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확 깨는 양배추(3) (112/183)

129화. 확 깨는 양배추(3)

“이거 잠이 확 깨지 않아요?”

잠이 깨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게요. 일하다가 좀 나른해질 때 있잖아요. 그럴 때 먹으면 좋겠는데요.”

“음, 그러게 말이에요. 잠이 확 깬다?”

잠이라는 건, 신의 축복이다. 어떤 시인은 삶의 고통을 불면의 밤, 이라고 불렀다. 잠은 일종의 마무리다, 하루를 정리하고 몸과 마음의 피로와 긴장의 이완의 순간.

하지만 밤이 아니라 낮에 찾아오는 잠은 사회생활을 방해하고, 또 일을 방해하고, 또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운전 중에 잠이 찾아오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그 외에도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장에서는 엄청난 위험 요소다.

학생들에게도 학습을 방해하는 방해꾼인 잠. 그 잠을 확 깨게 만들어주는 그런 성분이 이 양배추에 들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잠을 깨주는 효과가 있는 드링크나 껌이 있기는 하지만 이 양배추라면 좀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

엔시스 테크...

“강민호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바쁘셔서 얼굴보기가 힘드네요.”

뉴욕에서 트루진스키를 만난 이후로 곡물 생산과 유통 이런 쪽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제약 사업 쪽은 다소 무심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요즘에는 신약 개발에는 관심이 덜 하신 것 같던데.”

“음, 그런 건 아니고, 농업쪽에 투자할 일이 많아서 그랬을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괜찮은 효능이 있는 양배추를 가져왔는데 말이죠.”

“양배추요?”

진석은 상자에 남아온 빨간 방울 양배추를 내밀었다.

“이게 양배추인가요? 양배추처럼 생기지 않았는데요.”

강민호 사장은 빨간색의 작은 방울 양배추를 신기한 듯이 들여다보았다.

“방울 양배추라고 해서, 아주 작은 양배추죠. 거기에, 제가 몇 가지 개량을 해서 색깔도

빨간색이 되었습니다.”

“음, 그래요? 이 양배추에 어떤 효능이 있다는 겁니까?”

“이걸 씹어 먹으니까, 잠이 확 달아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죠.”

“음 잠을 깨는 각성 효과가 있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엔시스 테크에서 이 양배추를 분석해서 잠을 깨는 약이나 식품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잠을 깨는 껌 같은 거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한 번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

해운대 오션 시티, 진석의 집.

여름의 장마도 다 지나간 듯,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해운대의 해변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오션 시티의 거실에 앉아 내려다보니, 해운대의 풍경은 무척이나 이국적이었다. 주위의 바다와 높은 빌딩들이 들어선 모습들은 한국이 아니라, 외국의 해안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운대 옆으로 보이는 요트 마리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마리나에는 진석의 요트도 정박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트를 타본 지도 정말 오랜만인데.”

진석은 해운대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동안 여름의 해변을 즐겼다. 빨간 양배추를 먹어서 그런지 이쯤이면 나른하게 찾아오던 낮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요트를 타러 가야겠군.”

진석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난 번에 타고 왔던 차는 롤스로이스 팬텀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바다의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진석은 이번에는 타고 오지 않았다. 대신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먼테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날렵한 우주선 같은 모양의 람보르기니가 해변을 지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진석에게로 쏠렸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마리나로 바로 갈까 하다가, 진석은 중간에 북카페 오아시스 해운대점을 향했다.

“사장님, 오늘은 차가 더 멋진데요.”

“아, 이거요. 맘에 들어요? 선화 씨.”

홍선화는 카페 앞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는 진석의 옆으로 다가와 신기한 듯 우라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와, 차가 되게 낮네요.”

“하하, 생긴 건 특이하게 생겨서 주목받기는 좋지만 타기에는 좀 불편해요. 특히 여자들이 치마 입고 타기는 좀 불편하죠.”

“그러게요. 솔직히 이런 차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이 차 이름이 뭐예요?”

“람보르기니요. 더 정확히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포퍼먼테죠.”

“람보르기니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하네요. 페라리, 포르쉐 그런 거랑 비슷한 거죠?”

홍선화랑 람보르기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어른들은 지나가며 힐끗거리는 정도인데, 꼬마 아이들은 대놓고 신기한 듯 차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뭐, 그렇죠. 원래 원조는 페라리고요. 이런 고성능 슈퍼카를 최초로 만든 건, 페라리예요. 페라리라는 사람이 만든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죠.”

“그럼 람보르기니는요?”

“음, 그건, 좀 재밌는 이야기인데, 람보르기니는 원래 농업용 트랙터를 만들던 회사의 사장이었어요.”

“그래요? 트랙터요?”

“예, 트랙터 사업이 잘됐는지, 돈을 벌고 나자 자동차에도 흥미가 생겨서 페라리를 구입한 거죠.”

“음, 그래서요?”

홍선화는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눈이 반짝이며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람보르기니도 엔지니어 출신이라, 페라리를 타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죠. 이렇게 좀 고쳐보라고요.”

“왠지 페라리는 시큰둥했을 것 같네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페라리도 아마, 자동차 엔지니어였을 거 같고, 원래 전문가들은 서로 남을 말 잘 안 듣잖아요.”

“하하, 맞아요. 아무튼 람보르기니가 페라리의 스포츠카에 개선사항을 건의했는데 페라리는 거기에 코웃음을 친 거죠. 그래서 페라리를 찾아갔던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대판 싸우고 나서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람보르기니였던 거죠.”

일설에는 페라리 앞에서 당신이 차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무시를 당해, 열을 받은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앞에서 내가 당신보다 더 뛰어난 차를 만들 거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면서 내 이름 람보르기니를 기억해 두라고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람보르기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슈퍼카 람보르기니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두 자동차 회사,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경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장님 그런데 자꾸 꼬맹이들이 모여들어요.”

“하하, 아이들이 뭐 그렇죠. 그나저나 이 차로 드라이브나 할래요?”

“드라이브요?”

홍선화는 즉흥적인 진석의 제의에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진석은 옆자리에 홍선화를 태우고 람보르기니를 몰고, 해운대의 해안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와, 소리가 엄청나요.”

“그렇죠. 하지만 겨우 시속 50킬로로 달리고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옆에 가는 차들보다 느리잖아요.”

“이 차는 속도와 상관없이 엔진 소리만 요란한 거 아닌가요?”

“뭐, 속도는 내고 싶은만큼 낼 수 있는 차죠. 하지만 고속 주행은 트랙이 아니고는 위험하니까요.”

진석은 근처를 한바퀴 돌고서 마리나로 차를 돌렸다.

“어디 가세요?”

“이쪽에 요트 마리나가 있는 거 아세요?”

“요트 선착장 말이죠?”

“예, 저도 작은 요트를 하나 가지고 있거든요.”

“정말요? 그럼 저도 좀 태워 주세요.”

“요트를요?”

“그래요, 차로 드라이브를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아서 좀 그랬거든요. 배를 타고 나가면, 탁 트여서 시원할 것 같은데.”

“그럴까요?”

사실 요트는 진석의 혼자만 즐기는 개인적인 취미라 누구를 태운 적은 없었다. 요트 자체도 작은 편이라 중국의 리진 회장처럼 선상 파티를 벌일 정도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해운대 앞바다에서 조용하게 낚시를 하거나,

아니면, 제주도 중문까지 배를 타고 나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 요트로 제주도까지 가 볼래요?”

“제주도요? 거기도 갈 수 있어요?”

“예, 카페에는 전화를 해서 얘기해 두세요. 좀 늦을 거라고.”

진석의 말에, 홍선화를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다행히 홍선화가 점장이라 그런지 잠시 외출을 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진석은 람보르기니를 마리나 주차장에 세우고는 자신의 요트로 향했다.

“이게 제 요트입니다. 좀 작죠?”

“아뇨, 정말 좋은데요. 이 정도면 여기저기 타고 다니기 좋겠어요. 평소에도 요트를 자주 타시나 봐요.”

“가끔요. 사실 요트 타는 건 좋아하는데 요즘 시간이 별로 없어서, 자주는 못 타고 있어요.”

진석의 말에 홍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부자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전에는 돈이 없어서 돈을 많이 벌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해서 돈이 많아지니까 돈을 쓸 시간도 없더라고요.”

“그래도 부럽네요. 돈을 쓸 시간이 없다니.”

“아무튼, 시간이 없으니까. 얼른 타시죠. 이걸 타고 제주도까지 가야 하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같은 경험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는 모양이었다.

자주 가던 중문으로의 항해였지만, 옆에 홍선화가 있어서 같이 이야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더 금세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홍선화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여자였다. 한 번 이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천성인지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덕분에 중문까지는 별로 어색함 없이 즐겁게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할 수 있었다.

“부산 생활은 좀 어때요?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건가요?”

“예, 저도 그렇고 아이도 부산에 적응이 된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외지에 와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죠.”

홍선화는 부산 생활이 많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이제는 친구들도 생겨서 시간이 있을 때는 같이 필라테스를 한다고 했다.

“필타테스요?”

“예, 어깨가 많이 아팠는데, 필라테스라는 게 원래 포로수용소에서 스트레칭을 하려고 만든 거라면서요?”

“맞아요, 필라테스는 독일군 출신으로 연합군에 포로 잡혀 있으면서 이걸 개발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간단하게 몸풀기에는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저도 언제 시간 있을 때 한 번 배워야겠네요.”

“아, 저기 섬이 보이네요. 저게 제주도죠?”

“그래요, 다 왔네요.”

***

제이에스 본사.

“이게 이번에 새로 나온 잠 깨는 껌인가요?”

엔시스 테크의 연구진은 진석이 가져간 빨간 방울 양배추에서 천연 각성물질을 발견해냈다. 카페인보다 각성 효과가 크고 천연성분이라 인체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중독성도 없었지만 습관성은 있을 수 있으니,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다는 식약처의 부분적인 허가가 나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중독성은 뭐고 습관성은 또 뭐죠? 다른 건가요?”

이수정은 잠 깨는 껌인, 확깨 껌을 씹으며 진석에게 물었다.

“중독성이라는 건, 그게 없으면 신체의 다른 기능까지 영향을 줘서 신체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걸 말하지, 그래서 그 물질을 계속 찾게 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말하는 거야. 그에 비해서 습관성은 어떤 물질로 인해서 기능이 활성화가 되었다가, 그 물질이 사라지면, 그 기능이 사라지는 걸 말하는 거야.”

“중독은 그게 없으면 고통스럽고 다른 것도 엉망이 되고, 습관성은 그냥 없으면 불편해서 다시 찾는다 이건가요?”

“비슷해, 중독성에 비하면 습관성은 낮은 수준이지만 의지력이 약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중독과 비슷한 의존성을 줄 수 있으니까, 주의하라는 거지.”

“음, 하긴 이 확깨 껌은 씹고 있으니까, 정신이 맑아져서 일하기는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또 한동안 안 씹으면 다시 원래대로 좀 멍해지는 것 같고.”

“그 정도가 습관성이야. 그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붉은 방울 양배추로 만든 확깨 껌은 제이에스 스토어와, 그리고 약국 등을 통해서 판매가 되기 시작했다.

흔히 잠을 깨고 피로를 없애기 위해서 마시는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와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자연에서 얻은 천연성분이라 부작용은 거의 없는 것이어서, 확깨 껌은 웰빙 에너지 껌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나, 장기 운전을 하는 택시나 버스, 트럭 기사들이 이 확깨 껌의 주요 고객들이었다.

“자, 이제 잠도 깼으니까 일이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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