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여정(1) (180/183)

197화. 마지막 여정(1)

“할아버지, 딸기를 땄어요.”

“오, 그래..딸기가 아주 크구나.”

“제가 딴 게 더 커요.”

“오, 그래, 이것도 아주 크고.”

“아냐, 내 딸기가 더 커.”

“하하, 둘 다, 크고 좋은 딸기구나.”

진석은,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번갈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을 해주었다.

진석이 사막에 오아시스 도시들을 건설한 지도, 백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남고비의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번영에 번영,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인구 천만이 넘는 거대한 메가 시티를 형성하게 되었다.

파리나, 킨샤샤의 인구보다는 조금 적고, 나고야나, 하얼빈의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는 40위권 수준의 대도심 지역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불모의 사막에 이런 대도시와 인구가 거주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고비 지역의 풍경도 많이 변해서, 이제는 농경지는 물론이고 숲과 공원, 그리고 호수들과 강까지 사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막대한 지하수 덕분이었다. 지하수를 이용해서 오아시스와 인공호수, 심지어는 인공 하천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백 년이나 계속된 지하수의 개발은 거대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지하수가 고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

아사달, 제이에스 본사 사장실.

제이에스 그룹도, 남고비 오아시스의 발전과 더불어, 본사를 아사달로 이전을 했다. 송도에 지었던 본사 건물은 이제 한국지사 사옥이 되어 버렸다.

진석도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인이 되어 버렸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은 시대라고는 해도, 이제 진석에게는 그리 많은 날이 남지 않아 있었다.

“어서 오시죠. 서경수 시장님.”

아사달의 시장인 서경수 시장이 진석을 찾아왔다. 아직도 남고비는 몽골 공화국 내의 특별자치구로 존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정자치 정부의 수반은 각 지역의 자치의원들이 모여 간접 투표 방식으로 선출하고 있었다.

보통은, 가장 큰 도시인 아사달의 시장이, 행정자치 정부의 수반을 겸하고 있었고, 지금의 서경수 시장도 행정자치 수반을 겸하고 있었다.

“이제 주민투표가 한 달 정도 남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투표 결과는 독립 쪽이 확실할 겁니다.”

“그렇겠죠. 다행히 몽골 정부에서도 큰 반발은 없습니다.”

“그렇겠죠. 몽골보다 우리 남고비의 인구가 더 크니까요.”

백년 간의 토지 무상임대 기간이 끝난 남몽골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남고비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투표를 준비 중이었다. 투표의 내용은 몽골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사실상, 독립찬성 의견이 90%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주민 대다수가 한국계라는 것도 그렇고, 이미 몽골 공화국보다 인구가 경제력이 더 커져버린 남고비가 몽골에 더이상 남을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다.

몽골 입장에서도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몽골 영토를 지켜야 한다면서, 남고비의 영토를 몽골로 반환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몽골보다 인구나 경제력이 더 커져버린 남고비의 독립을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몽골에서는 남고비가 몽골 공화국을 흡수해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어서, 독립 선언을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독립 선언이야, 큰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지하수 고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고비의 물 소비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이죠. 기본적으로 모든 오아시스 도시들은 사막지대라,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고, 물은 곳 생명이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바로미터이니까요.”

“맞습니다. 주민투표야, 사실상 결정된 것이니까. 문제는 물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겠죠.”

진석이 건설한 남고비의 오아시스들이 백주년을 맞아,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백 년 전에 이 도시를 건설할 때는 백 년 후에 몽골에 토지를 반환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그 백 년이 지난 후에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또다시 물이었다.

처음, 사막에서 암반층을 발견하면서 오아시스를 건설한 물을 얻었지만, 이제는 다시 그 지하수의 고갈에 직면한 것이다.

***

하슬라 대학, 수자원 연구소.

“어서 오시죠. 이진석 사장님.”

윤후영 박사는 해수의 담수화를 연구하는 해양과학자였다. 원래는 화학과의 교수였지만, 지하수 고갈 현상이 나타나면서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수자원 개발 연구팀이 결성되고 그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윤후영 박사의 주도로 해수의 담수와 계획이 진행되고 이 수자원 연구소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윤 박사님, 담수와 사업은 어떻습니까?”

“일단은 동해 쪽에서 해수를 파이프로 끌어오는 것까지는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해수로 담수를 만들 수 있느냐겠군요?”

“예,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기술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 쉽지는 않겠죠.”

“예, 기존의 전기분해 방식을 이용해서는 대규모 담수화 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자체 판단으로 신기술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전기분해 방식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을 말입니까?”

“식물을 이용해 보는 겁니다.”

“식물요?”

“예, 오염정화 식물로 알려진 수중 식물들이 있는데, 흙탕물이나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처럼, 염수를 담수로 만들 수 없을까, 연구 중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기는 한데. 아무튼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예, 당장은 성과를 보여드리지 못 하지만, 조만간 성과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진석은 윤 박사가 연구 중이라는 담수화 사업장을 둘러보았다. 바닷물에서 여러 가지 식물들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꽃이나, 부레옥잠 같은 수중 식물들을 이용해서 해수를 담수로 정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장이었다.

하지만, 담수화는커녕, 해수의 염분 때문에 식물이 제대로 생존하지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진석은 담수화 사업장 내의 수중 식물들을 살펴보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해수의 담수화 사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중정화 식물의 종자를 좀 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그건 뭐 하시려고요?”

“개인적으로 연구를 좀 해볼 생각입니다. 저도, 농작물을 개량해본 경험이 많으니까,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도 예전에 이진석 사장님이 여러 작물을 개량해서 지금의 남고비의 농작물들을 만들어내신 건 알고 있지만, 일선에서 은퇴하신 지도, 30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윤후영 박사의 말대로, 진석이 농산물의 신품종 개발을 마지막으로 했던 것도 무려 30년 전의 일이었다.

오아시스의 도시들이 안정적인 발전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품종의 개발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인생의 막바지에서 마지막으로 공간에서 뭔가를 해봐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온 것이다.

“뭐라도 해봐야겠죠. 지하수 고갈 문제를 남겨놓고는 저도 걱정이 돼서 눈을 못 감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윤후영 박사는 마지 못해, 수중정화 식물들의 종자를 진석에게 건네주었다.

진석은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아사달의 저온 저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30년이나 열지 않았던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주님, 어서 오시죠.”

“후후, 30년 만이군.”

“그런가요? 이곳과 현실의 세계의 시간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공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공간이 줄어들고 있겠지? 지금은 더 작아진 것 같군.”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메가 시티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진석의 공간은 어느 순간, 성장의 힘을 잃어버리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진수가 나이를 먹으면서, 특히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삶의 활력과 상상력을 잃어버리면서 생긴 일이었다.

어느 순간 죽음을 자각하게 되고, 삶의 유한성을 깨닫게 된 진석은 상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약간의 우울과 무기력증도 생기고 말이다.

그렇게 진석은 노인이 되었고, 진석의 상상력에 의해 유지되고 성장하던 공간도 힘과 활력을 잃고 쇠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장만을 하며 계속 커지던 공간이 역으로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진석은 공간에 오는 것을 꺼리게 된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인생처럼, 끝을 향해 가는 공간을 마주하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것도 남아 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 오아시스 주변은 그대로군.”

“예, 공간주님, 공간이 계속 축소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남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공간은 한창 팽창하던 시기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대륙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멀리 바다가 보이는 섬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아직 시간은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30년 만에 뭘 가지고 오신 겁니까?”

“아, 이건, 수중정화 식물들이야, 대표적으로는 부레옥잠이 있지.”

“음, 물속에서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천연 정수기 같은 식물들이군요. 그걸로는 뭘 하시려고 말입니까?”

“보통은, 물속에서 살면서 인이나 질소를 흡수해서 물을 정화하는 식물들인데, 이번에는 바닷물에서 나트륨을 흡수하는 그런 식물들을 개발해 볼 생각이야.”

“나트륨을요?”

“그래,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그동안 지하수를 이용해서 물 부족 없이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지, 하지만 백 년이나 사용한 지하수가 고갈의 위기를 맞고 있어. 이제는 지하수로는 한계에 부딪혔고, 할 수 없이 바닷물을 이용해서 담수를 만들어야 해.”

“담수를 만드는 방법은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물론, 전기를 이용해서 나트륨을 분해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담수화한 물로는 지하수 수준의 깨끗한 담수를 얻기는 어렵다는 거지, 거기에 필요한 전력도 상당하고 말이야. 그래서 아무래도 자연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깨끗한 물을 얻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연구방법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이곳으로 온 거야.”

“알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래,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공간주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죠.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이제 시간이 얼마 없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말이야.”

진석은 조금 우울해졌던 기분을 다잡으며 수중정화 식물들을 키울 인공 늪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노인이 된 진석은 의자에 앉아서, 사령관이 일꾼들을 지휘하며 작업을 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몸이 늙어버리고 나자, 상상력과 기억력에도 한계가 왔고 결국, 진석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계도 그 끝을 향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세계가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세계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를 가진 인간이 가진 숙명처럼, 그의 상상력에도 유한한 시간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공간주님, 인공 습지를 만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염수의 호수에서 염수를 끌어올 파이프 관도요.”

“그래, 일단은, 담수 호수에서 정화 식물들을 키워보고, 그중에서 잘 자라는 녀석들을 염수의 호수에도 넣어서 적응할 수 있는지 보자고.”

대다수의 정화 식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담수의 습지대나 연못에서 자라는 식물들이었다. 주로, 일시적으로 물이 불어서, 다양한 영양물질이 들어온 수질을 개선해 주는 능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진석은 의자에서 일어나 담수 호수에 심어놓은 정화 식물들의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연꽃, 부레옥잠, 부평초, 수생히아신스, 티알리아, 물상추 같은 여러 수생 정화 식물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호수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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