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촉촉한 아몬드(1) (175/183)

192화. 촉촉한 아몬드(1)

북카페 오아시스, 하슬라 1호점.

“아몬드 나무는 기적의 나무죠.”

“기적의 나무요?”

“성서에 나오는 살구나무는 사실 아몬드 트리입니다. 이스라엘 말로는 샤케트, 라고도 하는데 샤케트는 동사로는 지켜보다, 라는 의미도 있죠.”

카페 밖에서는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하슬라에 북카페 오아시스가 연이어 개점하면서 북카페들을 구별하기 위해, 각 점포의 이름을 교체하고 있었다. 전유리 점장이 있는 이곳 본점은 상징성을 고려해서 하슬라 1호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진석에게 아몬드 나무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남자는 50대 후반 정도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번에 하슬라 대학으로 오게 된 역사학 교수라고 했다.

“역사학이라면, 성서도 잘 알고 계시는 걸 보니, 서양사 쪽인가요? 고대 중근동 역사라던가?”

“아닙니다. 한국사 전공이죠.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가 제 주전공입니다.”

“그래요, 고래시대라?”

“역사학 자체도 마이너한 학문이지만, 그중에서도 고려사는 더 마이너하죠, 가장 인기가 있는 건 아무래도 조선사입니다. 연구할 것도 많고, 자료도 보존이 잘 돼 있고, 사람들도 조선사를 가장 좋아하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이주한 교수님은 고대 히브리 역사에 대해서는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이주한 교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사나 오래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죠.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리스 신화나 플루타크 영웅전 같은 것도 좋아하고,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읽었죠. 그중에서도 역사나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었죠. 성경도 재밌는 이야기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고요.”

“그래요? 그러니까, 교수님은 성서에 자주 언급되는 살구나무가 사실은 아몬드 나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론의 지팡이를 들 수 있죠.”

“아론의 지팡이요?”

“아론이라면, 모세의 형 말이죠?”

어느새, 전유리가 다가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오, 아름다운 점장님도 그 이야기를 아시는군요.”

“후후, 이래 봬도, 책이라면 저도 많이 읽었다고요.”

“모세요? 모세는 그 이집트의 왕자인가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아닌가요? 성서의 선지자 말입니다.”

“예, 바로 그 모세죠. 모세에게는 아론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이 아론은 모세의 입, 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죠.”

“모세의 입요?”

“말하자면, 모세가 지도자였고, 친형인 아론이 대변인 같은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모세는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종교적인 선지자라, 약간 신비주의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아무튼, 아론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을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들 앞에서 기적을 보였다는 거죠.”

“어떤 기적 말입니까?”

“아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서 땅에 꽂자, 지팡이에서 잎이 나오고, 꽃이 피면서 살구나무가 되어 자라기 시작했다는 거죠. 열매도 맺히고요. 그리하여, 그 기적을 보고 모세가 선지자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죠.”

“음, 그렇군요. 그런데, 그 아론의 지팡이의 나무가, 살구나무가 아니라 아몬드라는 건가요?”

“번역의 문제인데, 처음에 한국에 성경이 소개되었을 때는 아몬드라는 건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겁니다. 지금이야 견과류 열풍이 불어서, 아몬드나 브라질너트, 캐슈넛 같은 외국 견과류가 많지만, 그때는 아몬드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거죠.”

“그래서 익숙한 살구나무로 번역이 된 거군요.”

“예, 그리고, 실제로 아몬드 나무나 열매가 살구나무와 비슷합니다. 복숭아하고도 비슷하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감복숭아라고도 번역하기도 하고요.”

“오, 그렇군요.”

“예, 호두열매도 녹색으로 복숭아나 살구와도 비슷하죠. 익기 전에는요, 그러다가, 겉껍질이 말라서 떨어져 나가면, 안에 단단한 속껍질이 나오는데, 그게 우리가 익숙하게 보게 되는 호두 껍질이죠. 그걸 깨면, 안에 호두가 있는 거고요.”

전유리는 흥미롭다는 듯이 이주한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교수님 말대로, 견과류는 어느 정도 열매가 비슷한 특징이 있네요. 살구나 복숭아와 비슷한 녹색 열매가 맺혔다가 그 안에 속껍질이 나오는 식으로 말이죠.”

“예, 아무튼, 제 이야기의 결론은, 성경도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겁니다. 시대나, 문화에 따라 적당한 해석을 한 책이라는 거죠.”

“하지만, 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신앙은 소중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렇기는 하죠. 그나저나, 아사달과 남고비의 오아시스들은 농업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왜 아몬드 나무는 보이지 않는 거죠?”

“아몬드라?”

“아몬드는 성서에도 언급될 정도로 중동 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올리브처럼 말입니다. 사막에서도 비교적 잘 자랄 것 같은데, 이곳에 와서 물어보니 아몬드 나무가 안 보이는 일은 아쉬운 일이네요.”

“음, 그렇기는 하네요. 기적의 나무라는 아몬드가 없다니 말입니다. 뭐, 조만간, 아몬드도 재배해 보도록 하죠.”

“어머, 정말이에요. 아몬드만 하지 말고, 호두나 다른 견과류도 재배하면 좋잖아요. 나는 고소한 견과류를 좋아하는데. 카페의 손님들에게 견과류 메뉴를 만들면 좋을 테고요.”

“하하, 전유리 씨도 견과류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네요. 아무튼, 기적의 나무라는 아몬드를 비롯해서 다른 견과류들도 한 번 재배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아사달,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

“아몬드를 말입니까?”

한유식 부장은 이번에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모양이었다.

“아몬드라면, 사막 기후에서 재배가 가능할까요?”

“중동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 작물이니까요. 건조한 사막에서도 비교적 잘 자랄 겁니다.”

“그래요? 그리고 아몬드 외에도 다른 견과류 종자들도 필요합니다.”

“견과류라고요?”

한유식 부장 아몬드 외에도 캐슈넛과 브라질너트, 호두 정도를 추천해 주었다.

“이 정도면, 대표적인 견과류라고 할 수 있죠.”

한유식은 아몬드와 캐슈넛, 브라질너트, 호두의 종자들을 진석에게 건네주었다. 진석도 가끔 먹어본 적이 있는 견과류들이었다.

“어디서 한 두 번은 먹어본 것들이군요. 실제로 나무가 자라는 건 본적이 없는데 한 번 사막에서도 재배가 가능할지 심어봐야겠습니다.”

“아몬드는 건조 기후에서도 잘 자랄 것 같지만, 다른 종류들은 사막에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캐슈넛이나 브라질너트는 아마존 밀림에서 자라는 것들이고, 호두나무도 온대 기후에서 자라는 녀석이라.”

“그래요? 뭐, 한 번 사막에 적응을 시켜보면 알겠죠.”

진석은 연구소를 나와, 아사달의 저온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주님, 오늘은 뭘 가지고 오셨나요?”

공간에 들어오자,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이번에는 아몬드를 비롯해서 견과류들이야.”

“견과류요? 다람쥐들이 먹는 거 아닌가요?”

“그렇기도 하지, 다람쥐들은 견과류 열매를 먹기도 하지만 땅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지, 겨울에 식량이 없을 때 먹는 용도로 보관하는 건데, 숨겨 놓은 견과류를 다 찾아 먹지는 못해. 그래서 자연스럽게 종자가 퍼져나가는 효과가 있는 거야.”

“자연의 신비로군요. 탐욕스럽게 열매를 숨겨 놓는 다람쥐의 이기적인 행동이 전체 숲의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니까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어쩌면 인간도 신의 관점에서는 탐욕스럽게 먹이를 숨기는 다람쥐 같은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행동이 뭔가 신과 자연의 목적에 도움을 주는 말이야.”

“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견과류라면, 땅콩이나 그런 건가요?”

“땅콩은 가져오지 않았어. 네 가지를 가져왔는데, 아몬드와, 캐슈넛, 브라질너트 그리고 호두야.”

“그러면, 견과류는 어떻게 심는 건가요?”

“견과류가 그 자체로 종자니까 씨앗을 심으면 될 테고, 견과류들은 대체로 크게 자라는 나무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종류에 따라서, 10미터에서 20미터까지도 자라는 나무들이니까, 꽤 큰 편이지.”

“열매가 작아서 나무도 작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군요.”

“그런 셈이지, 일단은 아몬드 나무부터 심어보자고, 어떤 교수에게 들었는데, 아몬드는 중동 지역에서 잘 자라던 나무라니까, 사막 기후에서도 잘 자랄거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일단, 그럼, 오아시스의 밭에 심어보기로 하죠.”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씨앗을 심기 좋게 흙을 갈아엎어서 적당한 밭을 만들고는 일꾼들이 아몬드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씨앗을 땅에 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싹이 트고, 줄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는 점점 자라기 시작해서, 복숭아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얀 꽃이 피면서 열매도 맺기 시작했는데, 초록색의 열매는 납작한 복숭아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열매의 겉부분이 말라 벌어지면서 안쪽의 아몬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자라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원산지가 중동 지역이라가 그런가? 꽤 잘 자라는 느낌인데.”

아몬드를 심은 곳은 아사달이나 하백과 비슷한 조건의 밭이었다. 기온도 높고, 사막의 건조한 토양이었는데도 아몬드는 제법 잘 자라고 있었다.

“음, 이건, 합격인 것 같고. 캐슈넛을 심어볼까?”

“알겠습니다. 비슷한 밭은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몬드가 순조롭게 자라나자, 다음으로 캐슈넛을 심어보았다. 역시 비슷한 조건의 밭에 캐슈넛의 열매를 땅속에 심어 넣었다.

캐슈넛을 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역시 싹이 나고, 줄기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나무는 생각보다 크게 자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캐슈넛의 씨앗을 받아올 때 듣기로는 나무가 10미터 이상으로 크게 자란다는 것 같았는데,

건조한 토양과 높은 온도 때문인지, 캐슈넛 나무는 3미터도 채 자라지 않는 느낌이었다.

“캐슈넛은 사막 기후에 잘 안 맞는 모양입니다.”

원래 캐슈넛은 브라질의 밀림지대가 원산지다. 견과류라고 같이 분류되기는 하지만, 열대 밀림에서 자라는 캐슈넛이나, 브라질너트와 중동의 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인 아몬드, 그리고 온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호두는 사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견과류라는 특징이 있어서 나무는 약간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진석은 비교적 사막 기후에서 잘 자라는 아몬드 나무를 이용해서 혼종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아몬드 나무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캐슈넛의 가지를 잘라, 접붙이기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럭저럭 가지는 아몬드 나무에 붙어서 자라는 것 같았지만, 캐슈넛이 열리지는 않았다.

“공간주님, 이번에는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접붙이기를 한다고 쉽게 연결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까, 천천히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자고.”

진석은 서두르지 않고, 아몬드 나무를 베이스로 호두와, 캐슈넛, 브라질너트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혼종 실험을 해보았다. 대부분은 아몬드 나무에 접붙이기를 한 가지들은 말라서 죽거나, 살아 있어도 별다른 열매가 맺히거나 꽃이 피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석과 사령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루한 실험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계속되는 혼종 실험에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진석도 사령관도 지쳐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공간주님, 저걸 보십쇼.”

“어, 뭐야?”

사령관은, 아몬드 나무들 사이에서 혼자 이상한 열매가 맺혀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보통의 아몬드보다 훨씬 큰 타원형의 열매들이 맺혀 있고, 그 아래로 마치 우산의 손잡이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작은 열매들이 또 열려 있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건 열매가 아주 이상한데요.”

“사령관 이건 캐슈넛이야.”

“캐슈넛요?”

“그래, 위쪽의 열매는 가과라는 거지, 진짜 열매가 아니라 가짜 열매라는 의미야.”

“가짜 열매요?”

“그래, 캐슈넛은 먼저 가과가 열리고, 그 후에 진짜 열매가 아래쪽에 이렇게 열리거든. 요 가과 아래에 붙은 녀석이 진짜 캐슈넛이지.”

“그럼, 혼종 실험이 성공한 건가요?”

“그래, 일단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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