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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멜론(1) (138/183)

155화. 달콤한 멜론(1)

“아버지.”

“진석이구나. 어디 얼굴 좀 보자, 너, 사장님이 얼굴을 왜 이렇게 탔어?”

“아, 좀 그렇죠.”

아버지 말대로, 제이에스 그룹의 사장인, 내가 무슨 대단한 노동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사막을 오고 가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많이 그을린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시골의 아버지의 과수원,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과수원은 진석의 사업과 많이 닮아 있었다. 아버지 역시, 산비탈의 땅을 개간해서 여러 가지 과일나무를 키우고 계셨던 것이다.

집 앞의 텃밭과 비닐하우스까지, 가지며 오이며 다양한 채소들, 토마토도 방울방울 작은 녀석부터 큼지막한 실한 녀석까지 아버지의 과수원은 에덴의 동산처럼 풍요로운 먹거리가 넘치는 야트막한 산이었고.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고 싶어하는 고향이고 이상향인 셈이었다.

하지만 다 자란 아들은 에덴으로 가끔 돌아오기는 하지만, 자신의 에덴을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의 과수원을 모사해서 더 넓은 세상에 자신의 과수원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왔으면 들어가지, 뭘 멍하니 보고 있냐?”

집 주변의 과수원과 아버지의 채소밭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진석을 아버지가 재촉했다.

“아버지, 언제 이 채소들이며, 다 키우셨어요? 올 때마다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아요.”

“녀석, 노인네가 할 일이 뭐가 있냐? 해 뜨면 일어나서 풀도 매고, 밭도 갈고, 이것저것 심고 키우는 재미지.”

“농사짓는 게 재밌으세요?”

“재밌지,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하면 어느새 쑥쑥 자라서, 여기 봐라. 가지도 큼지막하고, 여기 참외도 노랗게 익고, 올해는 멜론도 심었지. 이거 봐.”

“진짜네요 멜론을 다 심으셨어요?”

“이웃에 사는 부부가 멜론을 심고 남은 모종을 가져다 줘서, 몇 개 심었는데, 그 집 거는 다 죽고. 우리 밭에 심은 것만 살았어. 그래서 내가 멜론 열린 걸 그 집에 몇 개 가져다 줬지.”

“그래요? 왜 그 집 멜론은 다 죽은 거죠?”

“농사지을 줄 몰라서 그렇지. 물도 제대로 안 주고, 마른 땅에 모종만 심는다고 멜론이 자라겠냐?”

아버지가 말하는 그 이웃의 부부는 서울에서 사는 중년의 사업가 부부라고 했다. 주말에 가끔 내려와서 텃밭도 꾸미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주기가 들쭉날쭉해서 가끔 와서 심어 놓은 작물들도 얼마 가지 못해 말라죽거나 하는 모양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농사가 저절로 되는 줄 알잖아요. 그래서 멜론은 맛은 괜찮은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진수 너 먹으라고 몇 개 따놓았다. 지금 먹기 좋게 익었을 거야.”

멜론은 후숙을 하는 과일이라, 갓 수확한 신선한 멜론보다는 어느 정도 숙성된 것이 더 맛있다. 아버지가 멜론을 꺼내와서 칼로 잘라서 한 조각을 진석에게 내밀었다.

“음, 맛있는데요.”

멜론은 수박과 참외의 중간 정도랄까? 수분이 많은 과일이지만, 의외로 건조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물론, 물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사막에서 키우면, 당도가 더 높아지고 수분 함유량도 많아서 수분 보충에도 좋은 여름 과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괜찮은 것 같냐?”

“예,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데요. 여기 수박도 잘 익었고. 참외도 그렇고, 멜론까지, 다 비슷한 종류들이네요.”

수박, 멜론, 참외라면, 여름 과일 3종 세트쯤 되는 느낌이다. 공통적으로 수분이 많은 편이라, 수분 보충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은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수박 같은 과일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아시스에는 이제 나무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교적 크게 자라고, 뿌리가 깊은 나무들의 뿌리에 직접 세류관을 통해 물을 공급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단년생 작물들인 채소나, 수박 같은 과일들은 아직 재배하지 못 하고 있었다.

뿌리가 비교적 얕은 편이라, 세류관을 통한 물 공급이 쉽지 않았던 것인데, 이제는 이전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그 주변에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또 잎과 줄기로 그늘을 만들어 놓기도 해서, 어느 정도 수분의 증발 내지는 땅으로 수분이 급격하게 흡수되는 것을 막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숲의 나무들이 홍수를 예방하는 것과 비슷한데, 나무라는 존재가 물의 급격한 이동을 제한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나무들의 숲이, 수분의 증발과, 땅속으로 흡수되는 걸 어느 정도 지연시켜 주면서,그 일대의 토양의 수분이 어느 정도 모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토양이 안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진석은 뿌리가 얕은 단년생 작물도 키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재배해 볼 것이 바로 수박과 멜론이었다. 여름철에 잘 자라는 과일이라, 사막에서도 재배하기 좋은 과일이고 수분이 많고 당분이 풍부해서 사막의 더위에 지친, 오아시스 주민들에게도 좋은 피로회복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석은 모처럼, 부모님 집의 평상에서 아버지가 키운 수박을 잘라서 시원하게 먹으며 짧은 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 고비 사막이라는 곳은 너무 덥고 그런 거 아니니?”

어머니가 진석의 얼굴이 좀 그을린 것이 안쓰러운지 이것저것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괜찮아요. 물도 많고, 사막이라고 해도 지금은 건물들이 많아서 도시나 다름없어요. 건물 안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있는데 더워서 고생할 게 있나요.”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까맣게 탔어?”

사실, 까만 정도는 아니고, 구리빛으로 좀 그을린 정도인데, 새로 건설되는 오아시스 도시들을 둘러보고 다니느라 좀 햇볕에 그을린 모양이었다.

“제가 거기 책임자잖아요. 사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확인할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얼굴만 조금 탔어요.”

진석은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래, 진석이 네가 하는 일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도 건강도 좀 챙기고 그러거라.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그때그때 쉬고..”

“아, 예..”

사실, 힘들게 하는 일도 없는데 부모님은 외지에 나가서 지내는 아들이 걱정이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짧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진석은 서울로 올라왔다.

***

제이에스 본사.

“수정 씨, 신사옥 건설은 잘되고 있는 거지?”

진석이 하도 외국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서울 본사의 일은 이수정 전무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송도 신도시에 신사옥을 건설하고 있었다.

전부터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제이에스 그룹의 신사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로 대형 건물을 지을 부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신사옥 계획은 지지부진하고 있었는데, 진석은 신도시인 송도에 신사옥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로 생긴 도시라, 대형 건물을 지을 부지를 구하기도 쉽고 고층 빌딩의 인허가도 쉬운 편이라 송도를 선택한 것이다.

새로지을 사옥은 지하 15층, 지상 45층으로 모두 60층으로 구성된 대형 빌딩으로 연면적이 5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사옥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그룹의 사무실이나 연구시설도 들어오고, 저층에는 제이에스 스토어나, 북카페 오아시스도 입점할 예정이었다.

송도의 건설부지에서는 지금 막 기초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조만간 대형 빌딩이 완성되면 제이에스 그룹의 입지도 크게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일단, 공사 시작은 했으니까요. 설계과정에서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뭐, 시공이야 건설사에서 알아서 하는 것 아니겠어요?”

“뭐, 그렇기는 하지.”

진석은 제이에스 신사옥의 조감도를 사무실의 대형화면으로 살펴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만 된다면, 정말 멋진 빌딩이 될 거야.”

“그러게요 사장님, 새로 신사옥으로 이전하면 사무실 커지고, 회사 안에 카페도 생기고, 정말 기대된다고요. 하지만 송도면, 집도 이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그쪽 신도시에 좋은 아파트도 많다고 하니까, 아니면, 출퇴근하기에 그리 먼 거리는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죠.”

이수정의 말로는 신사옥 건물은 조만간 기초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신사옥은 그렇다고 치고, 난 강원도에 좀 다녀올게.”

“강원도는 왜요?”

***

강원도 인제군 제이에스 농업 연구센터.

“이진석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몽골 쪽은 잘되고 있는 건가요?”

농업 연구센터에 들어서자, 소대영 부장이 진석을 맞았다.

“예, 이제 방풍목들은 거의 다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작물들을 재배해 볼 생각입니다.”

“작물이라면, 어떤 것들을 말인가요?”

“수박과 멜론을 키워 보려는데 괜찮겠죠?”

소대영은 잠시 생각을 해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멜론이나 수박이라? 사막기후에서 잘 자라는 과일들이죠. 의외로 수분이 풍부하지만, 일조량이 많으면 당도가 높아지는 특징도 있고, 과육에 수분이 많이 함유돼서 덥고 건조한 곳에서 인기 있는 과일이니까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막에서 잘 자랄 것 같기도 하고, 또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일하는 우리 직원들에게 좋은 먹거리가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럼, 수박과 멜론, 품종을 찾으러 오신 겁니까?”

“예, 여러 가지 종류를 가지고 실험도 해보고 싶으니까, 연구소서 보관하는 종자를 종류별로 다 가져갈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소대영이 종자 보관소로 들어가 다양한 수박과 멜론의 종자들을 가지고 나왔다. 진석은 종자들을 챙겨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저 그런데 사장님, 송도에 신사옥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러면 농업연구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신사옥 말이군요. 신사옥에도 연구소를 만들 생각인데, 그렇다고 강원도의 이 연구단지를 다 이전할 수는 없겠죠? 송도 신사옥 면적이 5만 평 정도기는 하지만, 60층 규모의 빌딩이라 사실 농업연구단지를 이전할 수는 없는 곳이죠.”

“아, 다행이네요.”

“소대영 부장님의 종자 연구센터는 여기에 남을 것 같네요. 소대영 부장님은 고향이라 떠나기가 싫으신 모양이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고향인 것도 그렇고 도시 생활은 영 체질이 맞지 않아서 말이죠.”

“소대영 부장님은 지금처럼 강원도에서 연구에 힘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진석은 수박과 멜론 종자들을 가지고, 서울의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로 돌아왔다. 사막에 오래 있다 보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한강뷰, 한강뷰 타령을 하지만, 진짜 한강의 매력은 단순히 시원한 전망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요로운 수자원의 원천, 농경을 가능하게 하는 물의 공급지라는 점일 것이다.

한강도 한반도 중부의 주요 곡창지대에 막대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풍요로운 농업의 젖줄인 것이다. 그 한강이 진석의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진석은 잠시 거대한 한강의 모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박과 멜론의 종자들을 가지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주님, 오늘은 어떤 걸 가지고 오신 겁니까?”

“오랜만이야, 사령관. 오늘은, 수박과 멜론의 씨앗들을 가지고 왔어.”

“수박과 멜론이라, 시원하고 달콤한 여름 과일들이군요.”

“그래, 이걸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키워 볼 생각인데, 음, 이곳과 비슷하군.”

“여기, 공간의 오아시스와 말입니까?”

체감상 고비사막이 더 뜨거운 느낌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은 건조기후라는 점과,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가 있다는 점에서 남고비의 오아시스 도시들과, 공간의 오아시스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공간과 사막의 오아시스들은 비슷한 곳들이었어.”

“그럼, 이곳에서 수박과 멜론 종자를 개발해서, 사막으로 가져가면 되겠군요?”

“그래 그러면 되겠어.”

남고비 사막과 비슷한 기후라, 이곳 오아시스에서 잘 자란다면 사막의 도시 아사달에서도 잘 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진석은 사령관에게 일꾼들을 모으게 했다.

“사령관 오아시스 주위에 밭을 만들어야겠어.”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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