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1)
나일강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사실, 아프리카에는 3개의 나일강이 있다. 나일강은 7개국을 흐르는 3개의 강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화이트 나일과 에티오피아 타나 호수에서 발원한 블루 나일은 수단을 지나며 하나로 합쳐져,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일강은 이집트 나일강을 말한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나일강은 서로 연계되어 아프리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나일강의 범람과, 나일 델타의 풍요로부터 이집트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고대는 물론이고, 근대에 와서도 나일강은, 이집트의 나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경쟁적으로 식민화를 하던 유럽 제국 열강은 풍부한 생산력과 수에즈 운하라는 교통의 요충지를 가지고 있는 이집트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펼쳤고,
결국,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까지 감행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정복했지만, 결국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며 그의 제국도 막을 내리게 되고, 이집트와 풍요로운 나일 델타는 워털루의 승자인 영국의 차지가 된 것이다.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에게, 나일강은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막대한 농업 생산지대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 지역의 번영을 가장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쳤고, 결국 이집트 앵글로 협약으로 이집트는 나일강의 상류의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권리를 얻는다.
나일의 주요 수원은 크게 탄자니아의 빅토리아 호수의 화이트 나일과, 에티오피아의 타로 호수를 수원으로 하는 블루 나일인데, 화이트 나일의 경우 중간에 케냐와 남수단 일대의 습지대를 거치면서 자연적으로 유속과 유량이 크게 줄어든다, 화이트 나일의 수량의 절반 이상이, 수디라는 습지대에서 증발되거나, 습지 식물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는 블루 나일은 비교적 건조한 수단 동부를 빠르게 흐르며, 하트룸 일대에서 화이트 나일과 합류해 일반적으로 나일강이라고 불리는 강이 되는 것이다.
나일에서 절대적인 유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블루 나일이다.
***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국제 공항.
“여깁니다, 이진석 사장님.”
국제 공항치고는 규모가 작고 초라한 아디스 아바바 공항은, 에티오피아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박훈 씨인가요?”
“예, 여기서는 바쿤이라고 부르죠.”
“하하, 바쿤요?”
30대 초반의 박훈은, 한국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의료봉사차 온 에티오피아에 눌러앉은 케이스였다.
“그럼, 의사는 그만두신 겁니까?”
“예, 아이러니하지만, 그렇습니다. 의료봉사를 왔다가, 아예 의료계와는 인연을 끊은 거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에서 의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인데, 의사를 그만두고 에티오피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박훈은 별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물이든 사람이든, 언제나 일반적인 것을 거부하는 돌연변이는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그런 변종형의 인간들이 세상을 바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가 어떤 매력이 있나 보군요?”
“음, 글쎄요. 에티오피아의 첫인상은, 덥다, 지저분하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이런 느낌이었죠.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니까, 장점도 많더군요.”
“어떤, 장점요?”
진석은 이미 공항을 빠져 나와, 박훈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디스 아바바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일단은 호텔에서 여장을 풀 생각이었다. 에티오피아까지 오는 비행이 제법 피곤했기 때문에 어디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방에서 푹신한 침대만 있으면, 바로 뻗어버릴 것 같았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그에 비해서 모든 게 부족하다는 거죠.”
“하하, 모든 게 부족하다, 그게 장점인가요?”
“발상의 차이랄까요? 한국은 좀 답답하죠. 모든 게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까, 개업의들도 너무 많고. 사실, 의사를 때려치운 것도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요?”
“예,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것도 그다지 메리트 있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의사는 선망받는 직업 아닙니까,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의 대표군 아닌가요?”
“남들이 보기는 그런지 몰라도, 그거 아시나요? 어떤 스포츠 기자가 룸살롱 아가씨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더니, 가장 진상인 손님 직업군이 바로 의사라는 겁니다.”
“하하, 그래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는 건가요?”
“생각해보세요. 어딜 나가면, 의사 선생님, 닥터, 이런 식으로 대접을 해주지만, 병원에 가보면, 좁은 진료실에서 간호사와 하루종일 아픈 사람들만 보고 있는 겁니다. 보통 가족 중에 한 사람만 아픈 환자가 있어도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하죠. 그만큼 아픈 사람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 해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네요.”
“그래도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면 버틸만한데 저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라 돈만 보고 의사를 할 수는 없겠다 싶더라고요.”
“하긴, 아무리 좋은 직업도 자기한테 안 맞으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는 건, 본인에게 잘 맞는 것 같나요?”
진석의 말에, 운전을 하던 박훈은 백미러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꽉 끼는 수트를 입고, 몸이 조여서 숨도 못 쉬다가, 편한, 운동복을 입고,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느낌입니다. 부모님은 싫어하시지만, 여기서 사는 게 저는 정말 행복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하하, 행복에 답이 있겠습니까? 행복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 아닌가요?”
차는 어느새,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단은 호텔방으로 들어가 샤워부터 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
다음날은 대통령궁에서의 면담이 있었다.
아스파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60대 정도의 퉁퉁한 체격의 남자였다. 거구이기는 하지만, 비만이라기보다는 힘이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실제로도 육군 장군 출신이라고 했다.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에티오피아에서 군부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1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정적인 권력을 바탕으로, 다음 선거에서도 출마해, 차기 대통령의 자리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아스파 대통령이 최근 가장 중점을 쏟고 있는 것이 바로,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 건설이었다.
진석이 에티오피아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에피오피아는 여러모로 독특한 나라다, 성서의 시바의 여왕의 나라로, 고대에도 이미 강력한 왕국이 존재했고 특이하게 자신들을 솔로몬의 후예라고 여기는 기독교도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이기도 하고 말이다. 50년대만 해도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낼 정도로 아프리카에서 상당히 발전된 나라라고 할 수도 있었다.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식민지 영향으로 어느 정도 근대화도 이루어진 국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공산혁명 등으로 정치가 불안정하고 거기에 아프리카를 덮친 가뭄 등의 기상 이변의 영향으로 대표적인 가난한 빈곤 국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그런 이미지도 과거의 것으로 최근에는 안정적 정권을 바탕으로 다시 재도약을 꿈꾸고 있는 아프리카의 신흥강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에티오피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군인 출신의 아스파 현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에피오피아 내부적으로 보자면, 약간 민주적인 절차는 무시하는 것도 있었지만, 최빈국 수준인 에티오피아를 발전시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과 인연이 많죠. 한국전쟁 때 한국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하하,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인연이 깊죠. 기독교 국가라는 공통점도 있고 말입니다.”
아스파 대통령은, 약간 착각을 한 건지 한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긴,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치면, 국민 상당수가 기독교도라고도 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물론 진석 같은 무신론자부터, 불교 계열의 종파도 많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질 자리는 아니었다.
“뭐, 아무튼,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우호 관계가 더 돈독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아스파 대통령님과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면담을 신청한 겁니다.”
“음, 현안이라면? 아무대로 제이에스 그룹이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르네상스 댐 문제인가요?”
군인 출신이라 아스파 대통령은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정도 인사치레가 끝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이집트, 아니,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나일 델타의 수량이 부족해지는 건 큰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나일강 하류 지대는 엄청난 농업 생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도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거 아십니까? 에티오피아 가정의 75%에는 아직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죠. 병원도 학교도, 전기가 없어서 돌아가지 않고, 공장을 세울 수도 없죠. 호텔에도 전기가 부족해서, 관광산업도 할 수 없고요.”
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에티오피아의 전력 시설이 굉장히 낙후되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탈리아가 블루 나일에 댐을 지을 돈을 지원하고 있죠. 말하자면 식민 시대의 빚을 갚는다고나 할까요.”
아스파 대통령이 말하는대로, 에티오피아는 진석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낙후된 국가였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에피오피아 대부분의 가정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낙후된 에티오피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심하던 아스파 대통령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민 것은, 한때 에티오피아를 식민 지배했고, 독립을 원하던 에피오피아와 전쟁까지 벌였던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알게 모르게, 아직도 에티오피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펴고 있었는데, 블루 나일의 르네상스 댐의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의 몇 안 되는 식민지였던 에티오피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의미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탈리아의 의도가 무엇이든, 전통적으로 영국과 이집트가 주도하던, 나일강 상류의 수자원 이용의 주도권이 에티오피아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가 블루 나일 상류에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면서 나일 하류의 이집트로 유입되는 나일강의 수량이 크게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이집트 나일 델타의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제이에스 그룹이 나일 델타에 여러 가지 농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사업들도 르네상스 댐이 완공이 가까워 오면서 수량 부족을 걱정하며 모두 올스톱이 된 상황이었다.
결국 진석이 에티오피아까지 날아와, 아스파 대통령과 댐 건설 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댐이,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에티오피아에 엄청난 전력을 제공할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수량 부족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하지만, 그동안 에티오피아는 이집트와 영국에게 부당한 강압에 시달렸습니다. 이집트와 영국이 멋대로 블루 나일의 수자원을 통제하는 조약을 맺었죠. 블루 나일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하는 강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영토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영국과 이집트 두 나라의 조약으로 말입니다.”
“그 문제라면, 1920년대의 문제고, 60년대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다시 협정이 맺어진 게 아니었나요?”
“그것도 강압적이었죠. 북아프리카의 최대 군사대국인 이집트의 군사정권이 사실상 군대로 협박을 한 겁니다. 에티오피아는 힘이 없었고, 이집트는 지금보다 더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을 시절이었죠.”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국제 관계도 힘으로 밀어붙이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영토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그 주권 국가에게 있는 겁니다. 그게 새로운 국제 질서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민주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종식되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최근까지 아프리카에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복잡한 내전이나, 정치적 갈등의 원인에는 식민주의 시대의 강대국들에 이익에 따라, 맺어진 국경선이나 조약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에티오피아는 불평등한 수자원에 대한 조약을 폐기하고 독자적으로 블루 나일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기존의 현상이 변화를 하고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