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뜨거운 커피(1) (163/183)

180화. 뜨거운 커피(1)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그래서, 사과와 배는 어떻게 된 거예요?”

하백시의 김형태 농장에서 하백 사과의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보통 묘목을 심고, 7년 이상 키워야 수확이 가능하다. 시간을 가속할 수 없는 남고비의 하백시에서는 오롯이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과의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일단은 몇 개 가져와 봤는데, 한 번 보세요.”

최영미는 진석이 내민 상자를 열어 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사과라고요?”

“사막에서 잘 자랄 수 있게 개량한 신품종이죠.”

“예? 완전히 다른 종류 같은데요? 이게 무슨 사과예요?”

“하백 사과라는 거죠. 남쪽에 하백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뭐, 그렇다고 치고, 배는요?”

“뭐, 배는..일단은 한국에서 수입을 해서 써야 할 것 같아요. 사막의 뜨거운 기후에 모든 작물이 적응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최영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다지 실망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진석이 말해준 대로 하백 사과로 주스와 샤베트를 만들어 보고는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음, 굉장히 맛있는데요. 샤베트도 딱 먹기 좋고, 상큼해요. 하백의 북카페에서는 이런 걸 신메뉴로 내놓았다는 거죠?”

“예, 반응이 좋아요.”

“그러면 우리도 질 수 없죠. 우리도 하백 사과 주스와, 샤베트를 만들어야겠어요. 그나저나, 이 하백 사과는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는 거죠?”

“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당분간은 외부에서 생산을 해야겠지만, 물량은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리고, 전부터 생각하던 건데요. 커피는 사막에서 재배를 못 하나요?”

“커피요?”

“예, 카페에서 역시 가장 기본은 커피잖아요. 뭐, 사막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어려우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고요.”

최영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여러 가지 작물들을 재배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보통은, 과일나무와 곡물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커피도 전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기호 식품이고, 최영미 점장의 말대로 카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커피니 말이다.

지금은 커피의 원두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하고는 있지만,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커피를 생산하게 되면 커피를 자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 수출을 통해서 막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커피라,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어차피, 사막에서 쉽게 자라는 작물은 없으니까요. 커피도 그렇겠지만, 사실 그게 큰 문제는 되지 않죠.”

“그래요?”

“예, 이 고비사막에서는 모든 일이 새로운 도전이죠. 도전이 아닌 일이 없는 느낌입니다. 하루하루가 말이죠.”

“후후, 좋은 의미인 거죠?”

“산다는 건, 좋고 나쁜 게 없죠. 좋은 길과 나쁜 길이 없듯이 말입니다. 어떤 길이든, 어디론가 데려다주죠. 길이 험하다고 해서 그걸 탓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새로운 커피는 언제쯤 나오는 거죠? 지난번에 그 사과는 하백 사과였으니까, 이번에는 아사달 커피라고 하는 게 어때요? 가능하다면 말이에요.”

“후후, 뭐. 새로운 커피를 개발하게 되면 그렇게 이름을 짓도록 하죠.”

진석은, 카페를 나와, 아사달의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로 향했다.

***

아사달,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농업 연구소로 들어가자, 한유식 부장이 진석을 맞았다.

“사실은, 오아시스에서 커피를 재배해 볼까 하는데요. 커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말입니다. 가능할까요?”

“사막에서 커피를 말입니까?”

한유식 부장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커피는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작물이죠. 고온에도 어느 정도 잘 적응하기는 하지만, 최대 온도가 30도가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커피 산지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는 주로 고온지대에서 재배가 되거든요. 물론, 품종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커피는 30도 이내의 습한 기후에서 적합한 작물입니다.”

“그러면, 사막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일단, 사막은 너무 온도가 높고, 건조한 지역 아닙니까. 커피 산지들은, 주로 에티오피아의 고지대, 브라질, 동남아시아 같은 곳들이죠. 대충 어떤 환경인지 감이 오시지 않나요?”

농업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한유식은 당연하다는 듯이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일반적인 농업에 관한 지식에 비추어 보면, 사막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혹은 가능하더라도, 상업적인 대규모 농업은 어렵다는 것인 모양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이에스 그룹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들에 도전을 해왔으니까요.”

“물론,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제이에스 그룹에서 그동안 놀라운 신작물들을 개발하기는 했죠.”

한유식은 진석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뭔가를 말하려다가 멈추었다.

“뭐, 제가 뭐라고 하든, 이진석 사장님은 새로운 사막에서 재배할 수 있는 커피를 개발하려고 하시겠죠?”

“하하, 제 속마음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뭐, 사장님의 능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다양한 종류의 커피의 종자들이 필요합니다. 그걸 베이스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싶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본사 연구소에 보관하던 종자 샘플들이 이번에 많이 이곳 아사달로 이전해 왔습니다.”

“물론, 그래야겠죠. 이제, 제이에스 그룹의 중심도, 한국에서 이곳 아사달로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아사달과 하백 등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제이에스 그룹도 주요 시설과 자원들을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특히 농업 연구소와 관련된 시설과 여러 종자의 씨앗들은, 남고비의 농업 생산이 증가하면서 중요도가 높아진 아사달 등의 도시들로 이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유식은 진석을 위해서 여러 종류의 커피 종자들의 종자 샘플이 담긴, 플라스틱 가방을 건네주었다. 가방 안에는 종류별로 소량의 종자들이 구분이 되어 담겨 있었다.

“이거면 충분하겠군요.”

“그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진석은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를 나와, 저온 저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진석이 공간으로 들어서자, 진흙 사령관이 나와서 진석을 맞았다.

“오늘은 뭘 가지고 오신 건가요?”

진석은 가방을 사령관에게 열어 보여주었다.

“뭐죠?”

“커피의 종자들이야.”

“커피라?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그 음료를 만드는 열매 말이군요?”

“그래, 카페인 때문인지, 사람들은 종종 커피에 중독되기도 하지.”

“마시면,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정신을 맑게 하는 거 아닌가요?”

“뭐, 그렇기도 하고. 기호 식품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가 그동안 키웠던 곡물이나, 과일과는 좀 달라. 식량이나, 먹거리보다는 맛과 향, 그리고 카페인이 주는 활력을 위해서 먹는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생산성도 중요하지만, 맛이나 향도 중요하겠네요.”

“그래. 하지만, 일단은 커피를 사막에서 키울 수 있어야겠지. 맛과 향은 그 후에 따져도 늦지 않다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커피는 어디서 재배하실 건가요?”

일단, 커피는 아사달 근처의 농장에서 키워 볼 생각이었다. 아니면, 하백도 괜찮고 말이다. 둘 다 고온에 건조한 기후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하백은 물이 좀 더 풍부한 지역이라는 차이는 있었다.

일단은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었다. 커피의 특성상, 사막에서는 잘 재배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적응 실험을 하다 보면 돌연변이가 나와서, 새로운 품종의 커피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단은, 사령관, 사막의 기후와 비슷한 오아시스의 평지에서 키워 보자고, 그리고 공간의 산에서도 커피를 재배하는 것도 괜찮겠지.”

“평지와 산 양쪽 모두에서 말입니까?”

“그래, 오아시스의 도시들에 북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뭔가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도 좋을 테니까. 카페에서 가장 많이 찾는 건, 아무래도 커피라고. 산에서 재배한 특별한 커피를 가져가서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어 팔면, 재밌을 거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그러면, 평지와 산 양쪽에서 커피를 재배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사령관.”

진석은 잠시, 일꾼들이 밭을 만드는 동안 오아시스의 저택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풀장에서 수영도 즐기고 영화관에서는 평소에 좋아하던 서부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미 작업 준비가 모두 끝나고 사령관이 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간주님, 작업을 위한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벌써 말인가?”

진석은 영화 한 편을 더 보고 싶었지만, 일을 위해서 다시 일어났다. 일단은 오아시스 옆의 평지에 만든 밭으로 향했다.

“공간주님, 이곳은 아사달과 비슷한 기후입니다. 온도는 특별히 다른 공간에 비해 더 높게 설정되어 있는 지역이죠.”

“그래, 여기는 공간에서도 특히 기온이 높게 설정이 되어 있었지.”

상태창을 통해서, 아사달의 기온과 비슷한 온도를 설정해 놓은 지역이었다. 밭이나 다른 커피 농사를 지을 준비는 마친 것 같았다.

진석은 아사달에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수로를 통해서 물은 충분히 공급을 해 놓았다. 아사달이나 하백에서도 물의 공급은 원활한 편이니 말이다.

일단은 시험 삼아, 온도가 그리 높지 않은 일반 밭에서 커피나무를 재배를 해보기로 했다. 실험을 위해서 특별히 온도를 사막 수준으로 높혀 놓은 밭을 제외하면, 오아시스의 기온은 그리 높지 않은 아열대 기후와도 비슷했다.

“사령관, 일단, 뜨겁지 않은 보통 온도의 밭에 심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그러면 씨앗을 심도록 하겠습니다.”

일꾼들이 커피 종자들을 종류별로 나누어 구분해, 밭에 한 구역씩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자, 커피 씨앗들에서 싹이 트고, 이내, 줄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해지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와, 커피나무가 제법 큰데요.”

커피나무들은, 따로 가지치기 등을 하지 않고 야생 그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대략 큰 것은 10미터 가까이 자라는 느낌이었다. 하얀 커피꽃이 피더니,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고 이내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음, 커피는 제법 잘 자라는군요.”

“그럼, 이번에는 온도를 높힌 밭에 한 번 심어보자고, 사막의 뜨거운 기온에서는 어떨지 보자는 말이야.”

한유식 부장의 말로는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곳에서는 잘 재배가 되지 않는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맞다면, 온도를 높힌 밭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일꾼들이 이번에는 사막처럼 뜨거운 기온의 밭에 커피를 심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다양한 커피 종자들이 구역을 나누어 심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가속하자, 싹이 나오고, 줄기가 뻗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무의 잎은 어딘지 시들시들한 느낌이었고 나무의 성장도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공간주님,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아까, 보통 상온의 밭에서는 10미터 넘게 자라는 것 같았는데, 여기 고온의 환경을 조성한 밭에서는 3미터도 안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꽃이 피기는 하지만, 열매는 거의 맺히지 않고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커피 재배는 힘들겠는데요?”

역시 농업 전문가인 한유식 부장의 의견이 적중했다. 고온의 지역에서는 커피나무의 생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령관, 처음부터 잘 되겠어? 다시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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