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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장미(4) (159/183)

176화. 사막의 장미(4)

“이게 뭐예요?”

서은주는 진수가 가져온 모종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물주머니 장미라는 겁니다.”

“물주머니 장미요? 그런 장미도 있었나요?”

“그건, 제가, 공간 아니, 실험실에서 새로 개발한 품종이죠.”

“그런데 왜 이름이 물주머니 장미인 거죠?”

“장미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위로는 꽃이 피고, 아래쪽으로는 물주머니가 생겨요.”

“물주머니요?”

“예, 수분을 저장하는 장치인 거죠. 그래서, 뿌리가 그리 깊지 않아도, 몸 안에 수분을 저장해서 건조한 사막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겁니다. 신기하죠?”

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감탄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살짝 의심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물주머니 장미라? 일단 심어보기는 할게요. 저온실에 키우면 되는 거죠?”

“아뇨, 이건, 아사달의 노지에 심으려고 만든 겁니다.”

“그냥, 일반 땅에요? 여기는 꽃은 그다지 잘 자라지 않는 것 같던데, 꽃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뿌려줘야 해서 관리가 어려워요.”

“이건, 그럴 걱정이 없는 품종이에요. 적당히 가끔 물을 주면, 물을 최대한 저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요?”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 아닙니까, 한 번 은하수 농장 앞에 공터에 좀 심어보세요. 장미 농장 앞인데, 여기는 너무 휑하잖아요?”

진수는 텅 비어 있는 농장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새로 농장이 들어선, 화훼단지 앞쪽은 아직 다른 시설들이 없어서 황토색의 황무지 그 자체였다.

여기 은하수 농장뿐만 아니라, 아사달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벌어지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새로 생긴 계획 도시라,

시원하게 길도 뻗고 각 블록들이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기는 했지만, 넓은 각 블록들 사이에 건물 몇 개가 있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아서, 공터나, 황무지 같은 빈 공간이 많았던 것이다. 거기에 사막 특유의 황량함이 더 해져서,

뭔가 삭막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메마른 황토지대도 많이 보이고 말이다.

“이걸, 그냥, 이런, 황토 위에 심으면, 자란다는 거죠? 매일 물을 주지 않아도 말이에요?”

“심으면서, 한 번 정도 물을 주고, 가끔 물을 뿌려주면 충분할 겁니다. 매일 줄 필요는 없고요.”

“그럼, 한 번 심어볼게요.”

진석은 공간에서 가져온 모종을 은하수 농장에도 나눠 주고, 그 외에도 다른 아사달 주민들에게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최영미 점장은 모종이 담긴 상자를 들고, 카페로 들어오는 진석을 바라보며 인사를 해왔다.

“어머, 사장님, 그게 다 뭐예요?”

“장미 모종입니다.”

“장미요? 모종이라면, 작은 묘목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예, 이걸 카페 주위에 심으면 괜찮을 겁니다.”

“화분에 말인가요?”

“아뇨, 그냥, 땅에, 심으시면 될 거예요. 이건,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거든요.”

“음, 그래요? 장미라는 거죠? 아사달에는 꽃들은 키우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맞아요. 사막 기후라, 실외에서 꽃이 잘 자라는 편은 아니죠. 수분이 빨리 건조되는 편이라,

화분에 자주 물을 뿌려주는 방식이 아니고는 꽃을 키우기는 좀 어려우니까요. 아니면 실내에서 키우던가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땅에 심으라면서요?”

“예, 노지에서 자랄 수 있게 개량을 한 장미 품종입니다. 이름은 물주머니 장미라고 하죠.”

“물주머니 장미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이름처럼, 물주머니가 있어요, 장미 넝쿨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작은 물주머니가 아래쪽에 생겨서 거기에 수분을 저장하는 거죠. 그래서,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앞으로는 익숙해질 겁니다. 아사달 곳곳에 이 물주머니 장미를 심을 생각이거든요.”

“그래요?”

최영미는 신기하다는 듯이 장미 모종을 살펴보았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저도 한 번 심어볼게요. 그럼, 학교에도 이 장미를 심어볼까요?”

“아, 맞아요. 최영미 점장님은 교장 선생님이셨죠?”

아사달 초기에 초등학교 교장을 맡았던 최영미는 아직도 교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처럼 교사수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최영미가 학교 행정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 새로 아사달로 이직한 신임 교사들의 적응을 잘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영미도,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온 아사달이었지만 한국에서 하던 교사일, 정확히는 학교 행정 업무가 적성에 맞았는지, 여전히 오전에는 학교 교장을, 그리고 오후에는 카페 점장 일을 하는 이중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아사달에는 한국이나, 이전에 살던 곳에서 하던 직업과는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더러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면서 한국에서 하던 일을 부업 삼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맞아요. 학교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거였는데, 여기서 또 학교 일을 하고 있네요?”

“두 가지 일을 하려면 힘들지 않나요?”

진수의 질문에 최영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 반대에요.”

“반대라고요?”

“그래요, 내가 하나 깨달은 건, 내가 교사 일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는 거였어요.”

“학교에서 일하는 게 싫어서 한국을 떠났던 거 아니었나요?”

“저도 그런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그보다는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게 지루했던 거예요.”

“음, 교사나 학교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지루했다 이건가요?”

최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힘들다기보다는 재밌는 거 같아요. 오전에는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학교 업무를 보다가, 오후에는 카페에서 점장으로 일하고요. 저는 이렇게 여기저기 왔다 갔다 좀 정신없이 사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두 배로 일할 수도 있고 말이죠?”

“사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는 않아요. 학교도 그렇고 카페도 그렇게 바쁜 곳은 아니거든요. 아무튼, 이 장미들은 잘 키워볼게요. 물주머니가 생기는 장미라면, 학교에 심으면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보면 좋아할 겁니다. 물주머니가 꽤나 재밌게 생겼거든요.”

***

아사달 시청, 이성우 시장의 집무실.

“이게 새로 개발한 장미인가요?”

이성우 시장은, 모종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 사막 기후에 잘 자라는 신품종입니다. 노지에 그냥 심고, 크게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죠. 잘 자라고, 또 쉽게 퍼지기도 하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도시의 미관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좋을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시청을 비롯해서, 학교와 병원,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 그리고 중앙 공원에도 이 물주머니 장미를 대대적으로 심을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시 차원에서 장미를 심는 사업을 하자는 건가요?”

“그렇죠. 개개인이 집 근처에 심는 것도 좋지만, 아사달 시에서 공공시설에 장미를 심는 거죠.”

“음, 아직, 어떤 꽃인지도 본 적이 없는데,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닐까요?”

“뭐,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생존능력 같은 것은 제가 보증하죠.”

“그 정도로 자신하신다면, 믿어야겠죠. 하하..”

“이성우 사장님도, 이 물주머니 장미가 핀 모습을 보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시장의 권한으로 공공기관과 공원 등에 물주머니 장미를 심는 걸 허가 하겠습니다.”

***

도시 설계사, 장유진의 사무실.

이성우 시장을 만난, 진석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도시의 전체적인 설계를 맡고 있는 장유진의 사무실이었다.

“이게 그 물주머니 장미라는 거군요?”

“예, 화분이라도 하나, 다 자란 장미를 가져오고 싶었지만. 좀 크게 자라는 녀석이라, 전체적으로 넝쿨이 크게 퍼지고,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물주머니도 생기고, 그때부터 장미도 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화분에 넣기에는 좀 큰 녀석이죠.”

“음, 이 장미를 도시 전체에 심으신다는 계획이신 거죠?”

“예, 맞아요. 아사달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발전된 도시가 되어가고 있지만, 도시의 외관은 아직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뭐랄까, 너무 삭막하다고 할까, 무채색의 빌딩들만 늘어나고 있어요.”

진석의 말에, 장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해요. 날씨가 더워서,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도시다 보니, 대부분 건물 안에만 있고, 건물 밖은 무심한 게 이 도시의 사람들이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도시 외곽의 농업지역은 꾸준히 녹지대가 늘어나서 보기에 괜찮은데, 도심은 오히려, 빈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황토색의 황량한 땅들이 보이는 게 썩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그건, 도시 설계과정에서 빈 공간을 일부러 좀 만들었으니까요. 서로 간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장유진 설계사의 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도심에 건물들 간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식이니 말이다.

대신, 그렇게 남고 중간에 비어 있는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공터가 되고 있다는 것은 좀 문제였다. 그래서 진석은 그 비어 있는 도시의 공간을 꽃으로 채워 보기로 한 것이고, 그 첫 번째로 선택된 꽃이 바로 장미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빈 공간에, 장미들을 심으면, 뭐랄까?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도시라는 그림에 컬러풀한 채색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에 채색을 한다고요? 재미있는 비유법이네요. 그리고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요. 장미 외에도, 다른 작은 식물들을 심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것도 좋겠죠. 하지만, 아직은 장미 정도 외에는 생존력이 그렇게 좋은 식물이 마땅한 게 없어서 말입니다. 도시에 전체적으로 심을 거라, 손이 많이 가고, 자주 관리해야 하는 건 부적합하죠.”

“그건 그래요. 농작물처럼, 대규모로 일정하게 키우는 작물이라면, 시설을 만들어서 관리하면 되겠지만, 이 장미처럼, 빌딩의 뒤편이나, 거리 중간중간 심는 것들이라면 따로 관리까지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일단, 장유진 씨가, 장미를 심으면 안 될 곳과, 심어도 될 곳을 좀 구분해 주었으면 해요. 그러면, 참고해서 장미를 본격적으로 심을 겁니다.”

“예, 제가, 한 번 계획을 세워 볼게요. 장기적인 도시 건설까지도 고려해서 말이죠.”

도시 전체를 설계하고 있는 장유진의 자문을 구해서, 장미를 심을 구역을 선정했고, 그렇게 대규모로 아사달의 도심 지역과, 중앙 공원, 그리고 각종, 건물과, 공공시설에도 물주머니가 장미가 심어지기 시작했다.

진석의 예상대로 물주머니 장미들은, 초기에 몇 번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건조한 토양에서 제법 잘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아사달의 도심 구석구석에 빨간 장미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녹색의 장미 넝쿨과, 빨간 장미꽃, 그리고, 주황색의 물주머니들을 도시의 여러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

“아, 목말라. 물주머니 장미에서 물 마시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장난삼아, 물주머니 장미의 주황색 물주머니를 따려고 하고 있었다. 물주머니 하나를 따서, 살짝 벌리자 안쪽의 물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은 그걸 입에 대고 마시는 것이었다.

“맛있어?”

“응, 물인데 달아.”

물주머니 하나에 들어있는 물의 양은 반 컵 정도도 안 되는 적은 양이었지만, 장미꽃에서 열리는 물주머니라, 뭔가, 꿀처럼 당분이 함유되어 단맛이 나는 물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가끔 그 물주머니를 따서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고, 애들아, 그거 따서 마시면 안 돼.”

“왜요? 맛있는데. 선생님도 하나 드셔보세요.”

“맛있는 건 아는데, 그렇게 물주머니를 따버리면, 장미가 말라 죽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것만 마시고 더 따면 안 돼, 알았지?”

“예, 선생님.”

물주머니가 장미가 아사달의 도심에 퍼지면서, 도시는 마치, 선으로 데생을 해놓은 그림에 채색을 한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이 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아사달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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