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저트 하이웨이(2) (151/183)

168화. 데저트 하이웨이(2)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야당의 지도자로 진석과 비밀 협정을 맺고 남고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자치권을 얻게 하는데 역할을 했던, 타르한은 바이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몽골의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오아시스의 아사달이라는 도시는 엄청나게 성장을 했더군요.”

“하하, 타르한 대통령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물론이죠, 사실, 몽골 내부에서는 아사달에 여러 의미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의미라면?”

“하나는 사막에 진짜 도시가 세워지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죠. 몽골 사람들은 사막과 초원에 익숙한 유목민족입니다. 하지만, 사막을 개발한다거나, 대규모의 농업을 하는 것은 생소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고비 사막을 개발해서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고, 또, 오아시스의 물을 이용해서 농업을 하고, 모래땅이 녹색의 땅이 된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 놀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사막을 녹지로 만드는 게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죠.”

“음, 부정적이라면 어떤 의미로 말인가요?”

진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타르한은 전부터 야당의 지도자로, 몽골 내에서는 국수적인 강경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타르한 자신은 세계정세에도 밝고 나름 합리적인 인물이지만,

정치인인 그는 자신의 정파를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아사달에 100년의 개발권을 준 것도 그렇고, 도시로 자꾸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몽골에서도 아사달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편이죠.”

“그렇다고 해도 소수겠죠. 절대 다수는 한국인들, 아니 북한인들 아닙니까?”

“그거야, 사막에서 농업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 뿐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사막의 환경은 혹독합니다. 몽골의 젊은이들도 언제든지 기회는 열려있습니다.”

“하하, 몽골 사람들을 잘 모르시는군요. 우리는 칭기스칸의 후예들입니다. 자유로운 생활이 우리의 삶이죠. 사막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굳이 사막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드문 편입니다. 이런 곳에 오려는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극단적으로 곤궁한 곳이라야 가능하죠. 북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사달이 외국인의 도시가 된다면, 몽골의 영토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타르한은 약간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닙니까?”

“감수라니 뭘 말인가요?”

“어차피 불모의 사막을 개발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니까요. 북한이든 한국이든, 그것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사막의 도시들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게 바로 제가 걱정하는 겁니다. 당연히 고비 사막을 개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도시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요.”

“하지만, 몽골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거라는 건가요?”

타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저도 사막의 도시들의 주인은 그 도시를 개발한 한국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의 소유권이라는 것은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이죠.”

“타르한 대통령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몽골 국민들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은 누가 사막을 개발했는지, 지금은 오아시스에 멋진 농장이 있던 자리가 전에는 사막이 있었고, 그 사막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자본이 투자되었는지, 그런 건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하하, 그럴 겁니다.”

타르한 대통령의 말이 맞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 과일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다고 하면, 그 과일을 따먹기에 바쁘지, 그 과일나무를 누가 키웠는지 누가 비료를 주고, 가지치기를 해주고 관리를 하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몽골뿐만 아니라, 아마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이전 세대의 노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저 모든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나, 그게 아니어도 그렇게 생각하며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는 불쾌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런 게 바로, 대중이라고 할 수 있죠. 몽골에서 합리성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건, 현재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대중은 단순하고, 이기적이고,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죠. 그리고 그런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선동가들도 많고요.”

“타르한 대통령이시라면 그런 선동가들을 통제할 힘이 있지 않나요?”

“불가능한 건 아니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건, 불을 지르는 일과 같아서, 하는 건 쉽고, 막는 건 어렵거든요.”

“그 문제는 최소한 90년은 지나야,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남고비 사막을 임대한 것이 100년을 기한으로 한 거니까요.”

타르한 대통령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긴,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죠.”

“그보다는 남고비 사막에 도로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도로요?”

“예, 현대적인 고속도로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오아시스들을 연결해줄, 거미줄 같은 교통망이 필요한 거죠.”

“그래요? 그 문제라면, 남고비 지역의 자치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각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것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저희가 원하는 것은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입니다. 고비 사막을 지나, 중국과 멀리 북한까지도 연결되는 거죠. 북으로는 몽골과 러시아까지요.”

“사막의 고속도로라? 남고비 사막에서 생산한 생산물을 외국으로 수출하겠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미, 도시들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양이, 소비량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잉여 생산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곡물 같은 것들은 괜찮지만, 과일이나 채소들은, 중국이나 몽골의 도시들로 빨리 수송해야겠죠. 보관 기간이 짧은 작물들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음, 그래서 수송용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몽골의 다른 영토들을 관통하는 사막의 고속도로 말입니다.”

“예, 우리는 이걸 데저트 하이웨이 프로젝트라고 부르죠.”

“도로 건설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겁니까?”

“그거야, 제이에스가 부담할 겁니다. 대신 도로는 제이에스가 관리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고속도로를 제이에스가 말입니까?”

“예, 건설도 우리가 하고, 관리가 우리가 하는 개념이죠.”

“말도 안 돼요, 몽골의 영토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인데, 당연히 몽골에서 관리해야죠.”

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타르한 대통령님도 아시겠지만, 몽골에서 그런 거대한 도로를 건설할 능력이나 관리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현재, 몽골에도 여러개의 도로가 있지만, 제가 알기로는 관리가 안 돼서, 엉망인 곳이 많더군요. 몽골의 재정으로 그걸 관리할 예산도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이것 봐요. 이진석 사장님, 은근히 무례하시군요. 우리에게 재정이 있든 없든, 그건, 우리 몽골의 문제라는 겁니다.”

타르한 대통령은, 살짝 표정이 굳어버렸다. 하긴, 외국인 사업가에 불과한 진석이 몽골 정부의 도로관리 능력이니, 예산이 있는지 하는 문제를 언급한 건, 주제넘는 짓이기는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선을 넘은 것 같군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도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고속도로도 필요하고, 꾸준한 관리도 필요하죠. 그래야, 남고비의 도시들이 발전할 테니까요. 그리고 남고비가 발전한다면, 몽골도 같이 번영을 누릴 겁니다.”

“그래요? 오아시스 도시들이 발전한다고 몽골도 번영을 같이 누릴까요?”

“타르한 대통령님, 몽골은 칭기스칸의 후예들 아닙니까?”

“하하, 칭기스칸은 위대한 정복자이셨죠.”

“단순히 정복자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죠. 칭기스칸의 위대한 업적은 동양과 서양 간의 교역로를 열어, 중아아시아에 고속도로를 건설한 거 아니겠습니까?”

“비유를 하자면 그럴 수도 있죠.”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칭기스칸이 유럽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교역로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물류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건, 동서양의 무역과 다양한 문호의 교류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게 지금, 사막의 고속도로와 무슨 관계라는 겁니까?”

“칭기스칸이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열었을 때, 양 끝에 있는 유럽과 중국만 번영을 한 게 아닙니다. 그 교역로의 중간에 위치했던, 왕국이나 도시들도, 중개무역 등으로 번영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타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죠. 그때는 물자 수송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중간 기착지인 도시들이 중개무역으로 이익을 얻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를 통해, 불과 하루 정도면 목적지에 도착할 텐데 무슨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린다는 겁니까?”

“물론, 타르한 대통령님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중개무역을 할 시대는 아니죠. 그보다는 몽골 남부의 황량한 사막지대가 고속도로 연결되면서 인적 물적 교류가 늘어나면, 이 일대가 발전할 거라는 겁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옥 같은 사막에서, 중간중간 도시들이 있고, 농경이 이루어지는 녹지로 발전하면 몽골 사람들도 이 버려진 땅으로 관광을 올 수도 있고,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고, 장사를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뭐, 그런 일들이 가능하기는 하겠죠.”

“그리고 사막을 통해,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교역도 늘어날 겁니다. 오아시스 도시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수출을 하게 되면, 그로 인한 무역으로 몽골의 화폐가치도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몽골의 소득 수준도 상승하고 말입니다.”

“그래 봐야, 다, 제이에스가 버는 돈 아닌가요?”

“누가 벌든, 통계에는 경제 성장으로 표현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경제 성장은 타르한 대통령의 업적이 되겠죠.”

“음, 그런가요?”

“그리고 도로의 건설은 큰 사업이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고, 인력도 많이 필요합니다. 몽골의 인력을 최대한 고용하도록 약속드리죠.”

“그렇다고 해도, 고속도로를 제이에스 그룹이 관리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이에스 그룹이 아니라, 남몽골의 자치정부가 관리하는 겁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방의 자치정부죠.”

“음, 그렇다는 말이죠.”

타르한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진석의 말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타르한이 대통령이 되도록 뒤에서 지원을 해준, 미국 쪽의 친구들이 진석을 돕도록 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된 타르한은, 다음 차기 선거도 다시 노려볼 만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지원 세력이 필요했다. 선거도 도울 수 있고, 또, 각종 외교적인 문제들을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지원 세력이 필요했고,

미국 유학 시절부터 인맥을 쌓은 미국의 정치 엘리트 그룹이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뒤에서 진석의 사업을 지원하도록 타르한에게 압력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석이 수장으로는 있는 국제 곡물 카르텔과도 연관이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정부의 일원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정부의 구성원들의 시각에서 보면, 남고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발전하는 것은, 식량 생산과, 지역의 힘의 균형이라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진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도로를 아사달의 자치정부가 관리하는 게, 효율성과 경제성 모두에서 몽골에도 이익일 될 겁니다.”

“음, 좋습니다. 들어보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타르한 대통령은, 썩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종국에는 진석의 제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새로운 데저트 하이웨이 건설에 박차가 가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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