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데저트 하이웨이(1)
아사달에서 쌀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그 외에 보리와 밀을 생산도 시작이 되었다. 두 작물 역시도, 진석이 공간에서 신품종을 개발해서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적합하게 개량한 품종들이었다.
그렇게 곡물 생산이 늘어나면서, 아사달과 인근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아사달, 제이에스 지사 사무실.
“장유진이라고 합니다.”
30대 중반 정도의 자신감이 넘치는 인상의 여자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스타 건축가라고 했다.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도시학에 관한 책도 쓰셨더군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장유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곳으로 초대한 것은 진석이었다.
아사달의 곡물 생산이 늘고, 다른 작물의 재배도 활발해지면서 아사달과 그 일대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생산력이 크게 늘었고, 이주민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북한의 식량난이 안 좋아지면서, 북한에서의 이주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주민들이 북에 가족들에게 쌀을 보내기 시작하기도 했다.
아사달 지역의 쌀의 생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그 대부분이 북한으로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식량 사정이 안 좋은 북한 입장에서는 아사달로 가는 주민들을 통제하지 않는 대신, 그 가족이나 친적들을 통해서 식량이나 달러를 송금받는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아사달 지역으로 주민들이 이탈하는 것을 크게 통제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엔 그리고 한국 정부도 일단은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북한에 식량이 유입되거나 달러가 들어가는 것에는 우려가 있지만, 북한이 너무 급격하게 식량 위기로 붕괴되는 것도 국제 사회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사달의 농업 생산력이 그러한 미묘한 국제 관계와 남북 관계에 균형을 맞추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균형은 상당히 불안정한 것으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이주민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농업에 종사하는 북한 출신 이주민들 외에, 도시가 커지면서 술집이나 음식점, 잡화점 등도 생겨나고 그런 종류의 자영업자들은 주로 한국이나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건물이나, 주택의 수요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사달은 진석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설계라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장유진은 미국에서 도시건축 전문가로 신도시 건설 계획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기왕이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국제 경험이 있는 건축가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직접 그녀를 아사달로 초대한 것이다.
다행히, 뉴욕에서 건축 사무실을 운영하던, 장유진은 진석의 제의에 흔쾌히 아사달로 와 주었다.
“여행은 힘들지 않으신가요? 여기저기를 경유해서 와야 해서 말입니다.”
“예, 인천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그 후에, 아사달까지 차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도로 사정은 좋던데요.”
“예, 최근에 아사달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생겼죠.”
“그럼, 다른 오아시스들도 다 도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건가요?”
장유진은 아사달의 건설을 설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미 사전에 남고비 일대의 오아시와 농업개발 사업 등, 제이에스가 몽골에서 사막을 개발하는 일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아사달 외에는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아서, 그저 물 저장고 같은 의미의 오아시스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그쪽에서도 농업을 하실 거 아니에요?”
“물론 그렇죠.”
“그러면, 각 오아시스들로 인력이나 장비의 이동은 여전히 비포장도로를 이용하나요?”
“그런 셈입니다.”
사실, 비포장도로라기보다는 사막의 모래땅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오아시스들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지만, 각각의 오아시스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망은 여전히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사달의 빠른 성장에 비해서, 외곽의 오아시스들은 성장이 부진했고, 계속 그런 일들이 겹쳐 사막의 도시들로 이주하는 이주민들도 대부분 아사달로 모여들고 있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도시로의 집중이 일어나고 있었다. 뭔가 불균형의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진석의 대답을 들은 장유진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저를 여기에 부르신 이유가 구체적으로 뭐죠?”
“그거라면,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아사달과 오아시스의 도시들의 설계를 부탁드리려는 겁니다. 도시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인구도 유입되고, 농업 생산력도 증가해서 앞으로도 인구가 더 늘어날 겁니다. 그에 따라서 집이며 건물, 상가 모든 것들이 더 필요하죠.”
“계획적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싶다는 말이겠죠?”
“예, 사실, 처음에는 사막에 도시를 건설하겠다, 그런 생각 정도였지만. 지금처럼 도시가 빨리 구성되리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아사달은 아무 생각 없이 필요한 건물들을 건설한 수준입니다. 도시 계획이라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 하고 말입니다.”
장유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가 잠시 둘러보기로는 계획 없이 지은 것 치고는 나름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정말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예. 일단, 도시 중앙에 공원이 있고, 그 공원 중심에는 광장이 있고요. 말하자면, 현재 아사달의 중심은 일종의 공백이죠.”
“뭐,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요. 공원은 건물은 없으니까요.”
“예, 그건 도시의 구조적으로는 좋은 거라는 거죠. 태풍이 회전할 때, 중심부는 태풍의 눈이라는 일종의 공백이잖아요.”
“그런가요?”
“모든 구조의 중심은 그렇게 공동화가 되어 있는 게 좋아요. 가장 중심은 비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꽉 차 있는 것이 보통인데. 가장 안쪽은 비어 있는 게 좋다는 건가요?”
“그렇죠. 핵심의 핵심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라는 거죠. 대부분, 오래된 도시들은 무의미한 공간을 중심에 두고 있어요.”
“글쎄요.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도시 중심이 비어 있는 도시들이라는 건, 생각을 못 해봐서.”
“비어 있다는 말이, 물리적일 필요는 없는 거죠. 서울을 예로 들면, 가장 중심부에는 경복궁이 있잖아요.”
“그건, 궁궐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도시의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래된 문화유산은 사실상, 빈 공간과 같아요. 거기에는 개발이나 건축이 불가능하잖아요?”
“음, 그런 의미군요.”
“유명한 도시들마다, 중심부에는 왕궁이나, 신전, 종교적인 신성한 장소, 아니면, 역사적인 공간들이 있죠. 이건, 현대적인 개발이 불가능한, 건축가에는 무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금 난해하기는 한데, 가운데가 빈 공간인 게 좋다는 말이겠죠?”
“대충 비슷해요. 중심은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는 거죠.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곳이 아니라, 연결의 공간요.”
“음, 그럴 듯 하네요. 교통의 중심지 같은 곳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 그런 말인가요?”
장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크게 보면, 아사달의 중심의 중앙 공원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교통이 연결되면 좋은 거죠. 가장, 핵심 구역은 모든 것이 관통해야 하니까. 공백 내지는 큰 목적이 없는 것이 좋아요.”
“중심에 기능이 몰려 있으면, 중앙에서 정체가 일어나겠군요? 그렇게 되면, 연결 과정에서 지체되는 시간이 더 많고요.”
“민주주의와 비슷하죠.”
“민주주의요?”
“예, 저는 도시의 구조에 대해서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거든요. 어떤 것이 효율적인가? 도시는 어떤 식으로 발전하는가? 하는 것들 말이죠.”
“저도, 도시학이라는 그 저서를 읽어봤습니다. 물론, 다 읽은 건 아니고 말이죠. 아무튼 흥미로운 내용도 많더군요. 도시로부터, 문명이 발달하고, 대부분 그런 건, 청동기에서 철기 사이에 발달했다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그렇죠. 청동기는 본격적으로 농업이 발달하고, 그로 인해 도시가 나타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철기 시대로 이어지면서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죠. 사실, 문명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도시의 발달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 말인가요?”
“청동기 이후로 농업이 발전하면서, 잉여 생산이 가능해지고, 잉여 생산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나타나죠. 바빌론의 이슈타르는, 풍요와 번영, 관능의 여신이고 동시에 창고의 여신이죠.”
“이슈타르 여신이라? 바빌론의 대모신 아닌가요?”
“이진석 사장님도 수메르 신화를 좀 아시나요?”
“바빌론이 아니고요?”
“수메르 문명을 이어받은 게 바빌론이죠. 바빌론의 이슈타르는, 수메르의 이난나와 거의 비슷한 신이거든요.”
“수메르라면, 인류 최초의 문명 아닌가요? 길가메쉬 대서시 같은 것도 나오고 말이죠.”
“예, 맞아요. 가장 오래된, 진흙의 문명이죠. 진흙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수메르 신화에도 진흙으로 인간을 빗어 만드는 이야기도 나오고 말이죠. 고대 문명의 기원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중근동 신화의 시초가 되는 곳이에요.”
“최초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런 셈이죠.”
“그런데 그게 민주주의 하고는 무슨 관계입니까?”
“고대의 도시들은 후에 왕권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결국 소통의 문제가 생기죠. 바빌론도 그런 식으로 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바벨탑을 만들다가, 언어가 달라지는 신의 저주로 멸망하잖아요.”
“그건, 그저 신화 아닌가요? 전설이나 그런 거 말입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바벨탑 이야기는 일종의 교훈이 있는데, 철기 시대에 강한 왕권국가들이 나타나지만, 결국, 영토와 인구가 늘어난 국가를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거죠. 각 지방과, 여러 계층, 여러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불만이, 중앙에 전달되지 않았죠. 그런 왕권국가들은 중앙에 너무 강한 권력이 있었던 거예요. 도시로 치면, 중심부의 기능이 비대하고, 여러 주요 시설이 몰려서 힘은 강하지만, 도시의 다른 부분을 연결해주는 허브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한 거죠.”
“그래서 결국은 비대해진 중심부의 권력을 못 견디고 붕괴했다는 건가요?”
“제 생각에는 민주주의라는 건, 중심 권력은 항상 공백이거나, 잠재적으로 공백이라는 거죠. 선거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교체가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권력이 강해지고 비대해지는 걸 막는 거죠.”
“그럼, 장유진 건축가님의 말은, 이 아사달의 도시구조도, 민주주의 정치처럼, 중심부를 공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까?”
“맞아요. 하지만, 물리적으로 빈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중심부에 특정한 기능보다는 다른 지역과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장유진의 말은 아사달을 포함한 사막의 오아시스 전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사달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이 교통과 통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럼, 현재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뭘까요?”
진석의 질문에 장유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제가 보기에는 아사달까지 오는 도로는 괜찮은 편이지만, 아사달에서 다른 오아시스들로 연결되는 도로들은 형편없어요. 그런 식으로는 발전된 아사달에 모든 게 집중될 뿐이죠.”
“음, 그렇겠군요.”
“당장은 아사달도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겠지만, 앞으로 점점 더 인구가 늘어나게 된다면, 아사달로 모든 게 집중되게 되면서 다른 지역의 발전도 어렵고요. 아사달 자체는 기능이 과밀해져서 도시 기능도 떨어지게 될 테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지 않은 거죠.”
“음, 이사달은 오아시스 도시들의 중심지이지만, 기능이나 역할은 모두 분산시키고, 아사달은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들은, 오아시스를 연결해줄 사막의 고속도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