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태양의 탑(1)
“태양광과 태양열의 차이가 대체 뭐라는 겁니까?”
장유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태양광은, 말 그대로, 태양의 빛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드는 시스템이죠. 물론, 기본적으로 열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기는 해요. 그래서 조금 혼동되는 부분도 있죠. 그러니까, 태양의 광, 빛을 흡수해서, 그 열에너지를 전기로 교환하는 시스템인 거죠. 그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태양광 집열판이라는 거고요.”
“그럼, 태양열은요?”
“사실, 과학적으로 두 가지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건 아니에요. 둘 다, 태양의 빛을 이용한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시스템이라는 건, 똑같거든요.”
“아까는 다르다고 하지 않았나요?”
“문제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구별이 된다는 거죠. 제가 말씀드린 태양열 발전 시스템은, 태양의 빛을 이용해서 물을 가열하는 시스템이죠. 그리고 그 가열된 물을 다시 전기에너지로 변환 시키는 거죠. 기존의 화력 발전과 비슷해요. 차이라면, 터빈을 돌리는 증기를 화석 연료가 아니라, 태양광으로 한다는 거죠.”
뭔가 헷갈리는 이야기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잖아요. 이걸 보여드릴게요.”
장유진은 컴퓨터 모니터에 사진을 띄웠다. 사막처럼 보이는 곳인데, 뭔가 태양열 집열판과는 다른 판들이 잔뜩 몰려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타워들, 일종의 탑이 보였다.
“이게 대체 뭡니까?”
“태양열 발전시스템이에요.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거죠. 제법 혁신적인 시스템이라, 저도 미국에 있을 때 관심을 가졌었어요.”
“그래요? 이 사막에 늘어서 있는 게 태양광 집열판인가요?”
“아뇨, 이건, 일종의 거울이에요. 여기 보이시죠. 이 중앙의 탑으로 빛이 모이잖아요.”
장유진의 말대로였다. 사진 속의 사막에 늘어선 판들은, 모두 중앙의 탑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판들에 반사된 빛들이 중앙의 탑으로 모이고 있었다.
“중앙의 타워로 빛을 모으는군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거울로 빛을 보내는 놀이는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맞아요. 원리는 같아요. 그리스 시대에, 거울을 모아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적의 군함을 태웠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네요. 하긴, 빛을 모으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겠죠.”
“바로, 그거예요. 일반적인 기후에서는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이라면, 효율적일 수 있죠. 그리고, 황량한 사막에는 비어 있는 땅도 많으니까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는 거죠.”
“음, 태양광 집열판에 비하면, 더 경제적인가요?”
“소량의 전기를 생산하기에는 비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해요. 하지만, 대규모 전력생산에는 강점이 있죠.”
“하나의 설비가, 태양광 방식에 비해서,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겠네요. 개인 가정에 설치할 사이즈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맞아요, 태양광 시스템이 소규모의 가정용이나, 오지에서 쉽게 사용하기에 적합한 전력 시스템이라면, 태양열은 대규모의 상업적 발전 시설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죠. 초기 비용이 더 들어가고, 큰 부지와 설비가 필요하지만, 더 큰 규모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거든요.”
“태양광을 모으는 저 판들이 일종의 거울이라면, 태양광 집열판보다 더 단순한 구조겠군요? 다른 기능은 없는 거니까요.”
장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사실은 한 가지 기능이 있기는 하죠.”
“어떤 기능 말인가요?”
“태양의 위치는 수시로 변하니까, 태양의 변화에 따라 위치가 변경되는 거죠.”
“마치, 해바라기처럼 말이군요. 일반적인 식물들의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죠, 태양이 있는 곳으로 에너지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거 말이에요.”
“바로 그거예요. 태양의 빛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반사시켜서 중앙의 타워로 보내기 위해, 태양을 따라 자세를 바꾸는 장치가 들어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 외에는 심플하기 때문에 태양광 집열판처럼 주기적으로 교체할 필요가 없어요.”
“그럼, 태양광 패널처럼 교체할 필요도 없고, 폐기물도 없고요?”
“그렇죠, 나중에 뭔가 고장나거나 망가지더라도, 별다른 폐기물이랄 건 없어요. 그저 고철 덩어리가 되는 거죠, 재활용도 가능하고요.”
장유진의 말대로라면, 지금 남고비의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에는 태양광이 아니라, 태양열 방식의 발전소가 더 적합해 보였다.
태양광은 소규모의 가정용으로는 나름 메리트가 있지만, 대규모 전력생산에는 단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태양열 방식은 처음에 대규모 설비가 필요하지만, 입지 조건과 시설만 갖춘다면, 대량의 전기를 훌륭하게 생산할 수도 있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한 그린 에너지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요. 태양열 발전소로 합시다.”
***
미국 애리조나, 선라이즈 시스템, 태양열 발전소.
애리조나의 사막은 몽골의 고비사막을 연상시켰다. 군데군데 서 있는 선인장은 좀 다른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몽골의 고비사막처럼, 애리조나의 사막도 암석지대라고 할 수 있었다. 차이라면, 그 암석들이 풍화작용으로 상당량이 모래가 되어버린 고비 사막과 달리, 애리조나 일대는 아직, 지표면에 암석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인간의 기준으로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지질학적으로는 애리조나의 사막지대가 좀 더 젊은 사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뭔가 익숙한 기후군요.”
“하하, 그렇겠죠. 몽골의 사막과 비슷한 느낌인가요?”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합니다. 둘 다 뜨거운 사막이죠. 지옥처럼 말입니다.”
피터 러셀은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한 벤처 기업가였다.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하다가, 이 태양열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로봇에서 말인가요?”
“예, 로봇을 개발하다가 생각이 난 거죠. 농업용 로봇을 개발 중이었는데, 날씨에 따라서, 온실을 열고 닫는 그런 로봇이었죠.”
로봇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태권브이 같은 로봇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기계장치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음, 그러다가, 태양열 발전소를요?”
“예, 날씨라는 걸, 컴퓨터 시스템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태양광의 여부죠. 태양광의 노출량이 늘어나면 맑은 날씨니까, 온실의 뚜껑을 개방하고, 태양광이 줄어들면 흐린 날씨니까, 뚜껑을 닫으라는 식이죠.”
“그렇군요.”
“인간과 같이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아주 단순한 측정값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아무튼, 그걸 개발하다가 태양의 빛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과학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기계공학에 관한 조예도 깊었던 이 호기심 많은 청년은 여러 가지 공상을 하다가, 거울들을 모아 높은 탑에 빛을 모으는 것을 상상하게 되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이 발전시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다소 긴 이야기였다.
“아무튼, 좀 내용이 길었지만, 로봇을 만들다가 이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이 자금을 대주고요.”
“전력 생산량이나, 안정성은 훌륭하더군요.”
진석은 이미, 애리조나에 오기 전에, 이 태양광 타워 발전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 보고서를 읽어 본 후였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진석에게 소개시켜 준 장유진도 비교적 이 태양열 발전소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석은 제이에스의 다른 엔지니어들과 상의 끝에 이 태양광 시스템을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의 발전시스템으로 채택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이 태양열 발전탑을 개발한, 선라이즈 시스템과 계약을 하기 위해 발전탑이 가동 중인 애리조나를 찾은 것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가능성이 큰 기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기술이죠.”
“아직,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상용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거죠?”
“그렇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화석연료의 비중도 크고, 원자력과 수력도 풍부한 편이죠. 영토가 크고, 기후도 다양하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수력 발전소도 많이 있고 그 규모도 엄청나더군요.”
“예, 그래서 아직, 태양열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투자가 필요한데, 정부나 민간에서도 그 정도의 필요성은 아직 못 느끼는 거죠.”
“하지만, 남고비 사막에는 이런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다.”
피터 러셀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야, 저희로서도 즐거운 일이죠.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되는 걸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우리의 제안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 계약은 제이에스와 선라이스 시스템 양쪽에 모두 이익이 될 겁니다.”
“그렇겠죠. 제이에스 그룹뿐만 아니라, 남고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모든 주민이 해택을 보게 되겠죠.”
피터 러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 태양열 발전탑이 상용화된다면, 그것은 미국의 기술이지만, 남고비 사막에서 최초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한 번 구경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제 아사달에도 이런 탑이 만들어지겠지만, 그전에 한 번 저희 시스템을 보여드리죠.”
피터 러셀의 안내를 받아, 진석은 지프 차를 타고 좀 더 안쪽의 발전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발전소 안은, 수많은 반사판들이 주기적으로 자세를 바꾸며, 중앙의 발전탑의 상층부로 빛을 모아주고 있었다.
기본원리는 화력 발전과 같은 것으로, 증기터빈으로 작동되는 발전시스템이다. 차이라면, 터빈의 동력이 되는 증기를 얻는 방식이다. 화력 발전소가 화석 연료를 태워 얻는 열에너지를 이용한다면,
이 발전탑은, 태양광을 모아주는 반사판들이 탑에 반사하는 태양광의 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반사판이 마치, 태양광으로 공격을 하듯이, 광선을 한 곳에 집중해 주고, 그 광선이 집중된 태양의 탑은 엄청난 고온 상태가 된다. 그 열에너지로 보일러를 끓여 증기를 얻는 것이다.
“저 탑 안에는 엄청난 고온 상태겠군요?”
“예, 그렇죠. 펌프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물을 순환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탑이 너무 과열되는 걸 방지하고, 동시에 물을 끓여서 증기를 얻는 거죠.”
원리 자체는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지만, 막상, 실제로 그 기술을 구현하기는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발전탑을 실제로 만드는 건 어려운 기술이라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원래, 단순한 원리일수록, 기술적으로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에 딱 맞는 이야기죠. 태양열 발전탑의 원리는, 아이들의 장난 같은 단순한 발상입니다. 거울로 빛을 반사 시켜서 뜨겁게 만드는 거죠. 오목 렌즈 같은 걸로, 검은 종이를 태우는 실험이 있잖습니까?”
“그렇죠. 렌즈로 빛을 모으는 건, 아주 단순한 과학 원리니까요.”
“하지만, 저런 탑을 가동시키는 데는 상당히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죠. 그리고 고온고압을 견디는 부품들도 모두 새로 개발해야 했으니까요.”
“아무튼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덕분에, 우리는 사막에 효율적인 발전시설을 갖게 되고 말입니다.”
“사실, 제가 개발한 기술이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기술이죠. 미국에서도 이런 애리조나의 사막지대에서나 일정 수준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아니라면,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겠죠. 그런 면에서 이 태양열 발전탑은 오아시스 도시들에게는 신의 선물이 될 겁니다.”
“하하, 저도 그러기를 빌겠습니다.”
애리조나까지 와서 직접 보게 된, 태양열 발전탑은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직접 와서 보니, 설비도 안정적이고, 운영 방식도 단순하면서도 과학적이었다. 발전 효율도 좋은 편이고 이 설비의 단점이라고 할만한 초기 시설비용이나, 넓은 부지의 문제도 아사달과,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비용은 제이에스 그룹의 자금력으로 해결이 가능하고, 발전소 부지는 미개발된 사막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태양의 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