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사막의 장미(3)
일단, 남고비의 사막과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아사달 주변의 땅은 좀 더 모래가 많은 토양에, 물이 부족하고 일조량이 더 많아서 수분의 증발이 빠른 건조한 토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완벽하게 똑같을 수는 없지만, 진석은 일꾼들에 밭으로 가는 수로의 물의 공급량을 줄이도록 했다. 토양을 최대한 아사달의 일반적인 토양 수준으로 건조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공간주님, 물의 공급을 기존의 30% 수준으로 제한해 보았습니다. 상당히 물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사막의 기후와 비슷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래, 이 정도면 아사달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군.”
보통 작물들을 키우기 위해서, 혹은, 방풍림을 조성하기 위해서 나무마다 뿌리에 직접 물을 공급하는 방식을 이용하고는 있지만, 나무가 아닌 꽃을 키우기 위해서 뿌리에 직접 물을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꽃은 작물이 아니라, 좀 더 도시의 좁은 땅에 불규칙적으로 심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밭과 같은 시설 재배 방식을 이용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에 재배하던 올리브나 자두, 포도 같은 사막에 적응된 과수나무들보다도 어떤 면에서 더 생존력이 강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보통 여리고 아름답기만 한 장미 같은 꽃들에게 그런 강렬한 생명력이 있는 것일지, 진석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석은 식물, 혹은 생명, 자연이 가진 생존 능력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이 가능한 꽃들을 찾기 위해, 장미와 해바라기를 가지고 실험에 도전을 시작했다.
“좋아, 사령관 실험을 시작해보자고.”
새로운 장미와 해바리기 품종을 개발하는 실험의 방식은 아주 단순했다. 건조한 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 생존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진석이 공간주의 힘을 이용해 시간을 빠르게 가속하는 것으로 실험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었다.
일꾼들이, 밭에서 채취한 장미와 해바라기의 씨앗들을 사막 기후와 비슷하게 조성한 밭에 뿌리자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일단, 토양이 무척 건조해지자 씨앗이 발아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공간주님, 씨앗이 발아하지 않는 느낌인데요.”
건조해진 땅이라 그런지 씨앗 자체가 발아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긴, 씨앗을 발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수분이다. 일정한 수분이 씨앗에 닿아야 종자의 발아가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을 시작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물이 없는 건조한 토양에서 좀처럼 씨앗의 발아가 시작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령관, 씨앗으로는 아무래도 어려운 느낌이야. 씨앗보다는 모종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게 말입니다. 씨앗을 바로 뿌려서는 씨앗의 발아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으니까요.”
씨앗이 발아가 되지 않는다면 식물을 키워서 변종을 만드는 것도 어려워진다. 아예 시작부터가 불가능한 상황, 일단은 직진할 수 없다면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좋아, 바로 씨앗을 뿌리지 말고 일반토양에서 씨앗을 뿌려서 모종을 만들자고, 그 후에 사막 토양에 옮겨 심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그 방법이 더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일꾼들이 다시 물 공급이 적당한 밭을 만들고, 해바라기와 장미의 모종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모종들이 자라나자 작은 모종을 이번에는 건조한 토양으로 옮겨심기 시작했다.
모종을 심어 놓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다행히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했다.
사막의 건조한 토양이라 장미나 해바라기가 잘 자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종이 어느 정도 생존하면서 약간의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미와 해바라기 모두 현저하게 성장이 저조하고 줄기나 넝쿨도 작게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꽃이 만발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미 넝쿨에서는 꽃이 몇 송이 피는 정도일 뿐, 뭔가 만개한다는 느낌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해바라기도 키가 작고, 꽃도 굉장히 작았고 그나마도 잠시 피었다가 금세 시들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사령관, 장미도 그렇고 해바라기도 그렇고, 제대로 자라지를 않는군, 꽃도 뭔가 매력적이지 않고 시들한 느낌이고 말이야.”
“공간주님,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오, 사령관.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건가?”
“공간주님, 제가 무슨 주제넘게 공간주님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경험적인 것을 말해드리는 겁니다.”
“그래, 뭐, 그게 뭐든. 사령관의 말대로, 처음부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동안 했던 것처럼 될 때까지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다음 실험을 위해 준비를 하겠습니다.”
사령관이 해준 말이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포기하려고 했던 진석에게 다시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일꾼들이 장미와 해바라기 모종을 심어 놓기 시작하자, 다시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지만, 건조한 사막 토양의 밭에는 여전히 왜소하게 자라난 장미와 해바라기들이 초라하게 자라있을 뿐이었다.
“전혀 발전이라는 게 없군. 사령관, 아무리 시간을 가속해도 안 되는 건가? 사막의 건조한 토양은 식물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환경인지도 모르겠어.”
“공간주님, 이번에는 제 생각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 아냐, 일단, 좀 쉬고 나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진석은, 일단 오아시스로 돌아가서, 한숨 자기로 했다. 오아시스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몸을 좀 식힌 후에 배도 채우고 말이다. 그리고 나서, 야자수 나무 아래의 해먹에 누워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며칠을 잔 걸까? 더이상, 잠을 잘 수도 없을 정도로 실컷 잠을 자고 나서야, 진석은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쭈욱 피며 기지개를 켜자, 몸에서 두둑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뼈와 근육이 쭉 늘어나는 느낌이 기분이 좋고 상쾌한 느낌이었다.
몸이 개운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 잠을 자고 다시 오아시스로 돌아오니 고양이들이 진석이 맞았다. 개들처럼, 꼬리를 흔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야옹거리는 것만으로도 진석의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공간주님, 깨어나셨습니까?”
“그래, 사령관, 대체 내가 얼마나 잔 거지?”
“정확히 계산은 안 해봤지만 상당히 오래 주무신 것 같습니다.”
“그래? 내 느낌에도 시간이 아니라, 일 단위로 잔 느낌이기는 해. 뭐, 아무튼 상관은 없겠지. 시간이야 충분하니까, 말이야.”
“그렇습니다. 공간주님, 공간에서는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죠.”
“그래, 잠도 실컷 자고, 기분도 좋아진 것 같아. 다시 일을 시작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다시, 밭으로 가서 다시 모종을 건조한 밭에 심는 일이 반복되었다. 다시,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뭔가, 건조한 토양에서 전과 다른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공간주님, 저, 장미는 상당히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저 녀석이 눈에 띄는군.”
건조한 밭의 한 가운데쯤에, 눈에 띄게 왕성하게 자라나는 장미 넝쿨이 보였다. 장미 넝쿨은 건조한 밭의 토양에서도 다른 장미들과는 다르게 무성하게 넝쿨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공간주님, 뭔가 저 장미 넝쿨은 다른 모습인데요.”
진석도 사령관이 가리키고 있는 장미 넝쿨이 뭔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인 장미들은 가시가 돋친 넝쿨과, 그 위로 빨갛게 자란 꽃송이가 피어 있는데, 이 장미는 위로 활짝 핀 꽃과는 다르게, 넝쿨 아래쪽에는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꽈리 주머니 같은 것들이 보였다.
“뭐지, 저건?”
진석은 밭 가운데로 내려가 좀 더 자세히 장미 넝쿨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미의 꽃봉오리는 아니고, 아래쪽으로 꽈리 주머니처럼 생긴 주머니가 자라나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뭔가 물컹한 느낌이었다.
“공간주님, 그게 뭔가요?”
“이건, 안에, 액체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진석은 꽈리 주머니를 하나 따서 안을 열어보았다. 얇은 막으로 된 주황색의 주머니를 잡아 벌리자, 주머니 같은 막이 찢어지며 안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령관, 이건 물이잖아?”
“그렇군요. 그 주황색 주머니가 물을 저장하는 주머니였군요?”
비로소, 이 특이한 장미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건조한 기후에 적응력을 가진 이 돌연변이 장미는 물을 저장하는 주머니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넝쿨 바깥에 꽈리 주머니 같은 물주머니를 만드는 방식으로 수분을 저장하고 그 수분을 이용해서 건조한 땅에서도 활발한 생장을 하며 화려한 꽃까지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사막에 오아시스라는 물 저장고를 만들어 물을 저장해서 도시를 번성시키고 있는 제이에스 그룹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래, 신기하군. 자연의 신비는 참 놀라워. 물이 부족하니까 이런 물주머니를 만들어서 물을 저장하다니 말이야. 그리고 그 물을 이용해서, 건조한 곳에서도 이렇게 잘 자라고, 아름다운 꽃도 피워내고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사막에 적응하는 나무들은 뿌리가 더 깊어지는 방식으로 적응했다면, 이 장미는 물주머니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건조한 땅에 적응하고 있군요.”
아마도, 어느 정도, 자체적인 사이즈가 있는 과일 나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작은 장미 넝쿨만으로는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저장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수천 년의 적응 기간을 거쳐, 장미 넝쿨은 물주머니라는 새로운 생존의 무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미, 동물들에게서 넝쿨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들어낸 장미들이 이번에는 혹독한 사막의 건조 기후에 맞서 물주머니라는 두 번째 무기를 개발한 셈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 것은, 이 물주머니 장미가 후대에도 그 특성이 전해지느냐 하는 것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진석은 조심스럽게 장미의 씨앗을 채취해서, 모종을 만들었다. 그리고 물주머니 장미의 모종을 다시 밭에 심어보았다.
진석이 서서히 시간을 가속하자 장미 모종이 점점 빠르게 성장하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역시나 건조한 토양이었지만 장미는 활발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넝쿨 위쪽으로 피어난 꽃들과 함께 아래쪽으로 늘어진 물주머니가 생겨나고 있었다.
“공간주님, 이번에도 굉장히 잘 자랍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물주머니들도 생겨나고 있고요.”
“그래, 나도 보고 있어. 굉장한데, 사령관. 드디어 사막에서 적응력을 가진 새로운 장미를 찾아냈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에는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역시, 공간주님의 능력은 대단하십니다.”
사령관은 진짜 감탄한 목소리로 진석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번에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령관을 비롯해서 모두 애써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수고했어. 사령관.”
“하하, 아무튼, 이번에도 대성공이군요.”
“그래, 성공이야. 이제 이 장미들을 가지고 진짜 사막으로 가져갈 거야.”
“공간주님, 그러면 황량한 사막의 도시들이 이제 장미들로 아름답게 변하겠군요?”
“그래,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이 이제 아름다운 장밋빛으로 변하는 거지.”
진석은 상상이 됐다. 사막의 도시들에 아름다운 장미들이 피어나는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