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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멜론(4) (141/183)

158화. 달콤한 멜론(4)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핑크 멜론 샤베트 하나 주세요.”

“고조, 멜론 샤베트 하나 주시겠습네까?”

“야, 애들아, 여기 핑크 멜론 샤베트 짱 맛있어.”

점심시간 무렵의 북카페는 멜론 샤베트를 먹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제이에스의 직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고, 북한 출신의 노동자들 그리고 북에서 온 아이들, 최근에는 아사달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몽골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각양각색 출신은 다르지만 더위에 지쳐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시원하고 달콤한 핑크 멜론 샤베트를 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진석도 카페 안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최영미 점장님, 핑크 멜론 샤베트가 아주 성공적이네요.”

“예, 모두들 좋아해요. 제가 먹어봐도 정말 맛있고요.”

“후후, 그렇죠.”

그때였다. 카페 안으로 꼬마 여자 아이와, 조금 야윈 인상의 젊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북에서 온 사람이군요.”

진석의 말에, 최영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하지만, 헤어스타일이나, 화장법 같은 걸 보면, 최근에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어머, 사장님은 남자분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세요?”

“하하, 제가 터득한 건 아니고, 회사에 여자직원들이 북한과 대한민국의 화장하는 법이나 여자들 헤어스타일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북에서 온 사람들을 보니까, 특히 여자들은 그런 스타일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로, 진석은 여자들의 경우에는 스타일의 차이로 출신지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여자는 북한 출신의 이주민으로 농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엄마, 여기 핑큐 메론 사베뜨가 아주 마시써..”

“그러니? 엄마도 한 번 먹어볼까?”

여자아이는 아직 말이 서툰 나이였다. 하지만, 친구들과 멜론 샤베트를 먹어봤는지 엄마를 졸라 이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은영아 여기 핑크 멜론이 그렇게 맛있니?”

“응, 짱 맛있어.”

“짱 맛있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은영이 너는 이상한 말만 배워서 가지고..”

여자는 은영이라는 아이를 데리고 구석 자리로 가서, 멜론 샤베트를 주문했다.

진석도 두 모녀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 온 것도 그렇고, 밝은 표정의 여자아이와 달리, 엄마인 여자의 표정은 굉장히 어두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아시스 도시들의 번영을 꿈꾸는 진석에게 초기 이주민들이 불행해 보이는 것은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진석은 천천히 모녀가 앉아 있는 창가 테이블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아..안녕하세요. 이진석 사장님 아니신가요?”

사실, 이 오아시스 도시에서 이진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도시는 진석의 머리로 상상하고, 진석의 의지로 창조한 도시니까 말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진석은 이 도시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안녕, 너는 이름이 은영이니?”

“안뇽하세요. 짱은영입니다.”

“하하, 이름도 아주 짱이네..짱...하하..”

“아직, 말이 서툴러요.”

“말이야 금방 늘죠. 아주 귀여운 아이네요. 북한에서는 언제 오신 겁니까?”

“북에서 온 건 어찌 아셨습네까?”

“하하, 뭐, 말투나 그런 걸 들으면 알 수 있죠.”

“아, 그렇구나..”

여자는 어딘지, 수심에 잠긴 어두운 얼굴이었다.

“북에서 이곳으로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남편이 먼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초청을 받아서 왔습네다.”

여자의 이름은 김영옥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간호사 일을 했었다고 했다. 남편은 원래 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였는데, 공장의 고위 간부와 사이가 틀어져서, 공장을 그만두고, 몽골로 일을 하러 떠나왔다는 것이었다.

“북한도 상급자와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은가 보군요?”

김영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쇄사회고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이지만, 각 기업소라고 불리는 여러 직장들은 공산당 고위직의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하고 마치 자기 회사인 것처럼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위 말하는 한국식으로 하자면, 갑질이 판을 치지만, 그걸 견제할 세력도 전혀 없기 때문에 갑질은 계속되고 각종 부정부패도 끊이질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진석은 공산주의의 취약성을 보는 느낌이었지만, 정치적인 문제라 입에 꺼내지는 않았다. 북한 이주민들은 아직 형식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이었다. 물론 북한 당국에서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과의 관계는 정치적인 문제라, 기업가인 진석이 개입할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처음 아사달을 찾았을 때, 오명진 대통령과 그 문제로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오명진 대통령은, 북에 경제협력과 무기감축 등을 협상하기 위해 대북특사를 보내기 직전이라, 대통령의 대북특사가 북한 당국과 북한 노동자들의 오아시스 이주 문제도 논의를 했는데 북한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과거의 공산국가인 몽골에 이주하는 것에 문제 제기는 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주민들을 일거에 철수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송금하는 달러 수입을 노린 것으로 생각되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을 이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북한의 속내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의 지위는 상당히 불안정한 점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북한에서 주민들을 북으로 송환하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북한에서 북한 출신 이주자들에게 송환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북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런 문제들은 열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잠정적인 불안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진석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일들에 크게 고민하지는 않고 있었다.

신화의 결말도,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 하나는 남아 있으니 말이다. 희망이 있다면, 언제나 미래는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진석은 오아시스 도시들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영옥 씨는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온 거군요?”

“예, 명철 씨가, 이곳으로 오면, 더 살기 좋을 거라고 해서..”

“하하, 실제로 와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살기는 좋은 것 같습네다. 월급도 많고, 식량도 넉넉하고, 집도 좋고 말입네다.”

김영옥은 오아시스 도시 아사달의 장점에 대해서 나열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얼굴 한구석은 어두운 그늘이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영옥 씨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때였다. 주문한 멜론 샤베트가 나왔다. 진석도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했는데 그것도 같이 나왔다.

“자, 드시면서 이야기를 마저 하죠.”

김영옥은 핑크 멜론 샤베트가 신기한지 스푼으로 이리저리 샤베트를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한 입 입에 샤베트를 넣고는 약간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와, 이거 진짜 맛있습네다.”

“그렇지, 엄마, 네가 마시따고 해짜나..”

은영이도 멜론을 샤베트를 맛있게 먹으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하하,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죄송합네다. 먹는데 정신이 고조 팔려서, 사장님이 묻는데 대답도 안 하고.”

“아닙니다. 그렇게 심각하실 거 없습니다. 그나저나 아사달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시나요?”

진석의 질문에 영옥은 잠시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생활이나 다른 부분에서는 모두 만족스럽습네다.”

“그래요, 그러면 다른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요? 얼굴이 조금 어두워 보여서 말이죠?”

“다 좋은데, 아무래도 고향이 그리운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네까.”

“고향이 그립다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네다. 북에서 생활하기도 어렵고 해서 이곳으로 온 거죠. 하지만, 막상 여기에 와보니, 북한이 그립습네다. 하지만 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입네다.”

“하하, 좀 복잡하군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저도 갈피를 못 잡겠습네다. 대체 제 속마음은 뭐가 그리 불만이고 불안한 건지..”

영옥도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래 향수병이라는 것이 그런 모양이었다. 네덜란드에서 한 과학자가 향수병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호주로 이주한 한 네덜란드 이주민 사례는 아주 특이하고도 대표적인 향수병의 사례다.

네덜란드의 추운 지방에서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즐겨 타던, 이 부부의 부인은 날씨가 온화한 호주 남서부로 이주한 후, 고향의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린다.

시대 배경이, 1950년대로 호주에서 네덜란드로의 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이라, 부인의 향수병으로 고민하던 부부는 다시 네덜란드로 이주를 하게 된다.

문제는 향수병에 걸렸던 부인이 이번에는 반대로 호주를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린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향수병의 본질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꼭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이곳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 향수라는 기묘한 감정을 끌어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향수병에 걸린 부인은 결국, 일 년의 반은 네덜란드에서 절반은 호주에서 보내는 기묘한 방식으로 그 향수병을 해결했다고 한다.

“사람은 항상, 현실보다는 과거나 미래를 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네까?”

“현재라는 건 다소 고달픈 겁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어한다는 거죠. 그게 과거라면, 향수병 같은 것이 되는 겁니다. 지난 온 추억이나 두고 온 고향을 그리게 되는 거죠.”

진석의 말에 영옥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꼭 과거로 도피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외에도 미래라는 것도 있죠.”

“미래 말입네까?”

“그렇습니다. 현재가 고달픈 사람에게 과거를 잊고 현재를 직시하라는 건 도움이 안 되죠. 그보다는 저는 미래를 상상해 보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미래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인데, 그걸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하,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리면 우리는 그게 앞으로 자라서 어떤 작물이 될지, 혹은 묘목을 심으면 어떤 나무가 될지 상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식물이 어떻게 자랄지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습네까?”

“사람도 다르지 않죠. 여기, 맛있게 멜론 샤베트를 먹고 있는 어린 은영이를 생각해보십쇼.”

“아저씨, 저 마린가요?”

“그래, 네 얘기를 하는 거야. 하하.”

진석의 말에, 영옥도 어린 딸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보십쇼. 은영이가 자라서 중학생도 되고, 고등학생도 되고, 아름다운 숙녀가 될 겁니다. 또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영옥 씨처럼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카페를 찾아올 수도 있죠.”

“요, 꼬맹이가 말입니까? 하긴, 아이들은 빨리 큰다고 하더군요.”

“예, 작물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도 빨리 자라죠. 시간이라는 건, 더딘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순간이니까요. 그래서 지나고 난 시간들은 마치 누군가의 마법처럼도 보이죠.”

“사장님..”

“예?”

“사장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힘이 납니다.”

“제 말요? 어떤 말이?”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는 말 아니십네까?”

“하하, 뭐, 그렇죠. 그 말이 좀 도움이 됐나요?”

“사실은, 이곳 아사달에 와보니, 날씨도 덥고 사막이라 풍경도 삭막하고 해서, 많이 걱정도 되고 고향으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네다. 하지만 사장님 말대로 미래를 떠올려 보니, 이 도시는 계속 발전하지 않습네까? 황량한 사막도 하루하루 푸르게 변해가고 말입니다.”

“하하, 미래를 상상하시게 되었군요?”

“맞습네다. 그런 상상을 막 하다 보니. 두려움이 다 사라지고, 용기가 막 솟는 느낌입네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 후로도, 영옥은 자신의 미래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며 진석에게 말해주었다.

“와, 아주 멋진 미래가 될 것 같네요.”

한동안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영옥과 은영 모녀는 밝은 얼굴로 카페를 나갔다.

홀로 테이블에 남은 진석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핑크 멜론에도 뭔가 신비로운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멋진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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