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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방울 앵두나무(1) (143/183)

160화. 방울방울 앵두나무(1)

“이게 뭔가요?”

“앵두예요.”

“앵두요?”

아사달 외곽의 농장에, 못 보던 나무가 있어서 물어보니, 누가 한국에서 앵두나무를 가져다 심은 모양이었다.

“하하, 그런데, 잘 자라는 건가요?”

진석이 신기한 듯 앵두나무를 바라보고 있자, 어디선가, 젊은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이진석 사장님이시죠?”

“아, 예. 그런데요.”

“설수민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설수민 소위였다. 여군의 간호장교였던 것이다. 아사달에는 도시의 초기부터 의료인력이 부족해서, 의사들을 한국에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의사들의 경우는 공중보건의들이 많이 있었고, 간호사들은 여군의 간호장교들이 파견을 오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민간 의사들이나 간호사 비중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외곽의 병원에는 군의 지원을 받고있는 상황이었다.

“아, 간호장교님이시군요.”

설수민 소위는 진수가 보고 있던, 앵두나무를 심은 주인공이었다.

“신기하네요. 여기에 나무들을 많이 심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회사 차원에서 사업으로 하는 것 외에 개인들이 나무를 심는 건 처음 봅니다.”

“그래요? 별 건 아니고, 고향에 가면 앵두나무들이 많거든요. 휴가 기간에 중국 쪽에 들렀다가 앵두나무가 있길래, 몇 그루 사왔어요. 앵두가 잘 자라면, 고향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랬었군요.”

하지만, 설수민 소위의 바람과는 달리, 앵두나무들은 사막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말라가는 중이었다.

“나무가 썩 잘 자라는 것 같지는 않네요.”

“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하긴, 제이에스 그룹 분들처럼, 농업 전문가도 아닌데 제가 막 사다 심은 나무가 이런 사막에서 잘 자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하지만, 그런 시도는 아주 신선하네요. 이 도시에 제이에스 그룹이 사업의 개념으로 나무를 많이 심기는 하지만, 이렇게 고향을 그리며 나무를 심는 사람이 생기는 걸 보는 것도 괜찮은 느낌입니다. 자연에는 항상 이런 일반적인 것을 벗어나는 변종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변종요? 제가 이상한 사람인가요?”

“하하, 아뇨. 말 그대로 신선한 시도라는 겁니다. 여러 사람이 살다보면 다양성이 생겨난다는 거죠.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앵두나무는 망했어요. 저는 칭찬을 받은 것 같아. 좋지만.”

설수민은 간호장교라고는 하지만 20대 초반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첫 부임지가 바로 이 남고비 사막이었던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지로 임관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된 어린 간호장교를 생각하자 진석도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앵두나무는 물을 더 주면 살아날지도 모릅니다. 좀 더 지켜보죠.”

“그럴까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말라죽기 시작한 앵두나무를 살리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설수민 소위를 위해, 앵두나무를 주변에 많이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보통의 앵두나무가 아니라, 사막 기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좀 다른 앵두나무를 개발해 볼 생각이었다.

아사달의 저온 저장고에 이미 공간으로 가는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곳을 통해 아사달에서도 공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막에 자라는 나무들 중에, 앵두와 비슷한 나무를 찾아, 혼종을 해볼 생각이었다. 앵두나무 자체는 사막 기후에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앵두나무와 혼종을 하기 쉬우면서 사막에 적응력이 있는 사막지대의 유실수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

아사달, 이성우 시장의 사무실.

“앵두와 비슷한 나무라고요?”

“예, 열매가 앵두와 비슷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나무들끼리 혼종을 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열매가 어느 정도 비슷한 종들이 혼종의 성공률이 높았다. 나무의 모양이나, 자라는 형태, 크기보다, 열매의 형태의 유사성이 혼종 성공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열매라는 것이, 식물의 생식방식인 씨앗의 형태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제이에스 그룹을 떠나 공직인 시장을 맡고 있었지만, 이곳 사막의 식물들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성우 박사였기 때문에, 진석은 이성우 박사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다.

“음, 아마 사극 나무가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극 나무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지대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죠. 사막이나, 혹은 아주 추운 기후에서도 잘 자라요, 그래서 일교차가 큰 사막에 적응력이 좋은 편이죠.”

“사극 나무라?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인데요.”

진석의 말에,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품종은 아니죠. 제이에스 연구소에 연구용으로 제가 가져온 나무들이 몇 그루 있을 겁니다.”

“그래요?”

아사달의 제이에스 지사에도 사막에 재배할 작물들의 연구를 위해서, 한국의 연구센터보다는 소규모지만, 연구시설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사막지대의 작물들의 종자와, 묘목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었다.

***

아사달, 제이에스 사막농업연구소.

“사장님이 여긴 웬일이십니까?”

연구소 직원인 한유식은 진석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아, 이곳 연구소는 제가 처음 와보네요. 한 번 구경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사실, 그리 볼 건 많이 없습니다. 본사의 연구소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죠.”

“한유식, 과장님이시군요. 전에는 어디에 계셨었나요?”

“인제에 있는 농업연구소 소속이었죠. 아사달에는 작년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아,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재작년 쯤에 이성우 박사의 건의로 농업연구소 아사달 지소를 만들게 되었고, 작년 무렵 한국의 본사의 인력과 장비들을 가져왔던 기억이었다.

“인제 농업센터라면, 소대영 부장도 잘 아시겠네요?”

“아, 소대영 부장과는 동기 사이입니다.”

“그래요?”

“예, 입사 동기인데, 소대영 부장이 승진이 좀 빨랐죠. 하하, 그래서 저는 사실 퇴사를 할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퇴사라니 왜 말입니까?”

“뭐, 한국의 기업 문화는 그런 게 좀 있잖습니까? 동기나 후배가 상급자가 되면 퇴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거 말입니다.”

진석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진석 스스로는 탈권위적인 사람이고, 제이에스도 권위적인 회사는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일하는 한국 회사도 보니, 한국 사회의 그런 불문율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는 통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바꿀 성격의 문제도 아니고 해서, 진석은 그런, 불합리한 부분들이 스스로 정화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기가 상급자가 되니까, 퇴사를 고민했던 거군요?”

“예,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사달에 새로 지사가 생겼고, 제가 지원을 했죠.”

“오, 지원을요?”

“예, 한국 기준으로는 회사 생활에서 좀 실패한 케이스지만, 이곳에 오면 새로운 환경 새로운 세계 속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한 과장님은 만족하시나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좀 힘들지만, 나름 회사 생활은 만족합니다.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요.”

“그래요, 한 과장님에게도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은, 오늘 저는 사극 나무를 보러 온 건데요. 볼 수 있을까요?”

“사극 나무요? 그것도 사막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죠.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유식은 진석을 연구소의 식물원으로 데려갔다. 보통은 유리온실 같은 식물원들이 연구소 내에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사막농업연구소라, 따로 온실 같은 인공적인 시설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 지역의 사막 기후 그대로인 그런 자연스러운 노지의 식물원이 연구소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선인장부터 시작해서, 사막에 적응이 된, 여러가지 사막에 생존하는 작은 식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좀 키가 작은 보리수 비슷한 나무도 있었는데, 열매도 보리수 열매와 비슷한 타원형의 작은 열매들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극 나무는 어딘지 보리수와 비슷하네요.”

“예, 비슷한 종류입니다. 사막에 자라는 보리수라고 생각하면 되죠. 하지만, 사막지대의 적응이 되어서, 키가 작고, 대신 뿌리는 깊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리수, 뽀루수 나무들은 좀 높이 자라는 편인데, 그 반대군요.”

한유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 기후라는 게, 하나는 건조하고, 모래토양, 거기에, 아침 저녁 일교차가 크고, 그로 인해 바람이 강하죠. 그래서 뿌리가 깊어야 하고, 키는 좀 작은 게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그리고 같은 보리수와 비교해서, 열매가 가지 하나에 촘촘하게 열리는 특징도 있습니다. 마치 일반 토마토와 방울토마토의 차이랄까요.”

“그것도 사막 기후와 관계가 있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같은 종류인 한국의 보리수는 더 높이 자라고, 잎도 풍성하고, 열매는 드문드문 열리는 편이죠. 나무가 큰 대신, 넓게 열매가 퍼져서 열린다면, 사극 나무는 나무도 더 작고, 대신에 가지 하나에 열매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열리죠. 뭔가 집중된 모습인데. 아무래도, 아래쪽 뿌리가 발달하고, 사막의 모래바람에도 견뎌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음, 합리적인 추론이네요. 아무튼, 사막에 최적화된 모습이군요.”

외형상으로는 앵두나무와 좀 달라 보이지만, 사극 나무도 보리수과의 나무라, 앵두와 비슷한 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앵두나무와 사극나무를 혼종을 해보면, 쉽게 혼종에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진석은 연구소에서 묘목과 종자들을 얻어서 아사달의 저온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의 오아시스에 도착하자,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주님, 오늘은 어떤 나무인가요?”

“사극나무라는 건데, 이건 사막에서 잘 자라는 나무지, 그리고 이건 앵두나무.”

“사극나무와 앵두나무라, 두 가지다 심으실 건가요?”

“그래, 사실은 두 나무를 혼종을 해서, 사막에 최적화된 앵두나무를 만들어 볼 생각이야.”

“앵두나무라, 그것도 좋겠군요. 그런데 앵두나무는 상업적인 가치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열매가 너무 작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기는 해, 차라리, 체리라면 모르겠지만, 앵두는 식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신맛도 너무 강하고, 열매도 너무 작고, 그나마도 씨앗을 빼고 나면 먹을 과육도 거의 없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앵두나무를 왜 심으시려는 겁니까?”

“뭐, 일단은 아사달에 파견 온 젊은 간호장교가 앵두나무를 키우고 싶어해서 말이야.”

진석은 사령관에게 간단하게 설수민 소위의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자연계에는 꼭, 일반적인 원칙만 적용되는 건 아니거든.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고 변종이 있고 의외의 변수가 있다는 거지, 나는 설수민 소위가 앵두나무를 심고 있는 게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계획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던 이 도시에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의외의 변수가 나타났다는 거지.”

“그러면 그게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항상, 자연계에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드리는 예외의 것들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시스템을 더 건강하게 한다고 나는 믿고 있거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사막에 조성하는 숲들에는 꼭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나무들만 있는데, 거기에 약간은 비효율적인 나무들도 섞여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건강할 거라는 거지. 이 앵두나무처럼 말이야.”

“음, 좀 미묘한 이야기지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무튼, 이 앵두나무와 사극나무의 혼종 실험을 할 거니까, 준비해 줘, 사령관,”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공간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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