종족도 아닌 토끼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평소 블란을 보통은 아닌 새끼라고 생각해왔지만, 제 생각보다 더 단단히 미친 새끼였다.
어차피 자신은 라핀을 먹잇감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블란이 라핀을 성욕풀이용으로 쓰든 말든 상관없었다. 좆질 좀 한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아마 소유욕이었을 거다. 라핀은 내 건데, 왜 저 새끼가 만지냐고.
남이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는 유치한 심성 때문인지, 라핀의 어느 점이 매력적이기에 저렇게 환장을 하나 싶어 눈여겨보기도 했다.
토끼 치고 미인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암만 봐도 식욕을 돋게 하는 외모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툭 치면 울 것같이 생겨가지고…. 찔찔이처럼 생겼다는 감상만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아는 블란이 왜 라핀에게 환장하고 달려들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라핀의 음부에 남들과는 다른 보지가 달려 있다는 것을.
고작 음부에 이거 하나 달렸다고 눈 뒤집혀서 달려드는 게 솔직히 우스웠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저 역시 동한다는 거였다.
홀린 듯 몸을 겹친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때는 수컷 토끼의 음부에 보지가 달렸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제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다음 날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곧 발정기가 올 때가 됐기에 동한 건가 했다. 누아는 보통 성욕을 운동으로 푸는 편인데, 발정기 전후로는 본능적으로 성욕이 들끓었다. 그날 독한 술을 마시기도 했고, 호르몬의 영향이라면 이성이랑은 별개의 문제니 그러려니 싶었다.
게다가 평생 하나의 반려만 두는 늑대의 습성 때문에 누아는 누군가와 배를 맞춰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발정기와 성적인 호기심이 겹쳐 실수한 거라고 생각했다.
“윽….”
욕실에서 제 좆을 쥐고 용두질을 하며 생각하던 누아가 절정에 다다랐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 정액은, 손에 있던 라핀의 정액과 섞여들었다.
누아는 누구 것인지 모르게 뒤섞인 정액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곧 올 거라고 생각했던 발정기는 여태까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라핀을 볼 때마다 아랫도리가 그날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며 빳빳해졌다. 작은 몸에 노팅할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성욕을 주체하지 못했다. 충격적이게도 맨정신에 그랬다.
하찮은 토끼 새끼일 뿐인데, 왜.
왜 이렇게 몸을 겹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 그날의 경험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 쾌감을 잊지 못해서라고 하기에는… 왜 토끼가 불쌍하고, 좆까지 빨아주고 싶은 생각까지 드는 건지.
제가 생각해도 제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하게 알 것 같은 건, 이래서는 ‘진짜’ 발정기가 왔을 때 라핀을 가만두지 않을 듯하단 것이었다.
***
“으으으….”
어쩐지 어제부터 계속 몽롱하다 했다.
라핀은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 데다가, 누아가 손난로처럼 등에 찰싹 붙어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어젯밤에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빠지기도 했고, 헐벗은 채로 욕실에서 음란한 짓을 한 탓에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머리는 뜨거운데 몸은 차가웠다. 누아에게 감기약을 부탁해 볼까 했지만, 금방 그만뒀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욕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말을 섞기가 민망했다.
이런 상황에 라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몸을 따듯하게 덥히는 것뿐이었다. 라핀은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허벅지 사이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끼웠다. 궁핍한 모양새였지만, 몸을 녹이기에는 최적의 자세였다.
라핀이 꼼지락거리며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는데 등 뒤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제가 뒤척거려서 누아가 깬 것 같았다.
그가 일어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없건만, 라핀은 저도 모르게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뭐야. 추워?”
라핀은 그가 거추장스럽게 움직이지 말라든지, 도망갈 생각 하는 거 아니냐고 신경질을 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의 입에서 나온 물음은 상식적인 물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누아는 지금 자는 시간도 아니었다. 이 시간에는 그냥 잠든 저를 껴안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아까부터 제가 꼼지락거리며 추위를 달래고 있는 걸 봤을 거고. 오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조금… 그러네요.”
“…….”
라핀이 어벙하게 대답하니, 뒤에서 껴안고 있던 팔의 힘이 더 억세졌다. 안 그래도 가까웠던 몸이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등 뒤로 탄탄한 가슴팍이 닿았고, 다리가 얽혔다.
너무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걸까. 평소에는 누아의 몸이 너무 뜨겁고, 무겁고 커다랗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특유의 온기가 좋게 느껴졌다. 커다래서 더 온몸이 따듯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따듯한 온기에 감싸이니 또 잠이 들 것 같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눈이 반쯤 감기고 있는데, 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차갑다.”
특유의 냉랭하고 무뚝뚝한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누아와 한 침대에서 먹고 자다 보니 그의 무뚝뚝한 감정 표현에 익숙해진 걸까?
그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 건지, 낮게 가라앉기만 한 목소리에서 아주 조금의 다정함과 걱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걱정이라니.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작자에게 받아서 그런지 가슴이 술렁였다. 당황해서 일순간 머리가 정지되는 듯했지만,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잘못 들었거나, 제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제 가슴팍을 감싸고 있던 커다란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와 이마를 덮었다.
“열도 나는 것 같은데.”
“…….”
“어제 계곡에 들어가서 감기에 걸렸나.”
커다란 손이 이마를 전부 덮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손이 따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이마가 그의 온기보다 더 뜨거운 탓에 조금 서늘하게 느껴졌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누아는 이마에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난로 같던 그가 떨어지니 훅 찬 기운이 몰려왔다.
정말 저를 걱정하던 건가. 그런데 갑자기 왜 일어나는 거지? 아, 설마 감기가 옮을까 봐 저러는 걸까? 하긴, 옮는 건 싫겠지…. 걱정이 꼭 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감기가 옮을 자신을 걱정하는 걸 수도 있었다. 이기적인 늑대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저를 걱정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따듯한 체온이 떨어지니 춥네. 라핀이 사라지는 온기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데, 누아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 일어나.”
“네…?”
라핀이 물으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평소 그는 라핀을 깨우는 일이 없었다. 그는 제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싫어했다. 제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도망가려고 저러는 게 아닌지 눈을 가자미눈을 뜨고 저를 감시하기도 했다. 별 의미 없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괜히 신경을 썼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는 놈이었다.
그랬던 그가 왜 갑자기 일어나라고 하지? 이상했다. 라핀이 그의 말을 따라 침대 끄트머리로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누아가 먹이 보따리에서 한 줌 가져온 것을 라핀에게 건넸다.
라핀이 침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누아를 의아하게 올려다보자 그가 덤덤한 투로 말했다.
“약 먹기 전에 밥 먹어야지.”
“약… 이요?”
약을 준다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어울리지도 않는 배려에 라핀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라핀이 의외라는 생각을 숨기지 못하고 확연히 드러내자, 누아는 뭘 그리 유난스럽게 구냐며 황당해했다.
“뭘 그렇게 귀신 본 것처럼 놀라? 감기약 먹어야 할 거 아니야.”
“…….”
“왜 갑자기 입을 다물어. 무슨 생각하는데.”
“그게….”
라핀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의외라서 그렇다고 솔직히 대답해도 되는 건가? 왠지 말했다가는 화내다 못해 순순히 주겠다던 약도 뺏어갈 것 같은데….
라핀은 안전하게 대답해야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밥도, 약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이성적인 머리와 달리 마음은 감성적으로 흘러갔다.
누아의 이런 배려가 단순한 변덕인 건지 궁금했다.
어제 계곡에 빠졌을 때 누아가 저를 구해줬었다. 당시에는 먹이를 잃기 싫어서 구해줬다고 생각했지만, 어젯밤에 대뜸 그가 제 성기를 입으로 빨아줬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섹스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왜인지, 제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는 듯한. 저를 걱정하는 듯한 느낌을 물씬 받았었다.
라핀은 누군가가 저를 걱정해주는 느낌을 받는 게 처음이라 너무 궁금했다.
그가 정말로 저를 걱정해주는 건지.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겁도 함께 사라진 걸까? 라핀은 그가 황당해할 걸 알면서도, 궁금증에 입을 멋대로 놀렸다.
“갑자기… 왜 약을 주시나 하고….”
“뭐? 내가 너한테 약도 안 준 적 있나?”
라핀의 물음에 누아가 표정을 대번 구겼다.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쓰레기로 봤었냐는 것처럼 기분 나쁜 투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가 약을 안 줬던 적은 없긴 했다. 좀 치사하게 굴어서 그렇지….
아무튼 간에 먼저 약을 주겠다고 한 적은 없지 않나. 라핀이 차마 반박하지도 못하고 억울해하고만 있는데, 누아가 대뜸 이마를 짚으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
갑자기 왜 웃는 거지? 재밌는 것도 없었는데….
그는 뭔가 실성한 것 같기도 하고, 헛웃음을 흘리는 것 같기도 했다. 라핀이 이상하게 그를 바라보자 그가 웃음을 참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아아…. 설마 그런 생각하는 건가? 내가 너를 걱정한다든지, 그런 거?”
“…….”
“토끼 주제에 기대도 크다. 그럴 리가 없잖아.”
“…….”
그럴 리가 없다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심장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관통했다. 무형의 언어일 뿐인데 날카로운 얼음 파편에 찔린 듯 심장이 따끔거렸다.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민망해서라도 부정해야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안 그래도 열로 뜨거웠던 머리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러다 뇌가 절절 끓어서 펑 터져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만치 민망했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한 톨은 남아 있었다. 라핀은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수긍했다.
“그러게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제가 오해했네요.”
“…….”
라핀이 애써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였다. 안 그래도 어제 펑펑 울어서 얼굴도 부었을 텐데, 표정도 제어되지 않으니 이상한 얼굴일 게 뻔했다. 얼굴을 보면 더 비웃을 게 뻔해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못난 얼굴을 가리니 비아냥거리던 말이 멈췄다. 희미하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 더 살 빠지면 뜯어 먹을 것도 없잖아.”
라핀은 시선을 내린 그대로 양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는 도토리와 풀때기를 바라봤다.
분명 갓 따온 것처럼 신선한데,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심란한 마음 때문인지 맛없어 보였다.
먹기 싫었지만, 라핀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입에 음식을 넣었다. 방이 워낙 조용한 탓에 오독오독 씹는 소리가 평소보다 요란하게 들렸다. 특히 입안에 있는 도토리가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눈치 없이 시끄러웠다.
라핀이 억지로 먹는 사이, 누아는 언제부터인가 늘 탁상 위에 올라와 있던 약 상자를 뒤적였다. 감기약을 찾는 듯 보였다.
평소 감기에 걸렸을 때는 약 같은 거 먹지도 않았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들판을 뒤지며 감기에 좋다는 약초를 찾아 알아서 챙겨 먹었다. 그때에 비하면 아주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를 걱정해주는 이가 없다는 것도 똑같으니, 새삼스럽게 서러울 필요도 없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도 아니고, 구렁텅이에서 그대로 유지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란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씁쓸함이 남긴 했지만 먹잇감으로 잡힌 마당에 그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라핀이 손에 있던 것을 다 먹으니, 누아는 주방을 다녀와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왔다.
“이제 약 먹어.”
라핀은 약이라는 말에 순순히 그릇을 받아들였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감기약은 약초를 뜨거운 물에 푼 거라 그런지 한약처럼 짙은 갈색 원액 빛을 띠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아가 답지도 않게 약을 챙겨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를 괴롭히려고 챙겨준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먹어야 낫는 거니까…. 눈 딱 감고 마시려 컵에 입을 댔던 라핀은 삼 초도 지나지 않아 입술을 떼어버렸다.
“엑! 으으으….”
이게 뭐야! 한평생 이렇게 쓴 건 처음이다. 얼마나 쓴지 몸이 절로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목도 짧아진 기분이었다.
우스운 소리와 이상한 표정 때문인지, 냉랭해 보였던 누아의 표정이 한결 허물어졌다.
“호들갑 떨기는. 애새끼도 아닌데 이것도 못 먹어?”
“으으, 호들갑이 아니라아…, 진짜 쓴데요….”
말을 하는데도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절로 혀 짧은 소리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훅 몰려오는 쓴맛에 라핀이 표정을 더 구기자, 누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코라도 막아줘?”
“코요?”
갑자기 코는 왜 막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라핀이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누아는 라핀에게서 약 그릇을 가져가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그릇을 들지 않은 손으로 라핀의 허리를 휘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리 와봐.”
“예? 어엇….”
그의 손에 이리저리 이끌리다 보니, 라핀은 어느새 그의 탄탄한 허벅지에 앉은 꼴이 됐다.
어, 언제 이렇게 우스운 자세가 된 거지?
아무래도 놀리려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휘말려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다. 라핀이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데, 누아가 대뜸 라핀의 코를 콱 꼬집었다.
집게손가락으로 코가 꼬집히니, 아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악! 이게 머에여…!”
지금 장난하는 거냐고 날카롭게 따지려는데, 코가 막혀 목소리가 모기처럼 앵앵거렸다. 라핀이 우스꽝스럽게 따지자 누아가 피식 웃다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코 막아줄 테니까, 먹으라고.”
“…….”
후각이 막히면 미각도 둔해지니까 코 막고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냥 말로 방법을 알려줬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그의 무릎에 앉게 하고 코를 막아 줄 필요는 전혀 없지 않나?
라핀이 그냥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려는데, 누아가 약이 든 그릇을 라핀의 입술 바로 앞까지 들이밀었다. 말할 틈도 없이 그릇을 기울이기에, 라핀은 손쓸 방도 없이 입을 벌리고 쓴 약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으으….”
코를 막아도 쓴맛은 돌았지만, 효과가 있었던 건지 금방 약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고 그릇에서 입술을 떼어내고서도 입 안에 감도는 쓴맛은 여전했다. 그 탓에 라핀이 코를 틀어막던 손이 떨어져 나간 후에도 숨을 참고 있는데, 누아가 가만한 시선으로 저를 쳐다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짜 못났다.”
“…….”
못생겨서 웃은 거였어?
평소 누아는 저를 보고 찔찔이 같다고 했으니, 지독한 감기를 앓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더 못 볼 꼴일 거다. 그러니 못생기게 보일 건 아는데, 저렇게 대놓고 못났다고 말하는 게 엄청나게 얄미웠다.
아까는 제게 걱정 같은 걸 바랐냐는 듯이 비아냥거리더니, 이번에는 못생겼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나쁜 말투성이였다.
저게 환자 앞에서 할 말이야? 참나, 그러는 자기 얼마나 잘났다고….
라핀은 가자미눈을 뜨고 누아를 노려봤다. 냉정하게 지적할 거리를 찾아 찬찬히 얼굴을 살피는데, 할 말을 잃고 입이 점점 다물렸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며, 훤칠한 이마와 짙고 굵은 눈썹, 날렵한 눈매 아래의 선명한 금안, 우뚝 선 콧날과 적당히 도톰한 입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어우르는 턱 선까지…. 모난 구석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몸이라도 지적해 볼까 했는데, 역삼각형을 이루는 드넓은 어깨며 탄탄한 복근은 말하자면 입만 아플 정도로 완벽했다. 체지방이 십 프로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몸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라핀은 처음 블란과 누아를 마주했을 때 외모가 범상치 않다고 느꼈었다. 수인 모습을 한 늑대를 본 게 처음이라서 약육강식의 상위권에 있는 종족은 외모도 상위에 속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근래 사냥을 따라가며 꽤 여러 늑대들과 마주하게 되고, 특출난 외모가 종족 특성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장을 외모로 뽑는 게 아닌가 싶은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외모는 독보적이었다.
하아, 괜히 누아 잘났다는 거만 알게 됐다. 어쩐지 기분만 더 나빠지고 있는데, 누아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렬히 쳐다보다가 말아.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됐어요.”
“뭔데 그래?”
누아는 마치 라핀이 제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추궁했다.
라핀이 별거 아니었다고, 그냥 가까이 있어서 쳐다본 거라고 둘러대도 믿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의심된다는 눈빛을 하고 더 집요해졌다.
“떳떳하면 말해. 아, 설마 내 얼굴 보면서 얼른 이놈의 집구석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아, 아니…, 제가 무슨 하루 종일 도망칠 생각만 하는 줄 알아요?”
라핀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도망, 도망! 이제는 도망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넌더리가 났다.
처음 마주했던 달밤에 쫓기긴 했지만, 늑대 소굴에 잡혀 온 이후로 도망을 시도한 적도 없다. 나름대로 싫은 기색도 나름 잘 숨기는 중이라고… 나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왜 저렇게 도망에 집착하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오해하게 둬도 됐지만, 이 일로 또 우려먹을 것을 생각하니 솔직하게 토로하게 됐다.
“누아 님 잘나서 좀 본 거예요. 구경도 못 해요?”
“…어?”
라핀은 솔직하게 대답하다가도, 외모를 칭찬하는 건 낯간지러워 괜히 틱틱거렸다. 그 대답에 누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당황한 눈치였다.
라핀이 그와 함께 나날을 보내며 이런저런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가 당황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덩달아 라핀도 당황했다.
아니…. 그저 가벼운 칭찬일 뿐이었는데, 누아가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라핀은 그의 무릎에 앉아 있는 자세며 공기가 다 불편하게 느껴졌다.
라핀이 그리 대단한 칭찬이 아니었다고 둘러대려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나 잘생겼다고 말하는 건가?”
“…….”
굳이 좋은 의미로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칭찬해 주기가 싫었다. 왜,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보고 찔찔이 같다고, 못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늑대가 뭐가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
수긍하지 않으려 입술을 꾹 다물었으나, 누아는 무언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듯했다. 당황으로 굳어 있던 입술 끝이 희미하게 위로 올라갔다. 기민하게 쫑긋 서 있던 귀도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게 보였다.
도망갈 생각을 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찜찜하지? 칭찬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라핀이 어색함에 손을 꼼지락거리는 동안 누아는 언제 웃었냐는 듯이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변덕을 부리려고 저러나 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나랑 블란 중에는 누가 더 잘생겼냐?”
“…예?”
라핀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순간 제가 잘못 들은 건가 했다. 그렇지만 곧장, 제대로 들은 게 맞다는 듯 누아가 짐짓 심각하게 물어왔다.
“성격은 내가 더 나으니까, 그런 건 빼고 딱 외모만 봤을 때 말이야.”
“…….”
둘 다 성격이 마이너스라서 따질 것도 없는데 저런 걸 왜 덧붙이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런 게 왜 궁금한 거지? 라핀이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누아를 바라보자, 그가 변명처럼 머쓱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 있잖아. 걔네랑 블란 놈네 애들이랑 맨날 이 주제로 싸운다고 하더라고.”
“…….”
“…하, 씹. 내가 이걸 왜 말하고 있냐. 그래서 누가 더 낫냐고?”
누아는 제가 이상한 걸 물었다는 걸 알기는 아는지, 민망한 얼굴로 뒷덜미를 긁다가 머리를 벅벅 헝클였다. 무안할 때 나오는 욕설은 덤이었다.
왜 저러는 거야…. 혼자 씨근덕거리는 누아가 이상했다. 대충 대답해주고 싶은데, 둘 중 누가 더 잘생겼냐는 질문은 힘들었다.
아까도 생각했듯 둘 다 비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취향 문제에 가까웠다.
“둘 다… 자, 잘생겼는데요.”
“누가 걔 잘생겼다는 거 듣고 싶어서 이래?”
“…….”
블란 잘생겼다는 말 듣기 싫다는 건 저라고 대답하라는 거잖아.
라핀도 성격이 마냥 순하기만 하진 않아서, 보란 듯이 블란이 더 잘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다. 면전에서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그는 한 번도 들은 적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들끓는 반항심과 달리, 라핀은 겁이 엄청나게 많았다. 대답하기 전부터 후환이 두려웠다.
내가 살려면 그 대답뿐이지….
적자생존을 택한 라핀은 바늘구멍만큼만 입을 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 님이….”
“뭐라고? 누님?”
“누, 누아 님이 더 낫다고요…!”
라핀은 버럭 화를 내려다가 목소리를 훅 줄였다.
그에게 화를 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도 했고, 혹 목소리가 밖에 새어 나가서 블란이 듣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블란은… 뭔가 누아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를 괴롭힐 것 같았다.
“그렇지? 하긴, 내가 당연한 걸 물었지.”
“예에….”
대답을 했을 뿐인데 온 에너지가 빨린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다크서클이 퀭하게 내려왔을 게 뻔했다. 감기에 걸려서 그런지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라핀은 제 배를 끌어안고 있는 누아의 손을 풀려고, 그의 손등을 제 손바닥으로 덮으며 물었다.
“저 좀 피곤한데…, 이만 누워도 돼요?”
“그러든지.”
누아가 순순히 배를 감싸고 있던 손을 풀어줬다. 묘하게 후한 느낌이었다.
설마 칭찬을 해줘서 그런 걸까? 라핀은 추측을 하다가 휘휘 지워냈다. 에이, 그런 단순한 이유일 리가. 라핀은 피곤한 얼굴로 몸을 눕히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
누아가 그릇을 정리하러 나간 사이, 라핀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밥도 먹고 쓴 약도 먹었으니 푹 쉬기만 하면 금방 나을 것 같았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벌써 컨디션이 괜찮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열이 내린 건 아니라서, 라핀은 이마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열기에 취해 눈에 힘을 풀었다. 아플 땐 잠이 보약이라니까.
그렇게 라핀이 기절하듯 순식간에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핀의 등 쪽으로 매트리스 무게가 묵직하게 실렸다.
뒷정리하고 돌아온 누아는 조용히 라핀의 뒤에 누워, 그를 끌어안고 품 안의 작은 생명체의 어깨를 박자에 맞춰 토닥였다.
원래도 잠이 많은 토끼였는데, 아파서 그런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자고 있다. 아프니까 이해는 한다지만 어떤 의미로든 저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늑대와 함께 있다는 걸 잊은 것처럼 태평하게도 잔다. 입도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을 만큼 벌리고…. 황당할 정도로 경계심 없는 토끼였다.
누아는 토닥거리던 것을 멈추고 라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사르륵, 손길을 따라 하얀 눈을 닮은 머리가 부드럽게 넘어갔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게 흰 토끼인지 회색 토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꼬질꼬질했었는데, 자주 씻으니 하얀빛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수인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아도 씻는 것 정도는 계곡에서 해도 됐을 텐데…. 누아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며칠 전 라핀이 계곡에 내던져졌을 때를 생각하니 납득하게 됐다. 그런 물살에 휩쓸릴 만큼 작고 여리니까 계곡에 들어가지도 못했겠지.
그런 위험천만한 바깥에서 고군분투하며 사느니, 저와 같이 사는 게 낫지 않나….
물론 때가 되면 잡아먹기는 할 테지만, 죽기 전까지 호화로움을 잔뜩 누리면 될 텐데 왜 틈만 나면 새카만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나갈 궁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티를 안 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토끼의 속내를 읽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도 그럴 게 얼굴에 다 티가 났다. 분명 거짓말도 몇 번 안 해봤을 거다.
누아는 생각에 잠겨 보들보들한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라핀의 뺨 위로 손을 내렸다. 먹을거리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랐는데 볼은 신기할 정도로 말랑거렸다.
머리카락이며 뺨이며 다 좋은 촉감인데, 절절 끓는 체온 하나가 거슬렸다.
“하….”
나긋하게 이곳저곳을 만지던 누아는 억눌린 숨을 내뱉었다.
라핀이 아프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런데 아파서 발간 얼굴로 뜨거운 숨을 내뱉는 모습이 마치 격렬한 정사를 보낸 직후의 모습 같았다.
내가 성욕에 눈이 먼 게 아니라, 이 토끼가 너무….
누아는 좀 전까지 라핀에게 못났다고 놀려 놓고서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저번에는 발정기 탓을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발정기가 오지 않으니 이젠 그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는 별다른 이유 없이 토끼한테 욕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중심부를 옷 너머로 만지던 누아가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성기를 꺼냈다. 누아의 것은 라핀이 기겁하는 게 이해될 만큼 흉물스럽게 발기해 있었다.
사실 아까 라핀이 저보고 잘생겼다고 했을 때부터 쭉 이 상태였다. 침 흘리면서 태평하게 자는 녀석의 얼굴을 보면 가라앉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라앉기는커녕 더 피가 몰렸다. 어떻게 저런 얼굴을 보고도 흥분이 되는지…. 정말 이상 성욕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라핀의 보지에 좆을 쑤셔 넣고 내벽의 따스하고 빠듯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참아야 할 듯싶었다. 계속 라핀이 자고 있을 때 덮쳤던 탓에 제가 자는 녀석에게 욕정하는 취향을 가졌다고 오해할 것 같았다.
“내가 변태도 아니고….”
단언컨대 제게 그런 취향은 없었다. 제가 블란 새끼도 아니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누아의 행동은 머리와 달랐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손아귀에 쥔 성기를 봉긋한 엉덩이에 바짝 대고 위아래로 용두질 쳤다.
고작 두어 번 흔들어줬을 뿐인데 성기가 더 단단해지고 핏줄이 울퉁불퉁 섰다.
“후, 하아….”
누아가 아쉬움에 찬 숨을 내뱉었다. 충분히 혼자서도 욕구를 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래 자극적인 맛을 보아서 그런 건지 자위만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잠깐 고민하던 누아는 조심스럽게 라핀의 바지 허리춤을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속옷도 입지 않은 하얀 엉덩이가 드러났다.
녀석이 속옷을 입지 않는 건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토끼는 속옷도 안 입는데, 잘 때 덮치는 취향은 양반이지 않나?
그래도…. 누아는 엉덩이를 보며 침을 꼴깍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했다. 누아는 엉덩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귀두로 꾹꾹 누르며 성기 기둥을 거칠게 위아래로 훑었다.
“으음…. 하아….”
의식이 없는 라핀 몰래 한다는 묘한 배덕감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의 엉덩이가 예뻐서 그런 건지. 엉덩이에 대고 거칠게 성기를 위아래로 훑으니 단순히 좆을 쥐고 흔들 때보다 훨씬 더 흥분됐다.
이제는 멀쩡한 자극으로는 사정하지 못하는 몸이 된 것처럼, 이제야 절정에 닿을 듯한 빠듯한 감각이 몰려왔다.
누아가 성기를 거칠게 흔들다가 손아귀에 바짝 힘을 주니 구렁이 같은 성기가 손 안에서 움찔거렸다. 곧이어 요도구 끝에서 허연 정액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크읏….”
성기 끝에서 쏟아진 액체의 일부는 누아의 손을, 그리고 대부분은 라핀의 엉덩이를 더럽혔다.
복숭아처럼 보드랍고 하얀 엉덩이에 흰 정액이 뭉텅이로 묻었다. 일부는 엉덩이 살짝 위쪽, 꼬리뼈 부근에 달린 흰 꼬리에도 덕지덕지 묻었다.
찰나의 욕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벌어진 광경이었지만, 막상 엉덩이에 사정하고 나니 흡족했다. 복숭아에 달콤한 과육이 흐르는 것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이만큼 정액이 잘 어울리는 엉덩이도 없을 거다. 다른 놈의 엉덩이를 본 적도, 관심도 없지만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누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정액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데 조금 기세를 달리했던 좆이 다시금 꺼떡거렸다. 고작 한 번의 사정으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기도 했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갓 사정한 좆을 단번에 세울 정도로 외설적이기도 했다.
“삽입만 안 하면 되겠지….”
누아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라핀은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몰랐다. 그러니 삽입만 하지 않으면 깨지 않을 듯했다. 특히 오늘은 아프니 더 둔해졌을 테고.
붉은 혀로 입맛을 다시던 누아는, 이번엔 라핀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허벅다리 사이에 좆을 끼워 넣었다. 사타구니에 바짝 밀어 넣으니 좆 기둥 위로 보지의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방향을 바꾸면 내벽의 맛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참았다. 누아는 커다란 손으로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뭉근하게 허리를 놀렸다.
“후우우, 하….”
씨발…, 진작 이럴걸.
혼자 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맞닿는 허벅지가 열 때문에 뜨거워서 그런지 더욱 내벽을 연상시켰다. 라핀이 의식이 없는 터라 다리를 제대로 조이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이만하면 만족스러웠다.
누아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허리를 앞뒤로 뭉근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허리놀림이 답지 않게 조심스러웠으나, 라핀이 깰 기미가 보이지 않기도 했고 쾌감이 커질수록 더 큰 탐욕을 부리게 됐다.
누아의 허리 짓은 점점 정사 때처럼 격렬해졌다. 철썩! 소리가 날 때마다 하얀 엉덩잇살이 흔들리고, 누아의 주먹만 한 고환이 라핀의 허벅지에 부딪혔다. 백지처럼 하얗던 살결은 마찰에 따라 매질을 당한 것처럼 붉게 익어갔다.
라핀을 올곧게 바라보던 누아의 금안 위로 작열하는 태양 같은 뜨거운 이채가 돌았다. 라핀의 귓가에 대고 뜨거운 숨을 내쉰 누아는 통통한 엉덩이를 꽉 쥐어 잡고 양쪽으로 벌렸다.
보짓살이 살짝 벌어지자 야한 분홍빛을 띠는 여린 살결이 보였다. 누아는 갈라진 틈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밀어 넣었다.
“하, 씹…. 뭐가 이렇게 야해….”
좆으로 보지를 문질러준 덕분인지 안쪽은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더 넣어달라는 듯이 오물거리며 입질까지 했다. 조용하기에 느끼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아는 뭔가에 홀린 듯이 좆을 박아 넣을 듯 보지 입구에 문질거리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라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탄식을 흘렸다.
“하아…, 박을 생각까진 없었는데….”
하늘에 맹세컨대 이번에는 손장난만 하려고 했다. 성적 취향을 오해받는 것도 싫고 라핀은 환자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사정하면 할수록 더 성욕이 불타올랐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박고 싶었다. 부정하려 해도 이것이 제 더럽고 추악한 욕망의 현주소였다.
누아는 머리를 식히려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거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늘따라 제가 왜 이리 발정 난 것처럼 반응하나 했는데 보드라운 라핀의 살 냄새가 자극적이었다. 아마 그 살 냄새가 더 잘 느껴지는 이유는 라핀이 열병을 앓느라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일 것이다.
땀을 많이 흘렸는데 더럽게 느껴지기는커녕 야하게 느껴지다니…. 잘 때 덮치는 취향만큼이나 더 이상했다.
누아는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라핀의 상의를 빠르게 벗겼다.
헐렁한 실크 셔츠를 벗기니 라핀의 나신이 완전히 드러났다. 머리도 하얗고 몸도 하얘서 그런지 겨울의 하얀 눈을 형상화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순백을 닮았다.
때 하나 묻지 않았을 것 같은 녀석을 보고 발정하는 건 왜일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가 뭔들 중요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토끼의 체취를 제 몸에 잔뜩 묻히고 싶었다.
누아는 라핀의 뒤에서 맨몸을 바싹 끌어안고, 팔을 위로 들게 했다. 체모가 없는 편이라서 그런지 겨드랑이도 매끈했다.
이런 부위까지 예쁠 필요가 있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누아는 겨드랑이의 오목한 부분을 진득하게 핥았다. 천천히, 느리게. 진미를 음미하듯 핥으니 라핀이 웅얼거리며 몸을 뒤척거렸다.
“우으응….”
“…….”
“흐흐으…, 간지러어….”
라핀은 간지러운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아무 근심 없이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누아가 그 모습을 더 보기 위해 더 살결을 할짝거리자 라핀이 히죽거렸다.
그러나 혀가 집요할 정도로 계속 간지럽히는 것에 라핀은 무의식중에도 불편한지 혀에게서 도망가려고 몸을 바르작거렸다.
누아는 도망가려는 라핀의 팔을 억세게 잡고, 혀끝을 세워 움푹 파인 부분을 삭삭 핥았다. 그것도 모자라 반대쪽 손으로는 보지에 손가락을 두어 개를 추삽질하며 내벽을 넓혔다.
훨씬 더 노골적인 행위에 라핀이 계속해서 몸을 움찔거렸다. 이제는 실없이 히죽거리는 게 아니라, 미간을 찌푸리고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아으응, 으으….”
‘싫다’라고 말만 안 했지, 웅얼거리는 거부 표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라핀이 가볍게 솜방망이 같은 주먹을 쥐고 누아를 밀어내려고도 했다.
사냥감이 도망가려고 하면 더 붙잡고 싶은 것이 늑대의 본능이었다. 충분히 살 냄새를 취한 누아는 혼몽하게 풀린 눈으로 좆을 붙잡았다. 누아의 그것은 두 번이나 사정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누아는 추삽질하던 손가락을 빼내고, 좆을 보지에 가져댔다. 보드라운 살결에 대고 미끄러지듯 위아래로 문질렀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픈 토끼니까 삽입을 안 하려고 했으면서, 이제는 아프니까 깨지 않을 거라고 합리화를 했다.
누아는 손가락으로 넓혀준 보지에 좆 끄트머리를 가져다 댔다. 아직 입구가 빠듯하게 다물렸지만, 이곳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한 치의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도 넣으면 잘도 씹어댔다. 그것도 아주 맛있다는 듯이.
감각을 떠올리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누아는 입구에 귀두를 맞추고 그대로 허리에 힘을 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번에 전부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라핀이 깰 테니 아주 느릿하게 밀어 넣었다.
“후우우….”
누아가 귀두부터 기둥까지 밀어 넣으며 억눌린 숨을 내뱉었다. 입구가 천천히 벌어지면서 따스한 내벽이 천천히 제 성기를 우물우물 감쌌다.
제 좆대로 힘 있게 박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느린 삽입도 해보니 좋았다. 내벽의 감촉도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고…. 누아는 평소 맛있는 건 천천히 먹는 스타일이라, 뒤에 더 큰 쾌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 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으, 으으응… 아으….”
성기를 반절 정도 넣었을 때, 라핀이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침대 시트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아래의 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라핀은 마치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잠결인 탓에 구체적인 언어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목소리에서 짜증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살짝 아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풀어주지 못하긴 했다. 그래도 이미 삽입을 해버렸으니 물릴 수 없었다. 좆길을 내서 넓히는 수밖에.
누아는 천천히 성기를 뒤로 물렸다가 반절만 넣기를 반복했다. 라핀이 아파하지 않도록 좆길을 내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추삽질을 이어 갈수록 점점 본질을 잃고 내벽의 맛을 보는데 급급해졌다. 라핀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절 정도만 넣겠다고 했던 성기는 어느새 전부 다 들어가 있었다.
“하…, 좋아….”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누아는 제 성기를 꾸역꾸역 받아낸 라핀의 보지를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무의식중에 라핀의 귓가과 광대뼈 부근에 입술을 맞췄다.
찰박찰박, 가벼운 마찰 소리가 날 정도의 추삽질이 이어졌다. 물론 누아의 기준에 가벼운 수준이었다. 라핀의 몸이 워낙 작고 마른 탓에 몸이 자꾸만 밀렸다.
“으으으….”
라핀은 좋지 않은 감각에 미간을 좁히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라핀은 분명 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멀미가 났다. 몸이 뜨거우면서도 속이 더부룩하고… 무엇보다 몸이 자꾸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제가 자는 사이에 지진이라도 난 걸까? 라핀은 아픈 와중에도 동물적 감각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위험한 느낌이었다.
찡그리듯 감겨 있던 눈 위의 눈꺼풀이 꿈질꿈질하더니, 슬그머니 새카만 눈동자가 드러났다.
“흐으으…?”
라핀은 정신이 드는 것과 동시에,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선을 아래로 돌리니 커다란 좆이 제 몸에 들어와 있었다. 라핀은 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허윽…! 이, 이게 무슨….”
“하…. 일어났네.”
라핀이 자는 사이에 엄청난 짓을 벌였으면서, 누아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전과가 있으니 이번에도 혹 자는데 건드리는 게 아닌지 의심하긴 했지만, 진짜로 건드릴 줄은 몰랐다. 그렇게 한 소리를 들어 놓고선…. 도대체 언제 옷은 언제 다 벗긴 거며, 좆은 언제 이만큼이나 넣은 건지. 라핀은 기겁하며 몸을 버둥거렸다.
“아흐윽, 아, 안 한다고… 했! 앗!”
제 아래를 들쑤시는 성기를 피해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지만, 아파서 그런지 몸이 물에 푹 젖은 솜처럼 묵직했다. 재빠르게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느리기까지 하니, 팔을 뻗기도 전에 누아에게 붙잡혔다.
누아는 라핀의 배를 팔로 감싸고 세게 끌어당겨 제 품으로 이끌었다. 라핀의 마른 몸뚱어리가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보지에 들어와 있던 좆이 제 뱃가죽을 뚫을 듯 깊게 쑤셔 박혔다.
“아흐으윽…!”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의 깊은 삽입이었다. 라핀이 아픈 신음을 내며 몸을 새우처럼 말려고 들자, 누아가 그것을 저지하고 라핀의 마른 배를 더듬거렸다.
커다란 손이 아랫배를 덮었다. 갑자기 배는 왜 만지는 건가 싶어 배에 긴장이 들어가는데, 누아가 성기를 두어 번 천천히 넣었다가 빼더니 푸스스,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웃긴 상황도 아닌데, 왜 갑자기 웃는 거지? 라핀이 헐떡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가 라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그거 알아?”
“흐읏, 예에…?”
귓전에 바로 닿는 숨결 때문인지, 아니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인지 귀가 심하게 간지러웠다. 마치 귓전에서 민들레 홀씨가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묘한 느낌에 라핀이 어깨를 움칠거리며 묻자, 누아가 느릿하게 성기를 전부 밀어 넣었다. 얼마나 바싹 밀어 넣었는지 엉덩이에 둥근 고환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흐으…. 흐악….”
심장이 아플 정도로 벅찬 압박감이 몰려왔다. 숨을 헉 들이켜자, 누아가 귓전에 대고 대답했다.
“내가 박을 때마다, 네 뱃가죽이 움찔거리는데.”
도대체 이놈의 토끼 몸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야한 것투성이였다.
누아가 제 성기가 과하게 큰 편이라는 것도 모르고 음담패설을 하는데, 끙끙거리던 라핀이 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흐읏, 거, 거짓말, 으, 하지 마세요….”
마주친 라핀의 눈은 진심으로 겁을 먹은 듯 눈물이 차 있었다.
하….
누아는 그 모습을 보고 겨우 탄식을 삼켰다. 어젯밤, 라핀과 나란히 누워 있는데 토끼가 계곡에 빠진 직후 흐느끼던 모습이 머리에서 아른거렸었다.
같이 있는데도 왜 자꾸 떠오르나 했더니만, 이제 보니 라핀이 울 때면 검은 눈동자가 유달리 반짝거렸다. 올망졸망한 빛을 머금은 눈은 마치 세공된 보석 같았다.
아름답다고 극찬을 받는 블란의 푸른 눈을 봤을 때도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가 블란을 싫어하지 않았을 때도 못 느꼈었다.
이렇게 예쁜 건 처음이었다.
“진짜야. 네가 만져 봐.”
그래서 계속 놀리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이 모습을 더 보고 싶어서. 눈에 남기고 싶어서.
누아는 장난기 짙은 목소리로 말하며 라핀의 손을 이끌고 아랫배 위에 얹었다. 손을 떼지 못하도록 라핀의 손등을 제 손으로 감싼 누아는 천천히 성기를 뺐다가 깊은 곳까지 밀어 넣었다. 그러자 판판하기만 했던 라핀의 배가 그의 성기 윤곽을 따라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아흐으윽…!”
라핀은 누아가 저를 놀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손 아래로 뱃가죽이 불룩 튀어나온 게 느껴졌다.
진짜 이곳까지 그의 것이 들어온 걸까? 그래서 매번 몸을 섞고 난 후에 배가 아팠던 거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신기하다는 감정보다는, 제 몸 안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두려움밖에 들지 않았다.
라핀이 화들짝 놀라 손을 떼려고 했지만, 누아는 라핀이 배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고 추삽질을 이어 갔다. 그럴 때마다 배가 불룩해졌고, 라핀은 그것이 무서워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흐으으, 아응, 으으… 누, 누르지 마, 으흑…!”
라핀은 무서워하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눈가에 머금고 있던 눈물이 눈가를 타고 주룩주룩 비처럼 흘러내렸다.
누아는 라핀이 너무 무서워하니 ‘장난이 너무 심했나?’ 생각하다가도 방금 라핀의 말이 유난히 짧았다는 걸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 누르지 마? 어디서, 반말을 해?”
“아흐으윽, 아니, 그게 아니라아…, 아아!”
사실 반말이야, 토끼와 늑대 나이 관념이 다르니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저는 라핀을 처음 잡아왔을 때부터 반말하지 않았나.
그래도 꼬투리를 잡아서 욕망을 분출하고 싶었다. 누아가 혼쭐을 내주겠다는 듯 말하며 오히려 아랫배를 짓누르는 손에 더 힘을 실었다. 라핀이 당황해서 아래를 더 바짝 조였다.
“누, 흐윽, 누르지, 으, 말고요…!”
점점 세고 빨라지는 추삽질에 라핀이 귀까지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울음기가 배어 있어 정말 애처롭게 들렸다.
저렇게 싫어하는데 놔줄까. 라핀의 배에 제 좆이 가득 차는 느낌이 좋아 계속 만지고 싶긴 했지만, 이번에는 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누아가 라핀의 손을 겹치고 있던 손을 떼려고 한 순간, 라핀이 갑작스럽게 경련하듯 떨며 허리를 뒤틀었다. 내벽이 좆을 끊어먹을 듯 조이는 것도 그와 동시였다.
“아으응…, 아으흑!”
누아가 격한 조임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라핀의 성기 끝에서 하얀 액체가 팍 터져 나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라핀이 절정에 닿은 것이었다.
라핀이 사정의 여운으로 발발 떠는 동안 누아는 놀란 눈으로 라핀의 성기를 바라봤다. 찔끔찔끔 나온 정액은 라핀의 하얀 배와 침대 시트를 더럽히고 있었다.
매번 이 토끼는 제 예상을 뛰어넘었다. 누아가 작게 헛웃음을 흘리며 성기를 뺐다. 쉴 틈을 주자, 라핀이 침대 시트에 코를 박고 한껏 억울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우으으…, 내, 내가 놓으라고… 해, 했잖아요….”
라핀은 계속 울고 있었으면서 또 울 것처럼 울먹거렸다.
저 요망한 토끼는 알고 저러는 걸까. 누아는 라핀의 몸을 밀어 침대에 엎으며 말했다.
“누가 뭐래?”
사정한다고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뭘 그렇게 수치스러워하는지. 짧은 시간 내에 사정을 많이 하는 모습이 조루 같긴 했지만, 딱히 지적하고 싶진 않았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누아는 옆으로 누워 있는 라핀의 양쪽 오금을 팔로 받치고 무릎을 들게 했다. 그 탓에 음부가 훤히 드러났다. 누아는 보지에 성기를 비비적거리다가 망설임도 없이 다시금 밀어 넣었다.
“아흐으!”
좆길을 만들어준 데다가, 충분히 젖어 있어 이번 삽입은 손쉬웠다. 단번에 깊숙이 들어오는 성기에 라핀은 쇠창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퍼드득 몸을 떨며 억울하게 외쳤다.
“흐긋, 으으, 아, 끄, 끝났잖… 아요…!”
“하…. 누가 끝이래.”
끝난 건 너뿐이잖아. 일찍 사정하는 것 가지고는 뭐라 안 하겠지만, 혼자 사정했다고 끝을 보는 나쁜 생각은 고쳐줘야 할 듯싶었다. 그것이 이기적인 토끼를 주운 제 업보였다.
누아는 마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세차게 음부를 자극하는 행위에 라핀은 메마른 목소리로 애원했다.
“우, 움직이지… 아으, 아, 아흑!”
하지 말라, 멈춰 달라…. 라핀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들은 지루할 만큼 뻔했다. 예쁜 말도 아니고 하나같이 못된 말이니 입을 콱 틀어막고 싶은데,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쉬웠다.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측면으로 추삽질하던 누아는 성기를 빼지 않은 채로 라핀을 엎드리게 하고 등 위로 몸을 겹쳤다.
“아흐윽!”
두 손바닥으로 침대 시트를 짚고 체중을 싣자, ‘철퍽!’ 하며 거의 사람을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니, 어쩌면 때렸다는 게 맞았다. 라핀은 지금 좆으로 내벽을 맞는 중이었으니까.
완전히 엎어놓고 도망가지 못하게 두 다리를 제 다리로 짓누르고 나니 이제야 제 욕구대로 라핀을 약탈할 수 있게 됐다.
거센 힘과 중력, 침대 매트리스의 반동을 이용해 힘 있게 내벽을 침범할 때마다 라핀은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명도 내지를 수 없을 정도로 진이 빠진 탓이었다.
“앗! 왜애… 이렇게, 흐, 너무, 깊… 하, 으응!”
겨우 힘을 쥐어짜낸 라핀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신음에 말이 삼켜졌다.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지만, 누아는 귀신같이 그 말뜻을 알아챘다. 왜 자세를 이딴 식으로 바꿨냐고, 더 깊게 들어와서 불만스럽다는 목소리였다.
측면으로 박는 것도 좋았지만, 라핀의 몸이 너무 가벼운 탓에 깊은 곳을 쑤셔줄 때마다 몸이 밀렸다. 그럴 때마다 몸을 꽉 끌어안아서 고정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 슬슬 저도 사정하고 싶었다.
누아는 대답 대신, 라핀의 귓가에 대고 나긋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엉덩이 들어.”
“우으, 시, 싫어요….”
“말 안 들으면, 더 오래 걸릴 텐데.”
“흐윽….”
라핀은 정말 이게 섹스인지 괴롭히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라핀이 우물쭈물하며 엉덩이를 위로 올리자 누아가 빙긋 웃었다.
“옳지.”
칭찬은 짧았고, 곧바로 격정적인 허리 짓이 이어졌다. 침대 시트를 짚고 있던 손으로 어느새 라핀의 목과 가슴을 끌어안은 채, 누아는 이미 깊게 들어간 것을 더 깊숙이 박으려 허리에 힘을 주었다.
“흐으, 아윽! 아흐으!”
라핀은 그가 성기를 깊게 넣을 때마다 배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이러다가 배가 찢어지는 건 아닐까 무서워졌다. 등골이 오싹할 만큼 무서운 상상이었다.
힘으로 누아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라핀은 그만하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러나 ‘그만’이라는 말이 증폭제가 되는 것처럼 피스톤질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라핀은 그렇게 두려워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눈앞에 섬광이 튈 만큼 격렬한 쾌감을 느꼈다. 환각인지 눈앞에서 하얀 불꽃이 튀었다. 라핀은 침대 시트를 억세게 그러쥔 채 시트에 얼굴을 묻고 비벼댔다.
“아으흐윽, 아아! 하으읏, 아! 저, 그만, 흐윽, 쌀…, 것 같, 흐으으… 아!”
“그래, 나도 이제, 후읏…!”
라핀이 이제 쌀 것 같으니 그만하라고 마지막 힘을 짜내 버둥거렸지만, 누아는 완전히 몸을 짓누른 채 성기를 닿아선 안 될 곳까지 밀어 넣었다.
“크으읏….”
누아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라핀의 몸을 바스라트릴 듯 끌어안았다.
가장 깊은 곳에 박은 채 사정하자, 라핀은 제 몸 안에 있는 성기가 요동치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꿀럭거리며 제 안을 가득 채우는 뜨거운 액체까지도.
사출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누아가 정액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깝다는 듯이 털어 넣는 탓에 속이 메슥거렸다.
“하….”
누아는 완전히 내벽 안에 토정하고 라핀의 몸 위에 엎어졌다. 누아는 이번이 두 번째 사정이었기에 지칠 법도 한데, 여전히 내벽에 자리 잡은 성기는 또다시 발기했다. 누아는 제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뇌가 열기로 가득 차서는 더 박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자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누아는 침대에 기대 헐떡거리는 라핀의 몸을 끌어안고 뒤집었다.
“아으읏!”
몸이 억지로 움직여지는 와중에도 성기를 머금고 있는 탓에 라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뒤늦게 라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세가 반전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누아가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눕고, 저는 누아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누아의 체중에 짓눌려 있을 때보다는 자유로운 자세이긴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중력 탓인지 성기가 더 깊게 들어온 느낌이었다.
“흐윽, 이, 이제, 읏, 그만해요…!”
라핀은 무릎을 굽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끙끙댔다. 몸이 평소보다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이 후들거렸다.
라핀이 낑낑거리며 반쯤 일어났을 때, 누아의 커다란 손이 라핀의 엉덩이를 콱 그러쥐었다. 엉덩이가 작은 건지 아니면 누아의 손이 큰 건지 누아의 손에 라핀의 엉덩이가 전부 가려질 듯했다.
“하…, 어디 가.”
“흐으, 이, 이제 돼, 됐잖아요. 저, 정말 모, 못 해요.”
라핀이 억울하게 호소했다. 엄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계속해서 두드려진 배가 뻐근하고 벌어진 다리도 아팠다. 보지 안쪽도 정액으로 꽉 찬 것 같았다.
더 무언가를 받아들였다간 정말 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 누아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래도 미친 정력을 가진 늑대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라핀은 동물적 직감으로 이 정사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흐읏….”
“버텨.”
“아읏!”
누아가 은근슬쩍 허리를 쳐올리자, 라핀이 앞으로 쓰러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말이 쉽지, 흉기 같은 성기를 받는 입장에서는 버티는 것도 고역이었다. 게다가 워낙 컨디션이 안 좋은 탓에 눈앞이 열기로 흐리멍덩했다. 잡아먹혀 죽는 것보다 섹스하다가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이성은 흐리멍덩했지만 살길은 찾아야 했다. 급하게 생각을 쥐어짠 라핀은, 누아가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전에 다급하게 외쳤다.
“저… 잠시만요!”
“왜.”
누아는 마음껏 섹스하고 싶은데 저지당한 것이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헛소리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하는 듯한 매서운 느낌이 실린 표정이었다.
라핀은 머뭇거리다 손을 뒤로 뻗어, 그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이 닿자마자 그의 허벅지에 단단하게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소, 손… 아니, 입으로 할 테니까….”
“…….”
박지 않고 쌀 수 있으면…. 그런 식으로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끝내지 않을까.
늑대들이 아무리 성욕이 남다르다고 한들, 한계가 있을 터였다. 손으로 빼주는 게 제게 가장 부담이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그걸 해준다고 누아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저번에 누아도 제 걸 빨아줬으니까…. 괘,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핀이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자, 누아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었다.
왜지? 입으로 한다는 건 너무 이상했나? 다른 좋은 방법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 넣고 흔드는, 그건 어떻게 설명하지? 허락만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누아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처럼 생겨선….”
입으로 빨아주는 걸로 넘어갈 줄 알았냐고. 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였냐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누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예 예상도 못 한 것이었다.
피도 안 마른 것처럼 생겼다니…. 어리게 생겼다는 말일까? 그러고 보면 저번에 블란도 제게 ‘성인은 맞지?’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누아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제가 나이가 많으면 모를까, 별로 많지도 않은데 동안 취급받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서 배웠냐니…. 누아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제… 누아 님이, 해주셨잖아요.”
물론 일전에 블란의 것을 입에 물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그것까지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라핀이 네가 알려줬다는 식으로 말하자, 굳어 있던 누아의 표정이 풀렸다.
“좋았나 봐?”
“네…?”
“그래서 너도 윗입으로 먹어보고 싶었어?”
“…….”
머, 먹어보고 싶었냐니…. 열병으로 끓고 있던 라핀의 얼굴이 더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이러다가 얼굴이 터져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럼 아래로 받는 수밖에 없었다. 아랫입술을 우물거리던 라핀은 끝내 울상으로 부탁했다.
“네….”
“…….”
“그, 그러니까… 먹게 해주세요….”
말할 때마다 혀가 썩는 것 같았다. 제 입으로 이런 음담패설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수치스러움을 삭이는데, 누아가 좆 기둥을 손에 쥐고 라핀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빨아 봐.”
“…….”
마치 인심 썼다는 듯이 허락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라핀은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블란도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누아도 그 못지않았다. 어딘가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거들먹거리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렇지만 삽입을 피하려면 빠는 수밖에 없었다. 라핀이 꾸물거리며 몸을 뒤로 물리는데, 누아가 라핀의 팔뚝을 잡아왔다.
응? 저지하는 몸짓에 라핀이 의아함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그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반대로 돌아.”
“반대로요?”
라핀은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리다가, 헉 소리를 삼켰다.
자연스레 블란과 했던 행위가 떠올랐다. 자신은 그의 것을 빨고, 제 음부는 그의 입에 빨렸던…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행위가.
꽤 된 일이었지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그날의 감각이 뇌리에 진하게 남아 있었다. 라핀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이, 이거 싫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래?”
“아아!”
라핀이 싫다고 몸을 버둥거리니 누아의 손에 힘이 더 바짝 들어갔다. 이러다 팔에 푸르스름한 멍이 남겠다 싶을 정도로 억세게 쥐어 잡혔다.
라핀이 아프다고 끙끙대자, 누아가 조금 손에 힘을 풀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하…, 좀 가만히 있어 봐. 내가 뭘 할 줄 알고 그러는데?”
“그….”
누아는 직접 두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싶어 했지만, 라핀의 두 눈동자는 목표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라핀은 아까 직접 좆을 먹고 싶다고 말할 때도 하마터면 혀를 콱 깨물 뻔했다. 생존 욕구가 더 강해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어떻게 그 행위를 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 라핀이 망설이자, 누아가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못 하겠으면 하지 마.”
“…….”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긴 한데…. 라핀은 억울해졌다. 그는 정말 제가 그의 것을 빨고 싶어서 빨겠다고 제안한 줄 아는 눈치였다. 정녕 음부에 삽입하는 게 버거워서 다른 살길을 도모한 거라고는 안 보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기가 빠진 지금까지도 보지가 아팠다. 배 안쪽은 여전히 망치질을 당하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 아니요…. 하, 할게요….”
아무리 서로의 얼굴에 음부를 대는 게 수치스러워도 그 짓을 더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핀은 무거운 몸을 반대로 돌려 그의 머리를 등지고, 그의 성기를 내려다봤다. 누아의 성기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 위압감이 배로 크게 느껴졌다. 제 팔뚝보다 굵은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라핀이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인내심 없는 누아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재촉했다.
“못 빨겠어? 설마 말만 내지른 거야?”
“아니요…! 빨 수 있… 을걸요?”
“할 수 있는 거면 있는 거지, ‘있을걸요?’는 뭐야.”
“…….”
빨게 해달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눈앞에 성기를 두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일전에 블란의 것을 빨았던 적이 있긴 하지만, 꽤 예전의 일이기도 하고 고작 한 번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누아의 성기는 그의 것 나름대로의 다른 위압감이 있었다. 그래서 꼭 처음 빨아보는 것처럼 긴장됐다.
잠깐 고민하던 라핀은 눈을 질끈 감고 상체를 낮췄다. 무턱대고 얼굴을 들이민 탓에 볼에 성기가 비벼지긴 했지만, 이내 성기 선단을 찾아 입에 물었다.
“으….”
“음….”
둘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비슷하지만 전혀 달랐다.
라핀에게서 나온 건 비위가 약해서 당장이라도 뱉고 싶어 하는 소리였고, 누아에게서 나온 것은 꽤 만족한 신음이었다. 고작 귀두만 물었을 뿐인데도 흥분해서 쿠퍼액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사정한 지 얼마 안 된 것이라 제가 입으로 사정까지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절정 직후의 몸은 민감했다. 라핀은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잘만 하면 누아를 사정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누아에게서 나온 신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
누아는 묘한 눈으로 눈앞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엉덩이를 바라봤다.
직접 빨겠다는 당돌한 말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음부를 빠는 자세가 싫다고 완강하게 거부하기에 경험이 많은가 했다. 다른 토끼 놈이나 블란이랑 해본 건가 싶었다.
그런데 패기와 달리, 라핀은 좆을 제대로 입에 담지도 못했다. 입이 작아서 그런지 고작 귀두를 무는 것이 전부였고, 빨고 핥는 것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 이가 스치기도 했다. 노력하는 것 같긴 한데… 최악의 오럴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설픈 모습이 묘하게 누아의 음심을 자극했다. 오히려 선수처럼 능숙하게 빨았으면 기분 나빴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라핀이 구강 성교가 능숙해지는 건 기대도 되지 않으니, 엉덩이나 가지고 놀아야겠다.
누아는 눈앞에서 흔들리는 둔부를 양손으로 콱 쥐어 잡고 벌렸다. 원래도 하얗고 깨끗해서 예쁘다고 생각한 엉덩이였지만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억센 손길에 벌어진 핑크색 내벽 사이로 하얀 정액이 툭툭 제 가슴팍을 더럽히는 것도 너무 음탕해 보였다.
저기 안에 있는 게 제 정액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들어서 보지를 빨아주고 싶다가도, 제 정액을 먹는 거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들었다. 라핀의 정액은 먹을 수 있는데, 제가 싸지른 걸 먹는 건 좀… 으윽.
빨아줄 생각으로 눈앞에 두긴 했는데…. 잠깐 생각하던 누아는 꿈질꿈질 움직이는 분홍빛 뒷구멍에 관심을 돌렸다.
“아앗…! 자, 잠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디든 애무해줄 생각이었다. 누아가 뒷구멍을 혀로 길게 삭 핥아주자, 라핀이 곧장 입에서 성기를 뱉고 돌아봤다. 소름 돋은 얼굴이었다.
하긴, 뒷구멍을 빨아주는 게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 누아는 그런 라핀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하던 거 해.”
“으읏, 아, 할 건데…. 거긴 좀…, 흣, 안 하시면 안 될까요…?”
누아가 귓등으로도 안 듣고 할짝이자 라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누아는 라핀이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걸 질리도록 봤지만 이번에는 어딘가 난감해하는 기색이 있었다.
누아는 뒷구멍을 핥던 것을 멈추고 라핀에게 물었다.
“뭐가 문제인데.”
“거, 거기….”
더러운 부위라느니 하며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거면 더 괴롭혀줘야지. 누아가 남몰래 계획을 짜고 있을 무렵, 라핀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거기에 박으면 너무… 아, 아파서….”
“…….”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누아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누아는 뒷구멍을 빨아줄 생각은 했지만, 이 부위에 삽입할 생각은 안 했었다.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프다는 건… 뒷구멍으로도 경험이 있다는 소리인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달가운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곳으로 삽입할 새끼는 블란밖에 없었다.
누아가 미간을 좁히자, 라핀은 그가 화났다고 오해하고 말을 주절주절 이었다.
“후유증도…! 후유증도 심해서, 걷기도 힘들고….”
“내가 다른 놈이랑 애널 섹스한 얘기까지 들어야 하나?”
“…….”
라핀이 억울하게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누아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며 라핀을 옆으로 밀었다.
자연스럽게 라핀을 침대에 눕힌 누아는 아까처럼 다시 라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얼굴을 마주 본 채였다.
“봐줄까 했는데, 너무 못해서 안 되겠어.”
“에? 으, 잠, 아흣…!”
누아는 라핀의 오금을 눌러 가슴에 무릎이 닿도록 한 다음, 드러난 보지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안쪽에 질펀하게 사정한 덕분에 삽입이 한결 쉬웠다.
단번에 성기를 뿌리까지 넣으니 라핀이 하얗게 질린 손으로 더듬더듬 누아의 팔뚝을 붙잡았다. 라핀은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옷깃을 꽉 쥐며 울먹였다.
“그, 그만….”
“아직, 한참 남았어.”
누아가 라핀의 몸에 체중을 완전히 실으며 말했다.
라핀에게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하반신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
“하아, 너 지금 몇 번째 사정한 줄 알아?”
“흐으으, 모, 모르겠…. 흐윽….”
라핀이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이마에는 하얀 머리카락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고개를 저을 힘도 없어 축 늘어져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교접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길어진 정사에 침대 시트는 완전히 눅눅해져 있었다. 시트에 몸을 기대는 것도 찝찝할 지경이었는데,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라핀이 속눈썹을 바르르 떨자, 누아가 라핀의 목 뒤에 손을 넣어 받치며 말했다.
“여섯 번째야.”
“아….”
어쩐지, 지랄 맞게 힘들다 했다….
말할 힘이 있었더라면 욕지거리라도 했을 텐데, 그럴 힘조차 없었다.
여태까지는 제가 기절하면 행위가 끝나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까무룩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세가 바뀐 채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측면으로 누운 채 박히고 있을 때도 있었고, 뒤로 박히기도 했고, 제 몸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을 때도 있었다. 라핀은 세상에 체위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벽에 정액이 가득 차서 더는 뭣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 성기가 그것을 비집고 꾸역꾸역 들어왔다. 라핀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끙, 신음을 삼켰다. 숨 쉴 틈 좀 줬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언제 떨어질지….
누아를 잠시라도 떼어놓을 궁리를 짜던 라핀은 안간힘을 다해 말을 쥐어짰다.
“으응, 누아 님…. 저, 흣, 목, 마른데….”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게 아니라 정말 목이 말랐다. 라핀이 반쯤 쉰 목소리로 말하자, 누아가 동작을 멈췄다. 누아는 깊은 숨을 내뱉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기다려.”
“으응…!”
몸 안에 뿌리를 박을 듯 빠져나가지 않던 성기가 단번에 쑥 빠져나갔다.
누아는 의자에 널브러져 있던 검은색 가운을 걸치더니 방 밖으로 나갔다. 라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가운 아래에 있는 몽둥이의 윤곽이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끝이 나려면 한참이나 남은 듯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고문이지…. 라핀이 체념하며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누아가 물이 든 유리병과 컵을 들고 돌아왔다.
뭐가 이렇게 빨라? 지나치게 짧은 휴식에 라핀이 아쉬움을 느끼는 동안 누아가 유리잔에 물을 쪼르륵 채웠다. 라핀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윽….”
라핀은 신음을 흘리며 미간을 와락 좁혔다. 성교 후에는 늘 허리가 아팠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라핀이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어떻게 일어날지 궁리하는데 누아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
누아는 라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잔에 따른 물을 마셨다.
라핀은 황당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약 올리는 건가? 물을 달라고 했는데 왜 그가 마시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컵도 하나밖에 안 가져온 걸 보아, 약 올리려고 그러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목마르다는 말을 무시했으면 모를까, 굳이 저렇게 놀려야 하나? 얄미운 늑대…. 라핀의 눈이 가늘어지고 있을 때 누아가 허리를 굽혔다.
보드라운 입술이 제 입술 위로 포개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흐읍….”
가늘게 뜨여 있던 라핀의 눈이 대번 커다래졌다. 뜬금없는 입맞춤에 놀라기도 했지만, 벌어진 입술 틈새로 차가운 물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왜 그가 저 혼자 물을 마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제가 못 일어나니까 이런 식으로 물 마시게 도와주려고. 그렇지만 분명 평범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입술 너머로 들어오는 물이 너무나도 달아서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마치 뜨거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워서 라핀은 손으로 누아의 목 뒤를 감싸기까지 하고 꼴깍꼴깍 받아 마셨다.
그렇게 고작 두세 번밖에 안 삼킨 것 같은데, 금방 누아의 입술이 떨어졌다. 물이 식도를 적시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아직도 속은 용암처럼 절절 끓었다.
더, 더 마시고 싶은데, 누아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지 잠시 멈췄던 정사를 이어 가려 했다.
라핀은 아쉬움에 앞에 있는 누아의 입술을 핥았다. 그의 입술이 물에 젖어 있었기에 충동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더, 더 주세요.”
물을 많이 가져왔으면서 새 모이만큼 찔끔 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
누아가 말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와는 다른 눈빛에, 라핀은 누아가 저를 혼내려는 건줄 알고 몸을 작게 움츠렸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다시금 물을 입에 담더니 방금처럼 입을 맞추고 물을 넘겨줬다. 왜 이렇게 귀찮게 구냐고 타박할 줄 알았는데….
의외긴 한데, 다행이었다. 라핀이 열성적으로 입술을 비벼가며 물을 받아 마시고 있는데, 음부에 딱딱한 게 닿았다. 비벼지는 것도 모자라, 당장이라도 삽입할 것처럼 다물린 부위를 쿡쿡 쑤셨다.
“으읍…!”
아니,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물도 못 마시게 하는 게 어디 있냐고!
라핀이 다급하게 하지 말라고 누아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으나, 누아의 성기는 보짓살을 가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흐, 으으윽!”
여전히 입술을 문대고 있는 탓에 신음이 한껏 억눌렸다.
두 번이나 받아먹었음에도, 물이 새 모이만큼 찔끔찔끔 넘어오는 탓에 여전히 갈증은 해소되지 않은 채였다. 나쁜 늑대, 쪼잔한 늑대…. 라핀이 욕을 삼키는 사이, 누아는 작은 몸을 품에 끌어안은 채 상체를 일으켰다.
“흐아으윽… 읏.”
누아가 이끄는 것에 따라 라핀은 그의 무릎에 마주 보고 앉은 자세가 됐다. 중력 때문에 성기가 더 깊게 들어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라핀이 혼몽해하는 동안 누아가 물을 더 마시고는 다시 입맞춤을 해왔다. 이제는 몸을 일으켰으니 평범하게 컵을 줘도 될 텐데, 굳이 입을 통해 넘겨줬다. 라핀은 이렇게 마셔서는 마신 것 같지도 않다고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따졌다가 누아가 새 모이만큼의 물도 주지 않을까 봐 충동을 억눌렀다.
라핀이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처럼 열심히 받아먹고 있자니, 혼탁했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아까는 탈수라도 온 것 같았는데,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잠시간 라핀을 내려다보던 누아는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라핀의 둔부를 받치며 말했다.
“이제 됐지.”
“네…? 앗!”
라핀이 뭐가 된 거냐고 묻기도 전에 몸이 들썩였다.
엉덩이가 뜨면서 아래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커다란 기둥이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더니, 푹,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아으윽…!”
특유의 테크닉으로 극점을 찔러주는 게 아니라, 어딘가를 겨냥하지 않은 무자비한 삽입이었다. 그러나 워낙 성기가 큰 탓에 어디를 찔러주든 정점에 닿았다.
누아가 마치 장난감을 들었다 내리는 것처럼 가볍고 빠르게 허리 짓을 하자 라핀의 몸이 금방 녹진해졌다. 물을 마시며 쉬었다고 정신을 되찾긴 했었지만, 워낙 지친 몸이었다. 곧 끊어질 줄처럼 정신이 불안정했다.
라핀은 누아의 목을 생명줄처럼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매달리는 게 전부일 때, 누아가 대뜸 라핀의 귓가를 살짝 깨물었다.
“아흑!”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지 말라는 건가. 라핀이 울먹거리며 몸을 뒤로 물리려 하자, 누아가 손으로 등을 감쌌다. 그는 라핀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핥아 봐.”
“흐읏, 으… 뭐, 네…?”
“씹…, 아까처럼 해보라고.”
“흐으으, 으…?”
‘아까처럼’이 무슨 소리지. 핥은 건 아까 그의 성기를 할짝거린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이런 자세로는 빨 수 없었다.
무자비하게 찔러오던 추삽질도 멈춘 게 뭔가 기다리는 것 같은데…. 뭘 말하는 건지 잠깐 궁리하던 라핀은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을 보고 “아.” 소리를 냈다.
설마 입술을 핥으라는 건가?
“…….”
갑자기 왜 그런 요구를 하는 거지? 키스할 거라면 평소처럼 멋대로 입 맞추면 될 텐데, 굳이…. 혹시 제가 입술을 핥는 느낌이 좋았나?
라핀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 누아가 허리를 들썩였다. 안 그래도 엉덩이에 고환이 닿도록 들어와 있던 성기가 더 깊은 곳을 푹 찔렀다. 아흑, 라핀이 신음을 삼키자 누아가 재촉했다.
“안 해?”
“해, 해요…!”
라핀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했다가는 제멋대로 허리 짓을 할 기세였다. 라핀이 다급하게 대답하고 나서야 누아의 심술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라핀은 머뭇거리다가 눈 꾹 감고 혀를 꺼내고 누아의 입술을 조심스레 핥았다. 그의 외모와는 달리 보드라운 입술 감촉이 혀끝으로 느껴졌다.
입술 핥으라는 거 맞겠지…? 임무를 완수한 라핀이 고개를 뒤로 물리려고 하자, 누아가 라핀의 둥근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싸며 말했다.
“더 해.”
“…….”
왜 시키는 거야…. 이상하기만 한데.
그렇지만 안 할 수도 없었다. 라핀은 제가 핥는 곳이 입술이 아니라 상처 부위라고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아픈 늑대를 치료하는 것뿐이다.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성기가 아니라 평범한 홍두깨다….
몸 안에 들어 있는 게 평범한 기둥이어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라핀은 자가 최면을 걸며 다시금 누아의 입술을 핥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도 몸 안을 파고든 것은 좆 기둥이었고 제가 핥는 건 입술이었다. 게다가 제가 누아의 입술을 핥을 때마다 안에 품은 성기가 꿈틀거려 더는 평범한 홍두깨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라핀은 슬그머니 눈을 뜨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가, 들끓던 피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주친 그의 눈빛이… 정신이 나가 있었다.
라핀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누아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비명이 나올 정도로 머리채가 세게 쥐어 잡혔다. 누아의 입술이 저돌적으로 돌진해왔다.
“으읍!”
입술이 마구잡이로 비벼졌다. 정신이 나갔다는 표현에 걸맞게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저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떼어놓고 보자고, 안간힘을 다해 누아의 어깨를 쳐 보기도 하고 몸을 버둥거려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누아는 떨어지기는커녕 더 바짝 달라붙었다.
“으, 우으….”
입에서 나오는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입술을 맞추고, 혀를 빨아왔다. 무례한 침입에 라핀이 입을 다물려고 하면 그는 억지로 입술을 벌리게 하고 혀로 입 안 곳곳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녔다.
제발 그만…. 이러다가 질식하겠다고, 라핀이 혀로 그의 혀를 밀어내려고 하자, 몸 안에 있는 성기가 울컥거렸다.
사정하려는 건가 했는데, 몸 안에 품은 성기가 기이하게 부풀어 올랐다.
“으으윽, 흐아아!”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듯 누아의 성기는 끝도 없이 부풀었다. 틀어막힌 입술 사이에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라핀은 어제까지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늑대의 성기에 몸 안에 내장 기관이 제대로 있는 건지 위치가 바뀐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근데 기관이 밀리고 문제가 생긴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아랫배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제 배가 풍선처럼 펑 터지는 건 아닌지 두려울 정도였다.
늑대와 몸을 겹친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키우는 건 처음이었다. 끔찍한 고통에 멈췄던 머리 위로 두 글자가 떠올랐다.
노팅.
“아흐윽, 아아악!”
두 글자를 떠올린 라핀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누아의 어깨를 밀어내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일전에 누아가 제게 노팅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라핀이 기겁하자, 누아는 저를 죽일 생각은 없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노팅을 가까스로 참았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노팅을 하는 걸까. 이제는 저를 죽일 생각이라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라핀은 이 행위가 끝나면 누아가 저를 죽일 거라고 확신하게 됐다.
노팅 도중에 성기를 뺄 수도 없으니, 한 치의 희망도 없게 느껴졌다. 라핀은 비명을 내지르다가 거의 통곡하듯 울음을 터트렸다.
“아으, 왜, 왜… 흐으윽, 아아!”
어차피 저를 죽일 거라면 이런 식으로 말고, 평범하게 죽여주면 안 되나? 왜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리 힘들게 하는 거지?
게다가 당장 어젯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저를 살려줬으면서. 다른 방법으로 죽이려고 살린 거였나? 이런 식으로 죽일 거면 그날 살려주지나 말든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소연하려고 입을 열면 비명과 신음이 뒤섞여 나왔다.
말하기를 포기한 라핀은 되지도 않는 힘으로 누아의 어깨에 주먹질을 했다. 그러나 단단한 어깨는 아무리 쳐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마치 벽을 때리는 기분이었다.
잠잠히 주먹질을 받아내던 누아는 뒤늦게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윽…, 좀, 가만히, 있어.”
누아는 제 어깨를 내리치는 라핀의 팔목을 붙잡고 제 쪽으로 확 이끌었다. 라핀이 온 힘을 다해 떨어트렸던 거리가 손쉽게 좁혀지면서 서로의 가슴이 맞닿았다.
단단한 가슴 근육이 닿는 것도 그렇고, 그의 심박동 울림이 제 심장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게 이상했다. 라핀이 뒤로 몸을 물리려 했으나, 누아가 반대쪽 손으로 라핀의 마른 등을 감싸며 퇴로를 막았다.
“억지로 빼려고 하면, 다쳐. 후…, 빠지지도 않고.”
“흐으윽, 왜, 왜 나한테, 흐으, 이런 걸 하, 하냐고요!”
라핀은 노팅 중에는 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버둥을 쳤다. 게다가 다친다고 걱정하듯 말하다니. 제가 다치든 말든, 어차피 죽일 거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핀은 저번에 임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지만, 지금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보니 노팅이 임신 확률을 폭발적으로 높여준다는 방향으로는 생각이 튀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당장의 생존이 더 중요했다.
야생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전날까지 잘만 먹고 살던 이웃 토끼가 다음 날에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은 빈번했다. 특히 늑대 굴에 붙잡힌 라핀은 남들보다 더 가까이 죽음 옆에 서 있었다. 늑대들이 죽일 생각이 없다는 듯 구는 덕분에 생존이 하루 이틀씩 늘어나긴 했지만, 당장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상 ‘진짜’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미친 듯이 무서웠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깊은 계곡물에 이리저리 휩쓸렸던 그날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흐, 으윽, 무, 무서워….”
라핀은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불안했다. 라핀이 누아의 품에서 바들바들 떨자, 노팅의 흥분에 잠겨 있던 누아가 멈칫했다.
라핀이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렸다. 정사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방 안의 공기가 조금 서늘해지고 있을 때였다.
“…미안.”
순간, 작고 나지막한 소리가 라핀의 귓전에서 흩어지듯 했다.
낮고 울림 있는 누아 특유의 목소리였으나, 내용 때문인지 누아가 말한 것 같지 않았다. 환청을 들었다는 쪽이 더 믿길 정도였다.
그렇지만 환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커다란 손이 라핀의 등에 내려앉더니 천천히 아래로 쓸어내렸다.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에 비해 너무나도 부드러운 다독임이었다.
그러자 라핀의 눈물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누아의 진심 어린 위로가 통한 건 아니고, 그가 제게 사과를 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놀라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렇지만 의외롭거나, 놀란 감정은 아주 잠시였다.
“흐, 어, 어차피, 저를 주, 죽일 거면서… 읏, 사, 사과는 왜 해요.”
라핀은 누아가 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과한 게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곧 죽일 저에게 용서를 비는 건 이상했다. 어차피 죽을 생물 기분은 왜 살핀단 말인가.
그저, 누아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목적의 사과라면 받고 싶지 않았다.
라핀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딴 사과는 받지 않을 거라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원망의 말을 더 말을 이으려는데, 누아가 미간을 종이 구기듯 확 찌푸렸다.
“뭐?”
마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반응이었다.
험악하게 굳은 표정에 라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라핀은 순간 오한이 들 정도로 무서웠지만, 어차피 곧 죽을 거라면 그의 눈치도 보지 말자 싶었다.
“맞, 잖아요…!”
“하, 내가, 후, 널 죽일 거였으면…. 어제, 살리지도, 않았겠지.”
“흐읏, 그, 그러면 노, 노팅은 왜, 읏, 했는데요…?”
라핀이 따지는 와중에도 몸 안의 성기가 여린 부위를 짓눌러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잇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도 라핀이 애써 목소리에 힘을 싣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누아를 쏘아보자, 누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
할 말 없겠지. 변명을 둘러대려고 저렇게 시간을 끄는 건가.
라핀이 황당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는 예상치도 못한 말이 나왔다.
“네가, 입술을 핥으니까….”
“…예? 흣…! 아흑, 크기 키우지, 마요…!”
입술을 핥아? 그게 뭔 상관인가 싶은데, 갑자기 라핀의 몸에 품은 성기가 크기를 키우듯 불뚝거렸다. 노팅까지 했으면서 어떻게 크기를 부풀리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누아도 제가 키우려던 건 아니었다는 듯 끙…, 소리를 삼켰다. 겨우 제멋대로 불뚝거리는 성기를 진정시킨 누아는 차분하게 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아무튼…,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는 죽이려고 했다는 오해를 받는 게 정말 싫다는 듯이 라핀을 차분히 설득하려 들었다. 두 눈을 곧게 맞춰가면서 진심임을 피력했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건 믿더라도, 그가 이런 식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언젠가 저를 잡아먹을 거면서, 잡아먹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 게 뭐 어떻다고.
라핀은 제가 그를 오해하든 말든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이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되지만, 늑대가 제 생각을 지극히 해주는 것 같았다.
라핀은 간지러운 어색함에 눈을 피하며 재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흐으, 아, 알겠으니까…, 이거나 빨리, 어, 어떻게든 해, 해봐요.”
“후…. 빨리 하면 아플 텐데.”
“돼, 됐으니까요…. 으으….”
저를 죽이려던 게 아니라는 건 믿을 테니, 한시라도 빨리 노팅한 성기 크기나 줄여줬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몽둥이 같던 게 더 크기를 키우니,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시간이 흐른다고 익숙해지지도 않을 크기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고통을 질질 끌고 가느니 빨리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라핀이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젓자, 누아의 황금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아까 마주했던 광기 어린 시선이었다.
무자비한 폭행 같은 성행위가 이어지겠구나. 제 처참한 미래를 짐작한 라핀이 후회하기가 무섭게 누아가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 씹. 제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다시 마주한 누아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성행위 도중이라 얼굴이 발긋하고, 조금 흥분에 차 있다는 것 빼고는 평소와 같았다.
무자비하게 움직일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누아는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누가 본다면 움직이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느릿한 속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라핀에게는 버거웠다. 성기의 움직임에 내벽이 딸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전부 생생하게 느껴졌다.
라핀은 미칠 듯이 아프면서도 예민한 부분을 죄다 긁어대는 성기에 진저리를 쳤다.
“으윽, 으으으, 으… 처, 천천히, 흐, 해요….”
“하…. 방금은, 빨리 하라면서.”
“흐으윽, 아, 잘못 생각, 흐으, 더 천천, 히요….”
사실, 지금보다 더 천천히 움직이라는 건 멈추라는 말과 같았다. 라핀은 되지도 않는 고집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더 느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 움직임 하나하나가 버거웠다.
만약 아까 누아가 제 말을 듣고 거칠게 추삽질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벽이 다 찢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모골이 송연해졌다. 긴장이 들어가며 아래를 바짝 조이자, 누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후, 안 되겠다. 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라핀이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를 않으니, 내벽이 완전히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어, 언제, 익숙해지는데요…?”
“…글쎄. 네가 알겠지.”
누아의 발기한 성기 크기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노팅하려고 부푼 성기에 익숙해질 수가 있을까. 평생을 품고 있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흐으. 아, 이렇게 해서, 어, 흑, 언제, 끝내려고요….”
“후, 모른다니까, 하. 네가…, 움직이면 아프다면서.”
누아가 짜증과 답답함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지 발달한 턱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도 삽입한 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이 짜증 나고 안달이 나는 듯한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라 크게 화를 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노팅한, 거니까… 빠, 빨리 싸 봐요….”
“그게 내 마음대로 돼? 이렇게, 후… 가만히 있는데?”
“그, 그럼, 흐윽, 어떡하라고요…!”
노팅은 사정을 해야 끝이 나는 건데, 이래서야 끝이 안 날 판이었다.
정말 어쩌자는 거야. 라핀이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잠깐 생각하던 누아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입술 핥아 봐.”
“네…?”
입술? 라핀이 제 입술에 침을 바르고 멀뚱멀뚱 누아를 바라보자, 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네 거 말고, 내 거 핥으라고.”
“…예에?”
라핀이 표정을 왈칵 굳혔다. 왜 자꾸 저딴 걸 시키는 거지?
아까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긴 했는데, 그러다가 노팅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내키지 않았다.
라핀이 환멸 어린 시선으로 누아를 바라보자, 그가 조금 멋쩍은 얼굴로 이유를 덧붙였다.
“아니, 그거… 하니까 좀 쌀 것 같던데.”
“…….”
그렇게 추삽질을 해도 사정을 안 하던 늑대 놈이… 입술 좀 핥아줬다고 사정할 것 같았다고?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농담인가 했는데, 표정을 보니 아니었다. 진담이었다.
저 말도 안 되는 걸 들어줘야 하나 싶은데, 이대로 노팅한 성기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것도 무리였고, 이 상태로 움직이는 것도 무서웠다.
잠깐 고민하던 라핀은 속는 셈 치고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아까보다는 거부감이 심하지 않았다.
라핀은 눈을 반쯤 내리깔고 누아의 입술을 핥았다가, 콱 미간을 찌푸렸다.
“으….”
라핀이 작게 신음했다. 그의 입술에 혀를 대자마자 아래에서 누아의 성기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세한 움직임이었으나, 워낙 내벽이 예민하다 보니 그 작은 움직임이 선명했다.
속는 셈 치고 해보자고 했는데, 이 정도 반응이라면 정말로 계속 핥으면 사정할 것도 같았다. 좀 이상하긴 하더라도 추삽질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사정을 유도하는 게 좋아 보였다.
라핀이 몇 번이고 핥고 있자니, 어쩐지 다른 의미로 곤란해졌다.
“으응… 흐, 으….”
노팅 때문에 버거워하면서도, 내벽을 자극하는 미세한 움직임에 입에서 자꾸만 뜨거운 숨이 터져 나오고 발끝이 곱아들었다. 분명 누아를 사정시키는 게 목적이었는데 제가 흥분하고 있었다.
라핀이 무의식적으로 엉덩이를 은근하게 달싹이자, 그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챈 누아가 숨을 내뱉으며 입매를 미세하게 올렸다.
“후우, 왜…. 비벼줘?”
“흐으응, 으… 아, 아니요….”
“왜. 하아…. 이제.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아, 아직… 아, 으응…, 하읏!”
라핀이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으나, 누아는 뭉근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라핀의 깊숙한 곳을 귀두로 문질렀다.
라핀은 좀 전까지만 해도 기이할 정도로 부피를 키운 성기에 고통만 느꼈었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새 익숙해진 건지, 여태까지는 닿지 않았던 깊숙한 곳을 비벼주니 온몸이 저릿해서 미칠 것 같았다. 축 처져 있던 라핀의 남근은 어느새 바짝 서다 못해, 요도구에서 나온 쿠퍼액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라핀이 마냥 아파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누아는 점점 허리 짓의 강도를 높였다. 처음에는 극점을 비벼주던 수준이었는데, 점점 행위가 거칠어지더니 이제는 극점을 귀두로 후벼 파듯 했다.
“하윽! 아아, 아으으, 누, 아, 아앗!”
거칠어지는 행위만큼 라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도 정제되지 않았다. 점점 비명처럼 내지르게 됐고,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소리가 점점 메말라갔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발정한 누아를 부추기기에는 충분했다. 어느새 누아는 라핀의 볼기를 받치고 몸을 가볍게 들었다가 낙하시키며 안을 찧어대기까지 했다.
행위가 격렬해지니 내벽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꽉 조이며 성기의 진입을 막아냈다. 더 깊숙한 곳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친 방벽은 견고했지만, 누아의 허릿심이 더 강했다.
누아가 막무가내로 내벽을 밀어내자, 억지로 길이 열리면서 성기가 단박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치달았다.
“아으윽!”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찌릿한 느낌이었다.
한 부분에 라핀이 유달리 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 누아는 그 부분만을 똑같이 공략했다.
극점을 연달아 짓찧으니 라핀은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찌릿한 감각을 느꼈다. 미칠 것 같았다. 몸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머리까지 이상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얀 쾌감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눈을 까뒤집을 듯 헉헉거리던 라핀은 일순간 극심한 배뇨감을 느꼈다. 성교 도중 갑자기 오줌이 참을 수 없이 마려워졌다.
성교 중에 갑자기 왜 이딴…. 라핀은 당혹스러움에 허둥지둥 어설프게 누아의 가슴팍을 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개미 한 마리도 밀어낼 수 없을 듯했다.
“자, 흐윽, 아, 잠깐, 흑, 아!”
“하, 후…, 왜?”
누아는 물으면서도 안을 짓찧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더 거칠어지는 행위에 라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저, 오, 흐읏, 오줌 마, 마려, 워서…, 아흑, 그만…!”
“하아, 뭐? 오줌?”
누아가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라핀이 그렇다고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이자, 잠깐 말이 없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어차피, 읏, 못 빼니까, 여기서… 싸.”
“흐윽, 네? 으…!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여기서 싸!
상식이 통하지 않는 늑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화장실도 못 가게 할 줄은 몰랐다.
그의 말대로 노팅 중이라 어차피 성기를 빼지는 못해도, 조금만 쉬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누아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성기가 깊은 곳을 찌를 때마다 배뇨감이 극심해졌다. 마치 성기가 방광을 겨냥해 꾹꾹 누르는 것 같았다.
정말 안 되는데. 이러다가 정말 여기서 실례를 할 것 같은데….
라핀은 어린아이도 아닌데 화장실 하나 가리지 못하는 멍청이가 될 것 같아 어떻게든 참으려 했다. 그러나 쿵쿵 내벽을 망치처럼 찧어대는 성기에 일순간, 몸에 힘이 확 풀려버렸다.
“아으, 안, 돼, 으흐, 하으윽!”
허망하게 외쳐 봤지만, 끝내 라핀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과 동시에 요도구 끝에서 액체가 왈칵 쏟아졌다.
투명한 액체는 수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졌다. 침대 시트를 흥건하게 적실 정도로 꽤 많은 양이었다. 아무래도 아까 물을 받아 마신 것이 화근인 것 같다.
투두둑, 투둑….
매트리스 위로 물이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라핀은 제 아래에서 쏟아지는 것들을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죽고 싶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고 싶었는데도, 수치스러워서 더는 못 살 것 같았다.
라핀이 절망에 잠겨 있을 때, 뒤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참나…. 진짜네.”
누아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놀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얄밉게 빈정거리는 말에 라핀은 한껏 억울해졌다. 오줌 마렵다고 말했는데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화장실도 못 가리게 만든 게 누구인데…! 라핀은 왈칵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흐으, 그, 그래서 제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너, 어디 가서 이러면 안 된다.”
“아, 앞으로, 이, 이럴 일 없어요…!”
누아는 마치 어린아이가 볼일을 못 가렸을 때 타이르는 것처럼 잔소리를 했다.
라핀도 두 번이나 이런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만해 달라고 애원했는데 묵살한 것은 누아였다. 그가 저만 놔줬어도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다.
라핀이 억울하게 언성을 높이자, 누아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런 건 나한테만 보여줘.”
“읏, 아, 아니…. 아으응, 하아!”
“내 앞에서만 싸, 응?”
라핀이 앞으로도 보여줄 일 없다고 다시금 강조하려고 했으나, 누아가 라핀의 유두를 쥐어짜며 아래를 치대는 바람에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라핀은 말간 액체를 싼 직후라서 그런지, 꼭 절정 후처럼 쾌감이 휘몰아쳤다. 마치 여태까지는 봐준 거라는 듯 누아가 노팅하지 않았을 때처럼 거세게 안을 난도질하는 탓에 눈앞이 하얘졌다.
거센 추삽질에 침대가 끼익끼익, 버거운 소리를 냈다. 라핀은 천천히 해달라고, 지금 너무 감각이 예민하니 조금만 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의지와 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멍청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는 야릇한 신음만이 덜덜 떨려 나왔고, 숨만 쉬는 게 고작일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
아래를 치받는 좆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은 곳을 내찔렀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오줌을 싼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또 격렬한 배뇨감이 몰려왔다.
미칠 것 같았다. 이러다 또 실수해버릴 것 같았다.
라핀이 티끌만큼 남은 이성으로 참고 있을 때, 누아가 가장 깊은 곳에 성기를 퍽! 박아 넣었다.
“아흐윽!”
“큿…!”
아무리 힘을 쥐어짜내도 깊은 삽입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라핀의 통통한 성기 끝에서 액체가 픽, 튄 것과 동시에 몸 안에 있는 성기도 꿀럭거리며 액체를 토해냈다. 부풀었던 성기가 차츰차츰 부피를 줄이는 게 느껴졌다.
“하아, 하아….”
그나마 다행인 건지, 아까 라핀이 투명한 물을 많이 쏟아낸 탓에 이번에 배출한 액체의 양은 적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 오늘따라 지나치게 길어진 행위에 지치기도 했고, 늑대의 노팅을 잘 버텼다 싶어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라핀은 정사 후의 여운을 느끼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벌어져 있던 다리는 뻐근했고, 내벽은 하도 위아래로 쓸려 너덜너덜해진 것 같았다.
라핀이 누아의 상박에 기대 헐떡거리는데, 누아가 라핀의 마른 허리를 붙잡고 위로 천천히 끌어올렸다.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성기가 반쯤 빠져나가며 안을 가득 메운 하얀 정액이 두꺼운 기둥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아는 삽입한 성기를 빼내고 라핀을 편히 침대에 눕혔다. 라핀이 쏟아낸 오줌 같은 액체 때문에 침대 시트가 눅눅하다 못해 축축했지만, 거의 탈진하다시피 한 라핀은 찝찝함도 느끼지 못했다.
누아는 그런 라핀의 다리 사이에 앉아, 다리를 벌리게 하고 음부를 바라봤다. 라핀의 음부는 온갖 액체로 더럽혀져 있었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뻐끔뻐끔 개폐하는 구멍 안쪽도 핑크빛이 아닌 흰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누아는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그 부위에 성기를 문질렀다. 도대체 얼마나 하려는 건지, 아직도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으으….”
라핀은 이제는 정말 안 된다고, 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결국 눈이 감기는 게 먼저였다.
분명 의식을 잃어 기절했는데도, 어렴풋하게 육중한 무게가 여전히 제 몸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
“으으, 흐어어엉, 허어엉!”
이른 아침부터 서러운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매번 눈치만 보느라 훌쩍이는 소리만 내던 라핀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게 서러운 소리였다. 어제 겪었던 노팅 때문인지, 라핀은 눈을 뜨자마자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렬한 고통에 울음부터 쏟았다.
라핀이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자,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눈치를 보던 누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약 발라줬는데, 많이 아프냐?”
“흐으, 허, 으으… 바, 바로 낫는 게, 흐,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허엉, 제가, 아, 아프다고 했, 는데… 흐으으, 어엉….”
“…….”
라핀의 하소연에 누아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라핀은 누아가 뻔뻔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한 건 아는 눈치였다.
하긴, 라핀은 다른 것도 아니고 늑대의 노팅을 받았다. 같은 종족인 늑대 암컷도 버거워할 노팅을 아주 작은 토끼한테 한 것이었다. 아무리 양심이 없는 놈이라도 이게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인지는 알 터다.
라핀은 여태까지 늑대들에게 무슨 짓을 당해도 이 정도로 서럽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팅을 경험하고, 그것도 모자라 침대 위에서 오줌… 을 쌌던 탓에 서러움이 몇 배로 컸다.
“흐으으, 왜, 저한테… 히끅, 노팅하셨어요….”
“어제는….”
누아는 무언가 대답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누아의 표정을 보자 하니, 무슨 의미를 가지고 노팅한 것 같진 않았다. 그냥 흥분에 끌린 거겠지. 누아나 블란이나 큰 뜻을 가지고 저와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라핀이 이유가 뭐였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누아가 말을 이었다.
“발정기였나 봐.”
“…….”
라핀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발정기여서 그랬다고?
그러고 보면, 저번에 블란이 제게 늑대 발정기를 운운하며 협박을 한 적이 있었다. ‘늑대한테는 발정기가 있거든. 만약 그게 동시에 와서 같이 박겠다고 나서면…, 네 뱃가죽 찢어질지도 몰라.’라고….
정말 소름끼치는 말이었는데, 블란과 누아가 매일이 발정기인 것처럼 굴기에 잊고 있었다. 늑대는 365일이 발정기인 줄 알았다.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쯤 오나 했다. 그런데 진짜 발정기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발정기 때문이었다고 하면 어제 미친 듯이 달려들던 누아의 행동이 이해됐다. 그렇지만….
“그, 그런 거였으면… 저 말고 다른, 짝 구하셔야죠….”
그것과는 별개로 발정을 저에게 푼 걸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발정기는 몇몇 동물이 종족 번식을 위해 가지는 시기였다. 그런 기간을 왜 수컷 토끼랑 보내….
일전에 라핀은 제가 임신할 수 있는 몸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제가 임신이 가능한 것과 별개로 늑대의 아이를 낳을 순 없을 거였다. 기적의 확률로 낳는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늑대와는 다를 거고. 그건 저도, 누아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라핀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누아를 올려다보며 말하자, 그가 무섭도록 미간을 확 좁혔다.
“…….”
눈빛만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라핀은 고작 그와 눈을 마주했을 뿐인데,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줄줄 흐르던 눈물도 뚝 그쳤다.
왜… 맞는 말인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느냐고, 왜 화가 난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누아 앞에서는 입 한번 벙긋할 수 없었다.
라핀을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누아는 눈을 감더니 숨을 내뱉었다.
“후…, 오늘은 쉬어.”
“…….”
“없다고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네?”
라핀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누아는 침대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더니 겉옷을 걸쳤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덩그러니 침대 위에 홀로 남은 라핀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두 눈을 깜빡거렸다.
없다는 게… 누아가 나가 있겠다는 말인가?
사냥 나가는 날이 아니고서야, 누아는 늘 방을 지키면서 저를 감시했었다. 근래에는 같이 사냥을 나가게 되면서 그마저도 떨어지지 않게 됐고.
그랬던 누아가 저를 홀로 내버려 둔다고? 겉옷까지 걸치고 나간 걸 보아 아예 집을 나가려는 것 같았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저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라핀은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리다가 도로 침대에 누웠다. 어제 섹스를 하다 오줌까지 지렸는데 시트를 갈았는지 새것처럼 보송했다. 몸은 씻겨준 듯했고, 움직일 때마다 음부가 기름칠한 듯 미끈거리는 것이 약도 발라준 것 같았다.
남의 몸을 씻겨주는 것도, 침대 시트를 가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늑대가 힘이 세더라고 하더라도 귀찮을 법한 일이었다. 암컷 늑대랑 관계를 맺으면 정력이든 체력이든 더 잘 맞을 텐데, 누아는 왜 자꾸 저한테 손을 뻗는 건지…. 아까는 왜 그렇게 화를 낸 거고….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나지 않았다. 혹 누아가 저를 반려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가설을 지워냈다. 저를 좋아한다면 이렇게 막 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원래 사랑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이도 약해지는 법이었으니까.
모르겠다…. 이번에도 그냥 늑대의 흔한 변덕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라핀은 잡념을 지우고 눈을 감았다.
라핀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잠이나 자자 싶어 눈을 감았다. 열병도 그렇고, 노팅의 후유증에 잠이 솔솔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이 오지 않았다.
늘 저를 뒤에서 끌어안던 커다란 몸과 따듯한 체온이 없는 게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