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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정(2) (181/183)

198화. 마지막 여정(2)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을 가속할 수 있는 진석의 능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혹시 시간 가속 능력을 잃어버렸을까 봐 걱정했던 진석은 안도의 한숨의 내쉴 수 있었다.

“사령관, 다행히 시간 가속에는 문제가 없군.”

“그렇습니다. 30년이나 사용하지 않았는데 여전하시군요. 역시 공간주님은 대단하십니다.”

민물의 인공호수에 정화 능력을 가진 수상 식물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호수 수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들 잘 자라는군. 물도 깨끗해지고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민물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령관, 이번에는 옆에 있는 염수 호수에 식물들을 옮겨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진석이 가져온 수상 식물들은 모두 민물의 습지대 등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이었다. 보통 질소와 인을 흡수하는 걸로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나트륨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사령관은 일꾼들을 동원해서, 수상 식물들을 염수 호수로 이동시켜 보았다. 대부분, 물 위를 부유하는 식물들이라, 염수의 호수로 옮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뜰채로 끌어올려 물통에 담아 염수 호수로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손이 많이 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수상 정화식물들이 염수 호수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동은 쉬웠지만, 염수로 구성된 환경은 식물들에게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공간주님, 소금물이라 그런지 식물들이 견디지 못 하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역시 염수에서는 무리인가?”

민물에서는 활발하게 성장하던 수상 식물들이었지만, 염수의 호수에서는 힘을 잃고 비실거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어 버리고 말았다.

혹시 종자를 직접 염수 호수에서 발아시키면 어떨까 했지만, 역시, 조금 자라는가 싶던 수상 식물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역시, 소금기가 민물에서 살던 식물에서는 독이 되는 건가?”

인간에게는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처럼, 나트륨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무기질이다. 하지만 자연계에는 누구에게는 유용한 물질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나트륨은 수상식물들에게는 독이 되는 셈이었다.

“사령관, 아무래도 이건 생각을 잘 못 한 것 같아. 수상 정화식물들은 염수에는 살지 못하잖아. 이젠 나도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이야,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다니.”

“공간주님,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공간주님이 한창 젊었던 시절에도 성공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지 않습니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성공을 하고는 했죠. 하지만 실패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거야,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시간은 우리의 편이었지, 우리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있었어.”

진석은 사령관의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진석의 인생은 유한하지만, 이곳 공간에서 진석이 가속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했다. 이곳은 진석의 상상력처럼, 무한한 꿈의 세계였던 것이다.

진석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맞아, 사령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어. 우리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있다는 말이야.”

“공간주님,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다시 작업을 준비할까요?”

“그래, 염수 호수에 계속 수상 식물을 넣고, 씨앗도 뿌려보고,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다시 수상정화식물을 염수 호수에 적응시키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여전히 염수에서 수상식물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하고 있었지만,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며 계속 실험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소용없어, 사령관. 이번에는 실패할 거야.”

시간을 계속 가속하는 동안, 진석의 늙은 몸은 더더욱 지쳐갔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진석은 절망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였다.

“고..공간주님, 저걸 보십쇼.”

사령관이 뭔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사령관?”

사령관은 염수의 호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다른 식물들이 모두 말라 죽어가는 중에, 뭔가 녹색으로 싱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식물이 보였다.

“저게 뭐지?”

“저건 부레옥잠입니다.”

“부레옥잠? 그렇군, 맞아 부레옥잠이야. 그런데 뭔가 생긴 모양이 이상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위쪽에 열매인가요? 뭔가 빨간 열매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요.”

수중정화 식물로 유명한 부레옥잠이었다. 부레옥잠은, 특이하게 공기주머니를 이용해서 물에 뜨는 별난 식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기주머니도 아니고, 뭔가 빨간 열매 같은 것들이 달려있는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진석은 그 이상한 부레옥잠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사령관, 저걸 이쪽으로 끌어와 봐.”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사령관은 뜰채로 부레옥잠을 잡아당겼다. 생긴 모습이나 구조는 일반적인 부레옥잠과 비슷했다. 차이라면, 크기가 좀 더 크다는 것과 전에 못 보던 빨간 열매들이 맺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

진석은 빨간 열매를 따 보았다. 직접 손으로 만져보니, 열매라기보다는 얇은 막으로 된 주머니 같은 것이었다. 동그랗고 빨간 주머니 말이다. 그리고 그 막을 살짝 벌려서 까보았다. 안에는 하얀..

“이건 소금이잖아. 퉤..”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하얀 덩어리를 입에 넣어본 진석은 그것이 나트륨 덩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맛은 형편없군..”

“공간주님, 그게 소금이라는 겁니까?”

“그래, 아마도, 이 부레옥잠이 물속의 나트륨을 흡수해서 그걸 여기에 모아놓은 모양이야.”

다른 식물들이 염수의 나트륨이 체내에 들어와 손상을 입어 죽어갔다면, 이 부레옥잠은 나트륨을 한 곳으로 모아 열매처럼 배출해 버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염수에도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트륨을 분리해 낸 거군요?”

“그래, 부레옥잠이 염수의 나트륨을 일단 흡수했다가 다시 배출한 거니까. 물과 나트륨이 분리가 된 거지, 바로, 이거야. 소금물을 담수로 만들 수 있게 되었어.”

뜻밖에도 부레옥잠이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석이 처음에 원했던 해수의 담수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럼, 성공한 건가요?”

“아직은 모르겠어. 일단은, 이 부레옥잠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건 맞지만, 후대까지 이 특성이 전해지는 건지는 알 수 없으니까.”

진석은 이 돌연변이 부레옥잠을 증식시켜 보기로 했다. 부레옥잠은 줄기가 떨어져 나와 번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부레에 눈이 나오면서 자주가 형성이 된다. 일종의 영양 번식으로 자식 줄기가 떨어져 나와 물에 떨어지는 방식으로 맹그로브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영양 번식을 하는 특징을 가진 전형적인 부유 수상식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이 염수 호수의 시간을 가속하자, 부레옥잠에서 자주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본격적인 증식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자라난 자주들은 다시 다음 세대의 자주들을 만들어내면서 염수의 호수 수면은 부레옥잠들과 부레옥잠에서 핀 연보라색 꽃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공간주님, 부레옥잠이 염수에서도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히도, 돌연변이 부레옥잠이 후대에도 그 특성이 이어지는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지.”

이번에도 부레옥잠은 소금 열매를 만들어내면서, 염수 호수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일정하게 커진 소금 열매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물속으로 떨어져 버리고 있었다.

“공간주님, 물에서 나트륨을 분리하려면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소금 열매를 수확해야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부레옥잠이 나트륨 열매를 만드는 건, 소금 성분을 배출하기 위한 거니까. 저렇게 소금 열매가 커지면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버리는군. 하지만 저러면 염수를 담수화하는 효과가 없어지는 거지.”

진석은 일단 일꾼들을 동원해서 소금 열매들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가속하며, 소금 열매를 맺는 부레옥잠을 계속 증식하고 또 소금 열매를 수확하는 일을 반복했다.

염수 호수의 표면을 가득 메운 부레옥잠은 수많은 빨간색의 열매를 만들어냈고, 주기적으로 그 소금 열매를 수확해 주자, 그에 따라 염수의 맛도 점점 담백해지고 있었다.

진석은 어느 정도 소금 열매를 수확해 낸, 염수 호수의 물을 컵에 담아 마셔보았다.

“어떻습니까? 공간주님.”

“괜찮은데, 소금기가 약간 있기는 하지만, 많이 염분이 줄었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담수가 되겠어.”

진석의 말대로, 한 번 더 소금 열매를 수확하고 나자, 빨간 열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소금기가 줄면서 소금 열매도 줄어드는군요.”

“그래, 이렇게 소금 열매를 수확하다가, 완전히 열매가 사라지면 담수화가 된 거야.”

“그렇겠네요. 돌연변이 부레옥잠이 나트륨을 흡수해서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게 소금 열매니까,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건, 물속에 나트륨이 담수 수준으로 줄었다는 말이겠죠.”

“그래, 이렇게 소금 열매를 수확하는 부레옥잠을 이용하면, 해수의 담수화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진석의 말에 사령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실험이 성공해서 다행입니다.”

사령관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사령관.”

“공간주님, 저도 공간주님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진석은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것은 마치, 책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

하슬라, 수자원 연구소.

“이게 뭔가요?”

윤후영 소장은, 진석이 가져온 부레옥잠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로운 품종의 부레옥잠입니다. 염수에서도 잘 자라고, 특이하게 수중의 나트륨을 흡수해서 몸 밖으로 배출하죠, 빨간색의 막에 쌓인 소금 열매를 만들어서 말입니다.”

“소금 열매라고요?”

윤 소장은, 진석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예, 일단 한 번 수자원 연구소에서 이걸 증식해서 실험을 해보면 될 겁니다. 물을 정화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해수에 이 부레옥잠을 증식시켜서 수면 위에서 재배하는 거죠. 그러면 해수의 나트륨을 흡수해서 열매처럼 밖으로 배출을 합니다. 그 소금 열매를 꾸준히 수확해서 제거해주면, 어느 순간 열매가 맺히지 않게 됩니다.”

“음, 그러면, 담수화가 완성된 신호가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진석의 말을 의심하던 윤후영 박사도 점점 진석의 설명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소금 열매 부레옥잠을 이용한 해수의 담수와 실험이 진행되었다.

***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슬라 시의 외곽에 대규모 해수의 담수화를 위한 인공호수가 건설되었다.

인공호수는 몇 구역으로 나뉘어서 해수가 공급되었고, 해수가 공급된 이후에는 부레옥잠이 증식되어 수면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빨간 소금 열매가 열리고, 소형 드론들이 소금 열매를 수확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소금 열매가 더이상 열리지 않게 된 구역의 물들은 비로소 담수화가 완료된 것으로 그 구역의 물들은 담수 저장용 댐으로 이동한 후 다시, 남고비의 오아시스들로 배분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진석은 호수 수면에 녹색의 부레옥잠과 보랏빛 꽃들이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오아시스 도시들을 위해 진석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 셈이었다.

지하수의 고갈로 위기에 직면했던, 오아시스 도시들은 소금 열매 부레옥잠을 이용한 담수화 사업으로 다시 맑은 물을 공급받게 되었고, 도시들은 다시 물과 함께 활력을 되찾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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