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사막의 이주민(3)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그래서 자치 경찰을 만들 권리를 달라는 겁니까?”
바이투 대통령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몽골 안에서, 외국인들에게 자치권을 달라는 말입니까?”
남고비 사막 역시도 몽골의 영토에 속하는 곳으로 새로 개발된 사막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몽골의 영토에 속하는 곳에, 외국 기업에게 자치권을 달라는 것은 분명 과도한 요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몽골 경찰을 사막의 도시들에 파견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몽골 경찰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파견하는 것도 괜찮고요.”
진석의 이번 제안에도 바이투 대통령은 난색을 표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용 문제도 있고, 역시나 외국인들뿐인 사막 도시들에 몽골 경찰까지 파견하는 건...”
“그래서 말입니다. 몽골 정부에 부담을 지우지 않고, 그러면서도 도시가 커지면서 생기는 혼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정한 자치권이 필요합니다. 자치 경찰을 조직하려고 하는데, 몽골 정부가 승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이것 참. 자꾸 곤란한 걸 요구하는군요.”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고비 사막은 몽골 정부로부터 100년간 개발권을 받은 지역 아닙니까? 마치, 홍콩처럼, 100년간은 제이에스 그룹이 이 지역을 개발하고 농업으로 생산도 늘려나가면서 발전시킬 거라는 말입니다.”
“홍콩과는 다르죠, 그건 강제로 영국이 뺏어간 것 아닙니까?”
“시작은 다르지만, 아사달을 비롯한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도 홍콩처럼, 경제적으로 번영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홍콩을 영국에 빼앗겼을 때는 중국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요?”
“100년 후에는 엄청난 이익이 되어서 몽골로 돌아올 거라는 건가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남고비 사막은 사실상 무가치한 땅이고, 사람이든 뭐든 아무것도 없는 곳이죠. 그런 곳을 개발해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백 년 후면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가 될 겁니다. 남고비 사막도 모두 푸른 녹지가 되겠죠.”
“그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 년 후는 백 년 후고, 당장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자치 경찰을 만든다고 하면, 몽골에서 반발이 심할 겁니다. 특히 지금 야당은 그걸 빌미로 나를 정치적으로 공격할 테고요.”
“하지만, 일정한 자치권이 없다면 사막 도시들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오아시스 도시들에는 북한에서 온 이주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저도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희 제이에스 직원들과 달리 그런 북에서 온 이주민들은 통제가 어렵습니다. 자기들끼리 범죄나 폭력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오아시스 도시들에 자치권이 없이는 그 사람들을 다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야당 문제라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
몽골, 야당 지도자, 타르한의 사무실.
“이진석 사장님이시라고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타르한, 의원님.”
타르한은 현재 몽골제 1야당의 당 대표를 맡고 있었다. 4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바이투 대통령에 이어 차기 대통령감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기도 했다.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뭔가요?”
타르한은 젊은 정치인답게 시원시원한 편이었다. 진석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제가 사막에 오아시스 도시들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음, 제이에스 그룹이 남고비를 개발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죠.”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지하수 개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고, 이제 서서히 아사달을 비롯한 사막 도시들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사막을 녹지로 만들기 위해 식재한 나무들도 잘 자라고 있고,
세류 재배 방식으로 농작물도 키워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막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진석의 말에, 타르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저도 직접 가서 본 건 아니지만, 들려오는 뉴스만 들어도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직 오아시스 도시들에 가보시지 않았다면, 한 번 초대해 드리고 싶네요.”
“하하, 그래도 좋겠죠. 그런데 절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으실 거 아닙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오아시스 도시들에 자치권이 필요합니다.”
“자치권요?”
“예, 특히 자치 경찰이 필요합니다. 지금 오아시스 도시에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북한에서 온 이주민들이죠.”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몽골 정치인으로서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타르한은 몽골 야당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들의 신경 쓰이는 부분은 한국 기업인 제이에스 그룹이 남고비를 개발하고, 북한 사람들을 자꾸 끌어들이고 있는데 결국 그런 식이면 나중에 남고비의 도시들이 한국의 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들이었다.
“그거라면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남고비 사막을 개발하는 권리는 100년으로 기한이 정해진 것 아닙니까? 그 후에는 다시 몽골로 돌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어쩌고요, 땅이나 영토의 법적 권리는 몽골로 귀속이 된다고 해도, 거기 주민들은 북한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도 그 숫자가 적지 않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백 년 후에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몽골로부터 독립 선언이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 그때, 한국이 개입해서 그 땅을 뺏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사실, 타르한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일은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나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지금 진석이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해도, 실제로 진석 자신도 백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의 사막의 도시들이 어떤 모습일지, 어떤 사람들이 살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
타르한은 잘 모르겠다는 진석의 대답에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이진석 사장님이 잘 모르겠다니 말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몽골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서 이 사업을 시작했고, 사막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단순히 사막화를 막는 것을 넘어 사막을 농지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이 거대한 일들을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사막에 농업을 위해 인력도 필요하고, 그게 우연히 북한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말이죠.”
“모든 일들이 계획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런 일을 시작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하나, 해야 할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뿐입니다.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 단지 황량한 사막을 녹지로 만들고 싶었던 꿈을 이루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꿈이 만들어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종국에 어떤 모습이 될지, 10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는 솔직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겁니다. 아편 전쟁에서 중국이 홍콩을 영국에게 빼앗길 때, 현재의 번영된 홍콩이라는 도시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역시, 지금의 우리로서는 남고비의 미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중국인들도 홍콩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했겠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상상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버렸죠. 우리도 지금 시점에서 오아시스 도시들의 미래를 예견해 봤자, 아마, 실제의 미래에는 못 미칠 겁니다.”
타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 야당 내부에서도 그렇고, 저도 개인적으로 오아시스 도시들에 자치권을 주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반대인가요?”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루트를 통해서 이진석 사장님을 도와주라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예, 비공식적인 압력요? 누가?”
“하하, 이진석 사장님은 모른다는 건가요?”
“저로서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타르한은 나름 몽골에서는 거물 정치인이다. 그런 그에게 누가 압력을 넣는다는 것일까? 권력으로 보자면, 바이투 대통령도 상당한 권력자이지만, 타르한과는 정치적 라이벌이니 바이투 대통령은 아닐 테고,
한국의 오명진 대통령이 타르한에게 압력을 행사할 위치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뭐, 이진석 사장님도 모르는 일일 수도 있죠. 사실은 미국 쪽의 친구들에게서 이진석 사장님의 일을 무조건 도우라는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미국요?”
그러고보니, 타르한은 나이도 젊고, 미국 유학파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것으로 진석도 알고 있었다.
“예, 사실은, 미국 정재계에 저를 돕고 있는 그룹이 있죠.”
“돕는다는 건 어떤 도움을 말하는 겁니까?”
“정치적인 겁니다. 외교적이거나, 경제적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제가 몽골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저에게 큰 도움을 줄 사람들이죠.”
타르한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국에서 학맥이나 인맥으로 구성된 타르한을 서포트 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이 타르한에게 이진석의 사업을 도우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진석으로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 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진석도 언뜻 집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 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정부의 하위 그룹들, 즉 각 분야의 엘리트 그룹들이 진석의 사업을 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보이지 않는 정부는 수직적 명령체계가 아니라,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수평적인 여러 관계들의 집합이다. 그래서 누가 위에서 명령을 내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체계나 조직은 아니다.
그보다는 각자, 양분을 흡수해, 전체 나무의 성장을 지원하는 각각의 뿌리들처럼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좀 더 상위의 조직인 보이지 않는 정부의 이익을 위해, 개별적으로 판단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 내의 몇몇 엘리트 집단들이 비공식적으로 진석의 사업을 지원한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타르한 의원님의 결론은 어떤 겁니까? 오아시스 도시들에 자치권을 주는데 찬성인가요?”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분명 이전까지 하던 이야기는 진석을 돕겠다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진석 사장님의 사업이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반대는 반대다?”
“하하, 저는 정치인이니까요. 일단 현직 대통령인 바이투 대통령에 반대편에 서서, 그의 반대파를 규합해야 저도 차기 대통령 선거를 노려볼만하지 않겠습니까?”
타르한은 나이는 젊지만, 노회한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튼, 정치인답게 적당히 타협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야당의 실력자인 타르한이 남고비의 도시들에 자치권을 주는데 형식적인 반대만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반대는 하지만, 힘을 실어서 반대는 안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암묵적 동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형식적인 반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바이투 대통령이 크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타르한과의 면담이 끝나고, 진석은 다시 바이투 대통령을 다시 만나, 타르한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렸다.
결국 일주일 후, 고심하던 바이투 대통령이 남고비에 자치권을 주는 법률안을 의회에 건의했고, 야당의 형식적인 반대 속에, 남고비 오아시스 도시들은 자치 경찰을 비롯한 일정 부분의 자지 권한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