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거꾸로 배추(3)
남고비, 하백 호수, 김석류의 농장.
“이게, 배추라고요?”
밑동 부분만 잘라서 가져간 거꾸로 배추를 본, 김석류의 표정은 약간 황당함이 느껴졌다.
“아, 사실은 뿌리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위쪽은 보통 배추와 비슷하게 자라요. 하지만, 아래쪽으로 이렇게 배추의 속이 거꾸로 자라는 배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거꾸로 배추라고 불러요.”
진석은 배추의 껍질을 벗겨서 안쪽의 배추 속을 보여주었다. 김석류는 그제야 신기한 듯 관심을 보였다.
“와, 진짜네. 안쪽에 또 작은 배추가 있어요. 그것도 꽉 들어찬 속 배추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이건 아사달에서 이 거꾸로 배추로 만든, 서울식 김치예요.”
“김치도 담들 수 있어요?”
“물론이죠. 김치를 만들 게 아니라면 배추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김석류는 진석이 가져온 김치통을 열어보더니, 한 조각을 잘라 맛을 보았다.
“음, 싱싱하기도 하고, 짜지 않은 경기도 김치네요. 중부 지방에서 먹는 거요.”
“김석류 씨는 고향이 어디인가요?”
“저요, 저는 부산요. 부산 쪽도 김치는 좀 짠 편이죠. 하지만, 이건 제 입에도 맛있네요. 그리고 이게 이 거꾸로 김치로 만든 거라는 말이죠?”
“예, 이렇게 땅속에서 자라서, 마치 고랭지 배추처럼 깨끗하고 병충해도 없고요. 속도 단단해서 김치를 담그기에 딱인 배추라는 말입니다.”
“와, 굉장해요. 상추 같은 경우에는 온도가 높으면 아무래도 잎이 연하고 물러지는데, 이 배추는 땅속에서 자라서 수분이 풍부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그러면, 이 배추를 한 번 재배해 보시겠어요? 실제로 이 사막에서 재배하는 건 처음이 될 겁니다.”
“정말요?”
“그럼요. 지난번에 약속했잖아요. 김석류 씨에게 최초로 배추를 재배할 기회를 주겠다고요. 하하..”
“와, 제가 정말 처음이라는 거죠?”
“예, 품종 개량을 위해 실험을 한 걸 제외하고, 농장에서 키우는 건 김석류 농장이 최초가 될 겁니다.”
“키우기가 어려운 건 아니겠죠? 사실, 상추와 토마토 외에는 다른 작물은 키워 본 적이 없어서.”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요. 일반적인 배추보다 재배하기가 훨씬 쉬워요. 그 이유는 땅속에서 배추 속이 자라기 때문이죠.”
“음, 그래요?”
“예, 땅속에서 배추 속이 자라기 때문에 따로 병충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위로 자라는 배추 잎은 생장을 위해 사용되고, 식용으로 쓰는 것은 땅 아래에 따로 있으니까. 관리가 굉장히 쉬워지는 거죠.”
“그렇겠네요. 이렇게 땅속에서 껍질에 싸여 있으니까, 배추의 청결도도 굉장히 좋고, 수분도 잘 유지가 되는 것 같고요.”
“그래요. 위쪽으로 자라는 배추는 상품으로 쓰는 게 아니니까 벌레가 뜯어먹거나 조금 잎이 말라도 상관이 없는 거죠.”
“음, 그렇겠네요. 벌레를 좀 봐주더라고, 배추의 상품 가치에 큰 해는 없을 테니.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완전 유기농으로 키우면 손도 덜 가고 더 키우기 쉽지 않을까요?”
“음..유기농이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진석이 배추를 재배한 공간에는 특별한 병충해는 없기 때문에, 농약 없이 당연히 유기농으로 키웠지만, 하백시의 환경은 그와는 또 약간 다르기 때문에 김석류의 말대로 완전한 유기농 재배가 가능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래요? 이진석 사장님도 모르는 게 다 있네요. 그러면 한번 해보면 알겠죠.”
“김석류 씨는 이걸 완전한 유기농 재배로 키우겠다는 건가요?”
“예, 기왕이면 유기농으로 하면 더 좋잖아요. 제 생각에는 배추 속 부분이 땅속에 자라니까, 위쪽의 배추들은 좀 손상을 입어도 상관없을 거라는 거죠. 어차피, 위로 자라는 배추를 먹을 게 아니니까.”
“좋아요.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김석류 씨의 농장이니까. 김석류 씨가 원하는 대로 해보세요.”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세계도 다양성은 큰 장점이 되는 것이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 한 것을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은 세상을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김석류는 진석이 생각하지 못 했던 거꾸로 배추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유기농으로만 재배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진석은 그 생각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은 진석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그로부터 몇 달 후.
진석은 그동안 공간에서 거꾸로 배추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꿈나무 초등학교를 비롯한 여러 식당 등에 공급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꾸로 배추를 이용해서 배추김치를 생산하는 곳이 늘어나고, 아사달에서 생산한 배추 김치의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거꾸로 배추김치를 찾는 수요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거꾸로 배추김치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나게 되자, 진석은 아사달에 김치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이소희 조리사님이라면, 잘 해낼 거예요.”
원래는 꿈나무 초등학교에서 조리실에서 일하던 이소희 조리사는 김치를 담그는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거기에 본인도 김치를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사달에 새로운 김치공장이 세워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영미 교장에게 자신이 지원하고 싶다고 부탁을 한 것이다.
공장을 짓고 설비를 만드는 건 제이에스 그룹에서 하면 될 일이었지만, 직접 김치공장을 운영할 운영자를 선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던 진석에게 최영미 점장이, 이소희 조리사를 추천해 주었고,
진석은 직접 배추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한 번 테스트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새로 건설된 김치공장에서 이소희 조리장의 김치 만들기 테스트가 시작되었고, 얼마 후에 완성된 김치가 진석 앞에 놓여졌다.
물론, 갓 양념무를 넣은 배추김치라 숙성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이소희 조리장의 실력은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음, 김치가 잘 된 것 같네요.”
“예, 그대로 며칠 숙성 후에 드시면 맛있는 김치가 될 겁니다.”
“좋아요. 이 정도면 합격인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이 김치공장은 이소희 사장님의 책임입니다.”
“어머, 정말요. 세상에, 제가 김치공장 사장이 된 건가요?”
“하하, 그런 셈이죠. 이 김치공장은 아사달과 각 오아시스 도시들에 김치를 공급하게 될 겁니다. 책임자가 된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실, 전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말인가요?”
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희는 아사달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여러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에서 알바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다고 했다.
“햄버거 가게에서는 매니저까지 올라가기도 했었죠.”
“오, 그래요?”
“예, 음식을 만드는 곳에서 계속 일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직접 가게를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외식업체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작은 식당을 차렸어요.”
“식당은 잘 됐나요?”
“후후, 물론, 망했죠. 사업이라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전, 규모가 더 큰 외식업체들에서도 일해봐서 작은 식당은 우습게 봤었는데, 직접 식당을 운영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뭐, 그렇게 하나 배운 거죠.”
사업에 실패한 이소희는 인생의 돌파구를 찾아 이 아사달로 왔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뜻밖에 여기서 다시 사업가가 될 찬스를 얻은 것이다.
새로 발전하고 있는 신도시 아사달에서는 이렇게 뜻밖에 기회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이소희였지만, 김치라는 새로운 분야의 기술과 능력만 있으면, 이렇게 신데렐라처럼, 한순간에 김치공장 사장으로 발탁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사달과 오아시스 도시들은 한국이나 서울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김치공장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아사달의 마트에서도 쉽게 거꾸로 배추김치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거꾸로 배추는 사막에서 재배가 가능하다는 점 외에도, 맛에서도 수분이 많고 특유의 단맛이 강해, 더운 사막 지역의 사람들에게 적합하다는 평가였다.
사람들은 더운 날씨 때문인지, 김치 역시도 수분이 많고 단맛이 있는 거꾸로 배추김치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석류의 농장을 시작으로 하백시 일대에서 거꾸로 배추가 점차 대량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배추의 생산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자, 진석이 공간에서 따로 배추를 생산하지 않아도 아사달의 김치공장의 물량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
하백시, 김석류의 배추 농장.
“와, 배추가 아주 잘 자라고 있네요.”
김석류는 정말, 유기농, 무농약 재배방식으로 거꾸로 배추를 키우고 있었다.
“이건 배추벌레인가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탓인지, 배추밭에 배추벌레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배추벌레들은 배추의 잎을 갉아 먹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군데군데 잎에 구멍이 난 배추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외에 잎마름병도 좀 퍼진 듯, 잎이 누렇게 마른 배추도 군데군데 보였다. 하지만, 그런 병해충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배추는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거꾸로 배추의 특성상, 상품성을 가진 배추 속들은, 땅속에서 자라고 있으니, 밭 위로 자라고 있는 배추를 벌레들이 갉아먹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예,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벌레들이 제법 있어요. 하지만 돌아다니면서, 적당히 배춧잎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배추가 죽거나 하는 일은 없죠.”
“보통의 배추들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상품성이 많이 줄어들어서 큰일이겠지만, 거꾸로 배추는 땅 위로 자라는 배춧잎들은 어차피 생장에 필요한 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하는 정도의 기능이 있는 거니까, 배추의 상품성에 손상이 가는 일은 없다는 거죠?”
“맞아요. 여기 배추 속을 보여드리게요.”
김석류는 배추 하나를 뽑아서, 땅속으로 자란 배추 속을 꺼내 보여주었다. 두툼하게 자라있는 배추 속의 껍질을 벗기자, 안쪽에서 단단하게 들어찬 배추 속이 모습을 보였다. 위쪽의 잎들이 벌레들의 공격으로 구멍이 나 있는 것과는 달리,
땅속에서 껍질 안쪽에서 자라고 있던 거꾸로 배추의 속은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역시, 병해는 땅 위로 자라는 배추의 윗부분에만 영향을 주는군요. 땅속의 배추 속은 정말 깨끗하네요.”
“예, 그래서 유기농 재배도 가능한 거죠. 거꾸로 배추는 농약 없이도 잘 키울 수 있는 배추니까요.”
“하하, 대단하네요. 이 거꾸로 배추를 개발한 건 바로 저지만, 저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을 알아본 건 김석류 씨입니다. 덕분에, 무농약, 유기농 재배가 가능하게 됐어요.”
“뭘요? 그냥, 막 떠오른 생각대로 해본 것뿐인데요.”
김석류의 생각대로, 거꾸로 배추는 농약 없이도 재배가 가능했고, 그래서 더 신선하고 깨끗한 배추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오아시스 도시들의 주민들도 그래서 거꾸로 배추를 다른 배추보다 더 선호하고, 거꾸로 배추로 만든 배추김치들도 인기를 끌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무농약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배추 재배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인력도 절약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렇게 김석류 농장을 시작으로, 하백시의 다른 농장들에서도 거꾸로 배추를 유기농 재배로 키우게 되었고, 거꾸로 배추의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계속 늘어서 이제 오아시스 도시들의 배추 수요를 다 커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소희가 운영하는 김치공장에도 하백 시의 거꾸로 배추가 공급되어서, 아사달과 하백 그리고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김치를 공급하게 되고 말이다.
“아무튼, 김석류 씨가 배추를 키워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 대단한 결실을 맺게 되었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저도 정말 신기해요.”
김석류와 진석은 농장의 배추밭에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는 거꾸로 배추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배추의 재배도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