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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멜론(3) (140/183)

157화. 달콤한 멜론(3)

북카페 오아시스, 아사달점.

“핑크 멜론요? ”

최영미 점장은, 진석의 말을 듣고도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게 다 있었어요?”

진석은 저온 저장고에서 가져온 핑크 멜론이 가득 담긴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최영미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상자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정말, 핑크색 멜론이네요. 이런 것 처음 봐요. 색이 정말 예뻐요. 과일 같지는 않지만,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죠. 칼로 잘라보세요. 안은 보통 멜론과 같아요. 맛은 좀 독특하고요.”

“그래요?”

최영미는 멜론을 당장에 잘라서 여러 조각을 내서 접시에 담아왔다. 그리고는 먼저 한 개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음, 맛있어요. 상큼한 레몬향도 나는 것 같고.”

“그렇죠. 달콤하기도 하고, 동시에 상큼한 향도 있어서 정말 독특해요.”

“그렇죠? 저도 굉장히 맛있는 멜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사달의 우리 직원이나 여러 주민들을 위해서 그 핑크 멜론으로 멋진 신메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가져왔거든요.”

최영미도 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걸로 뭔가 괜찮은 음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뭐가 좋을까?”

“이곳은 항상 더우니까요, 뭔가 시원하게 좋지 않을까요?”

“음, 그렇기는 하죠.”

최영미는 아사달의 북카페 오아시스의 점장 겸, 아사달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도 겸하고 있었다. 교사가 부족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겸직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해서 행정업무만을 하는 한국과 달리, 최영미는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

“오전에는 학교 선생님을 하고, 오후에는 카페 점장이라? 너무 바쁜 거 아닌가요?”

진석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기분으로 물어보았다.

“아뇨, 그럭저럭 할만 한 걸요.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도 재밌어요.”

“재미요? 힘든 게 아니라요?”

진석의 말에, 최영미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약간 힘들기도 한데, 아무튼 투잡이라고 해야 하나?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오후가 되면 카페에서 일하니까, 뭔가 기묘한 이중생활을 하는 기분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예, 저한테는 이렇게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잘 맞나봐요.”

진석에게 그런 말을 하는 최영미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보였다. 힘든데 일부러 괜찮다고 말하는 표정은 분명히 아니었고, 진석은 역시 사람마다 원하는 직업이나 일의 방식이 조금씩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원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안정적인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온 최영미는 계속해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약간은 불안정하고 바쁘게 사는 지금의 두 가지 겸업을 하는 삶의 방식이 최영미에는 더 적합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영미 씨가 힘들다고 하지 않으니까, 저도 좀 마음이 놓이네요.”

“아, 좋은 생각이 났어요.”

“예? 뭐가요?”

“이 멜론 말이에요. 이걸로 뭔가 만들어 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말이죠.”

“그래요, 그럼, 한 번 직접 만들어 보여주시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음, 지금은 안 되고, 저녁때 다시 오시면 보여 드릴게요.”

“시간이 걸리는 레시피라는 거군요.”

“저녁에 다시 와보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럼 할 수 없군요. 저녁 무렵에 다시 오죠.”

진석은 카페를 나와, 제이에스 지사 사무실로 향했다.

***

아사달, 제이에스 지사 사무실.

“사장님, 한국에 가셨던 거 아니었나요?”

“예, 한국에 가서 신사옥 문제도 상의하고 여러 가지 일도 처리하고 다시 돌아왔죠.”

“신사옥이라면 송도에 짓는 거 말입니까?”

“예, 윤호중 상무도 알겠지만, 우리 제이에스 본사도 점점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룹의 규모에 걸맞게 새로운 사옥도 필요해서 말이죠.”

윤호중은 이성우 박사의 뒤를 이어서, 아사달의 제이에스 지사의 지사장을 맡고 있었다. 이성우 박사가 일을 잘하고는 있었지만. 이제 이성우 박사는 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아사달의 시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아사달을 움직이는 것은 제이에스 그룹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형식적으로 정치와 기업집단인 제이에스 그룹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도시들을 개발하는데 앞장서왔던 이성우 박사였지만, 지금은 시장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제이에스 그룹의 오아시스 개발 사업은 윤호중 상무에게 위임을 한 것이다.

다행히 윤호중 상무는 이성우 박사가 하던 일들을 잘 이어받아서 사막 개발 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예, 이쪽의 사업도 급성장하고 있으니까, 본사도 더 커지는 거겠죠.”

“참, 이제 유실수들은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은데 말이죠.”

진석의 말에, 윤호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막올리브나, 사막포도, 오렌지, 등등. 방풍목 겸, 유실수로 심은 나무들이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이제, 다른 작물의 재배도 시도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음, 다른 작물이라면,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막 기후에서 키우기 적당한 걸 생각해봤는데, 수박과 멜론 정도면 좋을 것 같더군요.”

“수박과 멜론이라? 그 정도면 이곳의 기후에도 적합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토양은 모래흙인데, 괜찮을까요?”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습니다. 모래토양에서 잘 적응하는 신품종의 수박과 멜론을 준비했으니까요,”

“오, 그렇군요. 한국의 농업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거겠군요?”

“뭐, 그런 셈이죠. 강원도는 아니지만, 우리 그룹 내에는 다양한 연구시설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모래흙에서 잘 성장하는 품종이라면, 빠른 시일 내에 재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죠. 신품종의 종자들을 가져왔으니까. 한 번 재배를 시도해봅시다.”

신품종의 수박과 멜론은 남몽골의 건조하고 모래흙의 땅에서도 잘 자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간에서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는 것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재배를 위해서 준비를 하고 빨리 일을 진행한다고 해도, 최소 몇 달 이상이 걸릴 것이다.

지금 당장 맛볼 수 있는 것은 공간에서 가져온 핑크색 멜론이었다.

진석은 시장실로 향했다.

***

아사달 시장 집무실

“이진석 사장님, 하하, 한국에서 막 오셨다고요?”

“예, 새로운 품종의 작물 종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새로운 작물이라면 어떤 것 말입니까?”

“이제는 단년생 작물도 재배해 볼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수박과, 멜론 씨앗들을 가져왔죠. 사막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입니다.”

“그래요, 그거 기대해봐도 되겠군요. 하지만, 저는 이제 시장이라, 농업 관련된 일들을 윤호중 상무가 처리해야겠죠.”

“그렇지 않아도 윤 상무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하하, 그래요.”

“시장 일은 할만하십니까?”

“글쎄요. 사실은, 별로 일이랄 게 없어서 말이죠.”

이성우 박사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아사달의 시장을 맡고 있었고. 행정수반 역할과 자치 경찰을 통제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작은 소왕국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이즈가 작은 미니멀한 오아시스 도시였고 그나마도 대부분 제이에스 그룹의 직원들 내지는 협력관계인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도시 자체의 행정적인 업무나 시장이 해야 할 역할이 크지는 않다고 할 수 있었다.

“정치가가 할 일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죠.”

“하하, 정치가라고요. 제가 말인가요?”

“선거로 선출된 시장님 아니십니까? 물론, 시장이 된 건, 자치 의회 의원들의 간접 선거를 통해서였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정치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행정가라면 또 모르겠지만.”

“하긴 그렇기는 하겠군요. 이성우 시장님은 정치적 목적보다는 이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거니까요.”

진석의 말에,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곳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의 도시들은 아직, 발전단계니까요. 지금은 도시를 건설하고 농경지를 늘려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저도 오직 그런 도시의 확장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우 시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진석은 다시 저녁 무렵 북카페 오아시스를 찾았다. 저녁이라고 해도, 사막 특유의 열기가 아직 남아, 도시는 여전히 무더운 날씨였다.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나고 지치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카페 오아시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진석을 맞아주었다.

“이진석 사장님.”

“최영미 점장님, 핑크 멜론으로 저녁에는 뭔가 완성된 신메뉴를 보여주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최영미 점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주방으로 들어가, 쟁반에 든 유리그릇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게 뭐죠?”

“핑크 멜론 샤베트예요. 물론, 핑크색은 아니지만.”

최영미의 말로는 멜론을 갈아서 냉장고에 얼려서 샤베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거기에 잘게 자른 멜론 과육을 얹어 멜론 샤베트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약간 빙수 느낌도 있고,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특히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식혀줄 것 같은 얼음 샤베트가 시원해 보였다.

“일단, 비주얼은 성공이군요.”

“그렇죠. 여기 아사달은 언제나 무더운 곳이니까요. 무조건 시원해야 좋아한다고요. 그래서 멜론을 갈아서 샤베트를 만들어봤어요.”

“시원해 보이기는 한데, 맛은 어떨지 한 번 먹어봐야겠군요.”

진석은 샤베트를 한 숟가락 떠서 입안으로 넣어 보았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샤베트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와, 이거 대박인데요. 뭘 넣은 거죠?”

“아무것도요. 원래 멜론이 달고, 레몬향도 있어서 상큼하더라고요. 따로 더 추가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맛이라는 거죠.”

최영미의 설명을 듣고 보니, 맛이 더 좋은 느낌이었다. 보통은, 단맛을 내기 위해 꿀이나 설탕, 시럽 같은 넣는데 그렇게 되면 단맛은 나지만, 과일 특유의 청량감은 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멜론 샤베트는 첨가물이 따로 없어서인지, 자연스럽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굉장히 시원해요. 샤베트가 얼음이라 시원한 것도 있고, 과일 특유의 갈증을 해소하는 청량감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그래요? 그럼, 이 멜론 샤베트는 새로운 메뉴로 합격인가요?”

“하하, 물론이죠. 사막에 어울리는 아주 상큼하고 시원한 샤베트네요. 이건 무조건 합격입니다.”

진석은 최영미에게 엄지척을 해보였다.

“그럼, 내일부터 정식 메뉴로 이 멜론 샤베트를 출시해야겠네요.”

“좋아요, 맛이 아주 시원해서, 뭔가 고민도 다 사라지는 것 같고. 기분이 아주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덕분에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사장임이 그렇게 만족하시다니 저도 기뻐요. 사실, 전 한 게 별로 없는걸요. 그냥, 멜론을 갈아서 얼렸을 뿐이에요.”

최영미가 만든 멜론 샤베트는 그녀의 말대로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멜론을 갈아서 얼려 샤베트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었다.

핑크 멜론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멜론을 얼려서 샤베트를 만들 생각을 한 것만으로 훌륭한 발상의 전환이죠.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요.”

“와, 제가 그렇게 대단한 발견을 한 건가요?”

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사실, 모든 대단한 일들이 알고 보면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작은 변화를 주어서,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면, 대단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핑크 멜론 샤베트는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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