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3) (131/183)

148화.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3)

미국 워싱턴 D.C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톰 하든과 다시 만난 곳은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노천카페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든 씨, 말대로 사업을 하다보니 제가 부탁할 일도 생기는군요.”

워싱턴은 날씨가 쾌청했다. 맑은 하늘 아래로, 따사로운 햇살, 시원한 바람도 불어와서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에 딱 좋은 느낌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르네상스 댐 문제인가요?”

“어떻게 아시죠?”

“하하,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CIA는 전세계의 모든 문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요.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죠. 에티오피아에서 원전을 수출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원전이죠. 필요한 자금은 제이에스 그룹에서 제공하는 거죠.”

“원자력 발전소라? 좀 예민한 문제군요. 원자력은 핵기술이니까요. 원자력 발전 후에 나오는 폐기물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그걸 농축해서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관리의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운영 주체는 제이에스 그룹과 한국 정부가 될 겁니다.”

“음, 그렇다고 해도, 아프리카 국가에 원자력 발전소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프리카든, 중동이든, 남미든,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죠.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고요.”

“농업과 환경을 중시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겠다는 건 좀 의외네요.”

톰 하든의 말에, 진석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원자력을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요소가 있죠. 장기적으로는 태양광이나, 다른 대체 에너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바이오 에너지도 있죠.”

“오, 바이오 에너지라고요?”

“예,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서, 옥수수를 이용해서 알콜을 만드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사실, 화석 연료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식물과 동물의 퇴적물이거든요.”

“맞아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석유도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기본적으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입니다. 태양이야말로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죠. 그리고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게 식물이고요. 그 식물을 먹고 동물인 인간은 살아가죠.”

“하하, 재밌는 이론이군요.”

“이론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태양은 일종의 거대한 핵융합로라고 할 수 있고요.”

“그렇기는 하군요. 태양도 원자력의 일종인가요?”

“핵융합에너지라는 거죠. 아무튼, 지금 당장은 그런 대체 에너지를 에티오피아에 적용할 수는 없죠. 당장, 사용 가능한 가장 기초적인 발전기술은 수력입니다. 블루 나일의 수자원을 이용해서 전기를 얻으려는 발상은 그래서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집트의 나일 델타겠군요?”

진석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맛있네요.”

“그래서, 당장은, 원자력으로 르네상스 댐 건설을 막아보겠다는 거군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에티오피아에 발전소가 생기면, 아스파 대통령 말대로 경제도 발전할 겁니다. 제가 에티오피아에 가보니까, 국민들이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도 있고, 의지도 있어 보였습니다.”

원자력 발전으로 일단, 어느 정도 경제의 기틀을 잡은 후에는 보다 안전한 대체 에너지로 변경을 할 생각이었다. 원자력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생각이 진석의 진심이었다.

“좋습니다. 상부에 긍정적으로 보고를 드려보죠.”

“그 정도로 가능한 건가요? 한국에서는 미국의 일종의 양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데.”

“후후, 미국을 지배하는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CIA라는 말입니까?”

“미국은 양당 정치를 하면서 지난 수백 년간 끊임없이 정권이 교체되었죠. 사실, 어느 정당이라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때, 그때,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저 그런 정책을 펴고 있죠.”

“하든 씨는 정치에 냉소적인 분이군요?”

“실제로 무용지물입니다. 별다른 해결책도 없고, 사실.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죠. 국가적인 중요 결정은 국민들과는 별개로 소수의 엘리트들이 결정을 합니다.”

“CIA가 그런 엘리트 집단이라는 겁니까?”

“CIA도 그런 집단 중의 하나죠. 신자유주의자들도 있고, 금융계의 거물들도 있고, 그리고 최근에는 트루진스키가 주도하던, 국제 곡물 카르텔도 그중에 하나죠.”

“곡물 카르텔도 그 중에 하나라고요?”

“예, 맞습니다. 미국, 아니, 세계를 지배하는 숨어있는 정부죠. 각국의 정부들은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으로 구성됩니다. 드러나는 정부죠. 그들은 국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여러 정책을 만들지만, 대부분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한계 말입니까?”

“마치 편협한 종교처럼, 자기 신도들만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 신은 어떤 기분일까요?”

“한심하게 여기겠죠. 신이라는 건, 전체를 보고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맞습니다. 국가 단위의 정권들이, 이기적인 행동만을 한다면 말입니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의 문제처럼 말이죠. 각국에서는 자국 이익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우리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 혹은 국가를 넘어서는 국제 사회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퍼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파국이겠군요. 서로 자기 이익만 주장하다가, 전쟁도 벌어지고 말입니다.”

“예, 그게 바로 극대화된 시점이 두 번의 세계대전이었죠. 유럽의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하다가, 결국에 새로운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독일 등과, 국제적인 이권이 충돌한 것이 바로 그 거대한 전쟁의 발단이었죠.”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역할도 크지 않나요?”

“히틀러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죠.”

“히틀러가 꼭두각시라고요?”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히틀러는 별볼일 없는 실패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정권을 잡았을까요?”

“그거야, 달변가고. 여러 가지 운도 좋고.”

“독일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 군부가 그를 지원한 거죠.”

“아무튼, 유대인 학살이라던가, 전쟁을 일으킨 건 히틀러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소 논쟁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튼, 제가 원하는 건, 에티오피아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거고. 거기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를 원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의 분쟁을 해결하고, 세계적으로 보면, 식량문제도 개선하는 거죠. 에티오피아의 산업 발전도 도모하고요.”

“그럼,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톰 하든은 남아 있는 커피를 모두 마셔버렸다.

“확인이라면?”

“이진석 사장님도, 숨어있는 정부 즉, 보이지 않는 정부의 일원이 되어서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하하, 저는 누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의 하부 조직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국제 곡물 카르텔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일원이죠. 사실, 정식 명칭 같은 것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각 분야의 엘리트 집단의 느슨한 연합정도죠.”

“거기에 일원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세계 평화를 위해 같이 노력하는 거죠.”

“하하, 세계 평화라?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요? 아니면, 무의미하던가?”

“이번 나일강의 분쟁에서 보듯이, 각국의 정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선거로 뽑히는 선출되는 권력의 한계죠.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정치가는 눈앞의 현안에 급급하고, 국익을 내세워 표를 얻으려고만 합니다.”

“정치가 원래 그런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더 큰 장기적이고, 글로벌한 과제들도 있는 거죠. 환경이나, 에너지, 식량 문제, 그리고 전쟁의 방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톰 하든의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만 들어서는 그 보이지 않는 정부라는 건, 결국 국제 사회의 안정을 추구한다는 대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진석이 제이에스 그룹을 통해 이루려는 국제 곡물 시장의 안정과도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방향성에서는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제가 하는 일과도 비슷하군요.”

진석의 말에, 톰 하든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진석 사장님과 다른 보이지 않는 정부의 엘리트 그룹들은 크게 보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죠. 어떻습니까? 우리와 함께 아시지 않겠습니까?”

“음, 아까 말한대로 누구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니겠죠?”

“모든 건, 자율적입니다. 명령을 내릴 상위의 인물이나 조직은 없죠. 다만, 국제 곡물 카르텔에도 대표인 이진석 사장님이 있듯이, CIA를 대표하는 인물도 있고, 다른 엘리트 그룹에도 그 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끼리의 담판으로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죠.”

“그럼, CIA는 현재 국장이 그 대표인가요?”

“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선출되는 권력은 아닙니다. 선거에 좌우되는 권력은 한계가 있거든요. 그보다는 우리는 좀 더 비밀스럽고, 지속적인 권력이죠.”

“그럼, 지금 CIA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라는 겁니까?”

“그건, 바로 접니다.”

톰 하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 대통령궁.

압둘 카심 대통령은 60대 초반의 조금 마른 체형이었다. 호리호리하고 키가 크고, 아랍 특유의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집트에 도착해서, 대통령과의 면담이 시작되고 있었다. 면담을 주선한 건, 아랍의 종교지도자들의 원로 회의라고 했다.

다른 중동 국가 혹은 북아프리카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이슬람의 영향력이 대단한 곳이었고,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알게 모르게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톰 하든과의 대화가 긍정적으로 마무리되고, 톰 하든은, 자신의 CIA의 내에서의 인맥을 동원해, 진석과, 카심 이집트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중동의 종교 지도자들의 비공개적인 모임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에티오피라의 르네상스 댐을 막을 방법이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석이 자리에 앉자마자, 카심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대가 말입니까?”

압둘 카심은, 아시아에서 온 젊은 사업가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이는 비록 젊지만, 중동의 종교 지도자 회의의 특별한 추천을 받아, 그와의 면담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비록 그가 제이에스 그룹이라는 세계적인 농업기업의 오너라고는 하지만,

종교 지도자 회의의 압력이 없었다면, 이 면담에 그렇게 쉽게 응할 이유는 없었다. 그만큼 종교 지도자 회의는 중동 일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이집트의 대통령인 압둘 카심으로서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나일 델타의 농업 개발권을 제가 주십쇼.”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카심 대통령은 나일 델타의 개발권이라는 말에, 약간 놀라기도 하고,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일 강 하류의 델타 지역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땅입니다. 물론 지금도 풍요로운 곡창지대기는 하지만, 좀 더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서 생산성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죠.”

“농업기업의 CEO라더니, 나일 델타를 개발하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농업이라는 건, 외국 기업가에 그렇게 쉽게 권리를 내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아니라면,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댐이 건설되면, 나일 델타의 수자원 부족으로 100만명 이상의 농부들이 농지를 잃고 실직자가 될 겁니다. 대통령께서 수백 만의 농부와, 그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실 다른 방법이 있으시다면, 제 제안을 거절해도 그만이죠.”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카심 대통령은 약간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