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렁주렁 포도나무(1) (121/183)

138화. 주렁주렁 포도나무(1)

제이에스 본사.

“갑자기 포도는 왜요?”

이수정은 여러 가지 품종의 포도 종자를 들고 온 진석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는 왜겠어. 이걸로 신품종의 포도를 개발하려는 거지?”

“포도요?”

사실, 대량으로 재배하기에는 곡물들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넓은 토지만 있으면 기계식 농업으로 쉽게 생산이 가능하고, 기계를 이용하는만큼, 노동력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과일류는 나무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고, 또 열매를 관리하는 작업에 노동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기계화가 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서 농업대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주로 생산되어 수출되는 것은 기계화가 용이한 곡물들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포도는 관리가 까다로운 편이고 사과처럼 저장성도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의 수출도 어렵고, 아직도 소규모 농가 단위의 생산이 일반적인 작물이다.

무엇보다, 포도나무 하나당 열리는 포도의 수가 제한적이고 나무보다는 넝쿨에 가까운 특성상, 관리작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농장식 재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경수의 제안으로 포도나무와 비슷한 넝쿨형 나무인 다래를 자두나무와 혼종해서, 새로운 다래나무를 개발한 경험으로 진석은 포도나무도, 혼종을 이용해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포도나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 다래도 넝쿨에서 열매를 맺을 때는 열매가 작고, 열리는 열매의 개수도 적었지만, 굵은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되자, 열매의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하부구조가 바뀌면서 상부의 열매 생산도 바뀐 것이다.

진석은 같은 일이 포도나무에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래나 키위에 비해서 포도는 세계적으로도 수요가 많은 작물이다. 사과와 함께 많이 소비되는 대표적인 과일이고, 또 포도주에도 사용되기 때문에 수요는 언제나 풍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나 중국, 그 외에서 아시아국가들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포도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와인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앞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큰 대표적인 과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건비 상승등으로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작물이기도 하다. 이미 외국산 포도들이 많이 수입되면서 포도의 가격은 정체되고 수익성도 줄어드는 추세였다.

진석은 일단, 포도 종자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오늘은 뭔가요? 공간주님.”

“포도야, 사령관.”

“아, 포도 말이군요. 포도라면, 포도주를 만드는 대표적인 과일 아닙니까.”

“그래, 맞아.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은 과일이지.”

“그럼, 그걸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난번에 다래나무를 개량한 것처럼 말이야. 포도나무도 다래처럼, 넝쿨이 뻗는 스타일이잖아.”

“아, 그렇죠. 포도도 나무가 크게 자라는 나무는 아니니까요.”

“그래, 아무래도 나무의 구조가 약하면, 열매의 숫자도 줄어들게 되는 것 같아. 감나무 같은 건, 크게 자라면 수천 개씩 열리기도 하는데 말이야.”

“뭐, 그거야, 나무의 기본적인 사이즈가 생산량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겠죠. 일단, 나무가 작으면 열매가 열릴 공간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포도도 생산량을 더 늘리려면, 나무 자체가 더 커져야한다는 거지.”

“그럼, 다래처럼, 자두나무를 베이스로 혼종을 만들어 볼까요?”

“그래, 자두나무로 한 번, 실험을 해보자고.”

진석은 이번에도 오아시스 근처에 밭을 만들고, 자두나무와 포도나무로, 혼종 실험을 시작했다. 자두나무에 포도나무를 접붙이기를 해 본 것이다. 하지만 자두나무에 포도나무를 접붙이기를 해봐도, 포도가 열리지는 않았다.

“공간주님, 뭔가 서로 혼종이 되는 것 같지 않은데요.”

“그러게말이야, 포도와 자두는 서로 잘 맞지 않는 건가?”

자두나무로 몇 번을 더 시도해보았지만, 자두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공간주님, 자두와 포도는 열매도 다르고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혼종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포도와 공통점이 있는 나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딱히 포도나무와 비슷해보이는 열매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도나무라면,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고대부터 재배해오던 과일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올리브나무와도 비슷했다.

진석은 이번에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의 혼종을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

“공간주님, 사막 올리브나무를 이용해보면 어떨까요?”

사막 올리브는 진석이 개발한 신품종 올리브 나무로 사막 기후에서도 성장이 무척 빠른 편이었다.

“그래, 사막 올리브나무가 있었지, 사막 올리브라면, 성장도 빠르고 일반 올리브와는 또 다르니까,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진석은 사막 올리브나무를 가져와 포도나무와 혼종을 시도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사막 올리브 가지를 잘라내고, 포도나무 가지를 잘라, 접붙이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사막 올리브에 붙은 포도나무의 가지가, 조금씩 성장하는 듯하더니 얼마 후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사령관 이거 봤어?”

“공간주님, 신가하네요. 올리브가지에서 포도가 열리는데요.”

열매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사막 올리브가지와 포도나무의 혼종에서 포도가 열리기 시작했다.

“좋아,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혼종이 가능하다면,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까.”

일단 가능성은 확인된 셈이었다. 그리고 진석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일단 혼종에 성공한 나무에서 씨앗을 채취해 다시 심어보았다.

역시 후대에 혼종의 특성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씨앗에서 발아한 떡잎을 키워보자 그저 평범한 포도나무가 자라났다.

하지만, 진석은 포기하지 않고, 혼종 실험을 계속했다.

그렇게,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면,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공간주님, 이걸 보십쇼. 포도의 씨앗을 심었는데, 올리브 나무가 나오는데요.”

“그래?”

수천 년의 시간이 반복되면서 일반적인 것을 넘어서는 변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종 실험으로 자라난 포도의 씨앗에서 어느 순간, 올리브나무와 비슷한, 줄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혼종의 올리브포도 나무는 일반적인 포도나무와는 달리, 올리브나무 형태의 줄기와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지가 굵어지면서, 열리는 포도의 양도, 약간 더 늘어났다.

하지만, 올리브 나무도 그리 큰 수종은 아니었다.

“뭔가 이걸로도 부족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올리브 나무에 포도가 열리는 게 신기하기는 하지만, 크게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진석은 지난번에 성공한 자두나무에 자꾸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두나무와 올리브포도 나무의 혼종을 시도했다.

자두나무에 올리브포도나무의 가지를 접붙인 것인데, 의외로 쉽게 혼종에 성공하며 자두나무에 포도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뭐지? 이번에는 쉽게 되네..”

“그러게 말입니다. 공간주님, 한 번 혼종을 거쳤더니, 쉽게 혼종이 되네요.”

물론 이번에도 후대에 그 특질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진석은 반복되는 혼종 실험에 지치고 피로한 느낌이었지만, 꾹 참아가며 좀 더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자두나무와, 올리브포도를 계속 혼종하며, 후대에 특질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공간주님, 저걸 보십쇼. 자두나무에 포도가 열리고 있습니다.”

“사령관, 저건, 포도의 씨앗을 심은 거지?”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진석은 확실히 하기 위해 자두나무에 열린 포도를 따서, 씨앗을 채취했다. 그리고 그 씨앗을 땅에 심고 시간을 가속해 보았다.

떡잎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자두나무처럼 생긴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나무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꽃이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자두나무에 열린 열매는 포도였다.

하지만 아직 나무가 작아서 열리는 포도송이의 수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진석은 혼종인 포도자두나무의 시간을 더 가속했다. 나무는 성장을 거듭하며 열리는 포도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수확량은 서너 송이였다면, 그다음은 스무 송이, 백 송이, 천 송이, 천 오백, 이천, 이천 오백, 삼천...최종적으로 성장이 멈추며 최대치에 도달한 포도자두나무의 수확량은 나무 한 그루에 3천 송이에 달했다.

“나무 한 그루에 3천 송이의 포도라? 그리고 포도도 알이 굵고 굉장히 당도가 높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약간 자두 맛도 나는 것 같고..이건 자두맛이 나는 포도니까, 자두포도라고 해야겠군.”

“알겠습니다. 자두포도나무라고 부르겠습니다.”

진석은 커다란 자두나무처럼 자라난 자두포도나무를 감탄하듯 바라보았다.

“굉장한데, 포도도 엄청 열리고, 넝쿨이 아니라서, 관리도 편하고 말이야.”

그것 외에도 자두포도나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사막올리브와 혼종이기도 해서, 사막 기후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성장이 빠른 특성도 있었다.

진석은 자두포도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며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다.

일단, 건조 기후에서 잘 자라기는 했지만, 물의 공급을 줄이자, 포도의 수확량은 크게 줄어들었다. 나무의 뿌리가 깊어서, 건조 기후에서도 잘 생존하지만,

열매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역시 물이 필요했다. 물의 공급은 포도의 수확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보통, 건조지대에서 잘 자라는 일반적인 포도와는 다른 성질이었다. 아마도 지중해 일대에서 키우는 포도는 괴장히 키가 작은 편이다. 나무 한 그루의 생산량도 적은 편이고 말이다.

프랑스의 포도와 한국의 포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포도나무가 더 크게 자라고 수확량도 많은 걸 알수 있는데 아무래도 뿌리 하나에서 흡수하는 수분의 양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포도는 과즙이 풍부한 열매고, 수분 없이는 포도를 생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자두포도나무는 나무 자체도 더 크고, 물만 제대로 공급해 준다면, 포도의 생산량은 한 그루에 3천 송이 이상 생산이 가능한 생산성이 높은 수종이었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당 생산성이 높다면, 물을 파이프관 같은 것으로 뿌리까지 직접 주입하는 세류재배를 하더라도 경제성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이 지금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곳은, 호주의 윗벨트 지역이었다. 그 외에는 농장주들에게 신품종의 종자를 공급하는 것과 생산된 작물을 유통하거나 가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윗벨트 지역도 올리브농장이 대규모이기는 했지만, 토지 자체는 여러 농장주들의 소유로 되어 있는 협동농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남 고비사막 일대의 개척지는 전체면적이, 한반도의 절반에 해당하는 방대한 면적이었다. 달란자르가드 일대의 무상 임대 지역 면적이 남한 면적보다 살짝 큰 정도였다. 물론, 이 지역은 아직 대부분이 사막 지대로 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기는 했다.

하지만, 론더스 사가 이 남고비 사막 일대에서 대규모 암반수층을 발견하면서 물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 있었다.

현재는 이성우 박사가 주도로, 이곳에 사막 올리브 나무를 심어서, 사막화를 막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향후 100년간의 사용 임대권을 가지고 있는 제이에스 그룹은 이 지역을 녹지로 만들어 대규모 농업 지역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막올리브에 이어서, 역시 사막올리브를 베이스로 포도와, 자두를 혼종한 혼종 작물인 사막자두포도나무를 대규모로 심어서 재배지를 조성하게 된다면, 고비 사막에서 최초로 포도를 대규모로 재배하게 되는 것이다.

얼핏, 무모한 계획 같이 느껴졌지만, 지하수와, 세류재배 기술, 그리고 사막에 강한 신품종의 포도나무를 확보하고 있는 진석이라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