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사막의 장미(2)
“참, 고조, 장미가 예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키워서 다 어디에 쓰는지 북에서 온 저는 잘 모르겠습네다.”
은하수 농장이 아사달에 본격적으로 이전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화훼 시설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장미를 키우기 위한, 저온실들이 만들어지고, 꽃들의 생장에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유지를 위한 설비들도 갖추어지면서, 속속, 장미와 그 외에 다른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과학적인 첨단 설비들을 이용하는 시설 재배 방식이지만, 역시 꽃이라는 특성상 잔손이 가는 일이 많아서 인력이 많이 필요했고, 그 중 상당수는 북한 출신의 이주민들 동원되었다. 특히 여성 인력이 많이 고용되었다.
다른 농업 분야에 비해, 체력적인 부담이 덜했고 실내에서 저온에서 일하는 일이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 입장에서도 섬세한 손놀림을 가진 여성들을 선호하고 말이다.
서은주 사장도, 꽃을 키우는 화훼 농장에서는 투박한 남자들보다는 섬세한 여자들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도 북에서 온 이주민들은 한국 여자들과는 미적 감각에서 차이가 있었다.
“고조, 꽃은 화려하고 울긋불긋한 게 좋은 거지, 이런 건, 너무 칙칙하지 않습네까?”
“어머, 경숙 씨, 이 짙은 바이올렛 컬러가 예쁘지 않아요? 향도 좋고, 색도 세련되어서 좋은 것 같은데.”
이경숙은, 북한 평양에서 간호사를 하다가, 남편을 따라 아사달로 이주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사달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었는데, 북에서 하던 병원 일보다는 새로운 화훼를 배우고 싶어 새롭게 이곳 은하수 농장에게 일하게 된 것이다.
“경숙 씨는 그래도 간호사 일이 전에 하던 일이라, 더 편하지 않아요?”
서은주 사장은 육묘장에서 자라고 있는 장미 묘목들을 바라보며 넌즈시 물어보았다.
“아닙네다. 북한 병원과 한국 병원은 쓰는 말도 다르고, 진료 방식도 많이 달라서 더 편할 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예쁜 꽃을 키우는 일이 저한테는 더 잘 맞습니다.”
북에서든, 한국에서든, 아사달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직업이 필요했다.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쪽에서 온 사람들은 문화나 제도, 기술의 차이 등으로 잘 적응하지 못 하고 차라리 새로운 일을 배우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경숙도 그런 케이스였다. 북에서 간호사 출신이라 아사달의 병원에서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한국과는 아무래도 의료용어도 다르고 한국 의사들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선택한 직장인, 이곳 은하수 화훼 농장에서는 비교적 일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경숙과 서은주가 대화를 하고 있던 작업실로 진석과 이성우 시장이 들어왔다.
“사장님.”
“아, 수고들 하시네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하세요.”
진석은 이성우 시장과 함께 새로 건설된 화훼 단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꽃들이 예쁘네요.”
이성우 시장도, 저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장미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꽃들은, 이 저온 시설에서만 재배가 가능한가 보군요?”
“예, 아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이에스 그룹에서 사막 기후에서 노지 재배가 가능한 꽃들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정말요?”
서은주 사장이 진석에 말에 흥미를 보이며 되물었다.
“예, 상품으로 출시되는 장미들이야, 외국 수출용이라 아무래도 일반적인 장미들이 적당하겠죠. 하지만, 그 외에 도시 미관을 위해서 사막에 잘 자라는 장미들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음, 그래요? 사실, 저도 시설 재배 방식이 편하기는 하지만 원래 꽃은 자연스럽게 길가나, 정원에서 피어나는 것이 가장 아릅답잖아요? 그래서, 아사달의 길가나, 집의 뒤뜰 같은 곳에서 꽃들이 많이 자랐으면 했거든요.”
“하하,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잘 자랄 장미나, 다른 꽃들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고조, 이진석 사장님, 얼른 그런 꽃들이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네다. 회사에 오면 꽃들 천지인데, 집에 가면 마당에 꽃들이 잘 자라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 북에서 오신 분이군요?”
“이경숙이라고 합네다.”
“경숙 씨는 아주 일을 잘해요, 원래는 평양에서 간호사를 했다는데, 원예 전문가 못지않은 손재주가 있어요.”
“솔직히 저는 간호사보다는 꽃 만지는 일이 더 맞단 말입네다.”
“하하, 그래요. 다행이네요. 경숙 씨는 여기서 또 다른 재능을 찾았군요. 직장도 얻고 말이죠.”
***
제이에스 아사달 지사, 사장실.
장유진이 도시를 설계하면서, 아사달의 풍경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특히, 장유진의 도시 설계의 특징은,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런 정책에 따라 제이에스 지사의 여러 부서들도근처의 다른 작은 건물들로 분산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사달 지사의 건물은 빈 사무실이 늘어 났고, 그 빈 사무실을 사원들의 휴게실이나, 도서관, 체육관 등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진석도,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고 시간이 날 때는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는 했다. 처음에는 시설과 부서를 자꾸 분산시키는 장유진의 방식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결국, 인간에게 넓은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 이상으로 편안함을 주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는 것으로는 불편함을 주고, 일의 처리에도 방해가 되는 일들이 많은 것이다. 그에 비해, 적당한 공간을 확보해 주는 거만으로도 여러 가지 운동이나 여가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서들이 분산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해지는 부분은, 통신 기술을 이용해서 충분히 보충하고 있었다. SNS가 대표적인 것으로, 직접 대면 없이도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하고 친분을 쌓을 수도 있고 말이다.
진석은 한결 인구가 줄어 쾌적해진 제이에스 지사 건물을 돌아보며, 사원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대체적으로 상주 인구가 줄고 개별 공간이 넓어져서 업무 효울도 좋아졌다는 반응이었다.
“역시, 공간의 크기라도 것도 중요한 요소라는 말이지.”
진석은 사장실로 돌아왔다.
“사장님, 지난 번에 부탁하신, 꽃의 씨앗들입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선영 씨.”
김선영은, 원래, 한국에서 외국계 금융 회사를 다니던 재원이었다. 하지만 은행 업무에 회의를 느끼고 아사달로 이주를 결정한 케이스였다. 금융 회사 출신으로 일처리가 굉장히 정확한 편이어서,
진석은 김선영을 자신의 개인 스케줄을 관리하는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김선영도 비서 업무는 처음이었지만 의외로 적성에 잘 맞는지, 진석의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었다.
진석은, 며칠 전에 장미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꽃의 종자들을 부탁해 놓았다. 서은주 사장에게 말한 것처럼 아사달의 일반 노지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꽃들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종자들은, 아사달의 종자 보관 센터에서 선별한 것들이었다.
진석은, 사장실 테이블에 놓인 꽃들의 종자 샘플들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장미에서부터, 맨드라마, 봉선화 같은 한국적인 꽃들도 있고, 다양하게 이용 가능한 해바라기의 씨앗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꽃들의 종자들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이름과,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종류가 많은가? 하긴, 꽃들이 종류가 정말 다양하지.”
일반적인 꽃가게에서 볼법한 꽃 이름들도 많이 보였지만 진석이 원하는 것은, 피는 기간이 짧은 그런 화려한 꽃들보다는, 오랫동안 필수 있는 자연스러운 꽃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들꽃 같은 것들이었다.
화려한 꽃들이라면 화훼 농장에서 얼마든지 키울수가 있으니 말이다. 시설에서 정성껏 관리를 받아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런 꽃이 아니라, 그냥,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랄 수 있는 그런 꽃들 말이다.
제이에스의 농업연구소에서도 그런 꽃들의 씨앗들로 사막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큰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진석은 직접 새로운 품종의 꽃들을 개발하기 공간의 문이 있는 저온 창고를 향했다.
공간으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있는 창고는 진석의 명령으로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진석은 여러 가지 꽃들의 씨앗이 담긴 플라스틱 종자 가방을 들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주님, 오늘은 가방을 가지고 오셨네요. 뭐가 들어있죠?”
“사령관, 여기에는 꽃들의 씨앗들이 들어있어.”
“이번에는 꽃이군요. 공간의 산에는 장미들이 많이 피어 있지만, 그래도 꽃은 드물죠.”
“그래, 예전에 찔레 장미를 키우기는 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향이나 그런 것보다는 평범하더라도 사막의 건조한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꽃이 필요해.”
“음, 보통, 건조한 모래땅에서 잘 견디려면 뿌리가 강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꽃이라면, 뿌리가 그렇게 깊지는 않은 편 아닌가요?”
“그래 맞아. 보통 꽃들은 그렇게 덩치가 크지도 않고, 그래서 뿌리가 깊게 내리지도 않으니까, 뿌리가 작으면 아무래도 수분을 지키는 힘은 떨어지게 되고, 사막 같이 건조한 곳에서는 버티기 힘들지.”
역시 사막 기후에서 버티려면 뿌리가 깊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꽃의 줄기와 뿌리 자체의 크기가 어느 정도 사이즈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령관, 어느 정도 크기가 큰 꽃들이라야 건조한 땅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음, 아무래도 그러겠죠. 물이 부족한 곳이니, 스스로 물을 저장할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뚱뚱한 사람들이, 식량 부족기에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처럼,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생존의 척도가 된다. 따라서,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식물 자체의 사이즈가 어느 정도 받춰줘야 하는 것이다.
진석은 일단은 가져온 꽃들을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꽃을 더 발전시려는 것이었다.
“사령관, 일단, 밭을 만들어 봐.”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일꾼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꽃들을 심을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은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꽃들의 씨앗들을 종류별로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씨앗들에서 잎이 솟으며 줄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봉오리가 생기고, 이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두 종류가 아니라수백 종류의 꽃들의 종자를 뿌린 것들이라,
오아시스의 밭에는 수백가지 종류의 꽃들이 만발하며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와, 여러 작물들을 심어 보고 키워 냈지만, 이런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입니다. 공간주님.”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수백 종류의 수천, 수만 송이의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 한 순간에 만발하는 광경은 진석과 진흙 인간들마저 감탄하게 할 정도로 장관이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꽃의 정원이 되었습니다. 굉장합니다. 공간주님.”
“그렇기는 한데 말이야, 아름답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찾는 꽃은 건조한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는 녀석이라고, 아름다움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 많은 꽃들 중에서 어떤 곳이 사막에서도 잘 자랄까요?”
일단은 크게 자라는 꽃이 유리할 것 같았다. 진석은 키가 큰 해바라기나,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해바리기는 줄기가 높이 자라는 꽃으로 해바리기라는 말처럼 태양을 좋아하는 꽃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태양이 강렬한 사막 기후에서도 잘 자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장미, 꽃들의 여왕으로 불리는 강렬한 꽃이기도 하고 가시가 돋힌 넝쿨이 넓게 퍼지는 강렬한 생명력의 꽃이기도 했다. 해바라기처럼 높게 줄기가 솟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퍼지는 넝쿨의 길이를 다 합치면 나무 못지 않게 큰 식물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장한 장미의 뿌리는 나무처럼 깊고 굵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수분을 지키는 능력과, 물을 저장할만한 사이즈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공간주님, 어떤 꽃들이 그 가능성이 보이는 꽃인가요?”
“사령관, 일단, 사이즈가 큰, 해바리가와 장미가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아, 그렇군요. 제 생각에도 덩치가 있는 종류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물을 저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해바라기와 장미를 선택해서, 실험을 더 진행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