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먹는 오렌지(1) (126/183)

143화. 그냥 먹는 오렌지(1)

제이에스 본사.

“음,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장경수 농장에서 수확한 다래를 보내왔다. 이수정은 유기농으로 키워서 그냥 먹어도 된다는 말에, 택배 박스에서 꺼낸 다래를 바로 먹기 시작했다.

“수정 씨, 그래도 물로 한 번 씻어서 먹는 게 좋지 않아?”

“유기농이라면서요, 이런 건, 그냥 먹는 게 제 맛이라고요.”

장경수 농장에서 키운 다래, 자두다래는 수확량도 엄청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맛도 훌륭했다. 그리고 크기는 키위 수준으로 커졌지만, 다래 특유의 얇은 껍질 때문에 껍질째 그대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일일이 두꺼운 껍질을 제거해야 하는 키위보다, 훨씬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인 것이다.

“사장님도 하나 드셔보세요.”

“난, 많이 먹었어.”

진석은 맛있게 자두다래를 먹는 이수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즘 진석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었다.

서서히 고비 사막의 지하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최초의 도시 아사달을 시작으로 많은 도시들, 사실은, 인공호수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막의 도시들이라고는 하지만, 지도상의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고, 실제로 가보면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인공호수 주위로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정도였다. 특히 사람들이 전혀 늘고 있지 않았다.

이주민은 고사하고, 일할 인력도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만은 없는 일, 진석은 사막에서 키울만한 작물들을 더 개발하기로 했다.

인력이나 이주민 문제는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막에서 키울만한 작물이 뭐가 있을까? 고비사막과 비슷한 곳을 떠올렸다. 사막 기후 지역에 지하수로 농업을 하는 대표적인 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이다. 그곳에서 많이 키우는 것은 포도와 오렌지 같은 것들이다.

포도는 이미 키우고 있으니까, 오렌지가 남아 있는 셈이었다.

오렌지는 고온에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물론, 비교적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렌지도 물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 캘리포니아라면 오렌지로 유명하니까, 그리고 오렌지 주스는 세계적으로도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일단 품질 좋은 오렌지를 생산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두나무를 이용한 혼종 오렌지를 개발하면, 수확량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포도나 다래도, 자두나무와 혼종 품종을 만들고 나니까,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 오렌지도 자두와 혼종으로 나무도 크고, 수확량도 많은 오렌지를 만드는 거다.

***

강원도 인제군,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

“소대영, 부장님.”

“이진석 사장님. 연구소는 무슨 일이십니까?”

소대영은, 부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연구소를 막, 설립하고 신입 직원을 뽑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오렌지 묘목들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오렌지요? 오렌지라면, 어디서 재배하실 건가요?”

물론, 오렌지를 키울 곳은, 몽골의 오아시스 도시들이었다.

“몽골에 사막을 개발하고 있는 건 알고 있겠죠? 그 사막 도시들에서 키울 오렌지를 개발하려는 겁니다. 신품종이 필요하죠. 수확량도 많고, 사막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신품종이 말입니다.”

“역시, 그러셨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오렌지라면, 사막에서도 아마 재배가 가능할 것 같네요.”

소대영은, 묘목과 종자들을 준비해 주었다. 진석은 오렌지 묘목들과 씨앗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파주의 창고로 들어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의 오아시스에 도착하자, 진흙 사령관이 진석을 맞았다.

“오늘은 묘목을 가지고 오셨네요?”

“그래, 사령관, 저건 오렌지 나무의 묘목들이야.”

“오렌지 말입니까? 오렌지는 어디에 쓰시려고요?”

“몽고에 사막 도시들을 개발하고 있거든, 거기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 지하수도 개발하고 건물들도 짓고 있는데, 아무튼, 사막에서 잘 자라는 새로운 오렌지가 필요해.”

“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평지의 밭에서 재배 실험을 해야겠군요?”

“그래, 평지에서 밭을 만들어서 해보자고, 그리고 지난번에 다래와 포도를 자두나무와 혼종을 했던 것처럼, 자두나무랑 혼종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사령관이 일꾼들을 지휘해서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석은 인제의 제이에스 연구소에서 가져온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자,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평범한 오렌지 종류로 흔히 볼 수 있는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였다. 나무들이 잘 자라기는 하지만, 이걸로는 뭔가 부족했다. 진석은 사막자두포도 나무에 오렌지들의 가지를 잘라 접붙이는 방식으로, 혼종 실험을 해보았다.

의외로, 접붙이기를 한, 나무에 오렌지가 쉽게 열리고 있었다.

“사령관, 이번에는 좀 쉽게 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한 번 혼종이 성공한 나무라 그런 걸까요?”

“음, 그런가?”

진석은 사령관의 말에, 이번에는 자두다래를 가져왔다. 자두나무와 야생 다래를 혼종한 나무였다. 자두다래에도 오렌지 나무의 가지를 잘라 접붙이기를 하자, 이번에도 쉽게 오렌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음, 역시 혼종나무에는 다른 작물과의 혼종도 잘 되는 것 같은데, 자무다래에도 오렌지가 쉽게 열리잖아.”

하지만, 접붙이기로 혼종이 된, 가지에서 열매가 쉽게 열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다음 세대에도 특질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혼종 가지에 열린 오렌지의 씨앗을 심은 곳에는 평범한 오렌지 나무가 자랄 뿐이었다.

혼종을 거쳐, 변종이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진석은 혼종에 성공한 자두포도와, 자두다래나무를 오렌지와 계속 혼종하며, 실험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공간주님, 저걸 보십쇼.”

“변종이 나오고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사령관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자두나무 형태의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고 있었다. 밭에 뿌린 씨들은 모두 오렌지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반복된, 실험으로 변종의 오렌지가 나온 모양이었다. 진석이 시간을 더 가속하자, 나무는 빠르게 자라며 커다란 자두나무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열매는 맺히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을 더 반복하자, 이번에는 열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열매는 점점 더 커지며 오렌지와 비슷한 커다란 열매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히 다가가서 열매를 따보니, 뭔가 오렌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간주님, 이건 오렌지와는 좀 다른데요.”

“그러게 말이야.”

진석은 나무에서 막 딴, 노란색의 열매를 살펴보았다. 색감은 오렌지빛의 노란색, 말그대로 오렌지색이었지만, 일반적인 오렌지와 다른 점은 껍질이었다.

오렌지는 귤에 비해서도 껍질이 두꺼운 편인데, 나무에 열린 열매의 껍질은 자두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껍질이 굉장히 얇습니다. 자두랑 비슷한데요.”

“그러게 말이야, 역시 베이스가 자두나무여서 그런 건가?”

사막자두포도도 그렇고, 자두다래도 모두, 자두나무를 베이스로 혼종 실험을 한 나무들이었다. 덕분에 포도든, 다래든, 어딘지, 자두의 특성이 조금은 포함되어서 맛이나 모양에 미묘하게 자두의 느낌이 들어가 있었다.

오렌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자두오렌지 나무에 열린 열매들은 색은 오렌지 같았지만, 껍질의 느낌은 자두와 비슷했다.

“맛은 어떤 거지?”

진수는 오렌지를 몇 번 돌려보다가,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공간주님, 어떤 맛입니까?”

“오렌지, 아주 달고 시원한 오렌지 느낌이야, 약간, 자두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신맛이 약간 덜한데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은데.”

“오, 그런가요?”

“그리고 껍질이 얇아서 그냥 먹을 수도 있어,”

얇은 껍질을 가지고 있는 자두오렌지는 자두처럼,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다. 안의 내용물은 과즙이 많고, 달콤해서 주스를 만들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껍질째 가공해서 주스를 만든다면, 주스를 만들 때 경제성도 더 있을 것 같았다.

대신, 껍질이 얇아서 보관성이 떨어질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무 자체가 자두나무처럼 크게 자라면서 가지도 크고, 나무 전체의 크기도 커서, 열리는 오렌지의 양도 크게 늘어난 모습이었다.

“아무튼, 맛이나 나무의 생산성은 대만족이야, 다음 세대에도 이런 나무가 계속 나온다면, 좋겠는데.”

진석은, 자두오렌지의 씨앗을 채취해서 다시 심어보았다. 밭에 심은 씨앗에서는 다시 자두오렌지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사령관, 다시 자두오렌지가 나무가 자라고 있어. 실험은 대성공이야.”

“역시 공간주님의 능력은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진석은 공간에서 개발한 신품종의 자두오렌지 종자를 가지고 몽골로 행했다.

***

몽골, 남고비. 아사달.

아사달은 첫 번째로 개발된 오아시스 도시답게, 다른 오아시스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이에스의 몽골지사가 주재하기도 하고, 모든 물자와 인력이 일단 아사달을 거쳐, 다른 오아시스들로 이동하고 있는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진석이 오렌지 종자들을 가지고 찾아오자, 이성우 박사가 진석을 맞았다.

“사장님, 그게 이번에 개발한 새로운 오렌지 종자들인가요?”

“예,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오, 그 정도인가요?”

자두오렌지도 사막자두포도와의 혼종으로, 올리브 나무의 특성도 가지고 있어서인지, 사막 기후에도 잘 적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진석은 이 자두오렌지를 아사달에 먼저 심어보기로 했다.

오아시스가 개발되고, 몇 년 사이에, 아사달은, 제법 푸르른 숲이 오아시스 일대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외곽에는 주로 사막올리브, 그리고 안쪽으로는 사막자두포도, 그리고 오아시스와 가까운 지역에는 토마토나, 양배추 같은 일반적인 작물들도 키워지고 있었다.

“아사달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 같습니다.”

“예, 그냥 보기에도 녹지가 늘어나서, 달란자르가드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물론, 도시 외곽은 여전히 사막지대지만요, 우리 직원들의 노력으로 점점 농경지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진석도 한국과 다른 외국을 오가며 몽골에서 몇 달에 한번씩 오고 있었다. 올 때마다, 몽골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도 빠르고 질적으로 훌륭해서 올 때마다 진석도 놀라고는 했다.

아사달은 이제는 언뜻 봐서는 몽골의 여느 도시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최신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더 발전된 도시의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는 제이슨 크레이크 씨도 왔었죠.”

“제이슨 크레이크 씨가요?”

“예, 이곳의 자두포도나무를 보고 같습니다. 자기 농장에도 같은 종류의 나무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곳에서 대규모로 자두포도가 재배되는 걸 보고 좀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하하, 그러겠죠. 이런 사막 한가운데에, 이런 도시가 세워지고, 거기에 포도가 자랄 거라고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죠.”

“예, 아무튼, 제이에스 그룹과 협력관계라면서 조만간, 아사달에도 와인을 생산할 거라고 하더군요.”

진석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현재, 아사달에서 생산되는 주요 생산물은 올리브와 포도였다. 이미 올리브유를 생산하기 위한 저온 압착 시설이 건설 중이었고.

조만간, 와인 제조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었다. 올리브유와 와인, 이 두 가지가 지금은 오아이스 농업의 주요 생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오렌지도 추가될 예정이었다.

“예, 와인도 생산하고, 올리브유도 생산하면, 이 도시도 좀 더 활기를 찾을 겁니다.”

“거기에, 오렌지를 이용해서 주스도 가능하겠군요.”

“그렇죠. 농산물을 이용해서 수익을 발생시키려면, 가공은 필수니까요. 그렇게 생산한 가공식품들을 중국에 판매하는 거죠.”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일정한 생산력만 갖추면 수요는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요. 일단, 오렌지 농장부터 만들어 봅시다. 하나하나, 우리의 상상을 실현시켜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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