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사막의 도시(1)
몽골 정부의 지원으로 남고비로 가는 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도로가 건설되고, 론더스의 지하수 개발도 연이어 성공하며, 남고비 사막도 점점,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일단은 황량한 사막을 단번에 개발할 수는 없었다. 마치 지옥처럼 뜨거운 사막에 중간중간 오아시스들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오아시스를 만들자고요?”
존 론더스는 진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란자르가드의 어느 카페, 사막에서 돌아온 존 론더스와, 이성우 박사, 그리고 진석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서 앞으로 남고비 사막의 무상임대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지를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단, 진석이 바이투 대통령을 만나 부탁한대로 남고비 사막으로 도로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일단 몽골 정부가 도로를 어느 정도 완성하면, 진석은 사막에 막대한 투자를 해서 작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오아시스 도시라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존 론더스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말 그대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작은 도시를 만들자는 겁니다. 물론,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는 아니죠. 기본적인 도시기능을 가진 소도시를 만들어서, 거점으로 삼는 거죠. 그리고 그런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수로와 파이프관을 설치하고, 올리브나, 포도나무를 심어서, 녹지를 넓혀나가는 겁니다.”
진석의 말에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달란자르가드 같은 곳을 사막 여기저기에 만들겠다는 거죠. 그리고 그 오아시스 도시들이 하나의 점들이 되는 거고, 그 녹색의 점이 점점 커지면서, 서로 연결되면, 더 큰 점이 되고 말입니다.”
존 론더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농업지역을 늘리자? 그러면, 저는 오아시스를 만들 지하수만 개발하면 되는 거죠?”
“맞습니다. 존 론더스 씨는 지금처럼, 지하수 개발만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차이라면 오아시스 도시들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나중에 도시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병합될 수 있게 말입니다.”
진석의 계획은 각각의 오아시스들을 일정하게 건설해서, 마치 바둑처럼, 일정한 지역의 오아시스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해서, 그 오아시스 사이의 지역들이 하나의 농업지역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각각의 바둑돌인 오아시스들은, 도로가 연결되고, 제이에스의 지원팀의 사무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하수가 개발되어야 한다.
그런 조건이 갖추어지면, 오아시스 도시들을 주위로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숲이 조성되면 모래바람이 막아지며 점차적으로 오아시스 일대를 농지로 개발한다. 그리고 개발된 농지를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면서 도시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확장된 농경지대가 다른 오아시스의 농경지대와 연결되면, 점이 선이 되는 것이다. 각각의 오아시스들 간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고 다시 선과 선이 교차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하나의 지도상의 면이 되어, 거대한 사막의 농경지대, 녹색의 지대가 형성되리라는 것이 진석의 계획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이는군요. 일단 점을 찍고, 점과 점은 선으로 연결하고 선들이 모여서 면이 된다, 하지만, 점 하나를 찍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존 론더스는 진석의 아이디어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쉬운 이야기는 아니죠. 론더스 씨의 말대로 점 하나가,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거니까요. 하나의 점을 찍으려면, 지하수 개발부터, 도로, 건물, 인력, 숲의 조성, 관개수로와 파이프관 설치, 기타 등등 할 일이 엄청 많겠죠. 말 그대로 하나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니까요.”
각각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고대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정기간은 외부와 차단되어서도 스스로 자급자족하며 지속 가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니, 그러면서도 오히려 도시는 주변의 녹지대를 확장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속 가능한 발전 능력까지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가진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러 개의 도시를 고비사막에 건설하겠다는 계획, 그것은 진석 스스로도 상당히 무모한 계획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오아시스 거점도시 개발방식이 아니고는, 남고비 사막을 개발할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진석은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
달란자르가드 제이에스 지사.
“제이에스 그룹에 입사를 하라고요?”
진석의 부탁에 이성우 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제이에스에 입사하라는 건 왜입니까?”
“아시다시피, 이곳 남부 고비사막을 개발하는 사업은 제이에스 그룹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뭐, 그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진석의 말대로 달란자르가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막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주체는 제이에스 그룹이었다. 남고비의 토지를 무상임대한 것도 제이에스 그룹이었고, 각종 사업이 제이에스 그룹이 주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녹화 사업을 주도하는 것도 제이에스 그룹이어야 했고,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도 제이에스 그룹이었다.
진석이 임의로 이 지역 사업의 책임자로 선정했던 이성우 박사가 모든 일을 지휘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성우 박사는 그룹의 외부인이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것부터 여러 가지 사업을 집행하는데 행정적인 문제들이 생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현지 사정에 밝고 이 사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성우 박사를 제외하고 다른 인물을 책임자로 선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진석이 생각한 방법은 이성우를 제이에스에 직원으로 스카웃하는 것이었다.
“이진석 사장님의 뜻은 알겠지만, 회사 생활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데, 제가 제이에스 그룹에 들어가서 책임자가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상관없을 겁니다. 어차피, 이성우 박사님이 하던 일이고, 이곳에서 10년 이상 생활하신 분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제이에스 그룹 내에서 이곳의 사정이나 이번 사업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성우 박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연봉이나, 직급은 최대로 예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곳 달란자르가드의 지사장을 맡아주십쇼. 이 지역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좋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죠.”
“하하,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이곳은 아주 외진 사막이고,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니까요. 이성우 박사님이 책임자가 되시면, 이성우 박사님이 원하는대로 지사의 분위기도 결정될 겁니다.”
“음, 그렇기는 하겠네요.”
이성우 박사가, 제이에스에 입사하면서 사막 개발사업은 더 탄력을 받았다. 제이에스 지사는 달란자르카드에 지사를 두고 있었지만, 점점 더 남부 고비사막 지대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일단은, 가장 중요한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론더스 사의 지하수 탐사팀들이 달란자르가드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지하수를 시추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하수 시추에 성공하고,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을 보관하기 위해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지하수 저장 시설을 만들었다. 오아시스는 인공적인 호수로, 지하수를 모아놓는 물 저장고의 기능을 하는 시설이었다.
***
남고비, 오아시스, 제이에스 1,
진석은 론더스의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물로 조성한, 인공호수 제이에스 원을 찾아갔다. 워낙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고비사막 지대라, 지명조차 없는 곳이 많았다.
“이 지역은 별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지명이라는 것도 어떤 목적이 있어야 붙여지는 것인데, 유목민들도 꺼리는 사막지대는 별다른 지명도 없는 곳이 많죠.”
이성우 박사는 진석과 첫 번째 인공오아시스인 제이에스 원을 찾아,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할 텐데요. 앞으로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로도 생기고, 도시도 생겨야 하니까요.”
“저도 그래서 몽골 정부에 문의를 했는데, 그쪽에서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잘..모르겠다고요?”
“이곳에 주민이 있으면, 주민들과 협의하면 되는데 사막에 주민들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우리더라 알아서 하라는 모양입니다.”
몽골의 공무원들은 상당히 게으른 편이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국가들의 공통점인데, 그냥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봉급을 준다고 생각을 하지, 자기가 일을 하는 만큼 돈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자본주의가 들어오자, 민간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을 경험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지만, 공적인 분야에서는 여전히 공산주의 시절과 별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 기준으로는 엄청 답답한 일들이 많은 나라였지만, 문화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각각의 나라마다,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르고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 공무원들의 태도는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외국인인 우리가 이름을 마음대로 붙여도 된다는 겁니까?”
한국도 아니고, 몽골에 한국인들이 지명을 마음대로 붙여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과는 또 다른 문화가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해도 된다기보다는 자기들은 잘 모르겠다는 식이라, 아무튼, 우리가 임의로 지명을 붙여서 사용해보고, 나중에 몽골 정부에서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때 다시 협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성우 박사는 일단, 지명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냐는 식이었다.
“하긴, 어떻게 부르던,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니까. 그럼, 이 첫 번째 오아시스 도시를 뭐라고 부를까요?”
이성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사달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아사달이라면?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한 도시 이름 아닙니까?”
“이곳은 이제, 남고비의 첫 번째 오아시스 도시가 될 테니까요. 최초라는 의미로 아사달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무상으로 100년이나 임대하고 있지만, 지명은 몽골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었다. 제이에스 그룹이 이곳의 지명을 선정할 권한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임시로 쓸 이름을 임의로 정하는 것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진석은 단순하게 이성우 박사의 말대로 첫 번째 오아시스 도시 이름을 아사달이라고 하기로 결정했다.
단군왕검이 조선을 시작한 고대의 도시 아사달에서 따온 것이다. 따로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 첫 번째 오아시스를 시작으로 남부 고비의 여러 오아시스 도시들이 생길 것이고, 그 도시들이 연결되면서 거대한 녹색지대, 거대한 농업지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모든 시작점이라는 의미에서 아사달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진석은 지하 암반수들이 모여, 호수를 이룬 오아시스를 바라보았다. 인공적인 오아시스이기는 하지만, 이 오아시스의 물을 이용해서,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심어, 숲이 만들어질 것이고, 도로가 연결되고, 각종 건물들도 들어서면 작지만, 자급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죽음의 사막은 생명의 땅으로 변해갈 것이었다.
“이성우 박사님, 이곳 아사달에서 우리 제이에스 그룹의 대사업이 시작되는 겁니다. 멋지지 않나요?”
“하하, 그러고보니, 좋은 이름인 것 같네요. 그럼, 이진석 사장님은 단군왕검이 되는 건가요?”
“단군왕검은 왕이자 종교 지도자 아닙니까? 물론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죠. 단지 저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일 뿐입니다. 어쨌든 세계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곡물이든, 과일이든, 채소든, 모든 작물과 식량은 점점 더 수요가 늘어날 겁니다.”
“음, 그렇겠죠.”
“이미, 도시화가 이루어진 서구의 국가들에게는 새로 개발할 땅이 별로 없죠. 특히 유럽이나, 아시아국가들은 더 그렇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한 기업이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사막 같은 곳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사막을 농업지역으로 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신 성공하면 엄청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이곳 남고비 사막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