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사막의 축제
“사막의 축제라고요?”
“예, 아사달 시가 세워진 지도 이제 5년이 지나고 있으니까요. 도시의 발전을 세상에 알리는 축제를 여는 거죠, 사람으로 치면 생일 파티 개념으로 말입니다.”
이성우 시장은 아사달의 5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그러고 보니, 아사달에는 축제나 그런 건 전혀 없으니까요.”
일반적인 도시들은 오래된 축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축제들은 도시의 성장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갈등들을 처리하는 일종의 화합의 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시가 비대해지면, 인구 구성이나 여러 계층이 나타나며, 서로 간에 갈등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축제는 합리성과는 무관한 비합리적인 감성의 세계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나 합리가 아니라, 감성적인 교류인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가 성립되면, 합리성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축제인 것이다.
그래서 인류 문명사에 축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축제도 괜찮겠네요, 비용이라면 당연히 제이에스 그룹이 후원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진석 사장님도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여는 축제인데, 어떤 테마를 가지고 기획을 하고 계신가요?”
진석의 질문에 이성우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생각한 건 없습니다. 뭐, 그저 축제를 하면 좋겠다 이 정도 수준이니까요, 일반적으로 도시의 축제라면, 봄철에 많이 하고는 하는데 말이죠.”
“그렇죠. 일반적으로 태양신을 기리는 유럽 도시들의 축제가 대표적이고, 동양권에서는 농절기에 따라, 단오 같은 축제도 있고, 추석이나 설도 크게 보면 민간의 축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축제가 발달한 곳은 유럽의 도시들이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중세 이후로 유럽 도시들은 로마의 영향으로 도시 건축 스타일이 중앙에 광장을 배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럽이라면, 당연히 모든 도시들이 이 단순한 구조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로마처럼, 귀족들이 사는 고지대와, 하급민 또는 상업지대인 저지대 그리고 그 저지대의 중심에 광장이 있고,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배치되며 축제를 열기 좋은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동양의 도시들은 광장이라는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고, 축제라는 것도 사찰이나, 아니면 강변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거나, 길을 따라 행렬을 이루는 스타일이 많다.
아사달은, 고조선의 첫 도읍 이름을 따서 만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구의 도시를 닮아 있었다. 중앙에 광장 역할을 하는 넓은 공원이 배치된 것이다. 공원은 평소에는 휴식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행사 등을 위해서는 넓은 광장 역할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아사달의 중앙 공원에서 축제를 열고, 여러 가지 특산물이나, 아니면 퍼레이드를 기획해도 좋을 것 같고요.”
“음, 특산물이라? 올리브나, 포도, 오렌지 같은 과일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군요. 그리고 사막이라는 독특한 공간이니까, 장미 축제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장미요?”
진석의 다소 뜬금없는 말에, 이성우 시장은 멈칫하는 느낌이었다.
“장미는 아사달에 없지 않나요?”
“그렇기는 하지만, 사막과 장미는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죠. 물론 올해 축제에는 외부에서 장미를 가져와야겠죠. 장식용으로 말입니다.”
진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은하수 농장의 서은주였다. 원래 장미는 비교적 고온과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편이다. 물론, 수분의 공급이 원활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런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진 곳 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불가리아의 장미의 계곡이라는 곳이다.
건조한 기후지만,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고, 온도도 적당해서 불가리아의 전체의 장미 생산의 80%가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이곳의 막대한 장미 생산량으로 불가리아는 향수나 장미유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서은주의 은하수 농장은 제이에스 그룹과 초기부터 협력하며 다양한 장미를 개발하고 수출도 하고 있었다.
이제 좀 더 사업의 범위를 넓혀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장미를 재배하는 사업을 해보려는 것이다.
***
한국, 김포시, 은하수 농장..
“예, 사막에 장미를요?”
“예,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사막과 장미라?”
서은주의 장미 농장에서는 다양한 장미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초기에 진석이 개발했던 찔레장미가 유럽에 수출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서은주 사장이 여러 가지 장미를 더 개발해서 다양한 장미들을 국내외로 판매하고 있었다.
제이에스 그룹과의 관계도 돈독한 편이어서, 전국 각지의 북카페, 또 전세계의 여러 북카페들을 장식하는 장미들은 모두 은하수 농장에서 재배한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은하수 농장과 제이에스 그룹은, 강한 유대를 가진 협력사였던 것이다.
“축제를 위해서 장미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장미를 공급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일단은 축제를 장식할 장미도 필요하고요. 그 외에도 아사달을 비롯한 사막 도시들에 심을 장미도 개발해 볼 생각이에요.”
“신품종의 장미라? 그것도 사막에서 잘 자라는 장미를 말이죠?”
서은주는 잠시 고민해 보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막장미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모양이 그렇게 예쁘지는 않아요.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 줄기가 굵은 편이라, 보통 장미 느낌은 아니거든요.”
“음 역시 그렇군요. 그럼, 사막에서 키울 만한 장미 품종은 지금은 없다는 거죠?”
“그런 일이라면, 이진석 사장님이 더 잘 아시는 거 아닌가요? 신품종 작물들을 많이 개발하시잖아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장미 같은 꽃들은 그다지 경험이 없어서. 그럼, 여러 종류의 장미 모종들을 좀 빌려주겠어요? 연구실로 가져가서 뭔가 개발해 보려고요.”
“이거라면 얼마든지 드려야죠. 은하수 농장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시잖아요.”
“후후, 그럼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축제에 쓸 장미들도요. 아주 엄청나게 많은 장미가 필요할 거예요.”
축제를 위한 준비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장소는 아사달의 중앙 공원을 정비해서 필요한 임시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공원 한가운데에 무대를 설치해서, 밴드나 아이돌 가수들도 초청해 축하 공연도 하고, 오아시스의 도시들을 대표해서 여러 집단에서 특색있는 퍼레이드도 준비했다. 그리고 은하수 농장에서 공수해온 장미들로 중앙 공원을 아름다운 장미 공원으로 변신시키는 작업도 시작되었다.
***
아사달, 중앙 공원
공원의 축제 준비 현장에는 이성우 시장도 와 있었고, 공원 주위를 아름답게 꾸밀 장미들을 체크하느라, 서은주 사장도 은하수 농장 직원들을 데리고 직접 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진석 사장님.”
한창 일을 감독하던 서은주가 뒤에서 다가온 진석을 발견하고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었다.
“와, 꽃들이 정말 아름답네요. 이걸 다 한국에서 공수해 오셨다니,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뭘요? 우리는 트럭에 싣기만 했는데 여기까지 단숨에 배송이 되더라고요.”
서은주는 가볍게 농담처럼 말해지만, 항공기를 임대해서 대량의 장미를 공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와, 저도 여기 가끔 오는 곳인데 이렇게 장미들을 가져다 놓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죠? 꽃이라는 게 그런 매력이 있어요. 집안에도 꽃 한 다발만 가져다 놓으면 일상적인 분위기가 순식간에 이국적으로 변하거든요. 그래서 여자들이 기분 전환을 하려고 할 때 꽃을 찾는 거죠.”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를 위해서 장미꽃을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강렬한 장미의 느낌과, 뜨거운 태양의 사막이 어딘지 잘 어울리는 모양이었다. 다른 좀 순박한 꽃들이었다면, 이곳의 황량하고도 거센 기운에 밀려, 좀처럼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장미는 어디에 내놔도 기죽지 않는 강한 개성이 있는 꽃이라 사막의 혹독한 기후에서도 그 아름다움과 매력을 잃지 않고 뽐내는 느낌이었다.
“이성우 시장님은 어떠십니까? 서은주 사장님이 가져온 장미들 말입니다. 사막과 잘 어울리지 않나요?”
“예, 저도 처음에 이진석 사장님이 장미로 축제를 장식하자고 했을 때, 왜? 라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장미로 중앙 공원을 꾸며 놓으니까, 정말, 아름답네요. 특히 장미가 이곳 오아시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서은주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제 생각도 시장님과 같아요. 이곳 아사달이라는 도시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좀 삭막한 느낌이 있는데, 그 사막의 감성과 장미가 곧잘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장미가 개성이 강한 꽃이라 그러겠죠?”
“맞아요, 장미가 매력도 있고 또 기가 센 꽃이거든요. 꽃들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니까요.”
서은주가 가져온 장미들은, 빨간색의 장미 외에도, 푸른색, 노란색, 보라색 등,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장미들이었다.
모양은 다양하지만 모두 줄기에 가시도 있고, 장미 특유의 도도한 듯 강렬한 매력이 있는 꽃들이었다. 마치 열정적인 스페인의 무희 같은 느낌도 있어서 이 건조한 사막 도시에 잘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그렇게 축제를 위해서 장미들로 치장도 마치자,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었다.
축제를 위한 음식들은 제이에스 스토어를 통해서 한국에서 공수되거나, 북카페 아사달점에서 여러 가지 케익과 음료, 쿠키 같은 것들을 만들기도 해서, 다양하고 풍성하게 준비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인기 락밴드들과 아이돌 가수들도 초청이 되어, 중앙공원에 마련된 무대에서 화려한 쇼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사달이 건설되면서 몇 년째 고향을 떠나온 한국 출신의 직원들과, 또 북한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 그리고 최근에는 몽골에서 유입된 몽골 출신 주민들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로의 다름을 잊고 잠시 축제의 열기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제가 상상하던 이상이네요.”
축제와 아사달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서은주는 약간은 감동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곳은 처음 와보는 거죠?”
“예, 이진석 사장님과 제이에스 그룹이 사막에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저 뉴스에서 보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와볼 기회가 생겼네요.”
“와 보니까 어떤가요? 사막의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도시가 말입니다.”
“너무 훌륭해요. 새로 지은 도시라 그런지, 도시 정비나 도로, 이렇게 가운데에 커다란 공원과 광장도 있고, 도시도 사막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굉장히 이국적이고요. 이진석 사장님이 이렇게 큰 일을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조금 쑥스럽네요.”
“아뇨, 굉장한 일이죠.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잖아요. 마치, 신이 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에요.”
서은주는 진지한 얼굴로 진석을 바라보았다.
“저는 신도 아니고, 창조자라고 하기에도 거창한 것 같네요.”
“그럼 뭐라고 불리기를 원하세요?”
“저요? 저야, 그저 이 도시들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원안자라고나 할까요.”
“처음 아이디어를 낸 그런 사람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이 도시들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건설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첫 시작은 저와 제이에스 그룹이 하고는 있죠. 하지만, 점점 사람들도 늘어나고, 도시는 처음에 제 아이디어에 계속 뭔가가 추가될 겁니다.”
“사장님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고요?”
“예, 제 계획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원래 계획했던 것도 그런 거죠. 도시가 여러 가지 인물들, 여러 가지 개성들을 받아들여서 계속 성장하는 거요. 최초의 한 가지 생각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음, 그런 면에서는 성공적인 것 같네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앞으로도 좀 더 다양성이 넘치는 도시가 될 겁니다.”
3일간 이어진 아사달의 사막 축제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