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막의 장미(1) (156/183)

173화. 사막의 장미(1)

김포 은하수 농장.

“서은주 사장님,”

“어머, 이진석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여기는 언제와도, 그대로군요. 이 장미 농장도 그렇고, 근처의 논들, 여기는 몇 년 동안 큰 변화가 없는 느낌입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다들 이진석 사장님처럼, 바쁘게 사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뭘 하는지 서은주 사장님도 알고 계세요?”

“물론이죠, 저도 TV도 보고 그런다고요. 얼마 전에, KBC에 나온 인터뷰도 봤어요. 아사달에 이제는 발전소도 생기고, 공항도 생긴다면서요. 고속도로는 이미 개통했고요.”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국인 KBC의 방송 덕분인지, 진석이 아사달에서 하는 사업을 많은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특히, 시골에 사시는 아버지는 뉴스에 진석이 나온 후로, 동네 사람들이 진석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즐거워하셨다.

서은주 사장도, 진석이 나온 뉴스와 인터뷰를 보고, 아사달의 발전상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전에 갔었을 때보다, 아사달은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이겠죠?”

“맞아요. 지난번에, 수미제 축제를 위해서 서은주 사장님이 오셨을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도시 계획 전문가를 초빙해서, 도시의 전체적인 설계도 신경을 쓰고 있거든요.”

“정말요? 와, 도시의 설계라? 듣기만 해도 스케일이 엄청난 일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와는 비교과 안 되죠. 저는 여전히 이 농장을 운영하는 정도니까요.”

“은하수 농장이 어때서요? 이곳의 장미는 세계적인 수준 아닙니까? 물론, 장미의 품질에 비하면, 그렇게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래도, 이곳 김포에서는 농장을 더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온 것 같아요. 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인건비도 점점 오르고 말이에요.”

서은주는 조금 의기소침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은하수 농장을 아사달로 이전하면 어떨까요? 뭐, 분점을 만든다고 생각해도 좋고요.”

“아사달로요?”

서은주는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평소처럼, 진석이 지나가다 들른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석은 일부러 이 은하수 농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사달이 점점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진석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농업 외에도, 연관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화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사막에서 대규모의 화훼 농장을 운영해 본 적은 없지만, 원래, 장미 같은 은하수 농장의 대표적인 꽃들도 원산지는 중동 지역이기 때문에,

아사달 같은 사막에서 장미를 키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대규모의 시설이 필요한 화훼농업을 위해서는 넓은 토지와, 시설 유지에 필요한 물과 전력 등의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전과 달리, 지금의 아사달은 그런 수준의 전력과, 물, 그리고 넓은 토지를 제공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생산된 꽃들을 수출할 시장으로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고, 데저트 하이웨이가 개통되어서, 물류수송에도 유리한 상황이다. 거기에 국제공항의 건설로 항공을 통한 유럽 지역 수출도 가능하고 말이다.

여러모로 화훼 산업에 유리한 국면이었다. 그래서 진석은 전부터 제이에스 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은하수 농장에게 아사달로의 이전을 제안한 것이었다.

“어떨까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아사달은 사막인데, 그런 환경에서 화훼가 가능할까요?”

서은주는 진석의 제안에도 아직, 확신은 없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아사달에서도 김포의 이 농장처럼, 시설이 필요할 겁니다. 꽃들을 최상의 조건에서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실이 필요하겠죠. 한국에서 온실이, 고온을 유지하기 위한 거라면, 아사달에서는 오히려 저온을 유지하기 이해서 냉방을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막에서는 냉방을 하는 온실, 냉실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름은 저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의 온도를 유지할 시설과 거기에 필요한 전력과 물이라면, 이제 충분히 공급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농업 계통에 경험이 많은 인력도 풍부하고요.”

“인력이라고요?”

“예, 지금 아사달에는 북한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이 상당합니다. 아직 임금 수준은 한국과는 비교과 안 되죠. 화훼 산업에는 손이 많이 가고,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인건비 부담이 상당하지 않나요?”

“예, 그렇죠. 특히 출하 시기에는 인력이 많이 부족해요.”

서은주는 진석의 말을 곱씹으며 아사달의 장단점을 고민하는 듯했다.

“지금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닙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나중에 언제라도 확신이 생기면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예, 한 번 생각해 볼게요.”

***

송도, 제이에스 본사. 진석의 펜트하우스

장유진은 진석이 한국에 간다고 하자, 송도를 구경하고 싶다고 따라왔다.

“송도는 처음인가요?”

진석이 사무실로 쓰는 45층의 펜트하우스, 송도는 몇 년 사이 건물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발전의 속도 면에서 아사달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송도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도시 계획으로 도로와 건물이 지어져 있을 뿐, 도시 자체를 움직이는 산업이라는 것은 아직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예,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역시, 뭔가 부족한 느낌이네요.”

“뭐가요? 건축 전문가가 보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도시인가요?”

“일단, 큰 건물과, 도로들은 시원시원하지만, 인구가 적고, 무엇보다, 도시의 정체성을 모르겠어요.”

“도시의 정체성요? 그거야, 국제적인 기업도시 아닌가요? 국제비즈니스를 위한?”

진석의 말에도 장유진은 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국제비즈니스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건데요? 제가 보기에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합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분명한 목적과 정체성을 가지고 만든 도시라기보다는, 이 정도 규모의 멋진 도시, 큰 빌딩이 즐비한 마천루를 가진 도시를 만들려고 한 거 아닌가요?”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됐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일단, 국제비즈니스 도시가 되려면, 그만한 산업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제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쨌든, 제이에스 그룹도, 사옥을 이곳으로 정했고. 다른 기업들도 서서히 이곳을 찾고 있거든요. 그에 따라서 인구도 늘어나고, 어쨌든, 도시라는 측면에서 보면, 잘 계획된 느낌이에요.”

“도시 자체는 그런 측면도 있죠, 하지만, 아사달처럼 자체적인 성장 동력 없이는 도시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하하, 그거야,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겠죠. 아무튼, 이 펜트하우스의 사무실, 괜찮지 않아요?”

“뷰는 좋네요. 저도 이런 사무실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장유진 씨는 높은 건물은 싫어하지 않았나요?”

“높은 건물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도심 지역이라면 또, 공간적인 제약으로 다른 문제가 되죠. 어쨌든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니까요.”

장유진도 고층 빌딩의 뷰를 좋아하는 것은 진석과 공통점인 모양이었다. 효율성과 무관하게, 이렇게 높은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것은 미묘한 쾌감 같은 것이 있었다.

아사달에는 그런 고층 건물이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장유진의 말대로 도시가 계속 성장하면서 공간적인 제약이 생겨난다면, 그런 높은 건물들도 자연스럽게 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진석은 거대해진 아사달의 도심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아사달 외곽의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높은 산 같은 초고층 빌딩이 늘어선 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인 이미지 일 것 같았다.

그때, 진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은주였다.

“여보세요? 은주 씨, 저의 제안 생각해 본 건가요?”

“예, 물론이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럼, 어떤 결론인가요?”

“하겠어요.”

“예?”

“아사달로, 은하수 농장을 이전하는 거 말이에요.”

“정말인가요?”

“대신, 약속하신 대로, 장미 화훼 단지를 만들 수 있게 지원해 주시는 거죠?”

“그거야 물론이죠. 최대한 지원해 드릴 겁니다.”

다행히 서은주는 아사달로 은하수 농장을 이전하는 것에 긍정적이었다. 진석으로도 아사달의 생태계가 다양해지는 일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누구 전화예요?”

“아, 서은주 씨라고, 장미 농장을 하는 사업가죠.”

“장미 농장요?”

“예, 은하수 농장이라고, 전부터 제이에스 그룹과 서로 협력하던 화훼업체입니다. 지금은 장미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꽃들을 생산하고 있어요. 해외로 수출도 하고요.”

“그래요? 그러면, 어떤 일로?”

“아, 장유진 씨와도 관련이 있겠군요. 서은주 사장의 장미 농장이 아사달로 이전을 할 겁니다.”

“아사달에 장미 농장이라고요?”

장유진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예, 장미나 화훼 농장은 아직, 아사달에 없는데, 최초가 되는 거죠.”

“하지만, 사막은 굉장히 건조한 곳인데, 기온도 높고요. 또,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는 혹독한 환경인데, 꽃을 키울 수 있을까요?”

“일단은, 시설에서 재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온실 같은 거 말인가요?”

“맞아요. 하지만, 냉방시설을 갖춘 유리온실이어야 할 겁니다. 일종의 냉실이죠.”

“음, 그렇겠네요. 저온에 습기도 좀 있어야겠고. 시설재배를 해야 하고 그러면, 그런 화훼 단지도 설계해야겠군요?”

“맞아요. 제가 장유진 씨에게 부탁하려던 게 바로 그겁니다. 화훼 재배 시절이 필요해요. 그것도 상당한 규모로 말이죠.”

“그렇게 규모가 커야 하나요?”

진석은 서유진과 약속한 일들을 설명했다.

“음, 그러니까, 서유진 사장의 농장을 유치하려고, 이진석 사장님이, 넓은 토지와, 전기, 각종 시설을 지원하겠다고 한 거군요?”

“맞아요. 기존에 잘 운영되던 농장을 아사달로 옮기는 일인데, 그 정도 지원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좋아요. 그러면, 아사달, 외곽에 화훼 단지도 추가해야겠군요.”

장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어쩌면 도시를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시설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추가된 설계 계획으로, 상당한 규모의 화훼 단지가 실제로 건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꽃을 키우고, 상품화하기 위해서 막대한 인력이 필요하고 말이다.

그렇게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사달에는 이익이 되는 일이다. 농업에만 편중된 산업이 조금이나마 다양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예, 부탁드립니다. 멋지고 기능적인 화훼 시설 단지를 말이죠.”

***

아사달 시청, 이성우 시장의 집무실.

“한국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예, 이번에 한국에서 본사의 일들도 처리하고, 그리고 화훼 농장을 이전하기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화훼 농장요? 꽃을 키우는 곳 말이군요?”

“예, 저번에 수미제 축제에, 장미를 준비해 준, 은하수 농장을 기억하시나요?”

“아, 그 서은주 사장님 말이군요?”

이성우 시장도, 서은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분이 오시는 겁니까?”

“예, 은하수 농장은 제이에스 그룹의 초기부터, 파트너 관계였던 농장인데, 아사달에 대규모 화훼 단지를 만들어 볼까, 하고 말입니다.”

“음,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아사달은 농업 일색의 산업 구조인데, 화훼도 농업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산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저도 그런 점이 메리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생태계나 도시에도 다양성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

그리고, 얼마 후 서은주와 은하수 농장의 직원들이, 화훼 단지가 조성될 부지를 살펴보기 위해 도착했다.

아사달, 외곽으로 아직은 방풍림 정도만 조성된 지역으로 약간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서은주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떤가요? 일단, 굉장히 넓은 곳이죠?”

“그렇기는 한데, 아사달 시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네요. 여기는 진짜 사막에 있는 느낌이에요.”

“하하, 은주 씨, 너무 걱정할 건 없어요. 조만간, 이곳에 화훼 시설 단지가 들어서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저를 한 번 믿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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