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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커피(2) (164/183)

181화. 뜨거운 커피(2)

뜨겁고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커피나무의 생장은 더디기만 했다. 그것은 커피 품종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에티오피아가 원산인 아라비카나, 자메이카에서 많이 재배하는 블루 마운틴, 세계최대의 커피 생산국, 브라질의 산토스 같은 대표 품종들도 모두 비슷하게 성장이 저조하고, 열매를 맺지 못 하고 있었다.

“커피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 하는 건 품종의 차이가 없군.”

진석이 한숨을 내쉬자, 진흙 인간의 사령관도 걱정스럽게 커피밭을 바라보았다.

“공간주님,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지 않습니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역시, 그러겠지.”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자라나는 것인지, 실패를 거듭할수록 역설적으로 언젠가는 잘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보통은 그런 부질없는 기대란 인간을 파멸의 늪으로 빠뜨릴 뿐이지만,

진석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진석에게는 무한대의 시간을 지배할 수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령관의 말대로, 시간은 진석의 편이었다.

진석은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무수하게, 커피나무의 종자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작고 부실하게나마 나무가 자라나고, 열매가 맺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업으로 진석도 지루해질 무렵, 뭔가, 다른 녀석들과 달리, 쭈욱 솟아오르는 커피나무가 보였다.

“저건 뭐지?”

다들 지지부진하게 자라나는 커피나무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오른 커피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것이다.

“공간주님, 저 커피나무는 뭔가 독보적인데요. 높이가 상당히 높이 자랍니다. 12미터는 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커피나무는 7미터에서 8미터 내외 정도의 크기에 머문다, 농장에서 키우는 커피나무들의 크기가 대충 그 정도고, 야생 커피나무는 10미터 가까이 자라지만, 12미터를 넘는 나무는 야생 커피나무 중에서도 드문 편이다.

거기다, 지금 사막의 고온 환경에서 자라는 다른 커피나무들은 대체적으로 2미터 이상을 넘지 못하는 느낌인데, 그 커피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한 그루의 나무만 엄청난 기세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다.

“사령관, 저 나무, 꽃 피는 것 좀 봐, 커피꽃이 정말 만개하고 있잖아.”

“오, 그렇군요. 하얀 커피꽃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열매도 빨갛게 익어가는데, 와, 멀리서 보기에도 열매가 엄청납니다.”

“그래, 바로 저 녀석이야. 고온에서는 잘 자라는 커피나무 말이야.”

일단, 변종이든 뭐든, 한 그루는 뜨거운 사막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커피나무를 찾아낸 것이다. 물론, 이 나무가 단지 이 한 세대에만 머무르는 특징인지는 확인을 해봐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키가 크다고 해서, 대를 이어 키가 큰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일단,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 크게 자란 거인 커피나무의 종자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씨앗들을 밭에 다시 심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진석이 씨앗을 뿌린 밭의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흙속에서 싹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을 거듭하며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진석이 좀 더 시간을 가속하자, 나무들이 10미터가 넘는 크기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공간주님, 다들, 10미터는 넘는 것 같습니다. 야생 커피나무들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거인 커피나무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선대의 특성이 후대로 전해지고 있어, 이건 새로운 품종이 탄생한 거야. 나무의 크기도 크고, 열매의 생산량도 굉장하고, 이게 대체 어떤 품종인 거지?”

진석은 커피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라비카 커피나무와 비교해도 훨씬 더 크고, 잎의 모양이 조금 달랐다.

보통, 아열대의 습한 기후에 잘 자라는 커피나무는 키가 큰 활엽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막에서 크게 자라난 거인 커피나무는 잎이 활엽수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좁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잎이 동그랗게 말려서 수분의 증발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비해, 뿌리 쪽이 굉장히 발달해서,

나무의 밑둥이 굉장이 굵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뿌리가 더 깊게 뻗어 있고 발달한 것 같았다.

“사령관, 흙 속을 좀 파보자고, 뿌리가 어떤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나무를 뽑을까요?”

“아냐, 그러지 말고, 옆을 단면으로 깊게 파라고, 나무는 손상시키지 않고 뿌리의 모습만 볼 수 있도록 말이야.”

진석은 나무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흙을 파서, 뿌리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마치, 반으로 케익을 갈라놓은 것처럼 지층을 파내자, 딱 절반이 드러난 거인 커피나무의 뿌리를 볼 수 있었다.

“와, 공간주님, 확실히 뿌리가 굵고 깊고, 굉장히 발달해 있네요. 잔뿌리도 많고 말입니다.”

“그래, 건조한 곳에 적응하기 위해 수분을 얻을 수 있는 뿌리가 깊게 발달했고, 거기에 고온을 견디기 위해서 넓었던 잎은 좁고 말린 모양으로 변형을 한 모양이야.”

“환경에 철저하게 적응을 한 거군요.”

“그렇지, 식물이 환경을 바꿀 능력은 없는 거니까. 결국,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만이 살아남는 거지.”

그리고 그런 유연한 적응을 결과는 혹독한 사막 기후에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커피나무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좋았어, 이걸로 사막에 적응이 된 커피나무는 찾은 것 같아.”

“공간주님, 그런데, 커피는 맛과 향이 중요한 거 아닙니까? 배가 고파서 먹는 작물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렇지. 음, 그럼 커피 열매를 따서 가공을 해야 하는데.”

열매를 수확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과연 커피를 가공해서 원두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무래도, 커피콩을 로스팅하거나 하는 일은 전문가의 손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일단, 진석은 수확한 커피콩을 가지고 공간을 나왔다.

***

아사달, 제이에스의 저온 창고.

“커피콩이라고요?”

커피 생두를 로스팅할거라는 말에, 비서실에 있던, 김선영은 약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직, 아사달에는 커피콩을 가공하는 시설은 없었다. 진석은 일단, 한국 본사에 연락을 해서,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보내 달라고 지시했다. 김선영에게 로스팅 전문가와 장비들 문제를 맡기고는 진석은 다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

“공간주님 다시 돌아오셨군요?”

“그래, 평지에서 신품종 개발에는 성공했으니까, 이번에는 산에서 뭔가 특별한 커피를 만들어보자고.”

두 번째로 할 일은, 공간의 산에서 특별한 효능을 가진 커피를 재배하는 일이었다. 공간의 산은 공간 내의 에너지의 흐름이 왜곡되면서 작물들에 영향을 미쳐, 산에서 재배되는 작물들에는 초자연적인 신비로운 효능이 생기게 된다.

진석은 특별한 커피를 재배해서, 오아시스의 카페들에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진석은 이번에는 산으로 이동해서, 일꾼들과 산 중턱쯤에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산의 중간 정도는 커피가 재배되기에는 정당한 기후라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이 일꾼들을 동원해 밭에 씨앗을 뿌리자, 커피나무들을 금세 자라나기 시작했다.

“와, 확실히 산의 중간 지대의 밭에서는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군요?”

사령관의 말에,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 기후가 커피 재배에는 딱인데 말이야.”

하지만, 커피는 잘 자라고 있었지만, 다들, 평범한 커피나무들이었다. 야생처럼, 자유롭게 자라고 있어서 보통의 커피농장의 나무들보다 더 크게 자라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면서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특별한 조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진석도 좀 지쳐 갈 때쯤, 하얗게 피던 커피나무의 꽃들 사이에서 새빨간 꽃이 피는 나무가 보였다.

“뭐지?”

“공간주님, 저 커피나무는 좀 이상하네요. 꽃이 빨간색인데요.”

“그러게 말이야. 뭔지 확인해 볼까?”

진석과 사령관은 빨간 꽃이 피는 커피나무로 향했다. 커피나무는 정말 새빨간 꽃들이 피고 있어서 하얀 꽃들이 피는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 확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진석이 좀 더 시간을 가속하자, 이번에는 커피열매가 점점 노란색을 띄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황금빛이 되어 버렸다.

“뭐지? 이 황금 커피는?”

“공간주님, 이 녀석은 별종인데요. 꽃은 빨갛고, 열매는 황금색이네요. 황금 커피 열매 말입니다.”

진석도 다 익은 커피 열매를 만져보았다. 보통 빨갛게 익어가는 커피 열매와 달리, 이 열매는 노랗게 익어가다가 끝에 가서는 완전히 황금빛이 되어버려 있었다.

“진짜 황금은 아닐 테고, 아무튼 색은 뭔가 그럴듯한데.”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 황금 커피나무를 더 심어보았다. 씨앗을 채취해서 밭에 황금 커피나무의 종자들만 심어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후대에 특성이 전해지고 있는지, 빨간색의 꽃이 피고, 뒤이어 황금색의 커피열매가 익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색이 저렇게 변한다는 건 변종이 생겼다는 증거니까. 이 커피에는 뭔가 초자연적인 힘이 들어 있다는 말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과연 어떤 효능이 있는 걸까요?”

“음, 커피 열매라 먹어 보기도 그렇고. 아무튼, 이 황금 커피 열매도 수확해서 밖으로 가져가 봐야겠어. 그래서 커피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괜찮으면 카페에서 이 커피 원두를 사용하면 좋겠지.”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일단 커피를 수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꾼들이 황금빛 커피 열매를 따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아사달의 제이에스 저온 창고로 커피콩들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

아사달, 제이에스 지사, 진석의 사무실.

“사장님, 한국에서 박영진 씨가 도착했습니다.”

“아, 알았어요. 선영 씨.”

비서실에 있던 김선영이 잠시 문을 열고 박영진이 도착한 것을 알렸다. 박영진은 한국에서 온 로스팅 전문가였다. 커피는 원두콩을 로스팅 하는 기술에 따라 맛과 향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원두콩의 품질 못지않게 로스팅 작업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고 30대 중반 정도의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잘 오셨습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박영진이라고 합니다.”

“앉으시죠. 커피 로스팅 전문가시라고요?”

“예, 그쪽 일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불려지고 있네요.”

“멀리 아사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사달의 인상은 어떤가요?”

“사막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와보니까. 도심은 서울과 비슷하네요. 서울보다도 더 쾌적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시내는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죠. 아무튼, 이번에 저희 제이에스 그룹에서 새로 개발한 커피들이 있습니다.”

“새로 개발한 커피라면? 무슨 품종인가요?”

“뭐, 아라비카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이 많아서, 우리는 아사달 커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사달 커피요?”

“예, 일반 커피와 열매는 큰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맛과 향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생두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로스팅 전문가인 박영진 씨를 초청한 겁니다.”

“음, 그렇군요. 저도 기대가 되네요. 로스팅을 많이 해봤지만. 전혀 새로운 품종의 로스팅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예, 처음으로 하는 아사달 커피의 로스팅이라, 사전 정보도 없고 최고의 맛을 위해서는 박영진 선생님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상상력도 필요하겠죠.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일이니까요.”

“그렇겠네요.”

박영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사달 커피 외에도, 황금커피라는 신품종도 있습니다.”

“황금커피요?”

“예, 열매가 황금빛이 나는 신품종이죠.”

“하하, 그래요. 황금빛 커피는 처음 들어보는데, 아무튼 저로서도 신기한 경험이군요.”

“예,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일단, 커피 생두를 보러 가시죠.”

진석은 박영진을 저온 창고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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