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로우 시티(1) (172/183)

189화. 슬로우 시티(1)

남부의 농업 도시, 물의 도시 하백은 풍부한 수량을 바탕으로 농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도시 아사달과 하백의 동쪽으로 새로운 오아이스 도시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진석은 이 세 번째 오아시스 도시의 이름을 하슬라, 라고 붙였다. 원래 하슬라는 고대에 지금의 강원도의 강릉시의 옛 지명이기도 했다.

아사달이 최초의 도시로 도시 계획과는 무관하게 급조된 도시였고, 하백이 거대한 하백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물의 도시였다면, 하슬라는 처음부터 진석의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육과 문화의 도시였다.

***

아사달, 시청, 이성우 시장의 집무실.

“하슬라에 대학을요?”

“예, 이제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인구도 50만이 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서, 대학도 필요해졌죠.”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에 꾸준히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도시의 규모도 상당히 커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대학생들은 전무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주민들이 젊은 편이라 아직 대학생 정도의 나이의 자녀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주가 꾸준히 늘면서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대학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도 점점 생겨나고 있었다.

“꼭, 오아이스의 주민들뿐 아니라, 한국이나 몽골의 학생들도 받을 수 있는 수준 있는 국제적인 대학을 만들 생각입니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미, 몽골 정부와 협의해서 대학설립 허가는 받아둔 상태입니다. 대학으로 쓸 건물들의 설계 작업도 들어갔고요.”

“하슬라라는 곳은 동쪽 외곽에 있는 오아시스를 말하는 건가요?”

“예, 제가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곳입니다.”

진석은 전부터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할 도시의 필요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달이나 하백 같은 도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 도시들이었다.

하지만, 도시든 국가든, 일정 수준의 성장 후에 스스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 오게 된다. 자신의 한계치에 도달한 도시와 국가에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석은 빠르게 성장하는 오아이스 도시들이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든, 도시든, 국가든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무한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체력 같은 걸로 빠르게 발전을 이루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은 멈추고 발전은 후퇴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아사달과 하백 같은 도시들도 어느 순간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소모하게 될 것이고,

그런 시기가 왔을 때,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줄,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할 논리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진석의 신념이었다.

“대학이야 만들 수 있겠지만, 거기에 건물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교육을 담당할 교수진도 있어야 할 거고, 학생들도 필요하고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죠. 일단, 교수님이 먼저 있어야겠죠. 그렇지 않아도 한국 쪽에 하슬라 대학에서 강의할 교수와 강사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그래요? 이곳까지 오려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교수들이야 굳이 여기 사막의 오아시스까지 오려고 하지 않겠죠. 하지만, 조금만 눈을 낮추면 교수 자리를 원하는 강사진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사들 중에는 하슬라까지 오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뭐, 일단 계획의 취지는 좋은 것 같습니다. 분명 남고비에도 대학이 있으면 좋을 테니까요.”

그리고 얼마 후, 본격적인 하슬라 개발 계획이 시작되었다. 일단 도시 중심에 하슬라 대학을 먼저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직, 교수진도 학생도 없는 대학이었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중에 건물을 증축할 것까지 고려해서 넓은 부지를 선정했고, 일단은 소규모 강의실 몇 개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차 대학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건물들도 늘려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도서관과 병원, 그리고 북카페들도 차례차례 하슬라에 들어서기 시작하며, 작은 오아시스에 불과했던 하슬라도 점점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

북카페 오아시스, 하슬라점.

하슬라에도 북카페 오아시스가 분점을 열었다. 아직, 북카페가 필요할 정도로 인구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진석은 교육도시라는 특성에 걸맞게 이곳에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편하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만들어 두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인구가 증가한 후에 자연스럽게 오픈했던 북카페 오아시스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건설단계부터 먼저 카페를 오픈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페에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학교 건물을 짓고 있는 건설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다.

북카페 하슬라점은, 교육의 도시를 표방한 하슬라의 북카페답게, 특히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사달이나 하백의 북카페와 비교해보아도, 압도적으로 장서의 양이 많았고, 보통 한쪽에 책장과 책을 읽을 코너를 마련해 놓은 다른 북카페와 달리,

책장을 카페 여기저기에 배치해서 마치 책장들 사이에 테이블이 하나씩 들어가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젊은 학생들이나,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고양이들도 많이 데려왔다. 새로 데려온 고양이들이 새끼들이 많아서 아직 울타리 안쪽에서 모여서 키우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들이 많네요?”

“예, 카페가 막 생겨서 고양이들도 새끼 고양이들이 많아요. 이 녀석들이 다 자랄 때쯤에는 이 도시도 성장해서 대학생들도 많아지겠죠?”

전유리는 30대 초반 정도의 아담한 체격의 여자였다. 키는 좀 작은 느낌도 있었지만, 소위 말하는 비율이 좋은 탓인지 작다, 라는 느낌보다는 아담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유리 씨는 책 전문가라면서요?”

“예, 서울에 있을 때, 도서관 사서였죠.”

“하하, 그래서인지 이곳 카페가 도서관 분위기가 있네요.”

이곳 점장을 맡고 있는 전유리는 서울에서 대학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다가, 하슬라에 새로운 대학도시가 건설되고 거기에 책을 많이 관리해야 하는 북카페가 생긴다는 말에 지원을 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하던 일과도 비슷한 일이겠네요. 항상 책에 둘러싸여서 말이죠.”

“예, 사실은, 그래서 지원을 한 거예요. 한편으로는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게 두렵기도 했거든요. 그러던 참에, 북카페 점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거죠. 그리고 그 카페는 아주 책이 많아서 사서 경력자는 우대한다는 내용도 있었고요.”

“그래요? 그런 공고 내용도 있었군요.”

“어머, 사장님은 그걸 모르셨어요? 책이 많은 카페를 만들라고 직접 지시하신 거라고 들었는데.”

“하하, 그런 지시를 한 건 맞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제가 다 알지는 못 하죠. 아무튼 이렇게 책이 많은 카페를 만들라고 한 건 바로 저였어요.”

“어떠세요? 처음에 생각하셨던 것과 비슷한가요?”

“아뇨, 전혀 달라요.”

“전혀요?”

전유리는 살짝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하긴, 사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가 지시한 것과 전혀 다르게 되었다고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기는 한 상황이었다.

“예, 하지만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더 좋은 것 같아요.”

“휴우, 다행이네요. 이진석 사장님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다는 말이죠?”

“맞아요. 제가 대충 상상을 해서 그런 건지, 나는 그저 한쪽에 다른 북카페들처럼 책들이 쌓여 있을 줄 알았어요. 물론, 책은 훨씬 더 많고, 책장도 클 거라고는 생각했죠.”

전유리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인테리어와 책을 배치했다는 북카페 하슬라점은, 비교적 작은 책장들이 테이블들 사이에 잘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책을 간단하게 찾아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책을 진열한 공간과 책을 읽는 공간이 분리가 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네요. 그래서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서가에서 중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죠?”

전유리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사실 책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어렸을 때도 우리집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책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을 빌리러 아이들이 우리집에 오기도 했었어요.”

“그래요? 와, 그러면, 일종의 도서관이었던 거군요?”

“그런 셈이죠. 저도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아버지도 책을 좋아하셨죠. 물론, 어머니는 책 읽는 걸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어머니는 굉장히 활동적인 분이셨거든요.”

“유리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을 다 닮은 것 같네요.”

“후후, 맞아요. 책도 좋아하지만 외향적인 성격이거든요.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요. 어떤 의미에서 카페와 독서는 비슷한 일인 것 같기도 해요.”

“카페에서 일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게 비슷하다고요?”

“예, 여기서 이렇게 앉아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전에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음,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그럼 유리 씨에게는 이 북카페가 적성에 잘 맞겠군요?”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잘은 모르겠어요. 서울에서도 처음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아주 좋았거든요. 책들이 많은 서가에서 책냄새가 나는 그런 일터여서 정말 좋아했어요.”

“책에서 냄새가 나요?”

“예, 그런 거 느껴보지 못 하셨어요. 뭔가, 은은한 커피향처럼, 오래된 책에서는 그런 냄새가 난다고요. 커피와 정말 비슷해요.”

“하하, 아무튼, 카페 인테리어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손님들 반응은 어때요?”

“다들, 이상하다고 하죠.”

“정말요? 멋지다고 하는 게 아니라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학생들이랄지, 교수님이나, 아무튼, 책을 느긋하게 읽을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그보다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러 온 사람들이죠. 시원한 음료와 피곤함을 지워줄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렇기는 하겠네요. 하지만, 이제 공사도 마무리가 되고 나면, 학생들도 늘어나고, 책을 읽을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참, 정유리 씨는 그러면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했나요?”

“도서관학요? 문헌정보학과니까, 아마 그 비슷한 거겠죠.”

“아, 그걸 문헌정보학과라고 하는군요. 아무튼, 도서관과 관련된 학과 출신인 거죠?”

“맞아요. 그런데 왜요?”

“사실은, 하슬라 대학을 설립해 놓고 여기저기서 교수와 강사들을 데려오고 있어요. 최대한 노력은 하는데, 아무래도 교수들을 구하기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문헌정보학과가 하슬라 대학에 생기면, 강의를 해보는 거 어때요?”

“대학에서요? 강의를요?”

전유리는 황당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예,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하슬라도 그렇고 오아시스 도시들에서는 모든 게 부족한 편이거든요. 특히 인력이 부족하죠. 그래서 경험이나 기술이 약간 부족해도 자기가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너무 뜻밖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 카페 점주 일을 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만두는 건 너무 책임감이 없는 일이잖아요?”

“카페 점주는 계속해도 됩니다. 오아시스 도시들에서는 겸업이나 겸직에도 아주 관대한 편이거든요. 공무원과 식당 주인을 같이 할 수도 있고, 자기가 원하면 여러 가지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오아시스 도시들에서는 사람이 아주 귀하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의 경험이나 재능도 아주 귀하게 여기죠.”

“정말, 제가 대학교 교수, 아니 강사 정도겠지만, 강의도 하고 카페 점주도 할 수 있다는 말인 거죠?”

“그럼요. 그게 바로 오아시스 도시들의 좋은 점이죠. 사람이 귀하게 대접을 받고, 원하는 기회를 최대한 누릴 수 있다는 거 말입니다.”

전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그것도 재밌을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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