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골의 녹색혁명(2) (117/183)

134화. 몽골의 녹색혁명(2)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바이투 대통령은 마치 씨름 선수를 연상시키는 거구였다, 듣기로는 몽골 전통 씨름 축제인 나남의 우승 경력이 있다고 했다.

물론 젊은 시절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잘 오셨습니다. 바쁘신 분을 부른게 아닌가 싶네요.”

진석은 청와대에서 오명진 신임 대통령에게 몽골의 사막에 숲을 만드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오명진 대통령의 재차 부탁을 받고 계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몽골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기도 합니다. 제가 대선 공약으로 미세먼지를 50% 이내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건 걸 아실 겁니다.”

“공약은 그렇게 해보겠다는 거 아닌가요?”

“공약을 100% 지키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죠. 그리고 몽골에서 먼저 제의가 온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일단 몽골에 가보기는 하겠습니다. 가서 어떤 상황인지 보면 알겠죠.”

그렇게 시작된 몽골행이었다. 울란바토르의 인상은 조금 낙후된 인상의 도시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상은 꽤 좋은 편이어서, 순박한 예전 한국인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이투 대통령도 얼굴은 상당한 호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격이 좋은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몽골은 전통적인 유목국가로 농업은 최근의 도시 주변에서 채소를 키우는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밀 같은 곡물도 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국가다. 대신 가축을 키우기 떄문에, 축산 쪽은 발달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는 미국이나 호주,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어서, 국제화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애매한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은 몽골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란바토르에 오자마자, 칭기스칸의 동상을 보았는데 정말 웅장하더군요.”

립서비스만은 아니었던게 실제로 몽골에서는 아직도 칭기스칸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고 진석도 여러 가지 다른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칭기스칸이라는 거대한 영웅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 있기도 했다.

“하하, 칭기스칸은 몽골 역사에서 비교불가능한 분이시죠. 아직도 몽골인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석고 고개를 끄덕였다.

“칭기스칸도 그렇고, 몽골은 전통적으로 유목국가 아닌가요? 농업이라는 것은 몽골인에게도 생소한 것 같다는 생각인데.”

바이투 대통령은 조금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몽골이라는 나라는 예로부터 말을 타고, 양과 소를 키우던 사람들이죠.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전통적인 삶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유가 뭔가요?”

“일단은 젊은이들에게 서구의 문화가 많이 퍼졌어요.”

“서구의 문화요?”

“젊은이들이 초원에서의 생활에 대한 존중이 없죠. 부모세대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때만 해도 몽골인의 삶이란 건, 초원이 전부였죠. 자연스럽게 어른들이 하는 걸 배우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말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서구 사회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모든 것이 변화고 있습니다. 몽골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빠르게 변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사업 때문에 외국에 갈 일이 많은데, 전통적인 사회에서 뭔가 글로벌한 세계가 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전세계 어디든 비슷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특히 몽골에서는 최근 그런 변화가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전통적인 유목민들은 어느 순간 자부심을 잃어버렸다. 과거에 자유롭고 존중을 받았던 초원에서의 삶의 방식이 시대에 뒤쳐진 낡고 가난한 삶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젊은이들은 미련없이 초원의 게르를 벗어나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 외곽에 빈민층을 형성하고 동시에 생계를 위해 일부는 도시 외곽에서 소규모의 채소를 키우는 자영농이 되었다.

“그렇게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다지 생산량도 많지 않고, 불법으로 토지를 점유하는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그렇게 한편에서는 도시 외곽에 비민가를 중심으로 영세 농업이 생겨나는가 하면, 몽골 전체로 보면은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었다. 과거의 초원지대라고 불리던 곳도, 점점 더 황폐한 사막 지대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유목민들도 점점 더 목축을 하기에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의 위협이 있는 거죠. 하나는 젊은 세대가 도시로 이주하는 것과, 사막이 점점 늘어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위협이 몽골의 전통적인 유목전통을 파괴하고 있어요.”

넓은 토지를 가진 몽골이지만 달라진 사회적 환경과, 기후변화로 새로워진 환경에 몽골인들은 제대로 적응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대통령께서는 그럼 어떤 해결책을 원하십니까?”

“사실, 우리 몽골 정부에서도 다양한 국가들의 사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몽골과 조건이 비슷한 나라들이 어디가 있을까 말이죠.”

“다른 나라의 사례요?”

바이투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넓은 영토와 적은 인구, 사막에 가까운 건조한 기후 모든 게 호주와 비슷하죠.”

호주라, 그러고보니, 호주와 몽골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호주도 넓은 영토에 인구가 적고, 가족 단위로 농장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아, 일찍부터 기계를 이용한 자영농이 발달했다.

“하지만 호주는 지하자원도 더 많고, 영연방 국가로 초기부터 부유한 나라였죠. 당연히 여러 가지 투자도 가능했고 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몽골은 농업에 투자할 자본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일단 잠재력이라는 면에서는 호주 못지않습니다. 제이에스 그룹은 세계 여기저기에 투자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호주에도 윗벨트에 올리브 농장을 건설하기도 하고요.”

“그렇기는 하죠.”

“몽골에도 비슷한 농장을 건설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만약에 그런 투자를 하신다면, 몽골 정부와 국민들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뭔가 막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것 같았다. 몽골 같이 저개발 국가라면, 투자를 조건으로 개발권을 약속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다면, 제이에스가 농업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수십 년간 땅을 무상 임대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투자라는 건,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죠. 지원 조건은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입니까?”

“농장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토지를 30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건 어떻습니까? 무상으로 말이죠.”

농지 개발 조건으로 30년간 토지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일반적인 기업투자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 하지만 농업용지를 개발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농업 자체가 그다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아니다.

거기에 작물들의 생육 주기는 보통 1년 단위에 가까울 정도로 길기 때문에, 30년간 토지를 임대하더라도 30회 정도의 수확이 가능할 수도 있다. 거기에 토지를 개발하는 기간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

더구나 지금 몽골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막을 녹지로 만들어 달라는 일이었다. 건조한 사막을 푸르게 만드는 일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30년이라는 무상임대 기간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솔직히 100년 정도면 모를까, 30년은 사막을 개발하는데만도 부족할 시간입니다.”

“30년이면, 10년이 세 번이나 지나가는 시간이죠.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꼭 경제적인 문제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비 사막의 사막이 늘어나면, 한국에도 황사 피해가 더 심해지지 않겠습니까?”

몽골 대통령은 진석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으로서는 원하는 수준의 조건이 아니라면, 몽골 대통령에게 더 설득당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께서도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니죠. 사업이라는 건 정치와는 달라서, 어찌 되었든 합의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진석의 단호한 태도에 몽골 대통령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토지를 100년이나 무상임대 한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왜 말인가요?”

“몽골이 손해라는 거죠.”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말하기를 타인을 설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었죠. 그 말은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지 설명해 주죠.”

“하지만, 꼭 경제적인 것만 생각하지 말고, 외교나, 아니면 세계를 위해서 봉사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사업가일 뿐입니다. 저는 저와 제이에스 그룹에 이익이 있는 일에만 관심이 있죠.”

“음, 할 수 없군요.”

“하하, 100년은 역시 무리였나요?”

“아닙니다. 무상임대 기간을 100년으로 하죠.”

***

달란자르가드

달란자르가드는 남 고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할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풍경은 점점 더 건조하고 황량해지고 있었다.

이성우는 10년 전 코이카의 지원팀과 함께 남 고비로 왔다고 했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이성우는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몽골에 전수하고, 또 사막화가 진행 중인 그래서 빠르게 팽창하는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어, 사막이 팽창하는 것을 막으려는 사막 녹화 사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이성우 박사님의 녹화 사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겁니까?”

진석의 말에, 이성우는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욕만 넘쳤지,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노력도 다 부족한 10년이었죠.”

“그래요. 나름 여기서 노력하신 걸로 아는데, 그 정도인가요?”

“하하, 저도 어린 나이에 이곳에 자원봉사팀의 일원으로 와서, 사막화되는 몽골을 녹지로 만들어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는 했었죠.”

“뭐가 실패의 원인이었나요?”

“일단, 목표를 삼은 사막 녹화 사업이라는 것이, 너무 거대한 사업이었습니다. 코이카 정도의 지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사막화가 진행 중인 지역에 나무를 심었죠. 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고, 주변이 녹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아니었나요?”

“이 주변을 보십쇼, 나무가 보이시나요?”

남 고비로 가는 주요 길목이라는 달란자르가드 주위는 숲이나 나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낮게 자란 풀들이 조금 보이는 정도였고, 그 외에는 황량하고 메마른 황토지대였다. 아마도 조만간 사막이 될 것 같은 느낌의 토지였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안 보이네요.”

“나무가 자라려면, 물이 있어야죠. 그것도 상당히 많은 물이 필요합니다. 한국같이 물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나무가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잊고 살죠.”

“하긴, 건조한 토양에 나무 묘목만 심는다고 나무가 자랄 수는 없는 거겠죠.”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마추어였던 겁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막을 막아보자는 용기는 가상했지만, 딱 아마추어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었죠. 우리가 노력하면 성과가 나올 거라는 그런 무모한 신념 말입니다.”

“녹지를 만들려면, 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수를 개발하든지, 아니면, 수원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을 텐데, 그런 노력은 없었나 보군요?”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이를 하기에는 우리 코이카 팀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대부분 봉사활동을 온, 학생이나 시민단체 출신들이 많았기 떄문에, 그런 문제 제기가 될 때마다,

이상주의적으로 열심히 해보자, 노력하면 성과가 나올 거다, 라는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들이 항상 주류였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10년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말았죠. 그리고 그 동안 녹지는커녕 사막은 점점 더 늘어갔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철저히 실패를 하고 만 거죠.

“하하, 하지만, 그 노력까지 모두 실패하고 할 수는 없겠죠. 나름 열정을 바친 시간을 아니었나요?”

“글쎄요.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지 먼저 따져봤어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를 요즘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쯤 같이 이곳에 왔던 봉사단 중에 이제 남은 사람은 이성우 박사 한 명뿐이라고 했다. 왠지 남 고비 사막처럼, 이성우의 얼굴도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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