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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깨는 양배추(1) (110/183)

127화. 확 깨는 양배추(1)

“왜, 이렇게 졸린 거지?”

날씨 탓인가? 밖은 아직도 더웠지만, 냉방이 되는 실내에 들어오면,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어, 커피..아니,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시게요?”

“북카페 점검 좀 하고 와야지.”

북카페 점검이라는 건 핑계고 졸음도 쫓을 겸,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올 생각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서울 시내에 북카페들은 계속 늘어나서, 진석이 가보지 않은 매장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진석은 북촌점을 가보기로 했다.

최근에 문을 연, 북촌점은 북촌 한옥마을 근처로 정독 도서관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통은 오픈을 할 때 한 번씩 가보고는 하는데 외국에 있을 때라 미처 참석을 못 해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진석은 지하 주차장에서 새로 산 벤츠 s클래스에 시동을 걸었다. 성제윤의 권유로 샀던 롤스로이스 팬텀은 최고급 세단으로 시선을 끌기에는 좋았지만, 차가 너무 크고 너무 주목을 받는 차라 부담스러웠고 람보르기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새로 산 무난한 차가 벤츠의 s클래스, 물론 이것도 고가의 럭셔리 세단이기는 하지만그나마 무난한 편이었다.

“역시 이 정도가 타고 다니기에는 좋아.”

진석은 종로쪽으로 차를 몰았다. 처음 오는 곳이라, 과연 어떤 분위기일지 기대가 됐다. 북촌점은 한옥마을과도 가깝고 근처에는 도서관도 있는 곳이었다. 실내는 한옥 스타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는데,

한옥 느낌이 나는 익선동점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했다.

진석의 차가, 북카페 오아시스 북촌점 앞에 멈추어 섰다.

뭐지? 건물은 그냥 평범한 빌딩 건물이잖아? 한옥 스타일이라고 유민지에게 들었는데. 진석은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와, 안은 또 다르네.”

익선동점이 밖은 한옥 같은 느낌에, 안은 평범한 빈티지풍의 카페 인테리어라면, 북촌점은 안은 평범한 빌딩형에 내부가 한옥 느낌이었다.

“어서오세요. 어머, 이진석 사장님이시죠?”

“아, 하하, 여기 점주시죠?”

“예, 송혜성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깔끔한 인상의 여자였다. 진석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제이에스 그룹 계열사라 그런지 진석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와, 북촌점은 처음 와보는데 실내가 멋지네요. 아주 맘에 들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외국에 많이 가서 카페들도 많이 가보니, 역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오리지널리티, 고유성이다. 타인을 모방해봐야 언제나 아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서양의 것을 아무리 잘 카피한다고 해도 원본인 서양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특히 문화 예술 쪽은 더 그런 것 같았다. 등수가 나오고,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니, 누가 원조인가? 하는 것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가치가 있고 멋진 것 같아요. 이런 실내 인테리어는 한국이 아니면 어디서 볼 수 있겠어요?”

진석의 말에 송혜성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외국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한옥 분위기가 너무 이국적이라고요.”

“하하, 그렇겠네요. 외국인들의 시점에서는 한국적인 것이 이국적인 거죠.”

“그런데 북촌점에는 어쩐 일이세요?”

“아, 카페 오픈할 때도 못 와보고, 명색이 사장인데 한 번 어떤 곳이지 와보고 싶었어요.”

“그럼, 뭐 좀 드시겠어요?”

“아, 난, 그냥 간단하고 기본적인 걸로, 아이스아메리카노 하고 치즈 케익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진석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페 안을 둘러보니, 제법 넓은 공간이었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젊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북촌점이라 분위기가 어떨지 어떤 사람들이 올지 궁금했는데, 외국인과 젊은 학생들의 비중이 큰 것 같았다.

잠시 카페를 둘러보고 있자, 송혜성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치즈 케익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는 외국인들도 많고, 젊은 학생들도 많네요?”

“예, 북촌에 관광오는 관광객들이 있고, 옆에는 정독 도서관이 있어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오는 편이에요.”

“음, 그렇군요.”

외국인 관광객들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온 학생들이 있어서 그런지 북카페라는 말이 무색하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외국인들은 서가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기는 했지만, 다들 한글로 된 책이라 쓱쓱 넘겨보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고,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막 나오거나 들어갈 예정이라 그런지 책을 따로 볼 이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떠세요?”

진석이 커피를 마시고 케익도 다 먹었을 때쯤, 송혜성이 다시 다가왔다.

“커피도 괜찮고, 케익도 맛있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시켰는데. 둘 다 훌륭하네요.”

사업을 하고,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느낌 것 중에 하나는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것들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들은 시간이 지나도 자산이 축적되며 더 발전하는 편이지만 기본이 부족하고 지켜지지 않는 곳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균형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인 아메리카노의 맛은 그 카페의 기본을 볼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었다.

“카페 분위기는 어떠세요?”

“뭐, 실내는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훌륭해요. 그런데 북카페 오아시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여기는 책을 잘 안 읽네요?”

“그건, 여기의 지역적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한국어로 된 책을 읽지 않고, 또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책만 읽다가 오는 거잖아요. 잠시 쉬러 왔는데 또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죠.”

“맞아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하지만 북카페가 아니라면, 다른 카페들과 차별화되기 어렵죠. 뭐, 별문제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북카페 오아시스의 가장 기본이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음, 그렇기는 한데, 그럼, 이진석 사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단, 책들을 교체해야겠어요.”

“영어로 된 책으로 말인가요?”

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영어로 된 책이라면 외국인들이 읽을 수는 있겠지만, 책이라는 특성상, 관광지 그것도 외국 관광지에서 영어로 된 소설을 또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내용의 비교적 사진 위주로 된 책들을 가져다 놓으면 관심을 갖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학생들이 볼만한 가벼운 잡지들도 좋을 것 같았다. 책이라는 게 꼭 어려운 철학서나 두툼한 소설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뇨, 언어보다도, 사진이 많이 들어간 잡지나 한옥이나 한국 문화에 관한 책들이 좋을 것 같아요. 사진 위주로 되어 있으면 보기도 더 쉬울 것 같고. 그리고 학생들이 볼만한 잡지들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아니면 만화 책이라거나.”

“잡지나 만화책요?”

“그래요, 보통 다른 북카페들은 좀 복잡한 책들이나 전문서적들도 있는 편이지만, 여기는 북촌의 특성이 있잖아요. 관광객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길이라 두꺼운 책을 읽을 기분이 안 날거고”

“그렇기는 하죠.”

“학생들도 책속에 파묻혀 있다가 다시 복잡한 책을 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차라리 만화책이나 여행 잡지 같은 것도 좋잖아요?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을 테니까.”

“그렇기는 하죠. 그러면 책들은 교체해 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본사에 지시를 해 둘 테니까, 송 점장님은 좀 기다리시기만 하면 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은근히 그런 게 신경 쓰였거든요.”

“하하, 그래요?”

“예, 북카페 오아시스가 서울에도 있고 지방에도 많이 있잖아요. 오시는 손님 중에는 다른 곳과 비교하는 분들도 계세요.”

“뭐라고요?”

“어디어디는 조용히 책 읽는 분위기인데, 여기는 이상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북카페 느낌이 안 난다는 분들도 있고.”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죠, 사람들도 다 다르고. 동네도 다 다르고, 카페도 다 다른 거 아니겠어요?”

“맞아요. 그렇게 다른 걸 인정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기로 하죠.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북촌점을 구경하고 진석은 카페를 나왔다. 북촌쪽에 온 김에, 근처 구경을 하기로 했다. 차는 카페 앞에 세워두고 북촌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확실히 많았다.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북촌 마을이 나타나자, 확실히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그런 한옥을 배경을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역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진석도 북촌을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그러니까, 북촌점에 책들을 교체하라는 말이죠?”

“그래 민지 씨. 카페 책들도 민지 씨 담당이잖아.”

사실 카페의 책들은 유민지의 담당이라고 하지만, 책을 공급하는 것은 공간의 상태창이었다. 북카페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포집하는 시간 포집기였다.

물론 겉모양은 완벽하게 책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책들은 매번 사장님이 가지고 오셨잖아요?”

“그래, 책은 내가 이미 주문해서 파주의 출판사 창고에서 배송할 거니까. 민지 씨는 북촌점에 가서 책을 교체해 주고, 책 배치라든가 이런 것들을 봐주면 돼.”

“알겠습니다. 사장님, 충성..”

“하하, 왜 그래.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

진석은 북촌점에 책 문제를 지시하고 유민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카운터 옆에 화분이 눈에 띠였다.

“뭐야? 이건?”

“방울 양배추예요”

“방울 양배추?”

“예, 친구가 가져다 준 건데. 요렇게 방울 토마토처럼, 양배추가 나와요, 완전 귀엽죠.”

그러고 보니, 상추 줄기같이 쭉 뻗은 줄기 옆으로 미니 양배추가 달려 있었다. 크기가 작아서 귀엽기도 하고 먹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요새 이런 거 많이 키우나봐?”

“예, 모양도 예쁘잖아요. 그리고 신기하기도 해서 저도 심어봤는데, 생각보다 잘 자라더라고요. 화분 하나면 되요. 물만 주면 그만이고, 다 자라면 이렇게 미니 양배추가 열리거든요.”

유민지는 줄기에 달린, 양배추 하나를 따서 껍질을 까서 진석에게 내밀었다.

“그냥 먹으면 되나?”

“예, 방울 토마토랑 비슷해요. 드셔 보세요.”

진석은 유민지가 내민 작은 양배추를 입안에 넣어 보았다. 입안에서 씹자, 약간 단맛이 나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음 괜찮은데. 양배추 맛도 나고, 그러면서 더 연하고 작아서 먹기는 좋은 것 같아.”

양배추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잘 알고 있었다. 멀리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이 배낭 속에 넣고 다니던 일종의 영양식의 재료기도 해서, 로마는 양배추로 세계를 정복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의 대명사다.

특히 피로회복에 좋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생으로 먹기에는 크기도 크고, 약간 질긴 면도 있어서 과일처럼 쉽게 먹기에는 조금 번거로운 것도 있다.

그런데 이 미니 방울 양배추는 따서 겉껍질만 벗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예, 양배추는 생으로 먹기는 좀 불편하잖아요. 갈아서 먹는 법도 있지만, 그냥 이렇게 화분에서 하나씩 따먹으면 재미도 있어서 하루에 몇 개씩은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어떻게 심는 거야? 씨앗을 뿌리는 건가? 아니면, 모종인가?”

“간단해요. 요렇게 방울 양배추를 따서, 입에 넣어도 되고 키우고 싶으시면, 화분의 땅 위에 살짝 꽂아주면 끝이랍니다. 그리고 물은 당연히 듬뿍 뿌려주고요.”

“음, 요 양배추가 모종이 되는 거군.”

마치, 맹그로브 나무에서 새끼 나무가 나오는 것처럼, 줄기에서 새끼 양배추가 나오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새끼 양배추는 땅에 살짝 꽂아 주기만 하면 얼마 후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 양배추가 열매처럼 열리게 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식물들을 많이 키워본 진석의 눈에도 꽤나 신기한 번식방식이었다.

“민지 씨, 이거 몇 개만 가져갈게.”

“그러세요.”

진석은 방울 양배추를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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