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밭에서 키우는 벼(4) (149/183)

166화. 밭에서 키우는 벼(4)

“이게 그 새로 개발한 옥수수벼인가요?”

“예, 어떤가요? 멋지지 않나요?”

멜론 다음으로 재배할 작물은 바로 벼, 쌀을 생산하는 벼를 재배할 생각이었다.

아사달 외곽의 농업 개발지의 개발 순서는 먼저,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을 조성하고, 그다음으로는 사막 기후에 강한 유실수를 심는 것이었다. 그리고 3단계는 수목으로 인해, 수분 증발량이 줄어들고, 그래서 토양이 어느 정도 안정된 토지에 단년생의 작물들을 심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는 멜론과 수박이 재배되고 있었다. 진석이 사막 기후에서 잘 자라도록 개량한 사막 멜론들이 재배되어서 올해, 첫 번째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와, 멜론이 달군요.”

올해 재배돼서 수확한 멜론과 수박이, 수확을 마치고 먼저 각 오아시스 도시의 주민들에게 보내지고 있었다.

“수박도 수분이 풍부하고, 달아서 갈증 해소에는 제격입니다.”

한유식도 수박을 맛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이 공간에서 가져온 수박과 멜론들은 성공적으로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진석이 가져온 것이 바로, 옥수수벼라고 불리는 신품종의 벼였다.

“이진석 사장님이 밭에서 재배하는 벼를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믿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신품종을 보게 되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처음 밭에서 심을 수 있는 벼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한유식 과장은, 진석의 설명에도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느낌이었다.

진석이 가져온 볍씨들을 밭에서 파종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농사방법은 밀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밀 농사에 사용하는 농업기계들도 미국에 의뢰해서 아사달로 가져왔고, 미국식 기계들이 동원되어 도시 외곽의 농업지역에 신품종의 옥수수벼들이 파종되고 있었다.

“정말, 쌀을 재배하게 되면 큰 성과일 텐데 말입니다.”

한유식은 기계로 파종되는 옥수수 볍씨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공하게 될 겁니다.”

“이진석 사장님은 확신하고 계시는군요?”

“예, 확신하고 있습니다. 몇 달 후에는 이 일대가 푸른 벼밭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황금벌판이 되고, 쌀을 수확하게 될 겁니다.”

쌀은, 수박이나 멜론 같은 과일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작물이다. 과일이라는 것은 상업적 가치는 크지만, 식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는 수박에 미치지 못 할지 모르지만,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쌀과 같은 곡물이다. 어쩌면 너무 중요한 기본 곡물이라,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에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 정부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런 곡물 가격들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국가나, 도시의 자립을 위해서는 식량의 자급은 아주 중요한 요소고, 그래서 곡물의 가치는 단순히 경제성을 떠나 공동체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밭에 파종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겠죠.”

“예, 4개월 정도면 벼를 수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빨리요?”

한유식은 놀란 눈으로 진석을 바라보았다.

“예, 벼의 경우 일조량과 기온이 충분히 높다면, 보통 3모작도 가능하니까요. 이곳은 물이 부족한 환경이지만, 기온이 높고, 일조량도 충분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도 빠를 겁니다.”

진석이 옥수수벼를 실험한 곳은 이곳 아사달의 사막기후와 비슷한, 공간의 오아시스였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높은 기온이 유지가 되는 곳이라 그런지, 벼의 생장이 빠른 편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도, 일 년에 3모작이 가능하고, 한 번의 농사 기간이 4개월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럼, 결과를 보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군요.”

***

그로부터 4개월 후,

한국에 한 달 정도 머물던, 진석은 아사달로 향했다. 옥수수벼가 거의 다 자랐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아사달, 외곽, 옥수수벼 재배지.

“와, 그야말로 황금들판이군요.”

한 달 사이에 옥수수벼를 심었던 벼밭 주위는 몰라보게 변모한 모습이었다. 한 달 전만해도 푸른벼들이 녹색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는데,

진석이 잠시 한국에 다녀온 사이, 벼들이 여물어 황금빛의 들판을 이루고 있었다. 한유식 과장도 진석의 옆에서 감탄을 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진석 사장님의 예상이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저도 처음에는 밭에서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의 건조한 토양에서 벼를 재배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했는데, 결국 이진석 사장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정말 굉장합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황금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수확기에 이른 벼이삭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사막 도시의 풍요로운 미래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본격적인 수확만 남았군요.”

“수확을 하고 나면 뭘 하실 계획입니까?”

“음 글쎄요. 미국의 추수 감사제처럼, 기념하는 축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추석처럼 제사를 올리던지요.”

“음,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니까, 제사를 올리고, 추석 같은 명절을 여기도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추석 같은 명절이라?”

한유식은 추석과 비슷한 아사달만의 축제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추석은 날짜도 다르고, 뭔가 더 현대적인 축제가 필요했다.

“이진석 사장님은 어떤 축제를 원하십니까?”

“일단, 아사달에서 처음으로 재배한 곡물의 수확을 기념하는 의미로, 수확한 쌀로 떡을 만들어서 돌리기로 하죠.”

“떡이라고요?”

“예, 벼밭에 자라고 있는 벼 중에는 찹쌀벼도 있으니까요. 그걸로 떡도 만들고, 밥도 만들어서, 제사도 지내고, 같이 음식도 나눠 먹는 축제를 하는 거죠.”

축제의 이름은, 쌀을 수확했다는 의미의 수미제라고 하기로 했다.

“수미제라 적당한 이름이네요, 무슨 하늘이 열리고, 태양신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소박하고 말입니다. 쌀을 최초로 추수했다는 의미도 있고 말이죠.”

“그래요, 축제의 이름은 수미제로 합시다. 그리고, 나는 종교는 믿지 않지만, 보통 하늘이나 신에게 제를 올리니까, 우리도 농업을 번창하게 해주는 태양에게 제사를 올리면 어떨까요?”

“태양에게 말입니까?”

“예, 태양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죠. 지구상의 농업이라는 것, 작물의 영양분이라는 건, 결국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변형일 뿐이죠.”

한유식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는 기독교 신자지만, 종교적 의미라기보다는 과학적인 의미의 태양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진석 사장님 말대로 모든 작물의 근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미국에서 가져온, 콤바인들이 본격적인 수확을 시작했다. 콤바인에 잘려나간, 벼밭의 벼들은 콤바인에 잘려지자 마자, 바로 탈곡과정을 거쳐, 콤바인 옆의 커다란 곡물 자루에 담기고 있었다.

콤바인이 벼밭을 지날 때마다, 깔끔하게 벼가 잘려져 나가며, 벼가 담긴 곡물 자루는 하나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황금들판을 이루던, 벼밭이 완전히 비워지고 나서야, 추수 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수확한 벼들은 아사달에 새로 건설된 방앗간에서 도정 작업을 거쳤다. 쌀은 주로 밥을 지을 때 쓰는 멥쌀이 대부분이었지만, 떡을 만들 수 있는 찹쌀도 있었고, 그렇게 도정 과정을 거친, 찹쌀과 멥쌀을 이용해서,

수미제에 쓰일 떡과 밥, 그리고, 식혜와 쌀과자 같은 쌀을 이용한 여러 가지 먹거리가 만들어졌다.

***

일단, 아사달의 시장인 이성우 시장에게 수미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오, 그래요? 아사달에서 이번에 수확한 쌀이군요. 이걸로 떡도 만들고 밥도 지어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군요?”

“어떻습니까? 뭐,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의 제사를 지낼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다양한 계층이 모이는 도시에는 그런 상징적인 행사들이 필요하게 마련이죠.”

다행히, 이성우 시장도 진석이 제안한 수미제의 취지에 공감을 하고, 아사달시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 외에 아사달에서 수확한, 여러 가지 작물들과, 과일들까지 합쳐져서, 하늘, 즉,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수미제의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

아사달 시, 중앙광장

아사달 시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공원과 그 공원 중심의 중앙광장에 새로 수확한 곡식의 수확을 기리는 작은 제의가 시작되었다.

수미제라는 이름의 이 제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는 하지만, 거창한 행사는 아니었고, 보통 가정에서 볼법한 작은 제사상에 수확을 한 벼 이삭과, 도정한 쌀, 그리고 그 쌀로 만든, 떡과 밥, 그리고 과자 같은 것을 올려놓고, 그 주위에 아사달의 오아시스 농경지에서 키운 과일과 채소들을 더해 놓은 정도였다.

아사달의 초대 시장이자, 현직 시장인 이성우 박사가 제사의 제관이 되어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제사의 대상이 되는 하늘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농업에 영향을 주는 자연과, 시간을 의미했다.

그렇게 쌀의 수확을 기념하는 수미제가 단출하게 치루어졌다.

***

북카페, 아사달점.

“이진석 사장님, 오늘 수미제 재밌게 봤어요.”

“어, 그래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진석에게 최영미 점장이 다가왔다. 수미제를 하는 동안, 그리 많은 인파가 모이지는 않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영상이 전송되었고, 아사달의 많은 주민들이 그 영상을 생방송으로 시청한 모양이었다

아사달에서는 쌀이 재배되었다는 것이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었다. 진석이 신품종의 벼를 밭에서 재배한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지만, 설마 쌀을 수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사달에서 재배한 밭벼에서 나온 쌀로 떡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미제라는 제사도 지내는 일이 굉장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최영미 점장도 그 일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쌀도 생산되면, 정말 도시가 크게 발전하는 거겠죠?”

“그럴 수도 있죠. 아무래도 쌀이 생산되면, 도시의 기반이 잡힌다고나 할까요. 대다수의 독립적인 국가들은 식량을 자급하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요? 그럼, 나중에는 이 아사달도 독립 국가가 되는 건가요?”

“하하, 글쎄요. 뭐,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또,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예민한 문제라, 진석은 말을 아꼈지만, 아사달은 여러 면에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쌀의 재배도 가능해지고, 아마도, 쌀의 재배가 가능하다면,

그보다 밭에서 재배하기 쉬운, 보리나, 밀, 옥수수의 재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곡물들의 생산이 가능해지면, 아사달의 농업 도시로서의 입지는 크게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대량의 식량 생산이 가능해지면,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도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식으로 도시의 세력이 강해진다면, 먼 미래에는 독립적인 국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점이었다.

최영미 점장은 진석의 말에 호기심이 생기는지, 아예 진석의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사장님, 저는 차라리, 이 도시가 따로 독립을 했으면 좋겠어요. 뭐, 지금도 몽골과는 다른 세계라는 느낌은 들지만 말이에요.”

“독립요? 몽골로부터 독립해서 한국으로 편입하자는 건가요?”

“아뇨, 제가 한국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편입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독립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거죠. 아사달 공화국, 아니면, 아사달 왕국이 되어도 좋고요.”

“하하, 아사달 공화국도 아니고, 왕국이라고요?”

“왜요? 못 할 것도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이진석 사장님이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이 도시를 독립시킬 거라고 말이에요.”

“하하, 저런, 그런 발언은 위험합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몽골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얻은 것 뿐이라고요. 100년간 말이죠.”

“100년 후라면, 생각하기 힘든 까마득한 미래지만, 그때, 주민들이 몽골로 돌아가기를 원할까요?”

최영미는 100년 후의 이곳 주민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진석도 아직, 그런 것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진짜 이 땅을 몽골에 반환해야 할 때쯤, 이곳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몽골의 일부로 돌아가기를 원할까? 아니면,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원할까?

진석의 상상으로는 아마, 후자를 더 원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