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름진 콩(1) (169/183)

186화. 기름진 콩(1)

아사달 시청, 이성우 시장의 집무실.

“콩이라고요?”

“예, 콩이라면,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죠.”

“그래서, 콩으로 바이오 디젤을 만들어보자 이건가요?”

“예, 아사달도 이제 자동차가 많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전기차는 아직 배터리가 안정적이지 않고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들을 사용하는데, 석유를 수입하는 문제도 있고 환경오염의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이성우 시장의 말에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아사달은, 농경지가 크게 늘어나고 재배하는 작물들도 늘어나면서, 일부 작물들은 한국이나 몽골, 중국, 일본 등으로 수출도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사달과 하백 같은 도시들은 그 자체로 농업 브랜드가 되었던 것이다. 사막이라는 특이한 기후도 유명한 곳이지만, 또 하나는 청정 이미지가 있었다. 사막이라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라는 특성이 역으로 공해가 없는 청정 지역이라는 도시 이미지가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농업 외에 다른 산업이 없는 농업 도시라는 것도 그런 깨끗한 무공해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화시켜주어서 진석도 아사달과 하백의 작물들을 수출할 때는 청정이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당부하고 있었다.

이성우 시장은 거기에 더해, 아사달의 모든 자동차를 바이오 디젤 차량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미, 전기는 태양열 발전을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화석연료의 사용은 자동차뿐입니다.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전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입니다.”

“음, 그렇죠. 사막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는 자동차가 배터리 성능이 부족하다면 큰일이죠.”

전기자동차가 이미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에서도 많이 보급되고는 있었지만, 아직 배터리 성능이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아사달의 오아시스 지역은 뜨거운 불모의 사막지대라 중간에 배터리 부족으로 차가 멈추게 되면 정말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성우 시장의 말대로, 전기차는 아직 도입하는데 부담이 있었다. 그보다는 화석연료가 아니라 식물에서 채취한 연료인 바이오 디젤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성우 시장은 콩을 이용해서 바이오 디젤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고 있었다.

“이성우 시장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전기차가 시기상조라는 것도 맞고, 또, 콩은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 잘 재배되기도 하니까요.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죠.”

“예,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오아시스 도시들의 청정 이미지도 더 부각이 될 겁니다. 그러면 농산물 수출이나, 이주민들의 증가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그렇겠죠. 아무튼,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

하백시, 제이에스 농업기계 공작소.

“바이오 디젤 차량을 말입니까?”

우선호는 제이에스 그룹 소속으로 트랙터 같은 농업용 장비를 관리하는 농업기계 공작소장을 맡고 있었다.

각종, 농업기계부터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 그리고 차량의 정비 시설도 가지고 있는 곳으로 남고비의 바퀴 달린 기계는 다 수리한다는 곳이었다.

“예, 장기적으로 바이오 디젤 차량을 도입하려는데 우선호 소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뭐, 브라질 같은 곳에서는 곡물로 에탄올을 만들어서 자동차 연료로 쓴다는데 그런 종류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죠, 바이오 디젤이라는 게 주로 곡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 거니까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도 있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죠. 또, 남고비는 농업 도시들이니까,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고요.”

“뭐, 이미 그런 쪽 기술은 개발되어 있으니까, 바이오 디젤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그런 차량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도 시간이 좀 필요하기는 하겠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니까요.”

“예, 아무래도 적응기가 필요하겠죠. 일단, 단계적으로 바이오 디젤을 도입할 거니까, 한꺼번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책도 읽고, 정보를 검색해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쪽의 기술이 있는 사람도 구해보고요.”

“예, 조만간, 바이오 디젤 차량을 도입하고 곡물을 이용한 연료도 생산할 계획이니까. 우선호 소장님도 미리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곡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실 생각입니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콩이죠.”

“콩요?”

“예, 일단,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종이라 대규모 재배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요? 아직, 하백이나 아사달에서 콩을 키우는 건 못 봤는데.”

“예, 사막 지역이라, 한국에서 재배하던 작물을 바로바로 심어서 키울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사막에 적응력이 있는 품종이나 농업기술을 따로 개발해야 하니까, 작물 하나를 새로 재배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죠. 적응기라는 건 식물에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하하,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조만간, 하백에서도 콩을 키우는 걸 보게 되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

아사달,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

“이번에는 콩인가요?”

한유식 부장은 진석이 콩을 키우고 싶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식용으로도 쓰고, 사실은 주로 바이오 디젤을 만드는 용도로 쓸 생각입니다.”

“음, 콩이라? 콩은 비교적 토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편이기는 하죠. 하지만, 물이 부족하면 말라 죽거나 열매의 맺음이 부실해지는 건 다른 작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막에서 키우기에는 역시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한유식 부장의 말대로, 콩이라고 해서 사막에서 쉽게 재배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작물로 알려진 콩이지만, 사막의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말이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종 개량을 통해서 사막에 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죠.”

“알겠습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능력과 의지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필요한 종자들을 준비해 드리죠. 그걸 가지러 오신 거죠?”

“하하, 물론이죠. 부탁드립니다.”

진석은 이번에도 종자들이 담긴 가방을 받아 들고, 아사달의 저온 저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의 오아시스로 들어가자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주님, 이번에는 뭘 가지고 오셨나요?”

“이건 콩이야.”

“콩요? 아, 그 작고 동그란 딱딱한 열매 말이군요. 밥에 넣어서 쪄먹기도 하는 거 말입니다.”

“그래, 콩밥을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쓰임이 있지. 갈아서 두부를 만들기도 하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수요가 제법 있는 대표적인 곡물류라고 할 수 있어.”

“그러면 그걸로 두부를 만드실 건가요?”

“아냐, 이건 연료를 만드는 용도를 재배하는 거라고.”

“연료라뇨?”

“작물을 이용해서 바이오 디젤을 만들 수 있거든, 작물에서 기름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말이야.”

“오, 그래요? 하긴, 곡물이나 석유나 모두 태양에서 나온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 크게 보면 같은 종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야. 식물이 성장하는 힘도 태양에서 나오는 거지. 그리고 태양광에 반응해 광합성을 통해서 식물은 성장을 하고 영양이 풍부한 열매를 만드는 거야. 또 그런 식물들에서 화석연료도 나오는 거고. 크게 보면 다 같은 태양 에너지라고 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그러면, 식용은 아니라는 거군요?”

“그건 정해진 건 아니야. 콩은 당연히 식용작물이니까, 식용으로도 쓸 수도 있고, 에너지의 원료도 되고.”

“한 마디로 일석이조라는 거군요.”

“그래, 어떤 콩이 나오는지 일단 심어보고, 그걸로 바이오 디젤을 만들 수도 있고, 두부를 만들 수도 있겠지. 일단 콩을 키워 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그럼, 오아시스의 평지에 밭을 준비하겠습니다.”

사령관이 평지의 땅에 콩을 심을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콩의 재배환경은 아사달이나 하백 부근처럼 뜨거운 온도와 다소 척박한 사막의 모래토양과 비슷한 환경이었다. 대신 물 공급은 비교적 충분한 편이었다.

사령관이 일꾼들을 동원해 밭에 콩을 심자,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속되며 밭의 흙을 뚫고 콩의 싹이 솟기 시작했다. 콩은 시간의 가속에 따라 비교적 잘 자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확기가 되어서 보니, 콩깍지가 잘 여물지 않고 있었다.

“공간주님, 콩깍지가 좀 부실해 보이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콩이 필요한데, 콩 줄기만 잘 자라고 콩은 맺히지가 않네.”

진석은 콩깍지를 하나 까보았다. 안에는 영글다 만 작고 납작한 콩들이 들어있었다. 크기도 너무 작아서, 곡물이든, 연료 원료로든 큰 가치는 없어 보였다.

“역시 사막에서는 무리인 건가?”

하지만, 진석은 실망하지 않고 차분하게 실험을 계속 진행해 보기로 했다. 반복적으로 시간을 가속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좋은 결과를 얻어왔으니, 진석 스스로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일꾼들이 밭에 콩을 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며,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공간의 밭에서는 수백 종의 콩들이 수천 년의 시간을 쉬지 않고 재배되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다들 부실한 콩들뿐이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뭐 다시 해봐야죠.”

사령관은 계속된 실패에도 담담하게 일꾼들을 지휘해 밭의 콩 줄기들을 걷어 들이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 콩들은 뭔가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일꾼 중에 하나가 밭의 콩 줄기들을 뽑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었다.

진석은 그 일꾼이 손을 흔드는 곳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뭐, 색다른 콩이라도 나온 건가?”

“공간주님, 사령관님, 이걸 보십쇼.”

일꾼이 가리킨 것은 콩 줄기의 뿌리 부분이었다. 다른 콩들과 달리, 이 줄기에는 콩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는데, 쭉정이 같은 콩깍지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뿌리 쪽에 마치 땅콩 깍지 같은 황토색의 열매들이 보였다.

“이건 뭐지? 이건 땅콩인가?”

“아닙니다. 분명 이건 콩의 줄기입니다. 그런데, 뿌리 쪽에 뭔가가 열린 것 같습니다.”

마치 거꾸로 배추처럼, 이 콩도 줄기에 맺히던 콩깍지가 보이지 않는 대신에 뿌리 쪽에서 콩깍지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진석은 뿌리에 달린 콩깍지를 열어 보았다. 콩깍지가 일반 콩보다는 땅콩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깍지를 열었을 때는 일반적인 콩이 보이고 있었다.

땅콩은 아니지만, 땅속에서 자라는 새로운 콩이였던 것이다.

“신기한데요. 땅콩도 아니고, 땅속에서 자라는 콩이 다 있군요.”

“사령관, 이건 새로운 변종이 분명해. 그리고, 땅속에서든 어디든 콩만 충분히 열리면 되는 거니까. 이건 좋은 징조야.”

“그렇군요. 그럼, 이 콩의 종자를 채취할까요.”

“그래, 이 종자들을 다시 심어보자고, 후대에도 특성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실험에 성공한 건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사령관이 일꾼들을 불러와서, 밭은 정리하고 땅속에서 자라던 콩을 다시 밭에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땅속에서 솟아오른 콩의 줄기들은 콩이 하나도 열리지 않고 있었다. 콩깍지도 전혀 생기지 않고 있었다.

“땅을 파 보겠습니다.”

일꾼들이 조심스럽게 뿌리를 파보자, 역시나 전처럼 아래쪽에 깍지들이 보이고 있었다. 진석은 깍지를 까보았다. 안에 들어있는 콩은 크기도 제법 크고 잘 영글어 있었다.

“와, 좋은데. 이 콩은 특이하게 땅속에서 콩이 자라는 콩이군, 이것도 거꾸로 배추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아.”

“그럼, 거꾸로 콩이라고 부를까요?”

“뭐, 그것도 좋겠지만, 흙콩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흙콩요?”

“그래, 흙속에서 깍지가 나오니까 말이야. 땅콩과 혼동을 막을 수도 있고, 흙콩이라고 불러야겠어.”

“그것도 좋겠네요. 아무튼, 공간주님, 이 콩, 아니 흙콩을 이제 대량으로 재배해 볼까요?”

“그래, 일단 이 콩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면 양이 충분해야 하니까, 밭에서 대량으로 키워 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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