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호박 축제(1)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점.
“호박 축제?”
“예, 좀 있으면 할로윈데이잖아요.”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민지는 할로윈 데이가 가까워 오자 호박 축제를 하면 어떻겠다고 건의를 해왔다.
하긴 할로윈데이를 상징하는 것은 호박이다, 물론, 종교적인 의미도 숨어 있다고는 한다, 일종의 사육제와 같은 성격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니발은, 금욕과 금식의 기간 후에 자유를 만끽하는 사육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할로윈도 귀신들에게 자유를 주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할로윈은 좀 생소하지 않아?”
진석의 말에 유민지는 고개를 저었다.
“할로윈이 왜 생소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할로윈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하긴 유민지의 말대로 할로윈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
“나도 할로윈을 사람들이 즐기는 분위기라는 건 아는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냥 호박 축제 정도로 하는 게 어때? 물론, 할로윈데이 전후로 좀 분위기에 편승하기는 해야겠지만.”
“뭐, 그것도 괜찮겠죠.”
“그런데 할로윈이든 호박 축제든, 호박이 있어야 할 거 아냐?”
“호박을 키우는 농가에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호박이라?”
진석은 인제에 있는 농업 연구단지에 전화를 걸었다.
“아, 장 소장님.”
장우석 소장은 인제 제이에스 연구단지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었다. 강원도 출신의 농업 박사로, 농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다.
“이진석 사장님이 왠일이십니까?”
“음, 이제 좀 있으면 할로윈인데, 호박을 이용해서 호박 축제를 해볼까 하는데 어떨가요?”
“호박축제라? 서양의 호박 축제 같은 거 말인가요?”
“예, 한국에도 호박 축제를 하기는 하는 거죠?”
“호박 축제는 영국이나 독일, 캐나다 같은 곳이 유명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10월 말이면, 아직 호박이 그렇게 익지는 않는데 말이죠.”
“그럴까요?”
“할로윈에 맞추어서 축제를 하기에는 늙은 호박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네요. 한국에서 많이 키우는 호박은 동그란 서양 호박과는 달리 길쭉한 모양이죠. 이진석 사장님이 원하시는 건, 동그랗게 진한 주황색으로 익은 늙은 호박 아니겠습니까?”
할로윈에 사람 얼굴 모양으로 만든 호박 랜턴을 만들 때 쓸 법한 주황색 호박은 서양에는 흔한 편이지만, 한국에서 주로 재배하는 호박들은 길쭉한 편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애호박 같은 것이 시간이 지나 커지고 늙어서 속이 비게 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늙은 호박보다는 애호박이 더 많이 식용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모양도 애호박 용으로 적합한 타원형 호박이 주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강원도 재배 농가에는 할로윈 용으로 쓸만한 크고 동그란 호박은 별로 없겠네요?”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서양과는 식문화가 좀 달라요, 서양에서는 호박을 크게 키워서 늙은 호박을 이용해서 파이나 죽을 만드는 게 많고, 우리는 애호박 때 따서, 전이나 찌개 재료 같은 것으로 쓰니까요.”
“그렇겠네요.”
한국에서 흔히 키우는 호박들은 긴 모양이라, 크게 자라도 모양이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호박 축제용으로는 동그란 서양호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호박은 재래종의 동양 호박이다, 그에 비해 할로윈에서 잭 오 랜턴 같은 장식용으로 쓰이는 둥근 호박은 서양 호박으로 사실, 두 호박은 호박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거의 다른 작물에 가깝다.
즉, 한국 호박과, 미국 호박은 같은 작물이 아니라, 다른 작물을 같은 작물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국 호박과 미국 호박은 서로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으로 치며 인종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구인과 외계인의 차이 정도가 나는 것이다.
“그럼, 일단, 동그란 호박 종자라도 좀 구해주시죠. 색도 기왕이면, 진한 주황색이면 더 좋고요.”
“알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인제의 농업 연구소에서 호박씨가 택배로 도착한 건, 그날 오후였다.
“엄청 빨리 오는군.”
진석은 회사로 도착한 호박씨들을 가지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에 도착하자, 진흙 사령관이 진석을 마중나왔다.
“오늘은 뭘 가져오신 건가요?”
“호박이야.”
“호박요. 호박은 식재료로도 흔히 쓰이는 채소죠. 어디에 쓰시려고 말입니까?”
“이건 애호박이나 그런 걸로 키우려는 게 아니라, 크게 키워서, 호박 축제에 쓰려는 거야.”
“호박 축제요?”
“할로윈데이에 맞추어서 호박 축제를 북카페에서 열 생각이거든, 할로윈 축제는 아니고,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거지.”
할로윈 축제를 한다고 하면, 좀 부담스러운 점도 있어서 그냥 호박 축제 정도로 하기로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럼, 호박들은 어디서 키우실 겁니까?”
“글쎄, 이건 식용은 아니니까, 그냥 오아시스의 밭에서 키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산에서 키워서 뭔가 특이한 호박을 만들어 볼까?”
진석이 원하는 건, 서양의 호박 축제에서 볼 법한 커다란 호박이었다. 호박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열매를 맺는 작물이다.
동물로 치면, 코끼리나 고래급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가장 큰 공룡과 비교할만 하다.
한국 식탁에 오르는 건, 작은 애호박이 대부분이지만 서양에서 크게 키우는 호박들은 1톤 이상까지도 자라는 거대 품종이다. 호박은 식물계의 브라키오사우르스,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크게 자라는 식물은 아니지만, 가장 큰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진석은 보통 공간의 산과 오아시스 일대의 밭, 두 곳에서 목적에 맞게 재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호박 축제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라, 산과 평지 두 곳 모두에서 재배해 보기로 했다.
“사령관, 이번에는 양쪽 모두에 심어 보자고.”
“양쪽 모두에 말입니까?”
“그래, 산에서도 키워보고, 평지에서도 키워보자고. 축제에는 다양한 모양, 다양한 호박들이 필요하니까.”
일단, 팀을 나눠서, 산과 평지로 일꾼들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일꾼들이 호박 재배에 필요한 밭을 준비하게 되면,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위해, 양쪽을 번갈아가며 일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일꾼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진석은 먼저 오아시스의 호박밭에 씨앗을 뿌리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호박은 크게 동양계, 서양계, 그리고 페포계 호박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이 3가지 호박은 호박이라고 같이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3종류 간에는 서로 교배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은, 호박은 3가지의 다른 채소류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호박을 하나의 작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진석이 호박 축제를 대비해서 키우려는 호박은 한국에서 보통 많이 재배하는 재래종 동양호박과는 완전히 다른 서양 호박이었다.
진석이 서양 호박 품종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충분히 준 후에 시간을 가속하자, 호박의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넝쿨이 뻗어나오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한국에서 키우는 애호박 같은 것을 호박, 펌킨 이라고 부르지 않고 스퀴시라고 부른다. 상대적으로 서양 호박은 넝쿨이 크게 뻗으며 호박도 역시 크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점점, 호박 열매가 자라나더니, 어느 순간 호박이 제법 커지기 시작했다. 수박의 서너 배는 될 정도로 큰 녀석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색깔도 진한 주황색으로, 관상용으로 사용하거나 잭 오 랜턴을 만드는 호박으로 쓰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사령관, 호박들이 모양은 합격인데, 그런데 호박 축제를 하려면, 더 큰 호박이면 좋을 거 아냐?”
“더 큰 거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식용으로 보다는 축제에서 관상용으로 쓸 건데. 기왕이면 큰 게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좋잖아.”
“음, 그렇겠네요. 그럼 호박들 중에서 큰 것들을 따서 씨앗을 채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양에는 호박 자체가 크게 자라는 품종이라, 점점 더 호박을 크게 키워서 크기를 겨루는 대회도 많이 있었다. 청과를 주로 먹는 한국과는 달리 완숙해진 호박을 파이의 재료로 쓰는 문화 때문인데.
반면에 한국에서는 서양처럼 큰 호박을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큰 호박만으로도 상당히 이국적인 볼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꾼들이 호박밭에서도 가장 큰 호박들의 씨앗을 채취해서 다시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며, 밭의 호박들은 점점 더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와, 이제 거의 바윗덩어리 수준인데요.”
사령관도 키가 190cm에 이르는 거구인데, 호박들의 크기도 점점 더 커져서 사령관의 어깨 높이까지 오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무게는 거의 1톤을 육박하고 있었다.
외국의 호박 경연 대회에 출품해도 입상할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러게 말이야, 이런 호박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진짜 보기 드물겠는데.”
일단 이 정도의 호박이라면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일 것 같았다. 무게가 상당하기는 하지만, 일꾼들을 동원해서 파주의 창고로 일단 옮기고 거기서는 중장비를 동원하면 될 것 같았다.
“밭에서 큰 호박을 재배하는 건 일단 성공이고. 그 다음은 산으로 가서 좀 더 특이하고 개성있는 호박들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좋아, 사령관, 이제는 산으로 가보자고.”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진석은 산으로 가는 출입구를 통과해 공간의 중심에 있는 우뚝 솟은 산으로 향했다. 산에서 공간의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특이한 모양이나, 색깔의 호박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박들을 먹게 되면 특별한 효능도 얻을 수 있고 말이다.
진석이 산으로 가자, 먼저 도착한 일꾼들이 이미 밭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진석은 이번에도 서양 호박씨를 밭에 뿌리고 시간을 가속했다.
오아시스 옆의 평지에 뿌린 씨앗과 같은 종류였다. 이번에도 싹이 나오며, 점점 더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평지에 심은 거랑 비슷한데요.”
“그거야 같은 호박 씨앗이니까, 그렇지.”
“아, 그렇군요.”
하지만 진석은 산에서 키우는 호박들이 뭔가 개성 있게 자라기를 기원하면 호박들을 계속 증식시켜 나갔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건, 좀 색이 특이한데요.”
“그러게 말이야.”
보통의 서양 호박처럼 주황색으로 자라나던 호박들이 어느 순간부터, 색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파란색의 호박, 보라색 호박, 검은색, 흰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등등 각양각색의 호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색이 다양하게 나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색들도 다들 조금씩 다르네요. 노란색이라도 진한 황금빛도 있고, 개나리처럼 밝은 노란색도 있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호박들의 색들이 현란해지고 있었다. 마치 누가 일부러 물감으로 채색한 것처럼 알록달록한 호박들이 생겨났다.
“색깔이 이렇게 다양하다니.”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색이 정말 다양하게 나와서 축제에 사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색이 정말 예쁜데요. 이런 걸로 호박 축제를 하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딱일 것 같습니다.”
“그래, 축제에 정말 잘 어울리겠어. 색이 화려해서 그냥 장식용으로 놓기만 해도 뭔가 축제 분위기가 나고 말이야.”
마치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들의 호박이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호박도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색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서양 호박이라, 어느 정도 익은 후에는 파이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텐데, 호박 파이를 만들면 뭔가 특별한 효능이 나타날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사령관 이 호박들을 색깔별로 수확을 하자고.”
“알겠습니다. 색깔별로 분류를 할까요?”
“뭐, 그것도 좋고, 색이 워낙 다양하니까, 분류를 하지 말고, 그냥, 여러 색을 모아서 한 세트를 만들면 될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런 후에 평지에서 재배한 대형 호박들도 모두 옮기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