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달콤한 멜론(2)
“그러면, 수박과 멜론을 오아시스의 밭에 심으시겠다는 거군요?”
진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지금 키우려는 수박과 멜론은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재배할 것들이니까, 산에서 키워서 특별한 효능을 가진 수박과 멜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공간의 산에서 재배한 작물들은 돌출된 산의 지형으로 인한 독특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해, 평범함을 넘어선 마법적인 효능을 갖게 되지만, 그런 작물들은 외부로 가져가서 재배하게 되면 그 특유의 효능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신품종의 작물들을 개발할 때는 산이 아니라, 공간의 평지에서 작물을 이식할 외부의 환경을 고려해서 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이번의 수박과 멜론도 공간의 평지에서 사막의 건조한 기후를 고려해서 품종 개량을 시도하는 것이 옳겠지만,
진석은 그것과는 별개로 산에서 독특한 효능을 가진 수박과 멜론도 재배해서, 오아시스의 북카페에 공급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 일꾼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서 공간의 산과 평지에서 동시에 재배해보자고.”
“산과 평지 모두에서 말입니까? 공간주님.”
“그래, 사막에서 키울 새로운 품종도 키우고,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도 할 겸, 특별한 효능을 가진 작물도 만들어서 가져가는 거야.”
사령관도 진석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보니, 괜찮은 방법이네요. 그럼, 팀을 나누어서 산과 평지 양쪽에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령관이 일꾼들을 모아 작업준비를 하는 동안, 진석은 오랜만에 돌아온 오아시스의 저택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평소 습관대로 야자수 그늘에서 한숨 늘어지게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사령관이 일꾼들을 모아놓고, 작업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공간주님, 그럼 어디부터 작업을 시작할까요?”
“음, 일단. 평지에서 시작을 하자고.”
진석은 오아시스 옆으로 넓게 펼쳐진 밭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아시스는 사막의 기후와 비슷해서, 이곳에서 사막에서 재배할 수박과 멜론을 개발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었다.
진석은 일단, 강원도의 연구소에서 가져온 종자들을 밭에 심어 보았다. 씨앗을 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자, 수박과 멜론의 떡잎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뒤이어서 줄기가 뻗으며 수박 넝쿨과 잎들이 밭의 표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줄기들 사이에서 작은 열매들이 자라나, 이내 커다란 수박이 생겨났다.
둘 다, 호박처럼 줄기가 사방으로 뻗고 그 무성한 넝쿨과 잎들 사이에서 열매가 자라는 스타일이어서 여러모로 두 과일은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공간주님, 수박도 멜론도 잘 자라는데요.”
“음, 그래, 여기는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물 공급도 원활한 편이라, 수박과 멜론을 재배하기에 좋은 환경이지.”
하지만, 남고비의 사막은 이곳 오아시스 일대보다 더 건조한 편이고 무엇보다 토양이 모래흙이 많아서 물을 토양에 공급해줘도 수분의 손실이 많은 편이었다.
진석은 그것을 고려해서 좀 더 남고비와 비슷한 건조하고 혹독한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다른 건 비슷한데, 흙이 좀 다르네. 남고비의 땅은 모래흙이 많거든.”
-공간주님, 새로운 토양이 필요하신가요?
진석의 푸념을 들었는지, 상태창이 나타났다.
“토양을 모래흙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공간의 바닥은 기본적으로 공간주님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입니다. 바닥의 구성물질을 변경하는 것은 공간주님의 선택 사항입니다.
그러고 보니, 진석이 이곳 공간에 처음 왔을 때는 공간의 바닥은 바위로 되어 있었다. 그걸 흙으로 바꾼 것도 진석이었다.
당연히 다시 바닥을 모래흙으로도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음, 바닥을 바꿀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공간의 바닥을 모래흙으로 변경하시겠습니까?
“잠깐, 전체를 다 바꿀 건 아니고, 여기 수박과 멜론을 키우는 밭에만 부분적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한 거지?”
“물론, 부분변경도 가능합니다.”
“좋아, 그러면 남고비 사막의 아사달의 토양과 비슷한 모래흙으로 이곳 수박밭과 멜론밭 일대만 부분적으로 변경해 줘.”
-바닥의 토양을 부분적으로 변경하는데는 1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바닥 토양을 부분 변경하시겠습니까?
“그래, 변경해 줘.”
-바닥을 부분 변경합니다, 변경 중입니다, 변경되었습니다.
“공간주님, 수박밭의 땅이 모래흙이 되었습니다.”
진석은 사령관이 가리키는 수박밭으로 내려가보았다. 손으로 흙을 만져보니 아사달과 비슷한 모래가 섞인 토양이었다.
“좋아, 아사달과 비슷한 거 같아. 이제 본격적으로 작물 개량을 해보자고.”
진석은 일꾼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다 자란 수박과 멜론 줄기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한해살이인 수박과 멜론은 수확을 마친 후에는 모두 걷어서 밭을 청소해주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해야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달라진 모래토양에서 진석은 다시 씨앗을 심고, 시간을 가속해 보았다. 이번에도 흙에서 떡잎이 솟아오르고 줄기가 뻗기는 했지만 차이가 있었다.
“공간주님, 확실히 이전처럼 왕성하게 성장하지는 못하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수로에서 공급하는 물은 마찬가지인데 토양이 달라지니까. 수박들이 자라는 게 전과 다른데..”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밭의 토양뿐이었다. 확실히 모래흙은 같은 양의 물을 공급해도 지하로 수분의 손실이 많고 물을 표면에 가둬두는 시간이 짧아 수박과 멜론의 뿌리들이 충분히 물을 공급받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물 공급을 더 늘리기보다는 작물들이 모래흙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수박을 계속 키우면서 작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흙에서 재배하는 수박과 멜론들은 동일한 토양, 동일한 물 공급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좋아지고 있었다.
진석이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가장 큰 차이는 뿌리였다. 처음에 심었던 수박이나 멜론에 비해 모래흙에서 수백 년을 적응한 작물들은 뿌리가 더 깊고 잔뿌리도 더 늘어서, 모래흙에서도 물을 상대적으로 잘 포집해서 모을 수가 있었다. 뿌리가 더 토양 깊숙이 들어가서 지하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상대적으로 더 오래 흡수할 수 있었고, 잔뿌리가 촘촘한 거미줄처럼 물방울을 막아서 물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뿌리가 건조한 모래흙에 적응하자, 작물의 수분흡수율도 좋아지고 그것은 수박과 멜론의 생장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공간주님, 이것 보십쇼. 이 정도면 수박 수확량도 아주 좋습니다.”
사령관은 수박밭으로 들어가 노지에서 자란 수박들을 몇 개를 따서 가져왔다. 노지 수박 특유의 밑이 노란 수박들이었다.
하지만 칼로 잘라보니, 속까지 잘익은 수박이었다. 모래토양이라 생장에 불리한 점이 있었지만, 일단 뿌리가 발달해 적응하자 성장도 좋아지고 오히려 수분이 적당히 부족해서인지 수박의 당도가 더 좋은 것 같았다.
“음, 수박이 잘 익었는데, 정말 달아. 멜론은 어때?”
“멜론도 잘 익었습니다. 이것도 하나 맛보시죠.”
진석은 사령관이 잘라온 멜론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수박도 수박이지만, 멜론은 진짜 맛있는 느낌이었다. 이전에 마트에서 사 먹던 흔한 멜론과는 뭔가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당도도 더 높고, 향도 그윽해서, 상당히 고급스러운 풍미가 있었다.
“와, 멜론은 진짜 최곤데. 이런 멜론은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아.”
“그 정도인가요?”
“그래, 보통 멜론은 후숙하는 과일이라, 뭔가 달콤하면서도 싱싱함이 덜한데, 이건 바로 따서 먹어서 그런지 굉장히 싱싱한 맛이야. 그러면서도 당도도 좋아서 굉장히 달콤하거든.”
“와, 그렇군요. 저는 맛은 잘 모르겠지만, 모양도 좋고, 크기나 색깔도 먹음직스러운 것 같습니다.”
사령관의 말대로 맛과 향 외에도, 크기가 색깔도 좋아서 상품성도 있어 보였다. 거기에 사막 기후에도 적응을 마쳐서, 멜론의 품종 개량은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수박은 약간 노지 수박 특유의 노란빛이 섞여 있는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대신 맛이 좋아서 수박 색깔의 아쉬움을 상쇄하고 있었다.
“좋아, 사령관, 이 정도면 둘 다 성공적이야. 이 두 가지 과일 품종을 남고비로 가져가야겠어, 준비를 해줘.”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종자를 채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에도 과일을 재배할 밭을 준비했는데 그건 이제 필요 없는 건가요?”
“아냐, 거기는 거기대로 수박과 멜론을 키워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산으로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진석은 사령관이 일꾼들을 불러모으자, 산으로 다이렉트로 가는 출입구로 향했다. 출입구를 통해 산으로 곧바로 시간 손실 없이 갈 수가 있었다.
산에 도착하자, 이미 일꾼들이 밭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진석은 바로 수박과 멜론의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산에는 공간의 에너지가 왜곡돼서 흐르고 있었고, 그 결과로 산에서 키운 작물들에는 마법과도 같은 특별한 효능이 생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변종 작물들은 모양이나 색깔이 확연히 달라져서 쉽게 구별이 가능했다.
진석이 수박과 멜론을 각각 밭에 심고 시간을 가속하자, 수박과 멜론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넝쿨을 뻗은 수박과 멜론은 맛은 훌륭했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하지만 경험으로 언젠가는 변종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진석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번성하고 쇠락하기를 반복하던 수박과 멜론 넝쿨들 사이로, 전에 보지 못한 특이한 멜론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같이 시간을 가속하며 키웠던 수박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공간주님, 수박은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멜론은 뭔가 특이한 변종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걸 보십쇼.”
사령관은 멜론 넝쿨 사이에 열린, 핑크색의 멜론을 가리켰다.
“색이 핑크색이잖아? 이런 멜론은 처음 보는데, 이건 변종이 틀림없어.”
수박은 실패였지만, 멜론은 산의 독특한 에너지가 반영된 변종 핑크 멜론이 생겨난 것이다. 껍질의 색은 연한 핑크색이 감돌고 있었다. 모양은 일반적인 멜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진석은 안쪽의 과육은 어떤 맛일지 어떤 색일지 궁금해졌다.
“사령관 하나 따서 멜론을 갈라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사령관이 핑크색 멜론 하나를 따서 칼로 반으로 갈라보았다. 안쪽은 핑크색인 겉과는 달리, 일반적인 멜론의 색이었다. 사령관이 다시 작게 잘라서 한 조각을 가져오자, 진석은 멜론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맛이 어떻습니까?”
“뭔가 상큼한 맛인데, 달기도 하지만, 약간 레몬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맛있어.”
“와, 그럼 이번에도 성공이군요?”
“그래, 맛도 아주 훌륭하고, 그리고 아직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변종 멜론이라면 특별한 효능도 있을 테고 말이야. 아주 마음에 들어. 이제부터 이 핑크 멜론을 더 증식시켜보자고.”
진석의 말에, 사령관은 일꾼들을 모아, 핑크색의 멜론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멜론의 종자를 채취해서 핑크색 멜론을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다행히, 채취한 핑크색 멜론의 씨앗에서는 다시 핑크색의 상큼한 맛의 멜론이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산비탈의 멜론밭은 온통 핑크색의 멜론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수확을 해서, 밖으로 가져가자고.”
이번에 공간에서의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필요한 수박과 멜론 품종도 개발했고, 그리고 핑크색의 특별한 멜론도 많이 수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멜론들을 몽골로 가져가는 게 좀 문제군.”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공간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몽골의 아사달, 저온 저장고로 바로 갈 수 있는 출입구가 필요해.”
-새로운 출입구가 필요하시군요? 그거라면 어렵지 않죠.
진석은 상태창을 불러 새로 몽골의 아사달의 제이에스 지사의 저온 저장고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이에스 지사에 전화해서 창고를 비워두게 미리 연락을 했다. 그리고 공간의 산에서 저온 저장고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열었다.
저온 저장고는 사전에 인력을 다 철수시킨 후라서, 텅 비어 있었다. 진수는 일꾼들을 동원해 공간에서 수확한 핑크 멜론들을 옮겨 놓았다.
“휴우, 이제 다 된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