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사막의 도시(3)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호주에 가셨던 일은 잘 되셨어요?”
“그래, 와인 사업 관련해서 성과가 있었어.”
“와인 사업요? 와인도 생산하시려고요?”
이수정은 와인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이제 몽골 사막을 개발해서, 포도도 대량으로 생산할 예정인데, 아무래도 포도를 소비하는데는 와인이지.”
포도라면, 박스 단위로 팔아도, 몇 만원의 가치를 넘어서기 힘들다. 하지만 와인으로 가공하면 고부가 가치의 상품이 된다. 농업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똑같이 좁은 농지에서 소규모 자영농을 해도 소득이 낮은 아시아와, 소득의 높은 유럽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를 와인으로 가공할 수 있는 유럽의 농가들은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원자재를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야 말로, 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수정 씨도 알겠지만, 포도는 가격이 한정되어 있잖아, 유통기간도 짧고, 대신 와인으로 만들면 고급 와인이라면, 비싼 가격을 받을 수도 있고, 유통 기한도 거의 무제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당연히 생포도보다는 와인을 만드는 게 이익이지.”
“음, 하긴 그렇겠네요. 사실, 요즘 와인을 많이 먹잖아요.”
“그래, 쌀로 만드는 소주 같은 술들은 소비가 줄고, 이제는 포도를 베이스로한 와인의 시대야.”
“우리나라 농가들도 뭔가 그런 식으로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한국의 농가들은 사용할 수 있는 농지가 너무 작은 편이지. 그에 비해서 땅값은 비싸고. 큰 농지를 만들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상황이니까. 아무래도 한국에서 대규모의 농업은 경쟁력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장님은 몽골의 사막을 개발하겠다는 거군요?”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땅이 모자랐잖아, 그래서 서해안에 간척도 하고 그랬다고. 지금도 그 간척지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기업도 있지.”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쌀 농사 짓는 곳으로는 최대규모라면서요?”
“그래, 뭔가 바다가 육지가 되던지, 사막이 농지로 변해서 큰 땅이 생기지 않고는 거대한 대규모 기업적 농업을 할만한 땅을 구하기는 어려워. 파 앤드 어웨이 같은 영화를 보면, 예전의 미국은 주인 없는 땅, 물론, 인디언에 대해서는 백인들이 너무 잔인했지만. 아무튼 인디언을 몰아낸 후에 미국은 복권처럼, 선착순으로 땅을 분배할 정도로 땅이 많은 나라였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미국도 주인없는 땅은 없을 걸요?”
“맞아, 이제 주인없는 미개척지는 사막과, 바다 정도야. 나는 그 둘 다를 개발하고 있지만.”
“둘 다요? 사막은 알겠는데..바다도요?”
“수정 씨, 내가 베트남의 메콩 델타에 맹그로브 숲을 만들고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수정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맹그로브도, 바다를 메워서 땅을 만드는 나무였죠.”
“그래, 맹그로브만 잘 심어도, 강 하구의 퇴적토를 이용해서, 바다를 간척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그럼, 베트남에도 육지가 막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뭐, 아직 그 정도는 아냐, 지금 중국 같은 매콩 상류 국가들이 메콩강에 댐을 만들어서 유량도 줄고 퇴적층 자체가 많이 줄었거든.”
“음, 그렇군요. 당분간은 고비 사막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대규모 농지는 어렵겠네요.”
“맞아, 고비 사막은, 시련이라는 의미지만, 그 시련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엄청난 기회를 발견할 거야.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어머, 사장님, 꼭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같아요.”
“드라마? 하하, 그런가? 하긴 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을 걸, 적당히 다듬으면 재밌는 스토리도 많다고,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
“서태준 씨에 부탁해보지 그래요? 방송국에 아는 사람도 많을 텐데.”
“됐어, 그보다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우리 할 일요?”
“그래, 앞으로 사막에 오아시스 도시들이 세워지면, 할 일이 많은 거야. 일단 병원이나 학교 같은 것도 필요하고.”
“병원은 알겠는데 학교는 왜요?”
“내가 여러 가지 작물을 키워보니까. 숲과 밭은 다르더라는 거지.”
“숲과 밭요?”
“그래, 1년 단위로 생의 주기가 끝나는 곡물들을 보통 밭에 많이 심잖아. 하지만, 그들의 수명은 1년도 채 안 돼, 그 다음 해에는 그 밭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그거야, 그 작물의 특징인 거죠. 대신, 그 밭에는 다음 해에는 다른 걸 심을 수도 있잖아요?”
“맞아, 그게 꼭 단점이라는 건 아냐, 하지만, 나무를 심어 놓아서 뿌리를 내리면, 그 나무는 수십 년, 수백 년도 그 자리를 지키니까, 그런 나무들이 많아지면 그곳은 숲이 되는 거야.”
단년생인 작물들에 비해, 다년생인 유실수나, 여러 수목들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그 지역을 숲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단기간에 자라서 뭔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단년생의 작물들도 좋지만,
진석은 다년생의 나무들을 키워서 사막에 오아시스를 지키는 숲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 나무들로 일정한 수익도 올릴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수익으로 도시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작물은, 바로 유실수였다.
나무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열매를 맺어 과일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유실수들로 고비 사막의 오아시스들을 주위를 채울 수 있다면, 오아시스 도시는 스스로 자립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식물로 치면 유실수에 해당하는 것이, 가족 단위의 이주민들이라는 것이 진석의 생각이었다.
오아시스 도시에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단년생의 작물이라면, 가족 단위의 이주가 이루어지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도시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주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주민, 즉, 가족 단위의 이주민이 자리를 잡기 위해 필요한 핵심 시설이 병원과 학교였다.
“사람도 숲처럼, 어떤 한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주민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지금 사막에 건설하는 오아시스 도시들은, 지금 당장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결국 어느 시기가 지나면 다 떠날 사람들이라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사막에 누가 살고 싶어하겠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이주해서 정착할 주민들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필수라는 거지.”
“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다 도시로 오고 싶어하잖아요?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 사람들은 외국으로 뉴욕, 파리 같은 더 멋진 도시로 가고 싶어하고요.”
“그래, 그렇기는 하지. 나도 알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일단 학교를 만들고 사람들이 정착할 준비는 해두어야 나중에 누가 찾아왔을 때, 거기에 살아볼 생각을 할 거 아냐?”
“맞아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 사막에도 정착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수도 있겠죠.”
이수정은 그다지 기대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진석도 사막의 오아시스에 누군가 이주해서 도시를 지켜주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살기에 그다지 좋지 않은 혹독한 환경, 그리고 아직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는 도시, 도시라기보다는 사막에 인공 호수를 만들고, 경작지와, 나무들을 심고, 건물 몇 개를 만들어 놓은 정도인 사막의 황량한 신도시, 거기에 과연 와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까 도저히 이주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사막의 도시에도 이주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다.
진석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을 일단 만들어 놓고, 누구든 사막의 도시들을 찾아오기를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
오아시스 도시, 아사달.
아사달은, 사막에 생긴 최초의 오아시스 도시였다. 거리상으로도 달란자르가드와 상당히 가까운 곳으로 론더스의 지하수 개발로 인공 호수인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고, 뒤이어 이성우 박사 팀이 사막 올리브와, 사막 자두포도 등을 연이어 심어서, 오아시스 주위에 방풍림을 조림하기 시작했다.
올리브와 포도 숲이,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막아주기 시작하고, 뒤이어 사막 자두포도에서 포도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성우 박사님, 드디어 자두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성우 박사는 달란자르가드에서, 두 번째 개척 도시인, 아사달로 최근에 이주했다. 달란자르가드와 아사달을 잇는 도로도 건설이 되어서, 이제, 모래사막을 달려야 하는 일은 없었다.
“오다보니, 아사달 주위가 멀리서 봐도 녹색지대로 보이더군요.”
“그럴 겁니다. 사막 올리브나무가 먼저 심어지고, 그 뒤에 사막 자두포도를 심고 있는데 이 조합이 딱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완전히 사막의 모래땅에는 사막 올리브가 잘 자라는 것 같고. 사막 올리브가 자라기 시작하면, 모래바람도 줄고, 토질도 좀 회복되는 것 같거든요. 그 후에 사막 자두포도를 심는 거죠.”
아사달의 오아시스 주위로 커다한 자두나무같은 포도나무들이 가지를 뻗고 있었다. 나무에는 알이 굵은 포도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포도들의 작황은 어떤가요?”
진석은 포도들이 열린 자두포도 나무들을 올려다 보았다. 언뜻 포도가 잔뜩 열려있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공간에서 키우던 포도들에 비하면, 포도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물의 공급이 약간은 부족해서인지, 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은 2천 송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아무래도 사막 지대라, 파이프로 물을 공급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는 하겠죠.”
원래 모래사막인 땅에 나무를 심은 거라, 아직은 토질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모래흙이 많아, 파이프로 직접 뿌리에 물을 공급하고 있었지만, 뿌리에 흡수하는 물에 비해 손실되는 물의 양이 상당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그루에 최대 3천 송이 가까이 수확이 가능한 자두포도 나무였지만, 아사달에서는 그 3분의 2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도 절대로 적은 양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포도나무와 비교할 때, 엄청난 수확량이었고, 특히 이곳은 고비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도시 아사달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포도는 이 정도만 해도 만족입니다. 주위를 보세요. 여기는 고비 사막이죠. 이 사막에서 이런 포도가 열리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죠.”
“하하, 그렇기는 하죠. 그리고 사장님, 한국에서 의사들이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해서, 병원과 의사들 관사를 만들어 놨습니다. 한 번 보시죠.”
이성우는 새로 지은 병원 건물로 진석을 안내했다.
“아직, 의료기구는 별로 없네요?”
병원 건물은 새로 지어서, 깔끔하기는 했지만, 병원보다는 보통의 신축 건물 같은 느낌이었다.
“예, 사실, 의료기기나, 그런 건 어떤 걸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요. 오늘 오후에 한국에서 의사들이 도착한다니까. 그분들하고 협의를 해서 다른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요, 의사들이 오면, 의논을 해봐야죠. 그리고 학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학교도 곧 건물을 완공할 겁니다. 규모는 역시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 학교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건물을 만들었죠.”
진석은 학교가 들어설 건물도 둘러보았다. 일반적인 학교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으로, 일반 빌딩형의 건물이었다. 아직은 도시 전체의 규모가 작은 편이라, 대부분의 건물은 여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지어지고 있었다.
“아사달에 아직,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은 없는 거죠?”
“예, 아직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상주 인구는 제이에스 그룹의 직원들이거나, 아니면, 몽골에서 농업 작업을 지원하러 온 인부들인데, 아직 가족을 데리고 이주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시나 그렇군요. 몽골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아사달에 새로운 농경지가 생기는데, 이쪽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겠다거나?”
“그것도 조금 어려운 일인게, 몽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유목 민족이라, 도시라면 몰라도, 이런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익숙한 일이 아니죠. 당장은 이주민을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요?”
이성우 박사의 말대로, 당분간은 가족 단위의 이주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아마도 상당 기간 동안은 가족 단위의 이주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석은 여유를 갖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