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사막의 이주민(2)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 들어오자, 오아시스 도시들은 조금씩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하수 개발로 물 공급은 늘었지만 농경지를 관리할 인력이 모자라, 농업분야의 생산은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온 노농자들이 처음에는 수십 명, 그리고 그다음에는 수백 명,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수천 명대의 북한 노동자들이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
아사달, 제이에스 사막개발 사업본부.
회의실 안에는 이성우 박사와 각 오아시스 도시들의 책임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아시스 도시들은 개발 단계에 따라, 유인도시도 있고, 무인도시도 있었다. 어느 정도 개발과정이 완료되어 인력이 상주하는 유인도시와, 아직 기초적인 시설만 있는 무인도시의 차이였다.
당연하게도 아사달이 가장 규모가 큰 유인도시였다. 그렇다고 해도 상주하는 인원은 수백 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최근에 와서야 북한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요즘 아사달을 비롯한 오아시스에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요?”
진석은 회의실 스크린에 뜨고 있는 각 도시들의 인구 증가 그래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사달은 상주인구가 천 명을 넘고 있었고, 그 외에 다른 오아시스 도시들의 상주인구 그래프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예, 보시다시피, 아사달은 이미 천 명을 넘었습니다. 최근에 북한 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음, 인구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죠.”
“그렇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북에서 계속 사람들이 오게 되면 북한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북에서 말입니까?”
이성우 박사 말로는 오아시스 도시들로 온 북한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젊은 남자들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고향에 편지를 보내, 다른 가족들도 데려오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라면?”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이성우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곳에 일하러 오는 북한 사람들은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요? 그건, 이성우 박사님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가요?”
이건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건, 제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을 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그래요? 정말, 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남겠다는 겁니까?”
“남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가족을 데려오고 싶어합니다.”
“그럼, 대한민국으로 망명하겠다는 의미인가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대부분 북한에서도 농업이나 건설 노동자 경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한국으로 가면 뭐 하겠냐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으로 가는 건, 좀 걱정이다?”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죠. 북한에도 이제 한국 관련된 정보가 많이 들어가서 한국의 생활 수준이 높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한국에 많은 것도 잘 알려져 있고요. 한류 드라마나 k팝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요.”
보통 엄격한 통제 사회, 폐쇄 사회로 알려져 있는 북한이지만, 어디에도 빈틈은 있는 법이어서, 북에도 이미 한국이나 다른 서구 사회에 대한 정보가 많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작은 크기에 많은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usb를 통해서 각종 영화나 음악, tv프로그램 같은 문화 컨텐츠도 많이 북으로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 정부도 서구의 각종 미디어가 정보가 북한 주민에 노출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단속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에 관한 정보 중에서 북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탈북자들의 생활이었다. 북에서 한국으로 탈북하는 인원은 해마나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그렇게 폭발적이지는 않다, 최근에는 약간 주춤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오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북에 한국의 정보가 쉽게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정을 북한 사람들도 잘 알기 때문에, 선뜻 탈북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가 뚜렷한 사람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지만, 그에 비해 경제적 이유로 탈북을 하려던 사람은 북의 식량 사정이 조금 나아지고, 한국 적응이 쉽지 않다는 탈북자들의 경험담이 북한까지 퍼지면서
차라리, 중국이나, 러시아, 몽골 같은 인접한 공산권 출신 국가들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국경 무역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도 남한이 잘살지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기는 한국도 어렵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는 거죠. 그래서 한국에 가기보다는 오히려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죠?”
사실, 진석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오아시스 도시들에 인력이 늘어나고, 거기에 이제 북한 노동자들이 가족들까지 데려온다면, 말 그대로 이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이 사막 도시의 인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사막을 개발하고 있는 제이에스의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잠시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일이 끝나면 돌아갈 사람들이고, 이미 일부 인원은 철수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100년이나 몽골로부터 무상 임대를 받은 이 땅은 앞으로 100년의 시간동안, 점진적으로 개발, 아니, 어느 순간, 도시들이 자립할 능력이 생기면, 개발이 아니라, 스스로 발전하며 이 사막을 더 풍요로운 농경지대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아시스 도시들에 말 그대로 거주하는 인구, 즉 주민들이 생기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곳에 가족 단위로 이주한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자립 가능한 도시가 가능할 텐데 말이죠.”
진석의 말에, 이성우 박사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이성우 박사님은 부정적으로 보시는 겁니까?”
“잘되면 좋겠지만, 북한에서 이주한 주민들로 도시를 채우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혼란이 올 거라는 겁니까?”
이성우 박사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사장님, 지금은 그저, 북한에서 온 젊은이들이 여기서 일을 하는 정도죠. 우리의 지시를 받고, 우리가 시키는 일을 도우면서, 월급도 받고요.”
이성우 박사는 지금은 숫자도 적은 편이고, 단순 노동만 하고 있는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 점점 숫자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들을 통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막의 오아시스들은 모두 이진석 사장님의 재산 아닌가요?”
이성우 박사는 잘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재산요? 하하, 저는 돈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이 사막 도시들을 제 개인적인 재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이 사막의 도시들을 개발하는 건, 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꿈요?”
사막의 도시들을 개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진석에게는 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사막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오명진 대통령의 부탁으로 억지로 떠밀리듯이 오기는 했지만, 막상 이 사막의 가능성을 깨닫고는,
진석에게 이 황량하고 거대한 텅 빈 공간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의미 있는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고 싶은 꿈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얻기 위해서 이곳에 이주해서 진석과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순히 직원으로 진석의 요청에 의해서 이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석에 의해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이곳에 이주민이 생기면, 그들 스스로의 꿈과 목표에 의해서 이 도시는 스스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진석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꿈을 꾸는 사람들의 도시가 된다면, 오아시스의 도시들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같은 개념이라고 한다. 물론 물리학적인 개념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사막이라는 공간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교환되며 그 공간의 크기를 늘려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진석의 궁긍적인 목표였다.
“이성우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사막의 도시들을 개발할 뿐이지 제가 소유할 생각은 없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래서 이 도시들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거죠. 제가 그들을 통제할 생각도 없고요.”
“음, 그런가요? 하지만, 지금 아사달을 비롯한 사막의 도시들은 제이에스 그룹의 자금력과 기술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물론 사업은 사업대로 할 겁니다. 농경지를 개발하고 사막에 물을 공급하고,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들은 다 돈이 필요하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농업 생산을 통해 이익도 얻어야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도시가 성장하는 일을 도울 뿐이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배할 생각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의 이주민들이 늘어나면, 혼란이 오지 않을까요?”
이성우 박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알아서 방법을 찾지 않겠습니까? 저는 모든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거기에는 동의하지만, 만약에 북한 출신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여기서 범죄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경우에는 몽골의 경찰이 출동하게 되는 건가요?”
이성우는 범죄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범죄라?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말인가요?”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 범죄가 생기게 마련이죠. 범죄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이곳에는 병원과 학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경찰서 같은 시설이죠.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난다면 말입니다. 더구나,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은 우리 직원들도 아니고, 북한에서 뭘 했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경찰서라?”
이성우 박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북한에서 오는 이주민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제이에스의 직원이나 다른 협력사의 직원들처럼, 이력서를 내고 선별해서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상황인 것이다.
“이건 이성우 박사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도시를 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라든가 위험에 무방비의 도시를 만들 수도 없는 일이죠.”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의 치안을 위한, 경찰이 필요했다. 간단한 질서유지를 하고,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지만, 범죄가 발생한다면 범죄자를 체포하는 역할도 해야 했다.
남몽골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몽골의 영토에 속하고는 있었지만, 몽골의 도시들과는 너무 떨어진 외진 곳들이어서, 몽골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아무래도, 자체적인 경찰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몽골 정부와 사전 협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자치 경찰 정도는 필요할 것 같군요.”
이성우 박사도 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면, 약간의 통제력은 필요하게 마련이죠. 그리고 그 통제력은 어쩔 수 없이 이진석 사장님이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제가요?”
“이 도시들을 발전시키려면, 그럴 수밖에 없죠.”
“알겠습니다. 그 문제라면, 일단 몽골 대통령과 상의를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