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파리의 오아시스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파리에요? 정말요?”
“그래,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이런 미국 대도시에도 북카페를 열었으니까. 이제는 유럽에도 진출하자는 거지.”
유럽에서도 지형적으로 중심에 있는 것은 프랑스라고 할 수 있었다. 서유럽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평야지대가 많고, 영국을 포함하면 아무래도 가장 중심지는 프랑스 그중에서도 파리라고 할 수 있다.
그 파리에서도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포룸 데 알이었다. 포룸은 광장이라는 뜻이고, 알은 중앙이라는 의미라고 하니까, 중앙 광장이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파리 시내 중심지의 쇼핑몰로 일반 상가 외에도 극장이나 서점들이 입주해 있는 곳이었다.
그 포름 데 알에, 북카페 오아시스가 입점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럼, 저도 파리로 가는 거에요?”
유민지는 파리에 간다는 말에 잔뜩 들뜬 얼굴이었다. 진석에게는 그저 프랑스의 수도나 국제 도시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젊은 여자들 중에 파리를 낭만적인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파리라고 별 건 없다고. 그저 회색의 도시일 뿐이야.”
“그래도 파리잖아요.”
포룸 데 알은 지상 1층 지하 4층 규모였는데, 진석이 계약한 공간은 지하 1층이었다. 지상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했지만, 지상에는 매장들이 많아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좀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얻기 위해, 지하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럼, 파리에는 언제가는 거죠?”
“내가 먼저 가서 계약도 하고 준비를 할 테니까, 민지 씨는 와서 인테리어하고 메뉴 같은 것만 좀 봐주면 돼.”
유민지와 파리 오픈 지원팀은 비행기편으로 가기로 했고, 진석은 미리 준비도 할 겸, 공간을 통해서 파리로 가기로 했다.
***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진석의 집.
진석은 필요한 서류와 계약서 정도만 챙겨서 가방에 넣고는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을 지나, 다시 파리 근교의 빌레쥐프로 가는 문을 열었다.
빌레쥐프의 빨간 벽돌집에는 빨간 장미가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장미가 핀 거지?”
지난번에 왔을 때, 장미를 벽을 따라 심어두기는 했었는데, 진석이 신경을 못 쓰는 동안 장미넝쿨은 제법 무성해져 있었다.
진석은 차고에서 벤츠를 꺼내서 타고,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는 만날 사람이 있었다. 파리에서 북카페를 운영할 사람을 찾던 중에, 지난번에 이탈리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성악가를 알게 되었다.
서현진은 지난번 이탈리아의 투스카나에서 트러플을 채취할 때, 통역을 해주었던 유학생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포룸 데 알 앞이었다.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네요.”
“그러게요. 성악은 그만두신 건가요?”
“음, 그렇게 됐어요.”
“아쉽네요, 하지만 북카페 오아시스에 일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도 성악에 미련이 남기는 하지만, 큰 재능은 없었나봐요.”
서현진은 다행히 담담하게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현진은 포룸 데 알로 진석을 안내했다.
“파리에는 언제 온 거예요?”
“사실 파리는 전부터 자주 왔었어요. 프랑스나 파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해서, 틈틈이 프랑스어도 배워두고요.”
서현진은 이태리 유학 중에도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모양인지, 프랑스어도 배워두고 레슨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주 왔었다고 했다.
“파리를 아주 좋아하나봐요?”
“물론이죠, 파리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을걸요.”
서현진은 진석에게 파리 여기저기의 명소들을 설명해주며 파리 예찬론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진석도 파리는 몇 번 와봤지만, 오래된 고풍스런 건물들 외에는 어떤 점이 특별한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좋아요, 아무튼, 이곳 포룸 데 알에 북카페를 오픈할 예정이고 앞으로는 서현진 씨가 이곳을 책임져야 할 거예요.”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포룸 데 알의 지하 1층, 새로운 북카페 오아시스 파리점이 들어설 곳이었다. 정확히는 파리 포룸 데 알점이 되겠지만 말이다.
일단, 책임자는 구한 셈이었고, 다음은 직원들도 더 뽑아야 했다.
“건물은 일단 임대 계약을 했고, 인테리어 공사는 내일부터 시작할 거에요.”
뉴욕에 북카페를 오픈할 때는 현지에서 도움을 주는 데이비드 정이 있어서 별로 신경 쓸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프랑스, 파리에는 아는 지인도 없고 제이에스도 프랑스에는 지사가 없었다. 유럽 쪽의 일들은 런던의 사무실에서 주로 처리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프랑스어에 능통한 사람도 없고 해서 온라인을 통해 구인 광고를 했는데 우연히 서현진이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성학을 계속 공부해서 한국에서 노래를 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성악을 그만두고 파리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음악을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물어볼까도 하다가 그만두었다, 뭐, 나름 이유는 있겠지만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이유는 뻔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기로 한 것이다.
서현진을 우선 뽑아서 일단 점장은 구한 셈이었다. 다행히 서현진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고, 파리에서 카페 알바도 해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카페 알바와 점주는 좀 다른 문제기는 하지만, 지난번에 투스카나 지방의 가이드를 했을 때 같이 지냈던 기억으로는 사람을 대하는 것도 능숙한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직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한국인 유학생들도 있고, 현지 학생들도 있으니까, 적당히 뽑으면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국계 북카페라 한국인 유학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뉴욕의 북카페 오아시스도 단순한 북카페라기보다는 한국 문화를 컨셉으로 동양적인 분위기로 나름 성공을 거든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파리의 포룸 데 알점도 이쪽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카페 오픈을 준비 중이었다.
뉴욕의 맨하튼점과 비교를 하자면, 이쪽에는 좀 더 한국 문화가 유행이라는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파리의 케이팝 열기는 유럽에서도 상당히 뜨거운 편이었다.
그래서 요가와 명상 교실을 운영했던 맨하튼점과는 달리, 포룸 데 알은 케이팝을 테마로 인테리어와, 음악 감상실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케이팝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절반 정도 채용해서 한국 느낌을 살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현지인 대학생들로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우기로 했다.
직원 채용은 서현진이 맡아서 하고, 인테리어도 점차 완성되어 갈 때쯤, 한국에서 유민지와 오픈을 지원할 지원팀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넓고 좋은데요. 전 지하 1층이라고 해서 괜찮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러고보니, 한국에 있는 북카페 중에서 지하에 있는 북카페는 없었던 기억이었다. 다들 번화가의 대로변 1층의 가장 집객 효과가 큰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카페다 보니까, 책 읽을 공간도 필요하고, 또 케이팝 팬들을 위해서 음악실도 만들려고 하다보니까, 1층에는 적당한 공간을 임대할 수 없겠더라고.”
“그래요? 하지만 여기가 파리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라면서요?”
유민지는 서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맞아요. 이 포룸 데 알, 자체도 유명한 곳이고, 어차피 지하 4층까지 상가가 있기 때문에 유동 인구는 충분할 거예요. 거기에다가, 지금 파리는 케이팝 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거기에 파리는 유럽의 중심지 같은 곳이라, 다른 유럽국가의 케이팝 팬들도 모이는 곳이라는 거죠.”
서현진의 말로는 지금 케이팝을 좋아하는 소녀팬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팬층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고, 한국책을 좋아하고, 일부는 한국어를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많다는 건가요?”
“예, 아무래도, 한국 스타들을 좋아하니까, 저도 사실, 프랑스나 파리 같은 곳들을 너무 좋아해서 프랑스어를 배운 케이스 거든요.”
“프랑스 영화배우를 좋아한 건 아니고요?”
“음, 특정한 배우를 좋아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프랑스 남자들이랄까, 그런 판타지도 좀 있기는 했죠.”
유민지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음악실 외에도, 한국어 교실 같은 걸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주 고급 과정은 아니더라도 기초 회화 같은 거 말이에요.”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요.”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강사도 필요한 거 아닐까?”
진석은 왠지 일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뇨,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유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어와 한국어 2가지를 하니까요. 회화 정도는 가르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뭐, 다들 그런 생각이라면 할 수 없죠.”
북카페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진석으로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서현진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걸로 봐서는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유민지도 케이팝 팬들을 모으려면, 케이팝 그룹을 섭외해서 공연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아, 민지 씨, 케이팝 팬들도 좋지만, 여기는 우리 북카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지하상가잖아, 다른 상점에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아무래도 공연은 무리야.”
“그러면 팬 사인회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요?”
“뭐, 그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유민지와 다른 지원팀까지 도착하자, 본격적으로 카페 개장 준비가 시작되었다. 유민지도 그렇고 다들 한국에서 온 지원팀은 파리는 처음이라, 일단은 서현진의 안내로 간단하게 관광부터 시작했다.
에펠탑과 몽마르뜨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은 워낙 기본 코스라, 바쁜 개장 준비를 앞두고도 한 번씩 안 가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유럽 1호점, 파리, 포룸 데 알, 지점이 문을 열게 되었다.
***
오픈 당일...
“저..저건 다 뭐야?”
포름 데 알로 가는 입구쪽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포룸 데 알에 저렇게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무슨 일이지?”“
옆에 있던 서현진도 놀란 표정이었다.
“저도 파리에 오래 살았지만 여기에 이런 줄은 처음 봐요. 설마, 우리 북카페에 들어가려고 저렇게 기다리는 걸까요?”
“설마?”
진석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케이팝 아이돌인, 슈퍼팀이 오기로 한 것이었다. 슈퍼팀은 요즘 유럽에서 한창 핫하다는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고 했다.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특히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진석도 그 정보를 듣고, 일부러 슈퍼팀을 파리로 초대한 것이었다.
비록 자리가 협소해서 공연을 할 수는 없었지만, 팬 미팅 겸 팬 사인회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혹시 슈퍼팀의 팬들인가?”
“그럴 지도 모르죠, 사실, 슈퍼팀은 유럽에는 처음 오는 거라고 했거든요.”
아직 한국에서 큰 인기가 있는 그룹도 아니고, 소속 기획사도 규모가 작은 곳이라, 해외 마케팅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고 인기가 있다는 건 소속사에서 알고 있었지만, 아직 해외 공연이나 팬 사인회 같은 해외 일정은 생각도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에 진석이 북카페 오픈을 위해서 슈퍼팀을 유럽으로 초청한 것이었다.
“줄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로 가는 줄인지 알겠지?”
진석은 포룸 데 알, 밖으로 뻗어나온 긴 줄을 따라 상가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줄은 지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줄이 이어지는 곳은 바로 북카페 오아시스였다.
“뭐지? 진짜, 우리 북카페 오픈 행사에 가려는 줄이잖아?”
진석도 서현진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북카페 오아시스, 파리 포룸 데 알점의 오픈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케이팝 팬들이 대거 모여드는 바람에, 케이팝 아이돌 슈퍼팀의 팬 사인회는 질서 유지를 위해 파리 경찰이 출동을 할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케이팝 스타의 팬 사인회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슈퍼팀의 팬들에 놀란 건 현지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그 날 저녁 뉴스에 북카페 오아시스에 모인, 케이팝 팬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북카페 오아시스의 파리 1호점은 성공적으로 오픈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