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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키위(2) (120/183)

137화. 오래가는 키위(2)

진석은 야생 다래와 씨앗들을 받아서 해운대의 오션 시티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주님, 오늘은 키위인가요?”

진흙 인간의 사령관은 진석이 들고온 키위와 다래들을 보면서 한마디를 했다.

“제주도에 갔더니, 키위를 아니 다래를 키우는 사람이 있더라고, 야생 다래를 연구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어.”

“키위와 다래는 다른 건가요?”

“거의 비슷한 종류지만, 키위는 야생 다래를 품종을 개량한 거니까, 다래보다 크기도 크고, 더 상업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럼, 키위로 만족할 수 없는 건가요?”

“키위도 맛있는 과일이지만, 후숙과정을 거치는 과일이라 적당하게 익히기가 어렵고, 너무 농익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도 하지, 거기에 껍질이 두껍고 털이 많아서 일일이 껍질을 벗겨내고 먹어야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다래는 그냥도 먹을 수 있나 보군요?”

“맞아, 이렇게 표면이 매끈하고 얇은 껍질이라, 그냥 열매 그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사과처럼, 문제라면 크기가 작고 전체적으로 야생 과일이라 수확량이 많지 않은 편이라는 거지.”

“음, 그렇군요.”

“일단은 오아시스 주위의 평지에 심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밭을 준비하겠습니다.”

진흙 사령관이 일꾼들을 데리고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석도 가져온 야생 다래에서 씨앗을 빼기 시작했다. 일단 뺀 씨앗을 물에 넣어서 쭉정이는 걸러내고, 가라앉은 씨앗을 밭에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흙 속에서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떡잎은 점점 더 무성하게 자라더니 줄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성장한 다래나무들은 받침대를 세워 주어서 고정시켰다.

열매가 열리자, 진석은 다래 열매를 몇 개 따 보았다. 야생 다래는 그냥 먹을 수 있었고, 당도도 풍부해서 키위보다 더 훌륭한 맛이었다. 하지만, 열리는 열매의 수가 나무에 비해 적고, 크기도 작아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열매가 많이 열리는 나무들을 골라, 가지들을 접붙이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접붙이기를 한, 묘목을 땅에 다시 심어보았다.

“큰 차이는 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열매가 더 열리는 것 같기도 한데 잘은 모르겠네요.”

당장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석은 계속해서 나름 우성 특성을 보이는 나무들끼리 접붙이기를 하며 계속 시간을 가속시켜나갔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점점 다래의 열매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래 열매가 커지면서, 다래나무에 열리는 수확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다래나무는 줄기가 얇고, 넝쿨처럼 퍼지는 성질이 있어서, 아무래도 열매가 많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야생 다래는 나무라기보다는 넝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숲에서 나무들 사이에 적당히 자리잡고 생존하기에는 적합한 형태지만, 농장에서 대량으로 키우기에는 너무 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넝쿨처럼 뻗는 스타일이라, 관리하기도 어렵고 말이죠.”

사령관도 다래나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다 다래 열매가 개량을 통해 커진 것은 좋은데, 나무 자체가 약해서 커진 열매를 감당하지 못하고 느낌이라, 옆에 보조 목을 세워줘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나무가 더 튼튼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원래 이런 종인 걸요? 사과나무처럼 튼튼하면 좋겠지만요. 사과나무의 줄기를 빌려올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사령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뭐라고? 뭘 빌려온다고?”

“예? 아, 제가 뭐라고 했었죠?”

“사과나무의 줄기를 빌려온다면서?”

“하하, 그거야 그냥 해본 소리죠.”

“아냐, 사령관, 괜찮은 아이디어야.”

“음, 그런가요?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사과나무 줄기를 빌려온다는 게?”

“뭐, 내가 식물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도 이런 일을 하다보니까, 얼핏 들은 것들이 있는데 식물은 서로 혼종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혼종요?”

그렇다, 모든 종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유사한 식물, 특히 유실수의 경우에는 접붙이기 방식으로 강제로 혼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원리는 식물들간에 강한 우성 유전자가 약성을 누르고 발현되는 특징을 이용하는 것으로

특정한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고 다른 유실수의 가지를 붙여넣는 경우, 강한 우성을 가진 열매의 경우라면, 우성의 나무가 열성의 나무에서 열매를 맺는 혼성화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는 후대에 특성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라, 실재 작물 재배에서는 크게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혼종교배를 이용하면, 다래 열매를 보다 튼튼한 줄기와 가지를 가진 나무에서 열리게 할 수 있다. 사과나무처럼 말이다.

“사령관, 아무래도 사과나무에서 줄기를 빌려와야겠어.”

“하지만, 그런다고 다래가 잘 열릴까요?”

“일단은 해보자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있잖아. 혼종은 후대까지 특성이 전해지지는 않는게 보통이지만, 반복하다보면, 일반적인 것을 넘어서는 변종이 나오기도 하니까.”

진석의 말에 사령관도 수긍하듯, 일꾼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과나무를 이용해서 다래와 사과의 혼종화 작업을 시작했다.

“공간주님, 별로 다래가 잘 열리는 느낌은 아닌데요.”

“그런가? 그럼, 사과나무 말고 다른 걸로 해볼까?”

아무래도 혼종화 작업을 하려면, 비슷한 종류가 좋을 것 같았다. 다래와 열매가 비슷하면서 더 나무가 튼튼하고, 많이 열리는 과일? 진석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은 바로 자두나무였다.

“사령관 자두나무로 해보는 게 어떨까?”

“자두 말입니까? 음, 나무는 좀 다르지만, 열매는 비슷하니까. 해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제대로 성과가 안 나오자, 이번에는 자두나무를 이용해서 야생 다래와 혼종화 작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자두나무에 접붙이기를 한, 다래에서는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후대로 이어지는 특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석은 일꾼들을 데리고 다소 지루한 접붙이기 작업을 반복하며 자두나무와 다래나무의 혼종화 작업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공간주님, 이걸 보십쇼.”

혼종화를 하던, 자두와 다래나무에서 수확한 다래 씨앗에서 전에 보지 못하던, 자두나무처럼 굵은 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래가 자두나무의 특성을 흡수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나무가 제법 굵어졌는데. 다 자라면 자두가 나오는 걸까? 아니면 다래?”

분명히 다래에서 나온 씨에서 나온 나무였다. 하지만, 자라는 나무의 모양은 자두나무와 비슷했다. 나무가 굵고 가지도 굵게 하늘로 높게 뻗은 것이 영락없는 자두나무, 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자, 자두와는 다른 다래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치 방울토마토처럼, 10여 개의 다래가 한 묶음처럼 연결되어 열리는 것이었다.

“와, 공간주님, 열매가 엄청나게 많이 열립니다.”

“그러게, 나무도 점점 더 커지는 것 같고.”

시간을 가속할수록, 나무도 더 커지고, 가지도 더 뻗어 나와서 그렇게 6년 이상 자란 나무에서는 키위와 비슷한 다래 열매가 수천 개가 열리고 있었다.

“이게 다 몇 개나 되는 거야?”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서 다래를 모두 수확해서 숫자를 세어 보았다.

“공간주님, 다 합쳐서 2500개쯤 열리는 것 같습니다.”

“나무 하나에 2500개나?”

엄청난 수확량이었다. 나무가 커지고 차지하는 공간도 훨씬 넓어지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기존의 야생 다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확량이었다. 이 정도면 경제성은 충분하고도 넘치는 수준이었다.

“맛은 어떨까?”

진석은 나무 한 그루에 주렁주렁 열린 다래 열매를 하나 따 보았다. 나무 한 그루에만 어림잡아 2500개 정도의 다래가 열리고 있었다.

“대박인데, 일단, 수확량은 엄청나게 늘어났어, 그리고 나무도 가지가 굵어지면서, 따로 받침대를 세우지 않아도, 나무가 잘 유지가 되고 말이야.”

수천 년의 시간을 가속하며 개량을 반복한 다래나무는 일단 나무가 크고 단단해졌고, 열매의 수확량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리고 진석이 딴 다래 열매의 크기도 일반적인 키위 수준으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끈한 표면은 여전히 다래의 것과 같았다.

진석은 다래 열매 하나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어보았다. 과육은 단단하면서 달콤한 맛이 났다. 얼핏 자두의 식감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입안에도 느껴지는 달콤함은 다래 특유의 달고 상큼한 맛과 향취가 퍼지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공간주님.”

“맛도 아주 좋은데. 야생 다래의 맛과 비슷하지만, 식감은 더 단단해진 것 같아.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 크기가 크니까, 먹는 느낌도 더 좋고.”

“그럼 성공인가요?”

“그런 것 같아. 이걸 제주도로 가지고 가자고.”

***

제주도 장경수 양다래 농장

“장경수 씨?”

농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체 어디를 간 거지? 진석은 장경수에게 새로 개발한 다래나무를 보여주기 위해 해운대에서 요트를 타고 제주도로 오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지만 농장 문은 닫혀 있고 장경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북카페 오아시스에 간 건가?

진석은 차를 돌려, 북카페 애월읍점으로 향했다.

카페 앞에는 지난번에 본 장경수의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장경수 씨?”

“어, 이진석 사장님? 다시 오셨네요.”

장경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농장에 가봤더니 없어서 여기에 있을 줄 알았죠.”

“아, 농장에는 지금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책 좀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농장에는 무슨 일로 가신 거죠?”

“장경수 씨가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어요.”

“제가 좋아할 소식요?”

장경수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는 진석에게도 다가왔다. 그리고 진석이 내미는 커다란 다래를 받아 들었다.

“이게 뭡니까?”

“신품종의 다래예요. 어때요? 크기가 굉장하죠?”

“이게 다례라고요?”

장경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석이 내민 녹색의 열매를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색이나, 향, 촉감은 야생 다래와 비슷하기는 한데, 이건 키워보다 더 큰 것 같은데요.”

“맞아요. 새롭게 개량한 다래죠. 그러지 말고, 맛을 한 번 봐요, 아마 놀랄걸요.”

옆에서 보고 있던 양소진도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다가와서 진석이 들고 온 상자에서 다례를 꺼내 보았다. 그리고 바로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달아요.”

양소진이 먼저 다례를 먹어보고 감탄을 하자, 멀뚱하게 서있던 장경수도 얼른 한 입 다래를 베어 물었다.

“와, 진짜 다래 맛인데요. 식감은 더 단단한 것 같지만, 크기도 크고 먹기도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예?”

“진짜 이 다래의 장점은 엄청난 수확량이죠.”

“수확량요? 얼마나 수확이 가능한데요?”

“나무 한 그루에서 한 번에 2500개 정도가 열립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요?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런 크기의 다래가 말입니까?”

장경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예, 대신, 나무도 기존의 다래나무와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나무 자체도 더 크고, 전체적으로 자두나무와 비슷해요.”

“자두나무요?”

“예, 자두나무를 베이스로 혼종을 한 다래거든요.”

“아, 역시 그랬었군요. 그래서 그런지, 다래치고는 식감이 자두처럼 단단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그렇기도 하죠. 그래서 보관도 일반적인 다래나 키위보다는 더 오래갑니다. 키위는 보통 익은 후에는 물러지기 때문에, 미리 따서 후숙을 하는데, 이 다래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좀 더 단단하고 오래가는 키위라고 생각하면 되죠.”

“그러게요. 완전히 익은 후에 따서 그런지, 맛도 더 달콤하고요. 그리고 껍질째 먹을 수 있어서, 키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크기는 키위랑 거의 비슷하고요.”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이 새로운 다래를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를 해보고 싶은데요.”

“지금 저한테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장경수 씨가 제주도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새로운 다래를 재배하는 농부가 되어 보는 거 어때요?”

장경수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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