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골의 녹색혁명(1) (116/183)

133화. 몽골의 녹색혁명(1)

한국은 대선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전북과, 강원 FC의 올시즌 마지막 K리그 경기, 챔피언 결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 이기는 팀이 최종 우승팀이 되는 거군요?”

VIP석에서 진석은 오명진 강원 도지사와 나란히 경기를 보고 있었다. 강원에 찬스가 올 때마다, VIP석으로 카메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곧 대선이니까, 방송에서도 축구보다 지사님이 더 관심인 모양입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오늘은 강원 FC가 주인공이지 않겠습니까?”

“한 골만 넣으면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강원과 전북, 어찌보면 성향이 전혀 다른 팀들이었다.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강원이 빠른 공격을 추구한다면, 전북은 철저한 지공과, 측면 크로스에 이은 포스트 플레이에 강점이 있었다.

선수 구성도 노장들이 많아, 속공이나 빠른 움직임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느리지만 노련한 경기 운영을 하는 팀이었다. 어쨌든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두 팀이지만, 나란히 1위와 2위로 이 마지막 결승 단판 승부에 초대된 것이다.

“경기가 흥미롭네요.”

오명진 지사는 지루하게 0의 행진을 이어가는 경기를 흥미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득점이 안 나오는데도 말입니까?”

“원래, 수준 높은 경기는 이런 식이죠. 둘 다 수비가 강하니까요. 하지만, 팀의 전술이 정반대라 보는 재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석 사장님은 어떠십니까?”

“솔직히 전,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가 있어서, 경기 내용은 잘 눈에 안 들어오네요.”

“하하, 그게 정답이군요.”

“예?”

“원래,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 모든 일이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진석 사장님은 구단주라 마음의 여유가 없고, 그래서 게임이 잘 안 보이는 거겠죠.”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결과를 바라다보면, 단기적인 것에만 눈이 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하나 궁금해지네요.”

“도지사님이 저에게 궁금한 게 다 있으신가요?”

“예, 바로 대선 결과입니다.”

놀랍게도 오명진 도지사는 진석에게 다가올 대선 결과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이미 당내 경선은 통과하고 대선에 여당 대표로 출마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라...역대 대선은 다들 박빙의 접전이었는데 결과를 예측해 달라는 것인가?

“대선 결과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건, 도지사님이나, 같은 당의 선거 전문가들이..”

“우리들은 선수들이니까요. 마치 축구장 안에서 뛰는 선수들처럼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이죠.”

오명진 도지사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뭐든 좀 더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럼, 정치는 잘 모르는 사업가의 시각에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런 걸 원한 겁니다. 한 번 이진석 사장님의 예측을 들어보고 싶군요.”

“저는 솔직히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당선되실 겁니다.”

“하하, 듣기는 좋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축구든 대선이든, 상대가 있는 경기는 결국 상대의 득점을 막고, 우리가 더 득점하기 위해서는 중원을 장악하는 것이 좋죠.”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더가 중요하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결국 공격이든 수비든, 미드필더를 거치게 마련이죠. 수비를 강화하는 것도 공격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미드필더가 강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축구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닐 테고, 선거라면, 어떤 걸 비유하는 겁니까?”

“바로 중도층입니다. 역대 선거에서 결국 마지막에는 진영간 구도로 가게 되지만 선거의 당락을 결정지었던 건, 중도층입니다.”

“그렇기는 하겠군요. 그럼 저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진보인가요? 보수? 아니면 중도?”

“솔직히 오 지사님은 모든 걸 갖춘 분이라고 할 수 있죠.”

“하하 제가요?”

“소속 정당은 진보정당이고, 개인적으로는 보수성향도 있으시고, 나이도 젊은 편이고, 도지사직은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3선을 하셨고. 당내에서는 보수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평가 아닙니까?”

“하하, 누가 들으면 정신없는 정치가라고 하겠네요. 이쪽 저쪽 왔다갔다 한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게 오 지사님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우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있는 그런 폭넓은 스펙트럼이 다양한 중도층에 어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중도층을 가져올 수 있는 내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거군요?”

“상대편 후보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뭐랄까? 너무 색깔이 선명해서, 아마 고정지지층에는 인기가 있지만, 중도층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원의 미드필더가 전북의 공격 패스를 차단했다. 그리고 빠른 역습이 전개되었다. 최전방까지 도달했던 볼은, 다시 중원을 거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영을 전환하며 전북의 수비진영을 돌파...

그리고 측면에서 다시 중앙으로 숏패스가 넘어왔고, 그것은 강원의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이어졌다.

전북의 골키퍼의 펀칭이 슛을 막는가 싶었지만, 펀칭된 볼이 강원 선수의 발에 걸리며 문전 혼전 끝에 골로 이어졌다.

“골...”

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하, 역시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다르네요.”

오명진 도지사는 한 타이밍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런 VIP 석의 모습을 카메라는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챔피언 결정전은 강원의 사상 첫 우승이라는 기록과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제이에스 그룹이 준비한 성대한 우승 축하 파티가 이어졌다. 최고급 샴페인이 뿌려지고 열광적인 서포터스의 응원, 그리고 선수들과 김현수 감독의 눈물까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첫 번째 리그 우승이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명진 지사와 진석의 모습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선에서 오명진 후보는 꽤 큰 격차로 상대 후보를 제압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오명진 지사님, 아니, 대통령님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예언 덕분일까요. 아무튼 대선에는 예상보다 쉽게 이긴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다 오명진 대통령님의 실력과 경륜이 국민들에게 어필된 거겠죠.”

“아무튼 대통령이 되니까, 더 신경쓸 게 많아졌군요.”

“아무래도 한 나라를 이끌어가셔야 하니까, 어깨가 훨씬 무거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오명진 대통령의 표정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타고난 정치인답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그에게는 부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얼마 전에 몽골 대통령에게 친서가 왔습니다.”

“몽골이라? 몽골에서는 무슨 일이죠?”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한다는 그런 축전 성격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발전된 농업기술을 지원해 줄 수 없냐는 그런 지원 요청입니다.”

“몽골에서 농업기술 지원을 해달라고요?”

오명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지원해달라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지금 몽골에서 가장 큰 문제라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 현상입니다.”

“고비 사막이나 이런 곳들 말이군요.”

“예, 특히 지구온난화로 문제가 되는 나라들이 몇몇 있는데, 예를 들어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고 있는 태평양의 섬나라들도 있고요, 반대로 사막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몽골 같은 국가도 있습니다.”

사실, 사막화는 몽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면적으로 보자면, 중국의 사막화 현상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는 사막화를 피하기 위해 꽤 큰돈을 투자해서 사막화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처럼, 나무를 심고, 관개농업 지대를 늘리는 게 약간은 효과가 있기는 한 것 같더군요.”

진석의 말에, 오명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중국에서 하는 숲 조성 사업은 알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으로 오는 황사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말입니다.”

한국에서 봄철에 불어오는 황사, 보통 고비 사막에서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이 거대한 모래바람이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중국의 동부 지역이 산업화되면서 이 황사에 유해한 중금속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몽골의 사막화가 가속되면서 단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한반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몽골이 걱정되서라기보다는 우리 대한민국의 대기질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진석도 오명진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서울의 황사 수준은 이미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폭증하고 있었다.

“항상 미세먼지 경보를 신경쓰고 황사 마스크가 없으면 나가기 힘들 정도니까요. 걱정은 걱정입니다.”

“그런데 마침, 몽골 대통령이 친서도 보내와서 말입니다.”

“친서에 그런 내용도 있나요? 사막화를 해결해 달라는?”

“뭐, 돌려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외교 문서니까 그런 식이죠. 아무튼 쉽게 해석하자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한국에도 골칫거리인 고비 사막의 모래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좀 도와달라 그런 내용입니다. 특히 한국에 제이에스가 이런 쪽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걸로 아니까, 특별히 이진석 사장님을 몽골로 좀 보내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있고 말이죠.”

“저를요?”

“이런 쪽으로는 제이에스 그룹이 가장 유명하니까요.”

“우리는 농업기업인데요. 사막화를 막는 건, 전문은 아니죠.”

“어느 정도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막화를 막기 위해서 현재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드는 거 아닌가요? 중국에서 하는 것도 결국 숲을 만들겠다, 이런 정책 아닙니까?”

사막화를 막는 방법으로 숲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막 지대에 숲이나 농업지대를 조성해서 성공한 사례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캘리포니아 정도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캘리포니아는 지하수가 엄청 풍부해서 물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었고, 반면에 지하수가 부족했던, 이스라엘은 유일한 수자원인 갈릴리 호수의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작물 하나하나의 뿌리에 직접 물을 공급하는 독특한 재배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의 방식은 비교적 적은 수자원으로 어느 정도 사막을 녹지화에 성공시킨 사례여서 다른 국가들도 이 방식을 벤치마킹하려고 했지만,

워낙, 관리가 많이 필요한 방식이라, 건국 초기의 이스라엘처럼 절박한 국가가 아니라면 성공한 사례가 없다.

과연 그런 사막을 녹지화하는 일을 몽골에서 가능할까? 진석은 먼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다. 이스라엘이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히틀러 치하의 극단적인 유대인 학살을 겪은 후에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모여들었던 유대인들의 극한 상황이 있었다.

그래서 키부츠라는 마치 공산주의 집단농장을 연상시키는 이스라엘식의 집단 공동체를 통한 대규모의 노동력 동원을 통해서, 뿌리마다 직접 물을 공급하는 세류 공급망이라는 전례 없는 농업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현시점의 몽골 공화국에 그런 사업이 가능할까? 진석은 일단은 부정적이었다.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의 성향을 볼 때,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농업에 대한 이해도 낮은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막에 숲이나 농경지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꿈처럼 보였다.

“오명진 대통령님, 취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이건 도저히 무리인 것 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