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호박 축제(2)
북카페 건대점
“어머, 이게 뭐예요?”
건대 카페 앞으로는 거대한 초대형 호박으로 만든, 잭 오 랜턴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비슷한 크기의 초대형 호박들이 줄지어 늘어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초대형의 호박들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할로윈도 가까워 오고 해서 호박 축제를 하려고요.”
“호박 축제요?”
건대점의 김지영은 호박들의 엄청난 크기에 놀란 표정이었다. 웬만한 자동차 폭 정도의 넓이의 호박들의 출현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들도 거대한 호박들에 쏠리기 시작했다.
“와, 호박 좀 봐, 장난 아닌데.”
“할로윈 호박인가? 저거 뭐지 잭 오인가 뭔가 하는 거 아냐?”
“아직 할로윈은 멀었는데.”
“멀긴 뭐가 멀어, 다음 주가 할로윈이잖아?”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호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커다란 호박에 호기심을 보이며 달려들어 껴안기도 하고, 더러는 위로 올라가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무튼, 엄청 크기는 하네요. 원래 호박이 이렇게 크게 자라는 거였나요?”
“서양 호박이라 그래요. 호박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먹는 동양 호박은 청과를 먹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보는 건 애호박들이죠. 그리고 동양 호박은 크게 자라도 저렇게는 못 자라기도 하고요.”
단지 크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가치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최근에 키가 큰 농구 선수가 연예계로 진출해서 성공한 케이스가가 있는데, 그걸 두고 어떤 정신과 의사는 사람들이 빅 씽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큰 걸 좋아한다는 거죠, 그것도 보통을 넘어서는 큰 것을 보게되면. 그걸 통해서 일상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보통 이상으로 아주 큰 걸 좋아한다고요?”
“그래요, 아주 크거나 아주 작거나, 그런 특이성을 가지는 것들이 사람들의 환타지를 자극한다는 거예요. 에펠탑이나, 대도시의 랜드마크들도 그런 종류죠.”
“작은 것도요?”
“작거나 크거나 비슷하게 비일상적인 현상이지만, 작은 건 눈에 잘 안 뜨이니까요. 결국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아주 커다란 것들이라는 거죠.”
“이 호박들처럼 말이군요.”
김지영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초대형 호박 말고도 더 재밌는 게 있어요.”
“또 뭐가 있는데요?”
진석은 공간에서 수확한 형형색색의 컬러 호박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이번에 제이에스에서 개발한 컬러 호박이에요. 색은 굉장히 다양해서 사실, 몇 가지 색인지는 모르겠어요.”
“음, 색이 다양하기도 하고, 조금씩 다, 다르네요.”
김지영의 말대로 같은 색, 예를 들어 파란색 계열이라고 해도, 연한 하늘색부터 진한 바다색까지 색들의 스펙트럼이 무척이나 다양했다. 사실상 같은 색은 없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이 호박들은 먹을 수도 있는 건가요?”
김지영은 호박들이 신기한지, 하나하나 이리저리 만져보며 물었다.
“물론이죠. 사실은, 장식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뭔가 메뉴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죠.”
“메뉴요?”
김지영은 컬러 호박들을 둘러보며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호박 속으로 달콤한 호박파이를 만들면 어때요?”
“호박파이요? 주방에 오븐이 있기는 한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한 번 해봐요. 만들어보고, 별로면 딴 걸 또 해보면 되니까.”
북카페 오아시스에서는 음료 외에도 간단한 빵이나 파이 정도를 직접 구워서 판매하고 있었다. 김지영도 오븐으로 파이를 구워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일단 한 번 잘라볼게요. 호박이 이렇게 화려한 색들인데, 안쪽도 그런 건 아니겠죠?”
김지영이 큰 칼로 호박을 잘라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껍질이 두꺼운지, 호박을 자르다가, 칼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저런, 칼이 박혔네, 조심해요. 내가 도와줄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요.”
조금 힘에 부치는 것 같았지만, 김지영은 다시 몸의 무게를 실으며 기어이 칼로 호박을 반으로 잘라버리고 말았다.
“속은 보통 호박색인데요. 약간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요.”
잘 익은 호박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호박의 껍질에 약간 붉은 빛이 나는 연한 살들이 녹아버린 치즈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김지영은 호박을 몇 토막으로 자르더니, 껍질을 썩썩 썰어내서 속살만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라낸 호박을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간 김지영은 얼마 후 잘 구워진 호박파이를 가지고 나왔다.
“와, 냄새가 기가 막힌데요.”
진석은 손을 뻗어 파이 한 조각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갓 구운 호박파이는 달콤한 맛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과자들처럼 아주 단맛은 아니어서, 약간 구수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의 달콤함이었다.
“맛이 어때요?”
“굉장히 맛있어요. 너무 달지도 않고 하지만 적당히 단맛도 있고.”
“호박이 원래 단맛도 있어서 다른 건 넣지 않았어요. 그래도 먹을만 하죠?”
김지영이 만든 호박파이는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할로윈 기간에 특별 메뉴로 내놓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요. 좀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직접 구운 파이를 할로윈까지만 한시적 메뉴로 내놓기로 하죠.”
“한시적으로요?”
“예, 할로윈까지만 스페셜 메뉴로 출시하면 약간 희귀성도 있고 괜찮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제이에스 스토어를 통해서, 애호박이나 단호박 같은 익숙한 청과 호박들도 북카페 매장에서 역시 한시적으로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 뭐지? 왠 카페에 호박?”
“예, 고객님, 10월 말까지는 호박 페스티벌 기간이라, 북카페 오아시스에서 각종 호박 관련된 상품들도 같이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 호박파이도 있고요. 잭 오 랜턴 호박, 그리고 다양한 컬러 호박도 판매 중입니다.”
“와, 대박, 호박들이 색이 진짜 다양하다. 파란 호박도 있고, 까만 호박도 있네. 이거 진짜 호박인가요?”
“예, 진짜 호박이에요. 색깔이 참 예쁘죠? 이 호박 속으로 호박파이를 만들고 있어요.”
여러 가지 호박 관련된 상품들이 선을 보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단연 컬러 호박으로 만든 호박파이들이었다.
건대점의 김지영이 만든 것이었지만, 곳 다른 매장에도 레시피가 전달되면서 전국의 모든 북카페 오아시스에서 호박파이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맛도 좋은 편이고, 10월 말까지만 한시적 판매되는 스페셜 메뉴라 더 인기를 끌고 있었다.
“오빠, 호박파이 좀 사가자.”
“무슨 갑자기 호박파이야?”
“저거, 다음 주면 안 나와, 이번 주까지만 파는 거라고.”
카페 여기저기에 애호박이나 단호박 같은 일반 호박들도 판매 중이었지만. 생각보다 판매는 저조했다. 대신 할로윈이 가까워오면서 호박으로 만든, 잭 오 랜턴은 제법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내일이면 할로윈이네.”
“그러게요, 호박 축제는 그럭저럭 성공인가요?”
이곳 홍대도 할로윈 기간에는 시끌벅적할 것이다. 이태원이나 홍대 거리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할로윈 같은 서양 명절에는 다양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저희도 내일은 분장을 하고 카페에서 일해볼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보다는 잭 오 렌턴으로 카페나 좀 꾸며보자고.”
할로윈데이가 되자, 진석의 오아시스 카페들은 일제히 카페 앞쪽에 잭 오 렌턴을 켜고 할로윈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시작했다.
원래, 할로윈 기간에는 아이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탕을 얻는 전통이 있는데, 한국에는 코스프레 같은 건 많이 볼 수 있지만, 사탕을 주거나 받는 건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북카페 오아시스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할로윈 사탕 이벤트를 연 것이다.
할로윈 당일이 되자, 소문이 금세 퍼졌는지, 꼬맹이들이 바구니 같은 것을 하나씩 들고 카페로 모여들었다.
사탕은 미리 충분히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올 때마다, 카페 직원들이 사탕을 듬뿍 나눠주었다.
“저도 사탕 좀 주세요.”
“저도요.”
사탕 바구니를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고, 더러는 비닐봉지를 가지고 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넌, 아까 온 것 같은데. 또 온 거야?”
“아니에요. 쌍둥이예요.”
더러는 귀엽게 사기를 치는 꼬마 사기꾼들까지 등장했다. 밤이 되자, 길거리 여기저기로 다양한 귀신 복장을 한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밖에는 아주 신이 났네.”
안경을 낀 남학생 두 명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구석자리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는 폼이, 무슨 고시라도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학생들도 할로윈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축제를 즐기지 그래요.”
“저희요, 저희들은 저렇게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요? 무슨 중요한 시험이라도 준비 중인가요?”
“예, 공무원 시험 준비를 막 시작했는데, 최대한 빨리 끝내고 합격해야죠.”
진석이 가끔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80% 정도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아마도 20대 청년층에게 표를 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제1번 공약으로 공무원 정원을 증원을 내걸어야 할 것이었다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건, 알지만, 저렇게 너도나도 다 공무원만 하려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공무원만큼 안정적인 일자리도 드물죠.”
진석으로서도 반박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젊은 청년들에게 공무원 이외에 무슨 꿈을 꿀 수 있는지는 진석으로서도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공부나 해야겠습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거든요.”
시끌벅적한 거리의 사람들과는 무관한다는 듯이 남학생 둘은 구석 자리의 테이블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뭐, 신나게 놀든, 열심히 공부하든, 청춘은 열정의 시간인 법이죠. 아무거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참, 이거 호박파이인데, 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이거 오늘까지만 나오는 스페셜 메뉴니까, 한 번 먹어봐요.”
“아, 감사합니다.”
두 남학생은 진석이 가져다준 호박파이를 잠시 맛보기 시작했다.
“어때요?”
“음, 생각보다 맛있는데요.”
굳어 있던, 학생들의 얼굴에 조금 미소가 도는 것 같았다.
“공부하는 거 쉽지 않죠?”
“예, 취업이 어렵다고 해서, 무작정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는 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오늘 같은 날은 같이 나가서 놀고 싶지 않아요?”
“뭐, 그렇기는 한데. 영석이 너는 어때?”
“나? 난, 솔직히 밖이 시끄러워서 공부도 안 되고, 조금만 쉬었다 할까?”
“그래?”
“진호 너는 어떤데?”
“사실은 나도 좀 집중이 안 되기는 해.”
“억지로 공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같은 날은 좀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즐기는 것도 괜찮죠.”
진석의 말에 두 대학생들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오늘 하루만 놀고, 내일부터 공부하자.”
“그럴까?”
두 학생은 미련없이 카페를 나갔다, 그리고 요란하고 흥겨운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사장님은 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놀라고 하세요?”
“이런 날, 이런 장소에서 공부가 되겠어? 뭐든지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라고.”
“하긴, 조용한 도서관도 아니고, 번화가의 카페에서 오늘같이 요란한 축제날에 공부한다는 것도 좀 그렇죠.”
“그래, 그런데 아르바이트생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아, 아까, 남은 호박파이를 나눠 먹고 나서, 다들 다가서 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나갔다 오라고 했어요.”
“정말?”
“예, 평소에는 절대로 그런 말 안 하는 애들이거든요. 아무래도 할로윈데이라서 그런가봐요.”
“음, 그 호박파이를 먹고 그랬다는 말이지?”
“예, 왜요?”
“어, 아냐.”
혹시 그 호박파이, 그러니까 공간의 산에서 재배한 호박으로 만든 파이를 먹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호박에는 좀 더 인생을 즐기는 흥겨운 에너지가 들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아무튼, 오늘은 긴장을 풀고, 좀 즐겨도 괜찮겠지.”
진석도 카페를 나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