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사막의 이주민(1)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몽골에서 급한 일이라는데요.”
“몽골?”
한국으로 돌아와, 간만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진석에게 몽골에서 전화가 왔다. 아사달의 이성우 박사였다.
“이성우 박사님이 웬일이십니까?”
“사장님, 아사달에 수상한 사람들이 침입했습니다.”
“수상한 침입자요?”
이성우 박사는 지난주부터, 아사달 일대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몽골 사람들인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이에스 직원들이 도시 외곽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아니고, 아무래도 북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요? 그럼, 탈북자들인가요?”
“탈북자라기보다는 북쪽 사람들이죠, 북한 주민들이 식량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몽골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성우 박사의 보고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아사달의 농장 지대에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몽골은 중국처럼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러시아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취업을 하는 등,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중국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물건을 사러 오거나, 상당기간 머물면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류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사달은, 몽골의 영토기는 하지만, 한국 기업들과 한국인들이 개발한 도시여서, 북한 주민들이 직접 도시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북한 주민들이라?”
사장님, 무슨 전화예요?
이수정이 통화 내용이 흥미로운 듯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 별거 아냐. 아니, 생각해 보니, 꽤 중요한 일이야.”
“어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별거 아니라더니, 중요한 일이라는 건?”
“일단, 대통령을 좀 만나봐야겠어.”
“대통령요?”
***
대한민국,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북한 주민들이 아사달에요?”
“예, 그쪽 지사의 직원들이 몇 번 마주친 모양입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몽골로 넘어와서 직업을 구하는 모양인데, 몽골 사람들이 가보라고 했다는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짓는 곳이라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몽골 사람들도 그걸 알고, 소개를 해준 거죠.”
“음, 하지만, 한국 기업이 있는 곳이라, 바로 들어오지는 못 하고,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좋은 기회라고요? 북한 주민들을 아사달에서 고용하겠다는 겁니까?”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사막의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일 자체보다도 외진 고립된 도시에서 일을 하는 거라, 몽골 사람들도 와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도시는 점점 규모가 커지는데, 이제는 인력 수급에 한계가 온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인데.”
“제가 알기로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대한민국으로 가려면, 좀 더 남쪽으로 갔겠죠. 멀리 몽골까지 돌아왔을 리가 없죠.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탈북 후에 한국으로 가는 루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 정체가 뭐라는 겁니까?”
“몽골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아직도 북한과 관계가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공식적인 이동도 관대한 편이고요. 아마도, 북에서 잠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일 것 같은데,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을 벌어서 북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건가요?”
“서로 윈윈하는 거죠. 우리는 인력을 얻고, 그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겁니다.”
“하지만, 임금은 어떻게 지불하실 겁니까? 달러로 지불해야 할 텐데?”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북한 출신의 노농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달러를 원할 것이다. 몽골 화폐로 지불하더라도 결국에는 환전을 거쳐 달러로 바꿔 북으로 달러가 유입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유엔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제재 위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오명진 대통령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지만, 북한 관련된 문제는 미국의 눈치를 좀 봐야 합니다.”
“유엔이 아니라, 미국의 눈치인가요?”
“하하, 유엔이라는 게 사실 큰 의미는 없죠. 어차피 강대국들의 정책에 정당성을 만들어주기 위한 형식적인 기구 아니겠습니까?”
하긴, 오명진 대통령의 말대로 유엔이라는 조직이 마치, 세계의 의회 같은 의미있는 조직은 아니다, 사실상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움직이고 있고 그래서 정당성보다는 힘의 논리가 중요한 국제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미국 쪽의 동의만 구하면, 북한 주민들을 사막 도시들에 고용할 수 있다는 말이죠?”
“미국 쪽에서 암묵적인 동의만 해준다면, 나중에라도 문제를 제기할 곳은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
미국, 뉴욕. 민주당, 샘 트라스퍼 상원의원 사무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샘 트라스퍼입니다.”
샘 트라스퍼 상원의원은 미국 상원의 외교안보위원회 소속이었다. 민주당 출신으로 50대 후반의 미중년 스타일의 남자로, 특히 북한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안보문제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의 정계의 비밀 모임인 아메리카 클럽의 일원이었다.
아메리카 클럽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구도로 움직이는 미국 정치계에서 당과 정파를 초월해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일종의 비밀 결사였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비밀 조직과도 유사하지만,
오직 미국인들로 구성되어,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조직의 강령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아메리카 클럽도, 보이진 않는 세계 정부를 구성하는 엘리트 그룹에 속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정부는 각 분야의 엘리트 그룹들의 연합의 성격이었지만, 그 구성원들도 극소수의 상층부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샘 트라스퍼 상원의원도 미국정가의 실력자였지만, 그리고 아메리카 그룹의 일원이지만, 아메리카 그룹과 같은 엘리트 집단들의 또 다른 상위 모임인 보이지 않는 정부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단지 아메리카 클럽의 추천으로 이진석이라는 사업가를 만나서 그의 요청을 들어주라는 요청을 받은 것뿐이었다.
“하하, 상원의원님이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상당히 영향력이 있으신 분이더군요. 주변에서 이진석 사장님을 꼭 만나보라고 부탁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만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뭔가요?”
“예, 저는 지금 제이에스 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급성장한 농업기업이죠. 성장세가 굉장히 인상적이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는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농업 생산력을 늘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미 인구 증가와 산업화, 그리고 기상이변까지 겹쳐서 만성적인 식량부족 시기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샘 트라스퍼 상원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기후전문가는 아니지만, 기후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외교와 안보 분야죠.”
“제가 하려는 이야기도 미국의 외교와 안보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래요?”
“예, 저는 남몽골의 고비사막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막을요?”
“예, 라스베이거스나 캘리포니아도 사실은 건조한 사막기후 지역이죠. 하지만, 지하수 개발로 지금은 화려한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고 농업과 대도시로 발전하기도 한 곳들이죠.”
“그럼, 지하수를 개발해서 사막을 녹지로 만들고 있다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지하수와, 그리고 사막화를 막을 특수 수종을 키우는 방식이죠. 그런 방법으로 이미 사막 지역을 녹지로, 그리고 다시 농경지대로 변화시키는 일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공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요? 대단하군요. 그런데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라는 게?”
“사막을 녹지로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성공했는데.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농업을 시작하려면 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인력이라? 몽골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건가요?”
“몽골도 실업률이 높은 곳이지만, 사막에서 농업을 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건설한 오아시스 도시들은 주로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곳들이라, 외부와 단절된 소규모의 지역이거든요.”
“고립된 사막 지역이라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거군요? 그것과 미국의 외교와 안보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최근에, 북한 주민들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출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탈북자들 말인가요?”
“탈북자는 아니고, 북한의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몽골까지 올라온 케이스죠. 아마도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까 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제이에스 그룹 직원들과 접촉도 하고요.”
“그들을 고용하고 싶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임금을 지불해야 하니까요. 그 돈이 달러로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 되면, 유엔 제재 위반이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죠.”
샘 트라스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기는 하군요.”
“역시 안 되는 건가요?”
상원의원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있지만, 우리가 하고 싶다면 못 할 일은 없죠.”
“우리라면?”
“미국이라고 해두죠. 아무튼, 미국의 안보에 크게 위협이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허가해주시는 겁니까?”
“정식으로 허가를 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묵인은 할 수 있죠. 미국이 외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진석 사장님과 제이에스 그룹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빌겠습니다. 어쨌든 사막을 개발한다는 일은 멋진 일인 것 같군요.”
샘 트라스퍼 상원의원은 후원금 모금 파티가 있어서 그와의 면담은 그렇게 짧게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짧은 면담으로 진석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에 새로운 이주민들이 들어 올 수 있게 길이 열린 것이다.
***
몽골, 남고비, 아사달..
“사장님, 오셨군요.”
“아, 이성우 박사님, 그 북한 주민들은 만나봤습니까?”
“예, 이쪽으로 오시죠..”
이성우 박사는 아사달의 직원 숙소로 진석을 안내했다. 숙소 안쪽에는 약간 마른 듯한 인상의 키가 작은 남자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나이는 20대에서 30대 정도로, 비교적 젊은 듯했다.
약간은 다부진 체격들, 그리고 긴장한 듯 무표정한 얼굴들이, 뭔가 한국인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이진석입니다.”
“장순철입네다.”
“모두 북한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그럽습니다. 일자리를 준다는 게 사실입네까?”
“하하,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막에서 농사를 짓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일없수다. 우리는 북에서 더 힘든 일도 많이 했습니다.”
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열악한 북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사람들이니, 이곳 남고비의 혹독한 환경도 그리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마침 인력이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잘됐군요. 같이 일해보죠.”
“정말입네까? 우리가 여기서 일하고 돈을 받아도 문제가 없는 겁니까?”
이성우 박사도 진석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사장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거 아닐까요? 북에서 온 사람들이잖습니까?”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청와대도 다녀오고, 미국에서 암묵적인 동의도 얻었으니까요.”
“음,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자, 다들, 쉽지 않은 일이 될 겁니다. 이곳은 보시다시피, 사막이고, 우리는 사막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을 거니까요. 대신 일이 힘든만큼 보수도 충분히 드릴 겁니다. 그 돈을 가지고 북으로 돌아가도 좋고, 가족에게 송금을 해도 좋습니다.”
북한에서 온 남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사막 도시의 번영이 여러분에게도 엄청난 기회가 될 거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봅시다.”
“저희들도 힘 닿는데까지 돕겠습니다.”
“열심히 해봅시다.”
제이에스 직원들과 북한에서 온 남자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아시스 도시들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