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물컹한 사과(3) (162/183)

179화. 물컹한 사과(3)

오태규는 한국에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군대를 전역한 후에 우연히 듣게 된 친구의 죽음이었다고 했다.

“친구의 죽음요?”

“예, 사실 그리 친한 녀석은 아니었어요. 그저 오다가다 얼굴을 보면 인사나 하고, 점심시간에 만나면 같이 밥 먹으러도 가고 그러는 녀석이었죠.”

“오태규 씨의 친구라면, 상당히 젊은 나이일 텐데 어쩌다가?”

“비가 오던 어느 날,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겁니다. 사고를 낸 가해자는 음주 운전 중이었고, 우산을 쓰고 신호를 보고 정상적으로 횡당보도를 건너던 그 녀석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거죠.”

“저런?”

“뭐, 그런 일을 가까운 친구가 겪게 되니까, 뭔가, 인생이란 게 참, 예측불가능하구나, 또 허망하구나 하는 염세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세계 여행을 다니게 된 겁니까?”

“예, 동기가 된 건 사실입니다. 여행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면, 뭐가 목적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거죠. 고등학교 시절에 별 생각없이 대학에 가면 다 해결이 된다는 식의 선생님들 말에 따라서 그저, 대입수험 준비만 하면서 살았거든요.”

“하하, 그래요?”

진석은 오태규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진석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예, 하지만, 대학에 와도 인생의 해답 같은 건 없더군요. 오히려, 친구의 죽음으로 인생이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죠. 그래서, 뭔가 해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겁니다.”

“그래서 해답은 찾았나요?”

“아뇨, 해답은 못 찾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은 하나 있죠.”

“깨달음요?”

“예, 사실, 여기저기 세상을 구경하고 느낀 건, 한국이 가장 좋다는 것과, 해답이란 건, 어디서 찾거나 누군가에서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답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마치 자연의 섭리와도 비슷하죠. 이거 하나 먹어보겠습니까?”

“이게 뭔가요?”

오태규는 진석이 내민, 하백 사과를 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이러저리 만져보았다.

“하백 사과라는 겁니다.”

“하백 사과요? 이게 사과라고요?”

오태규는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번 드셔보세요.”

“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요. 이건, 느낌이..”

“촉감이 좀 그렇지만, 먹어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진석은 카페 직원에게 칼과 접시를 부탁했다. 그리고 칼로 하백 사과를 잘라서 오태규에게 내밀었다.

옆에서 그걸 보던 이수현 점장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다가왔다.

“사장님, 그건 뭐예요?”

“하백 사과라는 겁니다. 사실, 이 사과를 보여 드리려고 오늘 카페를 찾아온 건데 말이죠.”

“하백 사과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새로 개발한 신품종 사과죠. 이수현 점장님도 한 번 드셔 보세요. 사실, 이 사과를 이용해서 뭔가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데.”

“음, 그래요. 그럼 저도 한 번 줘보세요. 일단 맛을 봐야, 답이 나오겠죠.”

진석은 하백 사과를 잘라, 한국에서 온 대학생 오태규와 이수현 점장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다.

“음, 생각보다 맛있는데요.”

오태규는 별로 먹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한 입 맛을 보고 나자,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고 있었다.

“저도요. 굉장히 달고, 즙이 많은데요. 목마를 때 좋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물컹거리는 느낌에 식감도 이상한 것 같고, 좀 그랬는데. 이곳 하백도 그렇고, 남고비는 어딜 가도 태양이 내리쬐고 덥고 건조하고, 항상 땀이 나는 그런 기후니까요. 다들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죠.”

“맞아요. 여기 카페도 그렇고, 물이나, 음료를 먹는 양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돼요. 다들 더워서 시원한 음료나 과일을 찾는다고요.”

“그래서, 저도.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런 더운 사막에서는 이런 과즙이 풍부한 과일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오태규 씨 생각은 어떤가요?”

“음,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하백 사과는 저의 깨달음과 비슷하네요.”

“깨달음요? 그게 뭔데요?”

이수현 점장이 오태규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뭐 별건 아니고,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거죠. 그때, 그 상황에 맞는 답이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 하백 사과처럼 말입니다.”

“후후, 굉장히 진지한 분이네요. 아무튼 이 사과는 먹을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걸로 뭔가 주스 같은 걸 만들어 볼까요?”

“주스든 뭐든, 시원하고 갈증 해소가 될만한 거면 좋을 것 같아요. 샤베트도 가능할까요?”

“주스나 샤베트라?”

이수현 점장은 진석의 말에, 하백 사과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수현이 사과를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진석은 다시 오태규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 오태규 씨는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아프리카로 갈 건가요?”

“그럴 생각입니다. 한국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가는 거예요. 아프리카로 갈 경비를 버는 거죠. 그리고 아프리카로 가볼 겁니다.”

“남미와 아프리카를 가봤다면, 유럽이나 미국은 가봤나요?”

“아뇨, 그런 곳들은 인터넷이나 정보가 많으니까요. 직접 가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죠.”

“그래요? 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저와는 생각이 다르네요.”

“예?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죠. 하지만, 막상 와보면 어떤가요? 인터넷이나 SNS에 소개된 것과 비슷한가요?”

“그건, 사실,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그리고 글로 설명을 듣던 것들과는 많이 다르죠. 아니,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는 이런 열기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으니까요.”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국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아프리카가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계의 중심은 서구사회죠. 물론, 아시아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볼거리나 배울 거리는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에 많은 편이죠.”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기회가 되면, 유럽이나 미국에도 가보는 걸 권하고 싶네요. 저도 직접 가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던 경험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요. 인생의 선배로서 하는 충고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선입견은 젊은이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죠.”

진석의 말에, 오태규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가졌던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그 이야기도 일리가 있네요. 뭐, 일단은 아프리카부터 가볼 생각이지만, 참고하겠습니다.”

둘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이수현은 주스를 만들어왔다.

“자, 아까, 이진석 사장님이 부탁하신, 하백 사과주스예요. 샤베트는 아직 얼려야 해서,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이수현이 가져온 주스는 밝은 노란색 빛을 띠고 있었다. 얼음도 들어가 적당히 시원해서 진석이 한 모금 입안으로 넘기자, 시원하고 달콤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와, 이거, 뭔가를 더 넣은 건 아니죠?”

“전혀요. 100%, 하백 사과주스라고요.”

“맛이 굉장히 좋은데요. 얼음이 들어가서 그런가?”

“그러게요. 제 입에도 굉장히 맛있는데요.”

오태규도, 주스의 맛에 감탄을 한 표정이었다.

“저도, 이 하백 사과는 갈아서 주스를 만드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단맛이 강해서 따로 더 첨가할 것도 없고, 그리고 과즙으로만 만들어서 그런지, 달지만 뒷맛이 깔끔해요. 마시고 나며면 갈증도 없어지는 느낌이고.

“그래요, 샤베트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맛을 보면 좋겠네요. 어쨌든, 이 사과주스는 메뉴로 내놓아도 좋겠어요. 점장님.”

“뭐, 물론이죠. 사과만 충분하다면요.”

“하백 사과라면, 걱정할 거 없습니다. 당분간은 제가 직접 공급해드릴 예정이고, 그 후에는 하백시에서 직접 재배해서 공급하게 될 겁니다.”

“그래요? 하백시에서 직접 사과를 재배한다고요?”

이수현 점장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 오태규는 짐을 싸서 일어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래요, 저도 오태규 씨와의 대화가 재밌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디로 가시나요?”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남은 여행도 즐거웠으면 좋겠네요.”

오태규가 자리를 떠나고, 진석은 북카페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호숫가에 있는 카페이기는 했지만, 북카페 오아시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여기저기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곳곳에 책장도 있고, 책을 읽기 좋은 작은 테이블과 소파들도 넓게 퍼져 있었다. 특히 비가 오지 않는다는 특징을 잘 살려서, 노천 카페를 만든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기온이 높은 곳이라 냉방이 되는 실내 카페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더위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들은, 실외의 노천 카페를 더 선호했다. 진석도 아사달 등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오래 지내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그늘만 있으면, 실외에서도 그리 덥다는 느낌은 없었다.

진석처럼 사람들도 어느새 이 사막의 기후에 적응을 한 셈이었다.

사막에 적응한 것은 진석과 사람들만이 아니어서, 북카페 오아시스 하백점에는 노천 카페 여기저기에 고양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북카페의 경우에는 실내에 설치했던 캣타워도 이곳에는 실외에 설치를 해 놓아서 고양이들은 주로 실외의 노천 카페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고양이들의 천국이네요.”

“예, 그렇죠. 고양이들이야 귀여운 녀석들이라, 손님들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른 애완동물과 달리, 고양이들은 기본적으로 잠을 많이 자는 편이라, 사람들을 귀찮게 하기 보다는 별일이 없으면 이런 더운 한낮에는 낮잠을 즐기는 편이다.

이곳의 고양이들도 돌아다니는 녀석들보다는 그늘 아래에서 뒹굴거리는 녀석들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샤베트가 다 된 모양이에요.”

이수현의 안내로 카페를 구석구석 돌아보다 보니, 어느새, 하백 사과 과즙으로 만든, 사과 샤베트가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과즙을 얼려, 시럽이나, 단맛을 첨가하는 편이지만. 하백 사과는 당분이 풍부해서 그냥 과즙을 얼려 샤베트를 만든 모양이었다.

“이것도 주스처럼 아무것도 넣지 않은, 무첨가라는 거죠?”

“예, 저도 한 번 먹어볼까요?”

이수현 점장은, 막 얼려서 나온 사과 샤베트를 한 스푼 떠서 맛을 보았다.

“음 괜찮은데요. 과즙을 얼렸는데도 사과향도 진하고 시원하고 맛있어요.”

진석도 샤베트 맛을 보았다. 이수현 점장의 말대로, 사과향이 느껴지는 게, 일반적인 아이스크림 못지않게 달콤한 맛이었다. 그리고, 첨가물이 없어서 그런지 뒷맛은 더 깔끔하고 개운한 것도 장점이고 말이다.

“손님들에게도 한 번 드려보죠.”

처음으로 만들어 본 주스와 샤베트는 테스트를 겸해, 무료로 손님들에게 제공되었다.

진석은 일일이 돌아다니며 반응을 들어보았다.

“와, 맛있어요. 이게 뭘로 만든 거죠?”

“하백 사과라는 겁니다. 실물은 이런 거죠.”

샤배트나 주스의 맛을 본 사람들은, 하백 사과를 먹어보라고 권해 주자 거부감 없이 사과를 받아 맛을 보았다.

사과는 식감이 그리 좋다는 평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냥 생으로 잘라 먹기에도 달고 맛있다는 평가였다.

“샤베트도 시원해서 좋지만, 전 찬 걸 싫어해서 이게 더 시원하고 맛있는 것 같아요.”

찬 걸 잘 못 먹는다는 여학생은, 생으로 먹는 하백 사과가 더 맛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반응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이 정도면 하백 사과의 상품성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셈이었다.

“사과가 반응이 좋은데요.”

이수현 점장이 진석에게 다가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백 사과를 재배해야겠군요. 이제부터 시작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