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2) (130/183)

147화.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2)

철강왕 카네기가 말하기를 타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협상에서도 상대에게 줄 것이 없다면 협상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아스파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전기였다. 에티오피아의 밤을 밝히고, 공장을 돌리고, 병원과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전기가 필요한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아스파 대통령은,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을 멈추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진석 사장이 원하는 것은 알겠지만, 우리 에티오피아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블루 나일의 수자원을 이용해서, 전력을 얻는 거죠.”

“그뿐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에티오피아가 원하는 거 말입니다. 르네상스 댐을 만들어서, 원하는 것이 전기뿐인가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평화주의자들이죠. 이집트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댐을 건설해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얻으려는 것뿐이에요.”

아스파 대통령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의 건설에 이탈리아의 자금이 투입되어서, 댐을 건설하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댐 건설은 전기의 생산이 주목적이었다. 저개발 국가인 에티오피아에 당장 그만한 전력을 생산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진석은 대통령궁을 나왔다.

***

박훈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분이군요. 오자마자, 대통령궁 방문이라니.”

“일이 있어서 면담한 것뿐이죠.”

“어떤 일 말입니까? 아스파 대통령과의 면담이라, 궁금해지는데요.”

박훈은 약간 가벼운 말투로 진석과 아스파 대통령의 대화에 대해 묻고 있었다.

“사실은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을 막기 위해서 온 겁니다.”

“르네상스 댐을요?”

박훈도 르네상스 댐이라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에티오피아에서는 국가적인 대사업이니, 외국인이라고 해도 에티오피아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박훈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예, 르네상스 댐의 건설로 막대한 전기를 얻게 되겠지만, 하류의 이집트에는 엄청난 양의 물 공급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나일의 수량이 줄어서, 하류 나일 델타에 농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거죠.”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반대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일반적인 에티오피아인들의 여론은 어떤가요?”

진석의 질문에 박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순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이곳에 르네상스 댐이 건설돼서 전기가 들어올 거라고 하면 다들 좋다고 하죠, 하지만, 그 댐 때문에 이집트의 농부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들 합니다. 그게 에티오피아인들의 평균적인 수준이에요.”

“뭐, 다 그런 건 아니겠죠. 아무튼, 에티오피아의 입장도 있는 거니까요.”

“아마 어려울 겁니다.”

“르네상스 댐의 건설을 막는 것 말인가요?”

진석의 말에, 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집트에 관심이 없어요. 이집트가 전쟁이라도 하겠다면, 그러라는 식이죠. 사실, 국제법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어쨌든 블루 나일은 에티오피아를 흐르는 강이니까요. 이집트로 가는 물이 줄어드는 건, 안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집트가 블루 나일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겠죠. 국가 간의 관계니까. 기본적으로 대등하고 강제력은 없는 거니까요.”

국제법이라는 것은, 사실 법이라고는 하지만 법의 일반적인 특성인 강제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국가들 간의 규범이나 합의 정도지, 사실상 어떤 법이라는 개념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결국 국가 간의 분쟁은 힘에 의한 해결이나, 아니면 협상을 통한 해결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전자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다소 지루하고 복잡한 협상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무튼, 르네상스 댐을 막기 위해 전쟁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고, 에티오피아와의 협상으로 이집트의 나일 델타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연히 이집트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지만, 이미 이집트 정부는 에티오피아와의 협상을 포기한 느낌이었다. 에피오피아와 협상할 전략이 부재하다 보니, 오히려 문제 해결보다는 에티오피아 정부를 비난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일에 치중하는 정도였다.

“이진석 사장님에게는 묘책이라도 있으신가요?”

박훈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박훈으로서는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국제적인 사업가인 진석에게는 뭔가 다른 해결책이 있을지 약간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결국, 협상이란 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과정이죠.”

“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다?”

박훈은 대통령궁을 나와, 호텔 쪽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가 원하는 것은 결국 전기입니다. 산업 발전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기를 얻으려는 거죠.”

“그건 저도 알고 있지만, 전기를 얻으려면, 르네상스 댐이 필요하고, 댐을 지으면, 나일의 수량이 줄어들어 나일 델타의 농업 생산이 타격을 입는다, 이런 거 아닙니까? 둘은 서로 모순이어서,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은 없는 거 아닌가요?”

“댐을 짓지 않고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박훈은 조금 황당하다는 말투였다.

“댐을 건설하는 건, 수력발전을 위해서죠. 사실 수력발전 시스템은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입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사실 다른 발전 방식에 비해서 건설만 되면 비용도 저렴한 편이고요. 그리 복잡한 기술도 필요 없죠. 한마디로 저개발 국가에 적합한 발전소 형태라는 겁니다.”

“음, 아마, 그렇겠죠.”

에티오피아가 수력발전에 집착하는 것도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원조를 받아, 댐만 건설하면 수력발전의 특성상, 자연에서 얻는 강물을 이용해서 추가적인 비용 없이 막대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화력발전처럼 추가적으로 화석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태양광처럼 관리가 필요하지도 않고, 원자력처럼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기술 자체도 단순해서 수력발전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난이도가 낮은 일이다. 에티오피아 같은 수준의 국가에 적합한 발전 시스템인 것은 분명했다.

“에티오피아의 경제력이나 기술력으로는 다른 발전 방식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제이에스 그룹이 에티오피아를 지원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겁니다.”

“제이에스 그룹이 말입니까?”

“예, 아무래도 제이에스 그룹이 르네상스 댐을 대신해서, 에티오피아에 새로운 전력 시스템을 제공하는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을 것 같네요.”

“새로운 전력 시스템이라면?”

“바로 원자력입니다.”

“원자력요?”

박훈은 진짜 놀랐는지, 차를 운전하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놀랍다마다요. 원자력 발전소를 에티오피아에 세우겠다는 거 아닙니까?”

“원자력 정도가 아니면, 르네상스 댐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원자력은 사실, 굉장히 효율적인 전력 생산 시스템이죠.”

“음, 하지만. 상당한 기술과 관리 능력이 필요할 텐데요.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환경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박훈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원자력은 기본적으로 안전한 기술이지만, 사실. 비상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점도 있었다.

특히, 운영 주체가 원자력을 통제할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한국 정도의 원자력 기술 선진국이라면, 몰라도 에티오피아 수준의 나라에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

대한민국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하하, 이거 이진석 사장님이 나와 면담을 신청하다니 별일이군요. 뭐 필요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에티오피아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싶습니다.”

“예? 뭐라고요?”

오명진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진석의 제안에 약간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석의 말을 곱씹어 보는 듯했다.

“에티오피아라면, 아프리카의 빈국 아닙니까? 거기에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해외에 원자로를 판매하는 거라면 나쁜 일은 아니죠. 우리 원자력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면, 좋은 기회니까요.”

오명진 대통령은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건설비용은 어떻게 할 겁니까?”

“원자력 발전소 건설비용이라면, 제이에스가 부담하겠습니다. 그 정도 능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제이에스 그룹이요? 그래서 얻는 이익이 뭔가요?”

“저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오명진 대통령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에티오피아에 원자로를 건설해서 전력을 만들어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전력회사라도 운영하실 계획입니까?”

“아닙니다, 전기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그럼, 들어가는 돈은 어떻게 회수를 하려고요?”

“이집트에서 수익을 내는 겁니다.”

“하하, 정말, 모를 소리만 하시는군요, 에티오피아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수익은 이집트에서 낸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지금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사이에는 거대한 국제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가 이집트의 나일강의 상류인 블루 나일에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서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댐을 건설 중입니다.”

“아, 그 이야기라면, 어디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하류의 이집트에서 물 부족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군요.”

오명진 대통령은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진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예,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에티오피아가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는 이유는 전력 생산 때문이죠, 전기가 필요한 에티오피아에 이탈리아가 댐 건설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해서 사업이 시작된 겁니다.”

오명진 대통령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진석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류의 이집트 같은 곳은 유량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집트 정부가 비슷한 이유로 건설한 아스완 댐 때문에, 전통적인 곡창지대인 나일 델타의 유량과 퇴적토가 많이 줄었는데 상류에 블루 나일에까지 대형 댐이 들어선다면 나일 델타는 거의 붕괴 상태가 되는 겁니다.”

“흠, 이집트 입장에서는 큰일이군요.”

“사실, 이집트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큰일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인구가 크게 늘고 있죠. 이집트는 북아프리카의 유일한 곡창지대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다른 나라에게까지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땅입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말도 맞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유엔 회의에 참석했었는데, 거기서 발제자로 나선 하버드 대학교수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뭐라고 말입니까?”

“미래는 물과 식량을 놓고 전쟁을 벌이게 될 거라고요.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했지만, 기상이변 등으로 식량 위기가 미래의 일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위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눈앞에 다가왔을 때는 이미 손 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전세계의 식량 문제, 국지적으로는 이집트의 나일 델타의 곡창지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에티오피아에 원자력 발전을 지원하자는 말인데..”

“비용은 제이에스 그룹이 부담할 겁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원전 수출 허가만 내주시면 됩니다.”

“음, 원전 수출이라? 하지만 에피오피아에 원전을 수출한다는 건? 원자력은 핵시설입니다. 핵무기를 제조하는 원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핵폐기물 말입니다.”

“폐기물 문제도 제이에스가 모두 관리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시설은 제이에스 그룹이 관리하고 전력만 에티오피아에 송출하는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에는 제가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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