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커피(3) (165/183)

182화. 뜨거운 커피(3)

아사달, 제이에스 저온 저장고.

“여기는 시원하군요.”

“항상,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죠. 이겁니다.”

진석은 박영진을 저온 저장고로 안내했다. 그리고 공간에서 수확한 아사달 커피와, 황금 커피, 두 가지의 생두가 담긴 자루를 보여주었다.

생두를 살펴보던, 박영진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좋은 커피가 나올까요?”

“뭐, 일단은 로스팅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처음 보는 품종이라 조금씩 시험을 해보면서 최상의 방법을 찾아봐야죠.”

“예, 그래야겠죠. 그럼 이 커피콩들의 로스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작업을 위한 공간이 좀 필요합니다. 기계도 설치해야겠고요.”

“그러겠죠.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필요한 작업장은 조만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진석은 박영진이 작업할 작업장과 기계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저온 저장고의 생두가 담긴 자루들도 박영진의 작업실 옆의 창고로 이동시켰다.

***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캣타워에 고양이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술래잡기를 하듯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새끼 고양이군요?”

“예, 아사달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에요. 귀엽죠?”

“새끼 고양이들은 다 귀엽죠.”

진석은 캣타워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앞서 도망가던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 저런..”

하지만, 떨어진 새끼 고양이는 고양이 특유의 유연성 덕분인지 별다른 부상 없이 벌떡 일어나서, 다시 캣타워를 오르기 시작했다.

“대단하죠. 고양이들은 어지간히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으니까요.”

“유연성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최영미는 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연성이라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요.”

“사람도 말인가요? 인간이란, 고양이에 비하면 뻣뻣한 존재들 아닌가요?”

“몸이야 맘대로 되나요. 하지만 생각의 유연성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생각의 유연성이라?”

“서울을 떠나서, 아사달에 살다 보니까, 고정 관념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여기서는 정해진 것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그래서, 항상 새롭게 상상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바로 제가 말하는 생각의 유연성이에요.”

“고정 관념을 버리자는 말이군요?”

“예, 맞아요. 그리고, 여기서는 뭔가 새로운 상상을 하기에 좋은 것 같아요.”

“사막이라서 말인가요?”

“예, 사막은 그저 텅빈 공간이잖아요. 빈 곳을 찾을 수 없는 서울 같은 대도시와는 다르죠. 그런 대도시들은 이미 모두 들어차 있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볼 기회가 없으니까요.”

“최영미 점장님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시는 거죠?”

“그렇죠.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아사달로 온 거잖아요. 아사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변화를 원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안락한 서울을 버리고 이곳으로 오는 것 아닌가요?”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는 최영미 점장님을 위해서 제가 새로운 두 가지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커피요? 지난번에 말한 새로운 품종의 커피인가요?”

“예, 사막에서 재배하기 위해 개발한 신품종도 있고, 좀 특별한 효능이 있는 특별한 품종의 커피도 있고요.”

“어떤 거죠? 보여주세요.”

진석은 상자에 담아 가지고 온, 아사달 커피와, 황금 커피 두 종의 원두를 보여주었다.

“이게 아사달 커피인가요?”

“예, 이건, 사막에서 키울 수 있게 품종을 개량한 커피예요. 조만간, 아사달의 농장에서 이 커피나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황금 커피라? 왜 황금 커피죠. 금처럼 비싼 커피라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이 커피 열매는 보통 커피와는 달리 빨갛게 익는 것이 아니라 황금색으로 익어가죠.”

“정말요?”

“예, 아쉽게도, 로스팅을 했더니 그냥 검게 변해버렸네요.”

“음, 향이 좋기는 한데.”

“제가 장담하죠. 이건 정말 특별한 커피입니다.”

진석의 말에 최영미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특별하다는 건가요?”

“그건, 이 커피를 손님들이 마셔보면 알게 될 겁니다.”

진석은 다소 이상한 대답을 했지만, 최영미는 농담이나, 약간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요. 아무튼, 새로운 커피라니까, 이걸로 커피를 만들어보죠.”

일단 무더운 아사달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아이스아메리카노였다. 워낙 더운 날씨에 건조한 곳이라,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달지 않고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최영미는 진석이 가져온 두 가지 커피로 일단 가장 기본 메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종을 선보였다.

다음날, 진석이 다시 북카페를 찾았을 때는 메뉴판에 두 개의 신메뉴가 보이고 있었다.

“음, 아사달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라?”

“이진석 사장님이 가져온 두 가지 원두커피로 만들어봤어요.”

“그래요? 두 가지 커피는 괜찮은 편인가요? 맛이라거나, 향이라거나?”

최영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다, 좋은 것 같던데요. 뭐, 제가 커피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많이 다루는 편인데, 아사달 커피는 맛이 은은해서 좋은 것 같고, 황금 커피는 뭔가 향이 독특해요. 향을 맡고 있으면,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고나 할까?”

“그래요,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번 마셔봐야겠네요.”

진석은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오자, 최영미가 말한 것을 확인해 보려는 듯 진석은 먼저 커피의 향을 맡아 보았다.

“와, 정말, 향이 독특한데요. 이런 향은 처음이에요.”

“그렇죠, 저도, 향이 좋아서 커피를 마실 걸 깜빡 잊는다니까요.”

진석은 커피향을 즐기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맛도 괜찮고 말이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청량감도 좋은 편이었다.

“손님들 반응은 어떤가요?”

“좋아들 하는 편이에요. 다들 향이 좋다고 해요.”

“최영미 점장님은 이 커피를 마시고 뭔가 변화를 느낀다거나 하는 건 없나요?”

“변화요? 글쎄요? 뭐, 별다른 건 모르겠는데, 커피가 커피죠. 역시 사장님이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한 건, 그냥 한 소리였죠?”

“아, 뭐, 커피가 별 게 있나요.”

최영미 점장은 황금 커피를 마시고도 별다른 효능을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진석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일이네, 공간의 산에서 재배한 커피라면,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을 텐데, 혹시 이건 아무런 효능이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카페의 문이 열리고, 약간 침울한 얼굴의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날씨가 너무 덥네요.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아이스아메리리카노 말씀이십니까? 새로 나온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있는데, 한 번 드셔보실래요? 신메뉴라 주문하시면 치즈 케익을 서비스로 드립니다.”

“뭐, 그러죠. 아무거나 상관은 없지만.”

남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얼굴은 수심이 가득하고, 많이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남자는 진석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조금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뭐, 그러시죠.”

남자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진석은 반쯤 마신 커피잔을 들고 그 남자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날씨가 많이 덥죠?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요?”

“뭐, 괜찮습니다. 사막이 더운 건 당연한 거죠. 이제는 적응이 돼서 별로 덥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몸에서 땀이 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자는 자신을 소준영이라고 소개했다. 원래는 서울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새로운 인생을 찾아 이곳 아사달로 이주한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이라면 안정적인 직업인데, 그걸 포기하고 여기로 오신 거군요?”

“예, 친구들이 다들 말렸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서울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는걸요.”

“지금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하하, 여기서도 시청에서 건설과에서 일합니다. 전에 하던 일이라, 사실 다른 일을 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또 건설과 공무원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 일이 천직인가 보죠?”

“모르겠습니다. 일이 힘들고 어려운 건 아닌데, 뭔가 마음이 공허하다고나 할까.”

“공허하다고요?”

“예, 이진석 사장님 앞에서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곳 생활도 제가 기대하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사달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군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막에 와서 뜨겁고 더운 날씨에 여전히 건설 공무원이고, 이게 내가 서울을 떠나서 찾아왔던 그 미지의 신세계인가 싶기도 하고요.”

남자는 뭔가 기가 빠진듯한 모습이었다. 아사달의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에 이주한 사람들 에는 그런 심리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이 특히 그런 증상을 보이고는 했는데,

전에 살던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아 모든 걸 포기하고 찾아온 아사달에서의 생활도 생각만큼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은 그나마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지 이곳에 어떻게든 적응하는 편이지만, 한국이나 다른 국가들에서 온 사람들은 사막 특유의 뜨겁고 무더운 기온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제법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진석도 그렇게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조용하게 돌아가는 편이라, 실제로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니시겠죠?”

진석의 말에, 소준영은 잠시 멈칫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색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최영미 점장이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왔다.

“새로 출시한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예요. 치즈 케익은 서비스고요.”

“아, 감사합니다.”

소준영은 목이 타는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한 번 떠난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이곳 생활에도 자신이 없고 말입니다.”

“그래도, 서울을 떠나올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이유요?”

소준영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물론, 있었죠. 새로 개척되는 신도시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서울에는 뭔가 더이상 새로운 게 없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아사달에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입니다. 찾아보면 할 일도 많고요.”

“그것도 맞아요. 사실, 건설 공무원도 나쁜 일은 아니에요. 재미도 있죠. 제가 가진 경험과 기술 그런 걸 이용해서 건물이 올라가고, 도시가 성장하는 걸 보는 건 즐거운 일이거든요. 그리고 아사달은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여기 여기는 내가 건설을 허가한 곳이고, 여기는 내가 수정한 계획대로 도시가 건설되었다고 말이죠.”

“하하, 조금 기운을 차린 모양이군요.”

“예, 조금 그런 것 같네요.”

소준영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케익까지 먹어치웠다.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어떤가요?”

“이 이 커피는 기묘하네요.”

“뭐가 기묘하다는 거죠?”

“마실 때는 차가운데, 마시고 나니까, 뭔가 뜨거운 열정이 솟는 느낌입니다.”

“하하, 정말요?”

“예, 우울했던 기분이 좋아졌어요. 뭔가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커피 때문이 아니라 이진석 사장님과 대화를 해서였겠죠.”

소준영은 갑자기 신이 난 듯, 이것저것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떠들어 대던 소준영은 시계를 보더니, 급히 일어났다.

“와, 시간이 벌써 이렇게..전 가봐야겠네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

진석이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소준영은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쨌든 우울해하던 남자가 기운을 차린 것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그 골드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신비한 효능이 발휘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드 커피의 효능은, 잊고 있던 뜨거운 열정을 다시 깨워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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