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방울방울 앵두나무(3) (145/183)

162화. 방울방울 앵두나무(3)

남고비 아사달, 이성우 시장의 집무실.

“이게, 그 새로운 앵두나무 묘목이군요?”

이성우 시장은 신기하다는 듯, 묘목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앵두나무라면, 예전에 시골에서 집집마다 하나씩 있던 나무인데요.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친근한 나무죠.”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도 시골에는 마을 어귀에 앵두나무가 많이 있어요. 담장이 있고, 그 위로 앵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게, 한국 시골 풍경 중에 하나죠.”

아마도 전통적인 한국의 시골집들은 담이 높지 않아서일까,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안이 들여다보이는 일이 많다 보니, 일종의 집을 가려주는 커튼 같은 느낌이랄까, 담장 안쪽에 심어져 있는 앵두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집안에 심어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이즈, 잎도 제법 무성한 편이고, 키가 적당하고 약간 옆으로 잎이 퍼지는 스타일이라, 담장 위쪽을 가리기에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앵두라는 열매는 예쁘기는 하지만, 굳이 심어 열매를 먹을 정도로 과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앵두나무는, 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성격이 아니었을까?

물론 크게 근거가 있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진석은 시골의 오래된 집 담장 안쪽으로 무성하게 자라있던 앵두나무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집은 주인이 떠난 듯, 담장 한쪽이 허물어진 농가였는데, 사람들이 떠나고 나자, 앵두나무가 집 안까지 자라나며, 빈집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한국적인 나무인 이 앵두나무를 아사달에 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이 앵두나무를 우리 아사달 시의 상징목으로 하면 어떨까요?”

“앵두나무를 말입니까?”

이성우 시장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진석도 잠시 생각해보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원래 도시들에는 도시의 상징물 내지는 수호물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예, 이 앵두나무는 상업성보다는 그 설수민 소위의 개인적인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심는 거 아닙니까? 뭔가 의도도 순수하고, 사실 우리 도시는 처음부터 농작물을 재배하고 어떤 기업형의 농업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 도시 고유의 서사가 없다고 할까요.”

“서사요?”

“예, 도시는 국가든, 건국신화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그 도시가 만들어진 배경이 되는 이야기 말이죠?”

“예, 보통 어떤 상징물과 연관이 되어서, 그것이 이 도시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니까요. 예를 들어서 이 앵두나무라면, 한 젊은 간호장교가, 먼 이국땅으로 오게 되고,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고향에서 보던 이 앵두나무를 보고 힘을 얻는 거죠.”

“하하, 약간 신화 풍으로 각색을 하면, 이국의 사막으로 오게 된 처녀가 향수병으로 슬픔에 잠기고, 그 슬픔에 대지도 슬픔에 잠겨, 곡식이 자라지 않다가, 어느 날 고향에서 보던 앵두나무를 보고 처녀가 웃음을 되찾자, 비로소 대지의 신도 이 땅에 작물을 자라게 허락을 한다거나 그런 거 말인가요?”

이성우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앵두나무가 잘 자라게 되면, 이걸 우리 아사달의 상징목의 선정하도록 하죠.”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우 시장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신화의 주인공들, 어떤 도시의 건설자 내지는 초기 이주민들은, 순수한 사람들이며 그래서 그런 순수함으로 인해 신들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번성은, 그 신들의 축복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일단은, 도시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일단 이걸, 도시 외곽의 방풍림에 심어보도록 하죠. 다른 나무들처럼 잘 자라기를 빌면서 말입니다.”

***

아사달 외곽, 방풍림 숲.

사막은 일교차가 큰 지역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거센 바람, 모래바람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막지대는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아내는 것이, 오아시스와 농경지대, 그리고 도시를 지켜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도시 외곽 지대에는 모래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무의 수종은 대부분 도시 건설 초기에 심었던, 사막올리브 나무들이었다. 혹독한 사막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는 나무들이었기 때문에

아사달의 초기 건설기부터, 도시 외곽을 방어하는 방풍림을 만들었던 나무들이었다.

“이진석 사장님?”

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설수민 소위님이군요.”

“예, 다시 만나게 되네요. 그런데 어쩌죠? 지난번에 제가 심었던 앵두나무는 다 말라 죽고 말았어요, 사장님이 물을 더 줘보라고 해서 열심히 물을 주기는 했는데 큰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에요.”

“하하, 그래요. 아쉽게 됐네요. 사실은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새로 앵두나무를 가져왔어요.”

진석은 뒤쪽에 심기 위해 가져온 묘목들을 보여주었다.

“어머, 이게 다 무슨 나무예요?”

“수민 씨가, 앵두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앵두나무를 준비했죠. 물론, 보통 앵두나무는 아니고, 사막 기후에 잘 자라는 신품종입니다. 나중에 자란 걸 보면 깜짝 놀랄걸요.”

“정말요, 저를 위해서 이 나무들을 심어주시는 거예요?”

“예, 사실은, 지난번에 수민 씨가 앵두나무를 심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무슨 생각요?”

“저는 이 도시를 제이에스 그룹과, 거대 자본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많다는 거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거고요. 그래서 이 사막의 도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한순간을 지나쳐 가는 정류장이 될 수도 있고, 또 열차의 목적지처럼, 이주해서 정착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음, 좀 어렵네요.”

“뭐,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도시의 다양성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현상이라는 거죠.”

진석은 가져온 묘목들을 수민과 같이 도시 외곽의 방풍림 사이에 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의외의 나무들도 오아시스의 도시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

남고비, 제이에스 지사. 사무실

“이제 다음 주면 대선인가요?”

진석이 대통령에 막 당선된 오명진 대통령의 부탁으로 몽골을 방문해서 사막의 도시들을 개발하기 시작한 지도, 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도시는 그동안 성장을 거듭하며, 어느새 수만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에서는 오명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사달도, 한국의 영토는 아니지만, 한국인 비중이 많은 도시였기 때문에, 재외국민 투표를 위한 투표소가 만들어졌다.

“이진석 사장님은 누굴 뽑으실 겁니까?”

“나야, 아무나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은 없죠.”

현직 대통령인 오명진 대통령과는 강원도지사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이번에 후보로 나온 대선 후보들과는 전혀 친분이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주로 해외를 떠돌았던 이유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제이에스 그룹이 국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의 정치의 영향을 받을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 북한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북한 정부가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북한 출신 이주민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진석은 미국과 유럽의 보이지 않는 정부를 통해 중국의 공산당에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북한 정권을 압박할 수 있었다.

고립된 폐쇄사회인 북한이지만,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북한 정권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 정부의 영향력이 공산주의 국가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북한 정권에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진석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북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아사달의 자치 의회 선거를 제외하면, 민주적인 선거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멀리 떨어진 해외에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호기심과 신기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사달에서 먼저 사전 투표가 이루어지고, 한국의 대선 당일이 되었다.

아사달에도 한국 tv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과 시간이 마무리된 저녁 무렵에 카페는 대선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최영미 점장님도, 대선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 저요? 사실은, 저는 투표하지 않았어요.”

“그래요?”

카페 안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책을 읽거나 음료를 마시러 온 사람들보다는 마치 월드컵 축구경기처럼, 여럿이 모여 대선 결과를 보려는 모양이었다.

“아사달의 투표율은 상당했던 것으로 아는데, 한 90% 이상이라고 하던데 투표를 안 하셨군요?”

“예, 그 10%가 바로 저 같은 사람이죠.”

“왜 투표를 안 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진석은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은, 저는 한국을 떠나왔잖아요. 한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니까, 뭐랄까? 떠나온 자는 좀 권리가 없는 게 아닌가 해서요.”

“그래도, 나중에 돌아갈 수도 있고, 어쨌든 한국인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 아닌가요?”

진석의 말에, 최영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정치인들을 믿지 않아요.”

“음,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예, 뭐, 어느 쪽이든 순수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최영미 씨가 생각하는 순수함이라는 건 어떤 겁니까?”

“음 글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 아닐까요? 자기 지위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하지만,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죠. 다수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있지 않겠어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정치인들이 다수가 원하는 일들을 하려고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럼, 뭘 위해서 정치를 한다는 건가요?”

“자기만족 내지는, 권력을 추구하는 거겠죠? 그 외에 뭔가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권력을 탐하는 욕망 아닐까요?”

“후후, 최영미 점장님은 염세적인 분이군요?”

“그럴 지도 모르죠.”

개표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10,9,8...2,1”

“야, 역시, 강민우가 앞서가는데,”

“아직 모른다고, 한성준도 큰 차이는 안 나.”

출구조사가 발표되었지만, 아직, 오차범위 안의 접전이었다. 카페 안은 양 후보의 지지층으로 양분되는 분위기였다.

“승부가 빨리 나지는 않겠는데요?”

“사장님은 누굴 찍으셨어요?”

“사실은, 저도 투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 정말요? 아까는 나한테 왜 투표 안 했냐고 하시더니?”

“하하, 저도 정치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저도 물어봐도 돼요? 왜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저는 정치인에 기대감이 없죠.”

“정치인은 무능하다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죠. 어차피, 정치라는 건,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거니까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듣기 좋은 그런 정책을 펼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현명한 정치인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다들 정치를 통해서 해결하잖아요?”

“하하, 꼭 그럴까요?”

“그럼 아닌가요?”

진석은 최영미에게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 집단이 존재하고, 그들이 모여 세계의 보이지 않는 정부라는 느슨한 연합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최영미가 이해할지도 알 수 없고,

괜히 그녀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쓸데없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이란, 자기의 수준에 맞는 해답을 원할 테니까 말이다.

“뭐,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저도 최영미 씨처럼, 염세적인 성격이라 말입니다. 저도 정치인들은 싫어합니다.”

진석의 말에, 최영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과 저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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