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짜 오렌지 와인 (133/183)

150화. 진짜 오렌지 와인

남몽골 아사달, 제이슨 크레이크의 와이너리.

“사실,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런가요?”

제이슨 크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다른 포도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청포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와인 품종의 차이죠. 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껍질째 와인을 만드느냐, 과즙만을 이용하냐의 차이죠.”

“껍질이 들어가면, 레드 와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포도의 껍질에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탄닌이 바로 레드 와인의 검붉은 색의 원천이죠. 그에 비해, 과즙만을 이용하는 화이트 와인은 탄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타닌은 색의 차이뿐 아니라, 특유의 약간 텁텁한 맛도 있어서, 맛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맛이라는 영역은 개인차가 심한 분야라,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것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조방식의 용이함 등으로 레드와인이 더 많이 생산되고 있고, 익숙한 맛에 끌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라 전세계적으로 보면, 와인이라는 것은 주로 레드 와인을 말한다.

그리고, 이 와인계의 양대 산맥인 레드와 화이트 와인 외에,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렌지 와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오렌지 와인은 청포도를 이용해서 만드는 와인으로, 레드와인과 제조방법이 같다. 검붉은 일반 포도와 달리, 청포도의 연한 색 때문에 색이 오렌지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색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약간 애매한 포지셔닝 때문에 크게 각광을 받지는 못한 와인이다.

기록상으로는 8천년 전의 고대부터, 오렌지 와인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한 비운의 와인이었다.

그리고 와인은 아니지만, 근대에 와서는 쿠바에서 오렌지의 럼을 섞은 오렌지 럼을 만들기도 했지만, 역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이유가 뭘까요? 오렌지로 술을 만들 수 없었던, 아니, 만들어도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진수의 질문에, 제이슨 크레이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약간 신맛이 있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껍질이 두껍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껍질이요?”

오렌지는 과일 중에서도 상당히 껍질이 두꺼운 편이다. 물론, 더 두꺼운 껍질을 가진 과일도 많이 있다. 하지만, 포도 같은 과일은 껍질째 먹을 수 있고, 그런 특성 때문에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바로 포도주 제조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은 와인을 제조하는데 보통 수작업으로 해야 했던 고대에는 굉장한 메리트가 되었던 것이다.

껍질을 일일이 제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이 절약되었던 것이다. 포도의 경우에도 화이트 와인보다, 탄닌이 들어간 레드 와인이 주류가 된 되는 아마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하는 학설이 있다.

지금은 고급스러운 술이지만, 고대에는 그저 지중해에 흔한 포도로 만든 과실주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조 방식의 단순함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사실, 제조 방식만 보면, 레드나 오렌지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이 더 고급이죠.”

“그렇겠네요. 껍질이나 씨앗 같은 불순물을 제외하고, 과즙으로만 만드는 방식이니 말이죠. 손도 더 많이 가고요.”

제이슨 크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와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오히려, 레드와인이나 오렌지 와인같이 껍질이나 씨앗, 줄기나 잎까지도 들어간 내추럴 와인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거죠.”

“내추럴 와인이라면, 순수한 자연 그 자체라는 말인가요?”

제이슨 크레이크에 따르면,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와인도 조금씩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인류의 자연에 대한 관점에 따라서도 많이 변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인기가 없던 오렌지 와인이 인기를 얻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연물 그 자체를 통으로 먹었을 때, 영양과 풍미가 더 좋다는 자연주의 경향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보통, 과일의 잎이나 줄기, 껍질, 씨앗 같은 과육과 과즙을 제외한 부분에는 탄닌이라는 약간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 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차이는 이 탄닌의 유무에 따라서 나는 맛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이 더 불순물이 없는 고급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도 있었고, 최근처럼, 더 자연에 가까운 것이라 탄닌의 맛이 자연스러운 내추럴 와인이라고 더 선호하기도 하는 경향도 있는 것이다.

결국, 호불호는 개인의 차이고, 취향의 문제인 셈이었다.

아무튼, 내추럴 와인의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오렌지 와인이라는 말은 있지만, 진짜 오렌지로 만든 와인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데요.”

사막의 도시 아사달, 남고비 사막의 광대한 사막지대에, 지하수가 개발되고 사막에는 사막올리브와 사막포도에 이어, 사막오렌지 나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사막올리브와, 포도, 오렌지 등의 나무의 정확한 이름은 사막자두포도, 혹은 사막자두오렌지였다.

다들, 자두나무를 베이스로 한 혼종의 유실수로, 올리브와 자두의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건조한 기후에 잘 견디고, 물의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자두나무처럼 크게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재배하기 시작한 사막오렌지는 열매의 수확량도 많고, 특히 껍질이 얇아서 자두처럼 껍질째 먹을 수도 있었고 그런 특징을 이용해서 와인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껍질이 얇고, 자두와 혼종이 되며 단맛이 강해진 사막오렌지는 커다란 포도알과도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와인을 만들기에 적당한 과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건 영국 출신으로 호주에서 와이너리를 하고 있던, 제이슨 크레이크로 하여금 사막 오렌지로 와인을 만들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호주와 몽골을 오고 가면서 만들어본 오렌지 와인입니다.”

제이슨 크레이크는 마치 자기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 남자아이처럼, 잔뜩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사달은 이제 어느 정도 사막 녹화 사업이 안정되어, 언뜻 봐서는 남고비 사막이 아니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정도와 와 있는 느낌이었다. 둘 다 건조한 지역이고 태양이 강렬한 곳이지만, 고비사막과 달리 안달루시아도 여러 가지 농업이 발달한 곳이다.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역은 건조한 지역이지만 사막보다는 낮은 초지가 제법 있는 황무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아사달 주위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농경지도 점점 늘어나고, 사막포도를 이용해서 와인을 가공하는 와이너리도 건설되기 시작했다.

진석은 호주의 펄스에서 인연을 맺은 와인 생산업자, 제이슨 크레이크를 몽골로 초청해서 아사달에 퍼스와 같은 와인 제조시설을 건설하도록 부탁한 것이다.

물론, 필요한 비용은 제이에스 그룹이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제이슨 크레이크도, 일종의 투자들 받는 것이어서, 흔쾌히 진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아사달을 중심으로 점점 개발되면서, 아사달은 물론이고, 남고비의 제이에스 그룹의 사막 프로젝트 지역에 수백 개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인공호수와 그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녹지대와 작은 도시라고 불리는 거점 지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시라고는 해도, 작은 거점 지역으로, 창고로 쓰이는 작은 건물들 몇 개가 있는 오아시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있는 오아시스 호수가 있었고, 더위와 밤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건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생존조건은 갖춘 곳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점 도시들에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지고, 녹지대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그 점들과 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선, 그리고 면이 되는 식으로 남고비 사막 일대에 녹지대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녹지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심어진 나무들은 진석이 사막 환경에 적합하게 개량한 유실수들이었다. 사막포도와, 사막오렌지 같은 수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기서 수확한 포도와 오렌지들은 크기도 크고, 수확량도 엄청난 편이었다. 생과로 먹을 수도 있는 신선한 과일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생과일보다는 와인이나 주스 등으로 가공하는 것이 수익성이 더 높기 때문에,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생산된 과일들은 오아시스 도시들에 건설된 가공공장에서 와인이나 주스 등으로 바로 가공이 되고는 했다.

오렌지는 당연히 주스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사막 도시들에 머물던 제이슨 크레이크는 오렌지를 이용해서 와인을 제조해 보자고 진석에게 제의했고,

진석의 허가가 떨어지자, 몇 년 전부터, 사막자두오렌지를 이용해서 와인을 제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분쟁을 해결하고 몽골로 돌아온 진석에게, 제이슨 크레이크는 그동안 생산한 오렌지 와인, 단지, 색깔이 오렌지 색인 오렌지 와인이 아니라, 진짜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 와인을 선보이고 있었다.

“진짜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 와인이군요?”

진석은 진한 오렌지색의 와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잔에 따라서 향을 맡아보니, 진짜 오렌지 향이 나고 있었다.

“하하, 진짜 오렌지향이 나는데요. 맛은 어떨지?”

진석이 한 모금 와인을 입안에 넣고 시음을 해보자, 레드와인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오렌지향이 나는 와인의 맛이 느껴졌다.

“음 뭐랄까? 오렌지 맛도 나는 것 같지만,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고도 비슷하고요.”

“맞습니다. 사막자두오렌지는 기본적으로 자두와 오렌지가 약간 혼종된 것이라, 자두맛이 나는 오렌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약간 포도와도 비슷한 느낌이죠. 그래서인지, 포도로 만든 와인과도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오렌지 향이 나는 와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렌지 와인은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이었다. 사막자두오렌지가 커다란 포도 느낌이 나는 과일이라, 사막오렌지로 만든 와인도 포도 와인과 비슷해서 와인을 만들어서 판매하기에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맛은 괜찮은 것 같네요. 아니, 아주 훌륭합니다. 와인이라는 느낌이 나면서도 오렌지 특유의 맛과 향이 있어서, 뭔가 차별화가 되는 점도 있고요. 무엇보다, 맛이 좋아요. 와인도 음료의 일종이니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맛이죠. 그런데 맛이 훌륭하네요.”

“하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실, 오렌지로 와인을 만들어보자는 건,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결과물이 이렇게 좋을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오렌지 와인은 성공적인 것 같네요. 그런데 다른 와인들도 있지 않나요?”

진석의 말에, 제이슨 크레이크는 다른 와인들도 가져와서 진석에게 선을 보였다.

“당연히, 포도를 이용한 레드 와인도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오렌지 와인보다는 이게 더 주력 와인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죠.”

“뭐, 그렇겠죠. 아무래도 와인이라면, 레드와인이 가장 대표적이니까요.”

제이슨 크레이크는 레드 와인 외에도,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오렌지 와인, 그리고 로즈 와인 등 다양한 제조법을 이용해서 만든 와인을 보여주었다.

“오, 사막포도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와인을 만드셨군요?”

“예, 뭐, 아직, 좀 더 숙성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시음용으로 한 번 내놔 봤습니다.”

“이건 오렌지 와인이군요, 그런데 우리가 진짜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 와인도 있지 않습니까? 이름이 겹치네요.”

“하하, 그러게요. 진짜 오렌지 와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음, 아니,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뭐가 말입니까?”

“크레이크 씨의 말대로 진짜 오렌지 와인이라는 이름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죠. 리얼 오렌지 와인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거죠.”

“리얼 오렌지 와인이라?”

제이슨 크레이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시장에 내놨을 때,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기는 하니까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석도 시장의 반응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이슨 크레이크는 아직 오렌지 와인의 맛이 완성되려면,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했다.

“좋습니다.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하죠. 하지만 건배는 지금 해도 괜찮겠죠?”

“하하, 그러죠, 오아시스의 도시들을 위하여..”

“진짜 오렌지 와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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