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밭에서 키우는 벼(1)
남고비, 아사달, 북카페 아사달점.
“밭에서 키우는 쌀이라고요?”
“예, 그런 거 처음 들어보시나요?”
아사달, 농업 연구센터 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한유식과 진석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벼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 아닌가요? 베트남이나 그런 곳 말입니다.”
한유식 과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벼의 원산지가 어디냐는 이야기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모두 다 학설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보통은 인도의 아삼 지방 정도가 고대로부터 쌀 재배지였다는 건 잘 알려져 있죠.”
쌀이라면, 진석도 많이 재배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한국의 중부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 경기미를 개발한 것이 진석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진석도 많은 실전 개발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그리 훌륭하다고 할 수 없기는 했다.
진석이 남다른 작물 개발 능력이 보이는 것은, 시간을 가속할 수 있는 공간에서의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각종 작물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나,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진석에 비해 학문적인 이해도는 한유식 과장 같은 농업 전공자들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유식 과장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 한유식 과장은 그저 자기 고향 마을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과장님은 고향이 어디십니까?”
“저는 전라도 출신이죠.”
“전라도라면, 호남평야가 유명하죠. 우리나라에서 드문 넓은 평야 지대 아닙니까?”
한유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업 지역이, 산 중간중간에 있는 소규모 평야 정도인데, 호남평야는 그에 비하면 거대한 평야 지대죠. 물론, 미국의 프레리 정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하, 그렇겠죠. 그러면, 한 과장님의 고향은 넓은 평야겠군요?”
“아뇨, 전라도라고 해도 넓은 평야도 있고, 산지도 있고 그런 거죠. 제 고향은 평야가 아니라, 산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죠.”
“그래요? 그래서 밭에서 벼를 키운다는 겁니까?”
“예, 그런 셈이죠. 산골 쪽이라, 논이 별로 없거든요. 논이라는 게, 아시다시피 물을 받아서 벼를 키우는 저수지 같은 것이죠. 일종의 인공습지 말입니다.”
“맞아요.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야생벼가 자라는 그런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했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 논이라는 것은 벼농사를 위해 만든 인공의 습지인 것이다. 당연히 습지대와 같은 조건에서 잘 자라는 벼는 논에서 키우는 것이 적합한 작물이다. 그런데, 밭에서도 벼를 키운다고?
한유식의 말에 의하면, 그의 고향에서는 산골이라, 논이 부족해서 그런지, 옥수수나 감자를 심는 밭에 벼도 심는다는 것이었다.
“한 과장님, 벼를 심는다면, 어떤 식으로 심는다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벼는 모내기를 하는데, 물이 없는 곳에 모내기를 한다는 건가요?”
일반적인 벼의 재배방식은 볍씨를 발아시켜, 모종을 만들고, 그것을 물이 찬 논에 하나씩 심는 방식, 벼라는 작물 자체가 뿌리가 약해서 깊게 흙을 파고들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부드러운 흙에 살짝 묻어주는 것으로 벼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이 없는 곳에는 이 모내기가 불가능한 것이, 뿌리가 발달하지 않는 벼의 특성상, 메마른 땅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하, 이진석 사장님, 밭에다가 모내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죠. 물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물 없는 땅에 벼의 모종을 심는 건 생존률이 낮죠. 그보다는 밭에 그냥 씨앗을 파종합니다.”
“씨앗을 밭에 파종한다고요?”
“예, 그런 식으로 파종을 하면, 흙속에서 싹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벼가 자라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키우는 벼들은 모내기를 한 벼들보다, 뿌리가 더 강한 편입니다.”
“음, 벼를 파종한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물론, 그런 밭에서 키우는 벼들은, 조금 품종이 다른 종이죠.”
“어떻게 말입니까?”
“그렇게 밭에서 키우는 벼들은 일반적인 벼들과는 달리, 찹쌀이 나오는 벼들입니다.”
“찹쌀요?”
“예, 벼들은 크게 떡을 만드는 찹쌀과, 밥을 짓는데 쓰는 멥쌀로 구분할 수 있죠.”
“음, 그렇기는 하죠. 찹쌀이 더 부드러운 거죠?”
“예, 찹쌀은 물과 함께 가열하면, 물러지는 성질이 있죠. 그래서 찹쌀은 물과 닿지 않게 시루에 넣어 수증기로 익히는 법이죠. 그에 비해, 멥쌀은 물이 넣어서 불려야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솥에 물과 함께 넣어서 익히는 것입니다.”
“음, 그러니까. 밭에서 키우는 벼는 찹쌀벼라는 말이겠군요?”
“예, 아마도, 찹쌀벼가 좀 더 건조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죠.”
“그에 비해서 멥쌀벼는 물이 있는 논이 필요하고요?”
“예, 사실, 찹쌀과 멥쌀 둘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재배되었느냐, 하는 것도 농업계에서는 오래된 논쟁이기도 했죠.”
보통 쌀농사가 보급된 것은 청동기 시대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한반도의 쌀 유적지들은 청동기를 쌀이 들어온 시점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쌀이 재배가 되면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쌀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찹쌀과 멥쌀의 차이로 인해, 두 가지 쌀은 조리 방법도 차이가 나고, 조리 방식에 따라, 조리 기구도 시루와, 솥 이라는 다른 형태의 조리 기구로 구분된다.
“그래서 어떤 게 더 먼저인가요?”
“보통은, 시루가 더 고대의 유물이라는 평가가 있죠.”
“그 말은?”
“찹쌀의 재배가 더 먼저라는 거죠, 고대에는 지금의 논이라는 게 없었을 겁니다.”
“그야, 그렇겠죠. 본격적인 수리시설이 나타난 건, 삼국시대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죠, 신라시대의 석탈해와 유리왕이 서로 왕위를 두고 다투다가, 떡을 먹고 승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떡요? 떡으로 어떻게 승부를 가리죠.”
“고대에는 이가 많은 것을 장수의 상징으로 봤죠. 치아가 건강하다는 건, 치과병원이 없던 고대에서는 건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
“그렇습니다. 물론, 전설이지만, 그렇게 두 왕이, 이빨의 수, 치아의 잔존 개수로 왕위를 결정했다는 거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둘이 그 치아 개수를 세는 장치로 떡을 이용했다는 거죠. 원래 고대에는 떡으로는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사에는 떡을 쓰지 않습니까?”
“예, 하지만, 요즘 제사를 지낼 때는 밥도 올라가고 떡도 올라가지만, 삼국 시대만 해도, 제사는 떡을 올리고, 밥은 사람들이 먹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고대로부터 찹쌀이 먼저 재배되고, 그 후에 멥쌀을 재배했을 거라는 반증이죠.”
“제사 같은 전통은 좀 더 이전 세대의 방식이 전승하는 것이니까, 원래 떡을 먹으면서 제사에도 떡을 올리던 전통이 후에, 더 먹기 좋은 밥을 먹게 돼서도 남았다. 이렇게 해석 가능한가요?”
“정설이라는 건 없지만, 그런 해석이 가능하겠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전라도 지방의 산간에서는 씨를 파종하는 방식으로 산간의 밭이나 야산 기슭에서 찹쌀벼를 재배하고 있었다.
물론, 수확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여기서 나오는 찹쌀로 가끔 떡을 만들어 먹을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런 전통이 소소하게 이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쌀농사의 전파 과정도, 중국의 황하 북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쌀농사라면, 양쯔강 이남의 소위 말하는 강남 지역에서 쌀농사가 활발하지만, 황하 문명은 북방의 황하 일대에서 발흥한 문명이다.
보통 하북 지방은 밭농사, 밀농사가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쌀의 재배 기록이 있는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뭐가 대단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쌀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이 필수다,
그리고 논이라는 것은, 자연습지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토지에 물을 채워 넣은 인공습지 형태인 것이다. 논이라는 것은 인공적인 구조물이고, 수리시설이 필수적이다.
고대에 처음부터 이런 시설이 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북방에서 처음 재배되던 쌀은 그래서 아마도, 밭에서 재배를 했을 것이고, 그런 밭에서 재배되던 쌀은, 물가에서 잘 자라는 멥쌀보다는 찹쌀벼 계통의 야생벼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찹쌀계통의 벼는 멥쌀에 비해, 무르고 저장성이 떨어지고, 물에 넣고 가열했을 때, 밑부분이 물러져 늘러붙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밥을 지어도 솥의 아래는 타고 위쪽은 설익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찹쌀을 먹기 위해서는 직접 물이 닿지 않게 수증기로 가열하는 시루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루로 찹쌀을 익힌 것을 떡이라고 부르는 것이 한국 외에도 중국과 일본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시루를 이용한 조리법이다.
밥보다 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떡이 맛이라는 측면에는 더 고급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일반적인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멥쌀이 더 앞섰기 때문에,
결국 찹쌀벼는 멥쌀벼에 밀려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다. 보통 한국에서 쌀이라는 것은 멥쌀을 말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쌀농사 방식도, 자연스럽게 남방계의 멥쌀벼를 키우기 위해 여름철에 논에 물을 받아 키우는 지금의 논농사 방식이 주류가 된 것이다.
그것은 청동기 이후로 수천 년의 역사 동안, 한반도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진 농사법이었다.
진석도 그것을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쌀을 재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쌀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막대한 물을 이용해서 사막에 논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에, 수분 증발량이 많은 남고비 사막에서 그것은 지하수 공급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유식 과장이 뜻밖에도 고향에서 키우는 찹쌀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논이 없어도 벼를 재배한다는 것은 진석에게 신선한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논이 아니라, 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면, 오아시스 도시들에서도 쌀의 재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물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역시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곡물이었고,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대표적인 곡물은 바로 쌀이다.
그 쌀을 최초의 오아시스 도시 아사달에서 재배하게 된다면, 큰 의미가 있는 진전이 될 것이다.
“한 과장님, 지금 시루가 먼저냐? 솥이 먼저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에서 쌀을 재배해 보자는 말입니다.”
“예, 쌀을요? 그러면, 이진석 사장님은 사막에 논을 만들겠다는 겁니까? 아니면, 혹시 논 없이 밭에서 쌀을 재배하시겠다는 겁니까?”
“물론, 후자입니다. 저도 처음에 쌀농사를 생각했을 때는 당연히 논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많더군요.”
“음, 그렇죠. 사막에 논을 만든다면, 아무래도 얕은 호수를 만드는 것 같은 것인데, 사막 지대는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아서 증발량이 엄청날 테니까요.”
“맞습니다. 물의 공급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논이라는 특성상, 넓은 지대에 물을 채워야 하는데, 그 증발량을 감당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과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밭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겠더군요.”
한유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논이 아니라, 일반 밭에서 재배한다면, 어쨌든 뿌리에만 물이 공급되면 되니까, 필요한 물의 양도 굉장히 적어지고, 재배 자체는 단순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벼는 원래 뿌리가 발달하지 않는 작물인데 말입니다. 올리브처럼,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식물은 아니라는 거죠.”
“그거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종 개량을 하다 보면, 사막의 밭에도 적응하는 그런 벼가 나오지 않을까요?”
“하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할 겁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제이에스에는 다양하고 비밀스러운 연구시설들이 많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