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슬로우 시티(3)
“한 마디로,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는 겁니다.”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요?”
이성우 시장은 진석의 말을 듣고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죠,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속도에 집착하는 건, 효율성 때문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은 수익의 증대를 가져오죠. 속도가 곧 돈인 겁니다.”
“하지만, 효율성이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꼭 돈이 아니라도, 일처리를 최대한 신속하게 하는 건 사람들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고요. 특히 시청에서 공무원들이 하는 일들 같은 경우에는 더 그렇죠.”
“물론, 효율성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되, 속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군요.”
“일부러 일처리를 느리게 하겠다는 건가요?”
“그것도 역시 아닙니다.”
진석이 생각하는 슬로우 시티는, 빠른 속도와 효율성보다는 느리고 여유 있는 생활과 삶의 질을 중심에 넣는다는 개념이었다. 기존의 도시들이 속도와 효율성, 수익성의 극대화 같은 자본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했다면, 하슬라의 미래가 될, 슬로우 시티에서는 삶의 질이 가장 중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슬라를 시작으로 다른 오아시스 도시들에도 적용될 개념이었다.
“이성우 시장님, 슬로우 시티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삶의 질이죠.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 겁니다.”
“뭐, 좋은 이야기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그게 실현되느냐 하는 거죠.”
“결국, 도시의 설계와 행정에서 할 수 있는 문제는 공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도시라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죠. 저는 도서관이나 공원, 그리고 녹지, 꽃밭이나, 잔디밭 같은 수익성과는 무관한 시설과 공간의 비율을 높일 것을 제안하는 겁니다.”
이성우 시장은 좀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공장이나, 사무실, 연구소 같은 기업의 효율성을 가져오는 건물이나 기관을 줄이고, 문화나 휴식의 공간을 늘리겠다는 거군요?”
“크게 보면 그런 개념이죠. 결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인위적으로 느리게, 여유롭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죠.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건, 도시라는 공간에 무엇을 채울까? 하는 정도입니다,”
“슬로우 시티에는 삶의 질을 개선할 공간이나, 아니면 여백으로 채우자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하슬라에는 대학이나 도서관 같은 교육과 문화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죠. 앞으로도 공원이나, 공연장, 스포츠 경기장 같은 것들을 더 추가할 생각입니다. 도시의 목적과 계획 단계에서부터 기존의 도시들과는 차별화되는 슬로우 시티를 추구하는 거죠.”
남고비의 농업 도시들은 아직까지는 농업의 생산성에 그 도시들의 역량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슬라를 시작으로 생산 못지않게 주민들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도시로 변신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도시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이주한 사람들이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지속적으로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어야 이 도시들이 유지가 되고 발전을 하는 것이다.
마치, 사막에 심어 놓은 방풍목들이 이 도시들의 기반이 되고, 사막으로부터 오아시스를 지켜주는 것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시장님에게 건의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건의요? 뭐, 제가 허가를 해야 하는 일인가요?”
“예, 행정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남고비의 모든 지역에 시에스타를 적용하는 겁니다.”
“시에스타요? 시에스타라면, 스페인 같은 곳에서 실행하는 오후에 낮잠을 자는 시간을 말하는 건가요?”
“예, 바로 그겁니다.”
스페인이나, 남미 같은 국가들에는 시에스타라는 것이 있다, 여름철에 온도가 높아지는 점심시간 전후로 낮잠을 잘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 시간에는 관공서도 쉬게 되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주로 낮시간에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념인데, 사막 지대로 고온의 건조 기후인 남고비 지역에도 이런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저도 사실, 나이가 먹은 건지, 오후에는 좀 힘들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하하, 시장님이 말입니까?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시에스타는 괜찮은 것 같네요. 이곳의 기후는 좀 혹독한 부분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
북카페 오아시스, 하슬라점.
“시에스타요?”
“예, 아직, 행정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제, 조만간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시에스타 제도가 적용될 겁니다.”
“시에스타라면, 낮잠 말인가요?”
“맞아요, 정오 무렵부터 날씨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니까요. 12부터 2시까지는 모든 일과가 중지되는 거죠.”
“카페도 말인가요?”
전유리는 카페 운영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카페도, 원칙적으로 휴점을 해야 할 겁니다.”
“음, 그렇군요. 뭐, 나쁘지 않네요. 저도 사실, 점심 먹고 좀 졸릴 때가 많거든요.”
“영업은 하지 않겠지만, 대신 카페는 개방을 해서, 낮잠을 자고 싶은 사람들에게 잠을 잘 장소를 제공해야 할 것 같아요.”
“시에스타 기간에는 수면 카페가 되는 건가요?”
“하하, 그런 셈이죠. 그래서 말인데, 카페 구석 쪽에 해먹을 설치하면 어떨까요? 밖에 테라스 쪽에도 몇 개 설치하고요.”
“해먹요? 그물로 된 침대 말인가요?”
“맞아요. 큰 침대를 설치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해먹 같은 건, 그렇게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니까, 몇 개 설치해도 될 겁니다.”
도시가 슬로우 시티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과 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삶의 여유를 되찾는 일일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식이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낮잠은 밤에 자는 잠과는 또 다른 의미의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좋다고 한다.
시에스타가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밤의 문화가 발달하기도 하는데, 낮의 기온이 높은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기후를 생각하면, 낮에는 좀 잠을 자고, 밤시간에 문화나 여가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야간에 공연이나 행사 같은 것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도, 낮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에스타는 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전체적으로 영업시간은 좀 줄어드는 건가요?”
“음, 그게 좀 고민인데, 제 생각에는 야간에 영업시간을 좀 늘려도 되지 않을까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더 활동을 하라는 거군요?”
“예, 아무래도, 낮에는 기온이 높은 지역이니까, 낮에는 쉬고 밤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거죠. 스페인 같은 곳은 밤에 활동을 늦게까지 하잖아요. 낮에는 잠을 자고 말이죠.”
“직원들이 크게 불만이 없다면, 밤에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대신, 시에스타 시간에 쉬고, 아침에도 좀 출근을 늦춰도 될 것 같고요.”
“예, 그런 식이죠. 약간은 게으르게 사는 거죠.”
“아침형보다는 저녁형 인간이라 되라는 거겠죠?”
“하하, 그렇겠군요.”
그렇게 하슬라의 북카페들에는 해먹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해먹은 그렇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는 않았고, 구석에 하나씩 설치된 해먹은 인테리어인 것처럼 제법 잘 어울렸다. 그리고 해먹이 놀이터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고양이들도 해먹에 올라가서 잠을 자기도 했다.
***
몇 달 후, 하슬라, 북카페 하슬라점.
하슬라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 시에스타가 선포되고, 점심시간 무렵에는 도시가 고요한 잠에 빠져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진석은 낮잠에 빠져든 도시 여기저기를 혼자서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점이나 공공기관, 기업들의 사무실들은 일시적으로 폐쇄가 되고 도시 여기저기에 설치된 휴식 장소에서 사람들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카페도 마찬가지여서, 소파나 해먹 위에 잠이 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시에스타 시간은 점심시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은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카페나 공공 수면실을 이용해서 잠을 자기도 한다. 카페에는 테라스 구석에 해먹이 설치되어 있고 잠을 자기에 괜찮은 푹신한 소파가 설치된 곳들도 많이 있었다.
그 외에 공공 수면실이라고 불리는 수면 전용 공간이 도시 여기저기에 설치되었는데, 1인실의 작은 침실로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진석이 북카페 오아시스로 들어가자, 시에스타 시간의 카페는 고요하게 고양이들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소에 낮잠을 많이 자는 고양이들이라 몇몇은 사람들을 따라 잠에 빠져들어 있기도 했지만, 호기심 많은 녀석들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카페 안을 맘대로 휘젖고 다니고 있었다.
“이 녀석들, 아주 카페를 맘 편하게 돌아다니네.”
하긴 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모두 잠든 이 시간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석도, 여기저기 잠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잠이 든 건 아니고, 카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에스타 시간에는 직원들도 쉬기 때문에 음료나 간식거리를 주문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자판기가 있어서 간단한 음료 정도는 자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석도 구석의 비어있는 해먹에 몸을 뉘어보았다. 해먹에 눕자, 어느새 잠이 사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잠이 든 진석을 가볍게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사장님, 사장님, 이진석 사장님.”
“어? 어..으음...”
진석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몸이 쭉 펴지며 근육이 쭉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잠을 잘 잤는지 몸이 아주 개운했다.
“피곤하셨나 봐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유리가 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유리 씨였군요? 하슬라의 시에스타가 잘 되고 있는지 둘러보다가, 잠깐 해먹에 누웠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어요.”
“예, 아주 곤하게 주무시던데요. 그래서 2시에 깨워야 하지만, 30분 더 자게 놔뒀죠.”
전유리의 말에 진석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정말이네요. 이제는 일어나야겠군요.”
시에스타가 막 끝난 카페는 커피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카페인일 테니 말이다.
“이 시간에는 커피를 많이 마시네요.”
“예, 다들 잠에서 깨야 하니까요.”
진석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자 카페인이 멍해졌던 뇌를 다시 깨워주는 기분이었다.
“전유리 점장님은 시에스타가 잘 시행되는 것 같나요?”
“예, 이제 한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괜찮은 것 같아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점심 먹고 나면 바로 졸리기도 하고요. 또, 낮잠을 자고 오후를 시작하니까, 하루가 두 번 시작되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요.”
전유리의 말로는, 잠을 자고 나면 피로도 풀리고, 아침의 활력을 두 번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밤에 영업시간을 더 늘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밤이 되면 활동하기도 좋아지고 사람들도 더 활력이 생기거든요.”
시에스타가 생기면서 야간에 하는 공연도 활발해지고 하슬라를 중심으로 밴드 같은 것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에스타로 사람들의 밤 활동이 늘어나면서, 취미로 음악을 연주하는 팀들이 밤에 공원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슬라시에서도 그런 문화행사를 장려하는 분위기라, 하슬라에 산재된 여러 개의 공원에는 길거리 공연이 가능하도록 전기나 음향 시설, 무대 같은 장치들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렇게 농업에 전념하던 오아시스 도시들도, 차츰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슬로우 시티로 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