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주렁주렁 포도나무(2)
몽골 달란자르가드
다시 찾은 달란자르가드는 그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어서 오십쇼. 이진석 사장님.”
울란바토르를 거쳐, 달란자르가드로 오는 길이 꽤 피곤했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한결 푸른 녹색빛이 늘어난 주위의 풍경에 진석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달란자르가드가 많이 변했네요.”
몽골에 존 론더스를 보내서, 남 고비 사막의 암반층에서 지하수를 개발하도록 하고, 이성우에게 사막화를 막기 위해, 사막 올리브 숲을 조성하도록 한 장본인이 바로 진석이었지만,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몽골의 남고비 사막은 오랜만에 찾아오는 것이었다.
“천치개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데요.”
보통 천지개벽이니 상전벽해 뭐니 하는 말은 최근에는 중국의 빠른 발전을 말할 때 쓰는 말들이었는데, 오늘 와 본 달란자르가드는 진짜 상전벽해 수준의 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진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하자, 오히려 이성우 박사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어떻게 되다뇨? 이 모든 걸 기획하고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진석 사장님 본인 아닙니까?”
이성우의 말에 진석도 약간은 어이없는 기분이었다. 이성우의 말대로, 이 고비 사막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이진석 자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현실일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엄청난 기분이었다.
“이진석 사장님,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시나요?”
“여기요?”
“지난 번에, 사장님과 같이 올라왔던 모래언덕입니다.”
“정말요?”
진석은 이성우의 말에, 자산이 서 있던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 번에는 분명, 올라오기도 힘든,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이었는데, 지금은 주위가 녹지인, 초원지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사막올리브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자라고 있었다.
“그 모래 언덕은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사막올리브나무들이 자라면서, 모래바람도 자연스럽게 막아주기 시작했죠. 쌓여 있던 모래들은 마침, 도로 건설이 이루어지면서 공사용으로 사용되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오는 길도 좋아졌던데요.”
“예, 몽골 정부에서도 최대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도로 건설이죠.”
“음, 역시 그렇군요.”
모래가 공사장으로 옮겨지고, 나무들이 모래바람을 자연스럽게 막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전처럼 모래들이 쌓여 사구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그 아래의 땅이 드러나고 있었다. 달란자르가드의 원래 땅은, 모래 사막이 아니라, 초원의 부드러운 흙땅이었다.
“모래가 사라지고나니까, 다시 초원이 되었군요?”
“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원래 이런 초원지대였으니까요. 다시 원상복구가 된 겁니다.”
이성우의 말대로, 모래바람에 잠식되었던 달란자르가드의 외곽지대가 다시 초원으로 복구되고 있었다. 거기에, 복구된 초원지대는 전보다 더 풍요로운 녹지가 되고 있었다.
“수량도 풍부해진 모양이네요.”
올리브 숲 뒤로 수로가 보였다. 론더스 사에서 개발한 지하수가 흐르는 관개수로였다, 수로를 통해 숲까지 도달한, 물들은 거기서 정류장에 물을 모은 후에, 다시 작은 파이프들을 통해 각각의 올리브나무들로 물을 운반하고 있었다.
“예, 세류 파이프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하고 있는데, 기대 이상입니다. 뿌리에 물을 바로 공급해주기 때문에 물 손실도 적은 편이고, 덕분에 올리브나무들에 충분한 물이 공급되고 있는 편이죠.”
“나무들의 성장도 기대 이상으로 빠른 편이고요?”
“예, 저도 이진석 사장님이 사막올리브라는 신품종이라 성장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숲을 만들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실제로 사막의 모래언덕이 멋진 올리브 숲으로 변하는 걸 보니까, 마치 눈앞에서 기적을 보는 기분이네요.”
“하하, 기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올리브 숲이 더 늘어나면, 이 달란자르가드는 거대한 오아시스 도시가 될 겁니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예?”
진석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성우는 들떴던 목소리가 약간 놀란 듯 긴장하고 있었다.
“달란자르가드가 사막이 되는 걸 피한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럼, 이진석 사장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실은 이번에 그냥 달란자르가드를 구경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요?”
“지금은 사막올리브나무를 심고 있지만, 사막올리브를 능가하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어떤 거 말입니까?”
“사막올리브와 포도, 자두나무를 혼종한 신품종이죠. 이름은 사막자두포도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막자두포도나무요?”
“사막올리브나무를 베이스로, 자두나무의 특성을 혼합한, 포도나무라고 할 수 있죠.”
“그냥 이야기로 들어서는 상상이 안 가는군요.”
“실제로 보시면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포도 3천 송이 정도가 열리는 거대한 포도나무죠.”
“나무 한 그루에서요? 포도가 3천 송이가 열린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일반적인 포도나무를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포도나무라는 것 자체가 그 정도로 크게 자라는 경우는 드무니까 말이다.
“대신 자두나무를 베이스로 혼종을 한 종이기 때문에, 외관은 포도나무보다는 자두나무에 가깝죠. 거대한 자두나무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겁니다.”
“자두나무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이라? 뭔가, 잘 상상이 안 되네요?”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제가 묘목을 가져왔으니까요. 사막올리브처럼, 나무를 심으면 얼마지나지 않아서 상상이 아니라, 이성우 박사님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성우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지만, 진석은 이제 존 론더스를 만나러 가야했다.
***
남 고비 사막
존 론더스는 달란자르가드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한 후에, 좀 더 고비 사막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가, 지하수 개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막올리브나무든, 사막자두포도나무든, 건조기후에 잘 견디기는 하지만, 물의 공급 없이는 성장이나 과일 수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은 생명과, 식물의 성장의 필수적 요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수를 개발해서 식물에 물을 공급해주는 것은, 남부 고비를 개발하는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사업이었다.
진석은 지프차를 타고, 달란자르가드를 지나, 존 론더스의 지하수 탐사팀을 찾아, 고비 사막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풍경은 삭막하다 못해, 지옥을 연상시키는 뜨거운 모래밭의 연속이었다.
모래밭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 하지만 뜨거운 사막의 풍경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을 때쯤, 저 멀리 사막의 열기에 흔들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존 론더스의 지하수 탐사 장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군요.”
차가 점점 더 지하수 시추공으로 접근하면서 일을 하던 사람들도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진석의 차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하하, 캘리포니아에서 봤을 때보다, 많이 날씬해지셨네요.”
존 론더스는 산호세에서 만났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어쩔 수가 없죠. 날씨는 지옥처럼 뜨겁고, 음식도 맛이 없고,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죠.”
약간 비만이었던 존 론더스였기 때문에, 사실은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하수 개발은 어떻습니까? 달란자르가드 쪽은 성공적이던데요.”
“예, 사실은, 이곳도 지하수는 잘 나오는 편입니다.”
“그래요?”
“예, 이진석 사장님 말대로, 이 일대는 암석지대고, 지하도 거대한 암석지대더군요, 그리고 지하 암석 사이에, 지하수가 모여있는 지하암반층에서 지하수가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생각보다 지하수 개발이 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네요.”
“하하, 쉽다고요. 뭐, 물이 안 나오는 지대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 지하수 시추를 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뜨거운 열기를 보세요.”
“물론, 쉽게 일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죠. 아무튼, 지금 시추공에서도 물이 나오는 건가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올 겁니다. 거의 암반층을 뚫었으니까요.”
“제가 가기 전에 볼 수 있을까요?”
“운이 좋으면요.”
“솔직히, 여기 오래 머물 계획은 없습니다. 물이 솟는 모습은 다음에 봐야겠군요.”
그때였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사장님은 역시 운이 좋으시군요.”
“예?”
존 론더스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진석을 데리고 시추공 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뒤이어, 시추공 아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지하로부터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하, 저걸 보십쇼. 수만 년 동안 지하에 갇혀 있던 지하 암반수가 세상으로 나오고 있는 겁니다.”
뜨거운 사막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물이었다. 물은 쉬지 않고 솟아올라 주변의 모래사막을 적시고 있었다.
“굉장한 광경이네요. 정말 저는 운이 좋은 편이네요. 이제 막 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죠.”
존 론더스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석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 바로, 우리들이 하는 일이죠. 이렇게 뜨거운 사막에서 이런 지하수가 솟아오른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진석은 땅속에서 계속 솟아나오는 지하수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물이라면, 이 일대를 푸른 숲으로 만들 수 있는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관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지하수를 꾸준히 개발해준다면, 지하수를 이용해서, 사막에 강한 수종을 키워, 녹지를 늘려나갈 수 있었다.
이제 모래뿐이던 뜨거운 고비사막에도 녹색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이다.
***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다시만난 바이투 대통령은 진석을 향해 다가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이진석 사장님, 잘 오셨습니다.”
전과는 달리, 바이투 대통령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반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하, 당연히 환영을 해드려야죠. 달란자르가드의 기적을 일으키신 영웅이신데요.”
“달란자르가드의 기적요?”
“몽골에서는 지금, 이진석 사장님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사막에 녹색 기적을 일으킨, 영웅이라고 말이죠.”
“하하, 저에게 영웅이라는 건 과분한데요.”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사람을 보통 영웅이라고 부르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무도 막지 못 했던 사막화를 막아내고, 모래사막을 다시 초원으로 되돌린, 이진석 사장님을 영웅이라고 부를 만도 하지요.”
“하하, 그렇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작요?”
“예, 이제 본격적으로 고비사막의 지하수가 개발되고 나면, 달란자르가드는 물론이고, 남고비 사막 일대를 모두 녹색지대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올리브나무 위주로 숲을 조성하고 있지만, 그다음은 저희 제이에스에서 개발한 신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을 생각이죠.”
“포도라고요? 사막에서 포도가 재배가 가능한가요?”
바이투 대통령은 포도를 재배하겠다는 진석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듯했지만, 이내, 진석을 신뢰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이진석 사장님의 말을 다 이해는 못 하겠지만, 그동안 이진석 사장님이 해낸 일들을 보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겠죠.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사막에서 본격적으로 농업이 시작된다면 몽골 국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겁니다. 과수 재배 같은 사업은 인력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죠. 농장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면 몽골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죠.”
진석의 말에 바이투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쓸모 없던 사막에서 일자리가 생긴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죠. 우리 몽골 정부에서도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가장 시급한 건, 도로입니다. 도로가 새로 생기고는 있지만, 아직 남고비 사막에는 도로가 없더군요.”
“거긴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막 아닙니까?”
“하지만, 이제 제이에스 그룹이 고비사막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개발사업을 하려면 도로가 필수고요.”
“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당장 도로 건설부터 지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