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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거꾸로 배추(2) (167/183)

184화. 거꾸로 배추(2)

오아시스의 밭에서 재배한 배추는 크게 잘 자라기는 했지만, 고온 때문인지, 속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공간주님, 배추 자체는 잘 자라는 것 같은데, 그냥 그 배추를 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배추를 담그기 위해서는 좀 더 연한, 배추 속이 필요해. 그래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는 거라고.”

“김치용 배추는 겉 부분은 쓰지 못하는 거군요?”

“맞아, 배추의 겉 부분은 너무 뻣뻣하거든, 하지만 배추 속이라는 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저온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라서 온도가 가장 큰 변수라는 말이지.”

“하지만 사막은 항상 뜨거운 곳인데, 배추의 그런 특성이 온도의 영향이라면 배추 속이 나오게 하는 건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자연의 법칙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뭔가 반복해서 씨앗을 뿌리고 시간을 가속하다 보면 특이한 변종이 나오지 않을까?”

진석의 말에 사령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한번 해보죠.”

사령관이 일꾼들과 함께 다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배추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단지 겉모습만으로는 속이 어떤지 알 수가 없어서, 배추가 한 번 자라날 때마다, 일꾼들이 총동원되어 배추 하나하나의 속을 확인해야 했다.

“이거야, 배추 속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배추의 경우에는 속이 나왔는지 하나씩 확인해야 하느라,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원되는 일꾼들의 수만 보면, 지금껏 해왔던 작업 중에서도 최대의 인원이 동원되고 있었다.

배추가 가득한 밭에서 일꾼들이 배추를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었다.

“사령관, 이번에도 별다른 게 없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저기, 한 녀석이 손을 드네요.”

배추밭에서 배추를 열어보고 있던, 일꾼들 중에 하나가 한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신호군요. 뭔가 특이한 배추인가 보네요.”

진석은 사령관과 함께 그 일꾼이 손을 흔드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배추가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건가?”

“공간주님, 이걸 보십쇼.”

“뭘 보라는 거야?”

“이거 말입니다.”

일꾼은 배추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음, 아래쪽이 좀 두툼한 게 이상한 모양인데, 아니, 아래쪽에 이게 뭐지?”

진석은 배추의 아래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배추의 밑동과는 뭔가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아래쪽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음, 뿌리가 뭔가 다른 건가?”

“삽을 가져올까요?”

“그래, 뭔가 뿌리 쪽을 파봐야겠어.”

사령관이 삽 하나를 가져와서 조심스럽게, 배추의 아래쪽을 파보기 시작했다. 흙이 걷어지고, 배추의 뿌리 부분이 땅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뿌리라기보다는 마치, 대나무 순이 거꾸로 박혀 있는 그런 모양이었다.

“이게 뭐죠?”

“그러게 말이야, 대나무 순하고도 비슷한데, 크기는 꽤 크고, 뿌리인가?”

배추의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크기도 상당하고 모양도 기묘했다. 원뿔형의 두툼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안쪽에 뭔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뿌리가 꽤 큽니다. 위쪽 배추보다 약간 작은 정도인데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면 뿌리를 뽑은 배추를 거꾸로 돌려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얇은 원뿔형의 껍질을 벗겨보았다.

“와, 이게 뭔가요?”

진석이 대나무 순 같은 모양의 뿌리 부분의 껍질을 벗기자 안쪽에서는 작은 배추, 아니 배추 속과 비슷한 것이 나왔다.

“이게 뭐야? 배추 속이잖아?”

진석으로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 여름에 키운 배추는 가을이 되며 배추 속이 나오는 것인데, 이 배추는 오아시스 밭의 높은 온도 때문인지, 배추 속에 해당하는 부분이 흙속에서 거꾸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에, 배추 속은 대다무 순과 비슷하게 생긴 외부 껍질 안에 들어있어서, 흙속에서 자랐지만 깨끗하고 연한 배추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공간주님, 찾으시던 배추 속이군요?”

“그래, 신기한 일이군. 땅속에서 거꾸로 자라는 배추라니, 그나저나 맛도 배추 속, 맛이 나는 건가?”

진석은 배추 속처럼 생긴 뿌리 부분을 한 잎 뜯어 맛을 보았다. 약간 달고, 수분이 풍부한 맛이었다.

“음, 맛도 배추 속인데.”

“그럼, 그걸로 김치를 만들 수 있는 건가요?”

“그래, 그런 것 같아. 일단, 이 배추를 더 증식시켜 보자고, 다음 대에도 이런 특성이 이어지는지 말이야.”

거꾸로 속이 나오는 거꾸로 배추의 속은, 김장 김치를 만들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이 배추가 다음 대에도 이런 거꾸로 자라는 특성이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었다.

진석은 거꾸로 배추의 종자를 채취해, 다시 밭에 심어 보았다.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자 이번에도 뭔가 아래쪽이 두툼한 느낌의 배추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사령관, 뿌리 쪽에 속이 자랐는지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일꾼들이 삽을 하나씩 들고, 배추 아래쪽을 파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아래쪽에 거꾸로 속이 자라고 있었다.

진석은 일꾼들이 뽑은 배추 뿌리를 까보았다. 안쪽에는 속이 꽉 들어찬 배추 속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재배되던 배추 중에서 변종이 나타났고, 저온에서 생기던 배추 속이, 땅속의 뿌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땅속으로 거꾸로 자라며 속이 나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땅속은 상대적으로 온도가 더 낮기도 하니까 말이다.

“공간주님, 모두 배추 속이 들어있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요?”

“그래, 원하던 배추 속이 나오는 배추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거야.”

“축하드립니다. 공간주님,”

“하하, 사령관도 수고했어.”

“그럼, 이제 이 배추들은 어쩌실 겁니까?”

“음, 일단은 거꾸로 배추는 좀 더 재배해서, 밑동만 수확하라고, 껍질은 까지 말라고 그리고 종자들도 충분히 확보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일단은 모양이나 맛은 그럴듯했지만, 이 배추로 직접 김치를 담가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았다. 어차피 김장 김치용으로 배추 속이 필요했던 것이니 말이다.

일단 공간 밖으로 배추 속을 가져가 김장을 해보고, 성공적이라면, 이 거꾸로 배추를 하백시에서 본격적으로 재배할 계획이었다.

***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이게 다 뭐예요?”

배추의 윗부분을 잘라내고 아래의 속이 들어있는 죽순과 비슷한 원뿔 형태의 배추 뿌리를 잔뜩 상자에 담아가지고 찾은 곳은 최영미 점장이 있는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이었다.

“새로운 품종의 배추예요.”

“배추요? 전혀 그렇게 안 생겼는데요.”

“이 껍질을 이렇게 까면요.”

진석은 거꾸로 배추 하나를 들어, 손으로 껍질을 까보았다. 껍질이 벗겨지며 배추 안쪽 속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 신기하네, 거기에 뭐가 또 들어있네.”

역시나 호기심이 많은 최영미 점장이 나가와 배추의 속을 꺼내 보았다.

“이건 배추잖아요? 그것도 배추 속이랑 비슷하네.”

“예, 신기하죠. 사실은 이게 배추의 뿌리 부분이에요. 이게 땅속에서 자라면서, 안에서 배추가 자라는 거죠. 그래서 이름도 거꾸로 배추고요.”

“거꾸로 자라는 배추라 이 말이죠?”

“맞습니다. 땅속에서 자라는 이 안쪽의 배추는 껍질에 싸여 있어서, 깨끗하기도 하고요. 김장용으로 쓰는 배추 속과 비슷해서 김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서요.”

“음,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아사달에서는 배추를 구하기 어려워서 김장을 할 수 없었는데, 이걸로 김치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해 오는 김치들도 맛있기는 하지만, 직접 담그는 신선한 김치도 필요하니까요.”

“좋아요. 그러면 마침, 우리 학교 급식에 필요한 김치가 모자라던 참인데. 이걸로 학교 급식에 쓸 김치를 만들어 볼게요.”

“그러면 되겠네요. 최영미 점장님은 학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니까요. 학교 급식실을 이용해서 김장을 해보면 되겠네요.”

“예, 사실, 김장이라는 건, 겨울에 대비해서 미리 김치를 만들어서 봄까지 저장해서 먹는 김치를 말하는 거지만,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한 번 이 거꾸로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볼게요.”

최영미 점장이 김치를 만들기로 했고, 진석은 필요한 배추를 저온 창고에서 최영미 정장이 교장을 맡고 있는 초등학교로 옮기도록 지시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최영미 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치가 다 익었으니 한 번 맛을 보라는 것이었다.

***

아사달, 꿈나라 초등학교.

꿈나라 초등학교는 유치원을 겸하는 초등 교육시설로, 아사달에 최초로 설립된 학교였다. 초대 교장을 최영미가 임시로 맡아서 시작한 학교로, 처음에는 규모도 작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겸하는 그런 학교로 시작했지만,

점점 학생도 늘어나고, 교사 수도 늘면서, 학교 건물도 신축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해서 지금은 초등학교와 유치원 두 종류의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최영미 교장은 아사달 이주 초기에 교사가 부족하던 시설에 잠시 교장과 교사 일을 맡기로 했지만, 그 이후로도 교내 행정을 맡아서 교장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기가 급식실이군요?”

진석은 최영미 점장, 아니 여기서는 최영미 교장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학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학교가 개교할 때 와보기는 했지만, 학교 내부를 이렇게 자세하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가 급식실 주방이에요. 김치는 여기서, 조리사와 영양사분들하고 같이 만들었어요. 지금은 모두 냉장고에 보관 중이고요.”

“하하, 여러분들이 수고해 주셨군요.”

“뭘요? 그렇지 않아도 김치를 만들어 보자는 말들이 많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수입해오는 김치는 아무래도 운반하는 시간이 있어서 약간 싱싱함은 떨어졌거든요.”

“음, 그런 것도 있죠. 김치도 직접 만드는 게 신선하기는 해요.”

“예, 오래 보관이 가능한 게 김치의 특징이지만, 전 서울 사람이라, 좀 싱거운 경기도 스타일 김치를 좋아하거든요.”

“하하, 저도 서울 토박이라고 할 수 있죠. 제 입에도 젓갈이 많이 들어가고 좀 짠 편인 남부 지역 김치들보다는 담백한 서울 김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 그런데 소금이 덜 들어가면 보관이 잘 안되는 문제가 있으니까. 그동안은 한국에서 수송해온 건, 좀 짠 김치들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싱싱한 배추 속으로 심심하고 시원한 서울 김치를 만들어봤어요.”

“그래요. 기대되는데요.”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이 급식실로 모여들고 있었다. 점심 급식 메뉴는 소고기 뭇국과 불고기, 그리고 야채 볶음과 최영미 교장 선생님이 조리실 직원들과 같이 만든, 서울식 김치가 나왔다. 애피타이저로는 사막에서 재배한 멜론도 나오고 말이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배식을 받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진석도 최영미 교장과 같이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 창가 자리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음, 맛있는데요.”

“예, 특별한 건 아니지만, 재료 하나하나, 조리 하나하나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뭇국과 불고기 정도지만, 맛은 꽤 있는 편이죠.”

최영미 교장 선생님의 말대로,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는 식단이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거기에 새로 만든 김치도 꽤 맛이 좋았다.

“음, 이 김치는 짜지 않아서 맛있어.”

“어디? 어디? 어, 진짜네, 김치가 약간 달콤해..맛있다.”

평소 맵고 짠 음식을 잘 못 먹던 아이들도 새로 만든 서울식 김치는 곧잘 먹고 있었다.

“음, 김치가 진짜 맛있네요. 시원한 서울식 김치 느낌이 나요.”

“배추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먹기에도 맛있어요. 앞으로도 배추만 충분히 공급을 받으면 김치는 계속 만들 생각이에요.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고요.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거꾸로 배추라면 얼마든지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거꾸로 배추로 김치를 만드는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이제 하백시로 가서, 본격적으로 배추 재배를 시작할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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